소설리스트

443화 (443/604)

“그자는 테라리움 1급 범죄 수배자입니다. 어째서 1번째 테라리움으로 인도하지 않으시는 거죠?”

“말했다시피 그 사실을 모르지 않으나 처벌은 60번째 테라리움에 대한 건부터 처리 후 넘기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녀가 세계적인 범죄자이기 전에 60번째 테라리움에서 벌인 테러를 행정 관리원으로서 그냥 넘길 수 없습니다.”

스텔라에 대한 인도 건으로 1번째 테라리움에서 내려온 공문을 무시하길 여러 번, 결국 직접 사람이 내려왔다.

방송을 통해 애쉬까지는 아니더라도 인페르노가 길드전에 가담한 사실이 널리 퍼졌다. 1번째 테라리움에도 송출 시스템이 마련된 것은 아니나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퍼진 탓이다. 대부분 수배지로만 인페르노를 접했던 사람들에게는 이번 사건이 조직에 대한 위험도를 확실히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미 다른 인페르노 범죄자들은 넘기지 않았나요?”

“죽은 자들은 말이 없잖습니까?”

애쉬가 죽인 교단원들은 곧바로 1번째 테라리움에 넘겼다. 스텔라도 죽었다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그녀를 살리기 위한 의료 시스템을 조용히 구축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스텔라는 현재 간신히 생명줄을 이어 놓은 상태였다. 가느다란 그 줄이 언제 끊겨도 이상하지 않았다.

60번째 테라리움은 의료 시설이 열악하다 못해 텅 빈 상태였기에 다른 테라리움에서 시설과 인력을 구해 왔고, 오가는 사람들의 입을 모두 막기엔 무리였다. 스텔라의 상태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에 이송도 불가능했다.

“60번째 테라리움에 대한 일도 저희가 책임지고 처리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수순이 밀려나겠지요. 워낙 번호가 뒤 번대이지 않습니까?”

난 아직 스텔라에게 묻고 싶은 것도, 확인해야 될 것도 많았기에 그녀를 넘길 수 없었다. 1번째 테라리움에 넘기는 순간 영영 스텔라를 못 볼 것이 분명했다. 지금도 교단원 시체들이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 감감무소식이었다.

베스탈리스와 연결점을 맺기 위한 열쇠는 애쉬가 아니라 스텔라였기에 난 그녀를 절대 보낼 수 없다.

“번호로 차별받을 일은 없으실 겁니다. 애초에 그런 대 테러리스트는 1번째 테라리움 관할이지 않습니까?”

“글쎄요. 그녀를 잡은 것도 저, 잡힌 곳도 제 관할, 당연히 가장 먼저 체포한 쪽이 우선이라 알고 있는데요? 그새 법이 바뀌었나요?”

강제로 스텔라를 데려가려 한다면 상당히 곤란했기에 초조했었는데 내 유능한 보좌관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줬다. 테라리움의 법은 곧 행정 관리원, 각 테라리움마다 존재하는 관할 구역 내 범죄자는 행정 관리원의 역량대로 우선 처리하는 법을 찾아내 준 것이다.

테라리움마다 범죄자를 대하는 법이 다 달랐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는데, 같은 범죄라도 어떤 테라리움은 추방 및 접근 금지로 끝이지만 구금과 벌금 등 처리가 다양했다.

그 많은 범죄자들을 중앙 행정 관리부에서 전부 도맡아 처리하기엔 리소스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스텔라가 벌인 사건을 60번째 테라리움 관할 내로 축소시킨다면 당분간 그녀를 내가 묶어 둘 수 있었다. 다만 이를 계기로 중앙 행정 관리부가 법령을 개편하거나 권력을 행사한다면 결국 내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여기서 계속 이러셔도 제 입장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녀는 저희가 먼저 재판합니다.”

“후회하실 겁니다.”

나와 1번째 테라리움 간의 관계는 따지고 보자면 우호적인 편에 가까웠다. 세계수에 의한 신성 국가나 다를 바 없는 1번째 테라리움이었고 난 아직까지 대외적으론 세계수의 대리자 역할을 행하는 드루이드니까.

그들 역시 아무리 내가 버텨도 직접 사람이 내려온 이상 양보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렇게 반항을 하니 오히려 저쪽도 반발이 컸다.

“글쎄요. 전 드루이드 이전에 행정 관리원이기도 하니까. 제 테라리움에 충실하겠다는 것이 어째서 후회할 일인지 모르겠네요.”

결국 그들은 소득 없이 1번째 테라리움으로 돌아갔다. 이제 그쪽에서 강제 권한을 행사하기 전에 스텔라가 먼저 의식을 찾아야만 했다. 차라리 제 발로 도망이라도 가면 기한이 연장이라도 될 텐데.

“급한 불은 껐습니다. 이제 만나 보셔도 됩니다.”

사람들이 돌아간 후 스텔라의 응급 치료를 맡던 의사가 찾아와 말했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 큰 수술이 여러 번 있었던 터라 당장 나조차도 만나 보기 힘들었는데 이제 겨우 시간이 난 듯하다.

난 스텔라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병실을 가득 채운 기계들은 전부 의료 계열에 능통한 연금술사들에게 의뢰한 물품들이었다. 그녀는 나와 달리 세계수 가지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야만 했다.

스텔라가 누워 있는 침대 옆자리에 앉아 그녀를 살폈다. 파리한 여성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애쉬에게 치명상을 입고도 이렇게 살아남은 건 기적일까? 아니면 그녀가 해야 될 일이 남아 있다는 걸 뜻하는 운명인 걸까?

난 손을 들어 스텔라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애쉬에게 했던 것처럼 물의 기운을 끌어 올려 천천히 그녀의 영혼을 살폈다. 애쉬의 영혼을 살피며 보았던 그 균열을 스텔라에게서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만약 스텔라 또한 같다면, 베스탈리스는 새로운 운명의 길을 맞이할 것이다. 세상에 창궐한 병균 같은 몬스터 불들, 그것들을 정화할 수 있는 종족.

물의 기운이 훑은 영혼은 애쉬 못지않게 군데군데 까맣게 타고 망가져 있었다. 혹시 모든 베스탈리스의 영혼들이 다 이처럼 망가져 있는 걸까?

그들이 불의 기운을 정화할 수 있는 힘을 가졌어도 아직까지 본인들은 물론 세상 그 누구도 알지 못한 이유가 이리 영혼이 망가져 정화의 힘을 펼칠 수 없기 때문인 걸까?

물의 기운으로 천천히 영혼의 바깥부터 수복하며 안으로 나아갔다. 의식을 잃은 그녀지만 영혼 내의 괴물 같은 화기는 여전히 활발했으며 끝도 없이 날뛰고 있었다. 스텔라의 치료를 부탁했을 때 상당수의 의료진들은 맡기를 거부했고 시작 전부터 포기했었다.

방송으로 인해 불을 다루는 자들에 대한 공포감이 상승했기 때문에 아무리 그녀가 의식 불명인 상태라도 갑자기 화를 입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간신히 드루이드 출신의 의료진들이 그녀를 맡아 주겠다고 나왔다.

방송은 스텔라에 대한 공포심을 상승시켰지만 반대로 이를 저지한 나에 대한 지지도는 올라갔다. 특히나 드루이드들 사이에서.

소수 인원으로 길드전을 승리로 이끈 것과 난관의 연속이었던 베스탈리스와의 전투도 이겨 낸 데다 전국으로 수배가 내려진 인페르노 조직원들도 표면적으로 내가 잡은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드루이드들 사이에서 완전 영웅이 되어 버렸지.

특히나 그들은 전투 도중 내가 보인 세계수의 기운이 충만한 엄청난 기술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었다. 금빛으로 휘몰아치던 전장, 날뛰던 화기를 단번에 잠재우고 스텔라에게 거칠게 반격하던 힘.

사실은 내 몸을 차지한 세계수 힘의 폭주였지만 정확한 사실을 알 리 없는 그들에게는 단순히 가드닝 스킬이라 둘러댔다.

그런 나이기에 내게 상당히 우호적이게 된 드루이드들이 나와 연줄을 위해서라도 기꺼이 스텔라의 치료를 맡아 주었다.

“좀 들어가도 될까?”

똑똑, 노크 소리가 이어진 후 파필리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일 텐데?”

“네 보좌관이라고 하니까 그냥 보내 주던데.”

단순히 보좌관이란 말에 들여보내 줬을까? 입을 엄청 털었겠지.

“들어와.”

그 말에 냉큼 문이 열리고 파필리온이 들어온다. 본래 16번째 테라리움으로 돌아갔어야 할 그는 아직 이곳에 머무는 중이었다.

인페르노가 무섭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는데, 글쎄? 애쉬는 당분간 조직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약속하며 돌아갔으니 파필리온에 대한 습격도 없을 터였다. 물론 애쉬가 믿음직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살고자 한다면 내 말을 따라야 했다.

“스텔라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는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밀착해 앉으며 온갖 감정이 담긴 눈으로 스텔라를 바라봤다.

“그녀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글쎄. 그쪽은 내 영역이 아니라.”

“그래.”

자리가 불편해 옆으로 움직이니 또 냉큼 몸을 붙여 온다.

“그래서 구경이라도 하러 온 거야?”

“아니. 네게 필요할까 싶어서 내가 아는 모든 온건파 베스탈리스들에게도 연락을 취해 놨다고 말하러 왔지. 조만간 텀을 두고 몇몇이 이곳으로 널 만나러 올 거야. 그날 이후 베스탈리스들에게서 뭔가를 발견한 거 아냐? 그렇다면 비협조적인 인페르노 놈들보다 협조적인 쪽을 공략하는 게 좋지 않겠어?”

귀신 같은 놈. 아직 그날 내가 발견한 것에 대해 알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 모든 베스탈리스들이 정화의 힘을 가졌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스텔라를 60번째 테라리움에 숨겼기 때문에 추론한 거야?”

“아니, 네가 애쉬를 살려 보내서 알게 된 거야. 찰나지만 난 분명 봤거든. 그가 무력했던 순간을. 그런데 네가 온전히 그를 돌려보냈고… 인페르노를 처단하겠다는 네가 수장을 곱게 돌려보낼 리가 없으니 뭔가 이유가 있겠다 싶었던 거지.”

그는 분위기를 틈타 슬금슬금 내 어깨에 손을 올리려다 호되게 맞고 손을 내렸다.

“애쉬에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 고민해 봤지. 네게 이득이 될 거라곤 그가 가진 수장 자리뿐이고, 그는 네 타입이 아니잖아? 네 타입은 나지. 그러니 전장 속에서 극적으로 사랑이 꽃필 리도 없지.”

“네 머릿속은 온통 그것뿐이야?”

“맞아. 내 머릿속은 온통 너뿐이야.”

“꺼져.”

내 말에도 그는 정말 꺼지진 않고 능청스럽게 말을 잇는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결국 애쉬가 베스탈리스이기 때문에 돌려보냈다… 라는 결론밖에 없더라고.”

“조직의 견제를 위해 돌려보냈을 거라곤 생각 안 해 봤어?”

“애쉬가 죽으면 당장 망할 거야. 와해되면서 혼란이 빚어질 걸 걱정했나 본데 인페르노엔 애쉬를 내리고 다른 수장을 올리고 싶어 하는 무리도 꽤 있어. 그 중점에 우리 어머니도 계시긴 한데… 어쨌든 애쉬를 죽였다면 수장직을 차지하기 위해 한동안 내부에서 혈투가 일어날 테니 오히려 외부는 더 조용해졌을 거야.”

“그건 꼭… 내가 그를 죽이지 않은 걸 탓하는 것 같다?”

“내가 어떻게 너를 탓하겠어? 사랑하기도 바쁜데…. 윽.”

기어이 매를 번다. 팔꿈치로 아프게 허리를 찍어 주곤 스텔라를 바라봤다.

“온건파 베스탈리스는… 아주 잠깐 잊고 있긴 했는데 연락해 줘서 고마워. 맞아. 베스탈리스들에게서 뭔가 발견하긴 했거든.”

난 다시 스텔라의 손을 잡고 천천히 그녀의 영혼을 살폈다.

“전에 내가 설명해 줬던 거 기억해? 인페르노 조직도에 대해.”

난 에우노미아가 그린 조직도에 파필리온이 열심히 달아 둔 첨언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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