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5화 (455/604)

사고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에르바의 막내 길드원인 라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한참 전투를 치른 후 마차를 점검할 때까지, 우린 사람 하나가 빈다는 걸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 마차에 올라타며 자리가 빈 걸 보고 뒤늦게 라운의 부재를 알아차렸다. 그동안 숱하게 전투가 일어났었지만 이렇게 누구 하나가 이탈한 건 처음이었기에 반응이 늦었다.

“마지막으로 봤던 게 언제죠?”

다들 황급히 마차에서 뛰어나와 주변을 둘러봤다.

“하, 혼자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이번엔 몰려오는 방향이 제각각이라 따로 틀어막다 보니….”

“실력이 있는 친구니까 괜찮을 거예요. 혹시 전에도 이렇게 혼자 이탈했던 사건이 있었나요?”

내 질문에 다들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채를 띠는 걸 보니 바로 기억나는 일이 있나 보다.

“전에는 갑자기 무겁게 짐을 이고 가는 할머니를 도와주겠다며 말도 없이 사라졌었지?”

“현상 수배자를 본 거 같다면서 혼자 뛰어가 버리기도 했고.”

“딴생각에 빠져서 다들 뒤에서 잘 따라오고 있는 줄 알았다며 혼자 멀리 가 버렸다가 길을 잃을 뻔한 적도 있고 말이야.”

괜히 사고뭉치의 기운을 풍기는 토템이 아니었다. 본의 아니게 사고가 따른다기보단 불러들이는 것도 제법 존재했던 것이다.

“이를 어쩌죠. 의뢰인님께선 이 장소에서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으실 텐데….”

후각에 고통받는 내 사정을 알기에 그들은 매우 난처한 기색을 표했다. 너무 고통받는 중이었기에 아니라고 배려할 수도 없었다.

“아, 실종자…! 어쩌면 이번에는 라운이 자발적으로 일을 벌인 게 아닐 수도 있어요. 이 근방엔 실종 사건이 자주 발생했잖아요? 어쩌면 나쁜 일에 휘말렸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여태 드루이드는 대상이 아니었잖아요?”

“그게 이상하긴 하죠. 하지만 정말 실종 사건의 피해자가 된 거라면 지금쯤 무척 위험한 상태일지도 몰라요. 여태 실종된 사람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았다면서요?”

괜히 불길한 소리를 한 걸까…. 에르바 길드원들의 안색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그렇다면 지원군이 필요해 보여요. 그동안 모든 길드원들이 달라붙어도 실종 사건의 지척에도 다가가지 못했어요. 그러니 사람이 더 필요할 수도….”

“마차를 타고 가요. 어차피 원래 약속했던 목적지의 절반은 왔으니까요.”

난 잔뜩 얼어붙은 표정을 한 마부가 대기 중인 마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다들 기겁한다.

“하지만 약속했던 건 78번째 테라리움까지 둘러보는 것이 아니었나요?”

“괜찮아요. 78번째 테라리움은 뚜렷한 목적지가 아니었어요. 그저 소멸된 테라리움을 살피다 제가 찾던 조건에 부합하는 곳을 발견하려던 것뿐.”

지금은 77번째 테라리움으로 향하는 길목이었다. 이대로 쭉 걸어간다면 무리 없이 도착할 것이다. 만약 그곳 역시 명백히 테라리움의 형태를 띤다면 78번째도 살펴야겠지만.

하지만 이 근처에서 실종 사건이 벌어졌다. 어쩌면 내가 찾던 곳이 아주 가까이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럼 인원을 반으로 나누겠습니다. 반은 지원을 요청하고 반은 의뢰인님을 호위하죠. 맡은 의뢰는 끝까지 완수하겠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라운을 금방 발견할지도 모르잖습니까?”

차라리 4명 전부 돌아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우린 오는 길에 수많은 불의 습격을 받았기에 둘만으로는 안전하게 움직이기 부족할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지원을 요청하러 가다 전멸당하는 것이었다.

“하…. 라운 녀석, 갑자기….”

“아뇨, 네 분 전부 돌아가세요. 저는 혼자 움직일게요. 그러다 라운을 찾으면 제가 보호할게요. 그게 합리적으로 보여요. 괜히 둘씩 나눴다가 전력이 분산되어 도리어 지원을 요청하러 가는 길이 지체될 수도 있어요. 물론 여러분들을 못 믿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저흰 이미 오는 길에 겪어 봤잖아요? 아무리 이 일대를 정리하며 왔어도 불은 축복의 균형이 깨진 틈으로 쉴 새 없이 밀려오고 있어요.”

축복이 증발하여 어떠한 생물도 불을 피해 살아갈 수 없는 죽음의 대지.

“모두가 힘을 합쳐야 간신히 습격에 맞서는 수준이었잖아요? 둘로는 안 될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의뢰인님께서도 절대 혼자 버틸 수 없어요!”

내 발언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그들이 발끈했다. 물론 내가 제이였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제이가 아니었다. 즉, 평범한 게임 캐릭터가 아니란 소리다.

예전이라면 내 스스로 나를 지킬 수 없었으므로 믿음직한 동료들과 함께해야만 했지. 하지만 지금은 어쩐지 어떤 위험이 닥쳐와도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내 몸을 감싸는 초월적인 힘이 느껴진다.

사실 이것이 아주 좋은 변화일지는 잘 모르겠다. 등을 맞대는 동료와의 모험이 더 이상 내 길에서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제이가 걸으려고 했던 길을 다시 걸으려고 해선 안 된다. 그것이 바곳의 경고였다.

제이는 내 영혼에서 떨어져 나간 파편. 언제든 내가 가려던 길이 제이가 가려던 길과 유사성이 발생한다면 떨어져 나갔던 파편은 본래의 자리를 찾기 위해 돌아온다고 했다.

“애초에 마차만 구할 수 있다면 혼자 올 생각이었어요. 전 그럴 능력이 되니까요.”

물론 그것이 항상 고독하게, 동료 따윈 필요 없는 외로운 길을 걸으란 뜻을 의미하는 건 아닐 테다. 동료는 물론 모두를 지킬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라는 뜻임을 알고 있다.

“여긴 말씀하셨던 대로 축복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이에요. 얕볼 지역이 아니란 말이에요. 이 지역을 드루이드 홀로 돌아다니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어요. 아무리 강한 드루이드라도 반드시 팀을 맺어서 다녀야 한다고요.”

파티 플레이가 강제되는 지역이란 건 알고 있지만 때로 오버 스펙의 유저는 이 점을 무시한다.

“제가 괜히 한 길드의 길드 마스터겠어요? 제 길드를 걸고 말할 수 있어요. 전 혼자서도 괜찮아요. 그러니 제 걱정은 말고, 더욱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라운을 찾을 수색 지원을 요청하러 다녀오세요.”

“당신이 한 자릿수 테라리움의 전속 길드의 마스터라 해도 걱정이 될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은 저희 길드의 의뢰인이라고요.”

“물론 당신들의 입장도 이해해요. 하지만 의뢰는 완수했어요.”

난 주머니에서 의뢰서를 꺼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찢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계속 의뢰를 물고 늘어지리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차피 의뢰금은 전부 선수금으로 치렀다.

“난 78번째 테라리움까지의 운송을 희망했던 거지, 목적지로 확정하지 않았어요. 의뢰는 의뢰인의 판단으로 중도 완료 처리된 거예요. 그리고 생판 남인 저보다 당신들의 길드원을 먼저 걱정해요.”

“셋, 더 이상은 안 돼요. 지원을 요청하러 가는 사람은 세 명, 전 남아서 당신과 함께 가겠습니다.”

결국 팽팽했던 신경전이 끝이 나고 협상의 마지노선으로 한 명이 남으며 다른 셋은 황급히 길드의 본거지로 돌아가는 마차에 올랐다. 남은 자는 이번 의뢰의 리더, 즉 조장을 맡은 자였다. 이름은 ‘룽카’라고 했던가.

“자신감이 대단하시네요. 혼자 이곳을 다니겠다고요? 더구나 지금 상태도 안 좋지 않습니까?”

약간은 내게 질렸다는 말투. 룽카가 날 보는 시선은 라운을 볼 때와 닮아 있었다.

“막무가내로 들렸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자만심은 아니었어요.”

“네네, 하지만 제 양심은 차마 그걸 못 본 척할 수 없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물론 라운을 찾는 일도 함께요.”

“당신 같은 길드원이 있으니 에르바는 크게 성장할 거예요.”

이미 선수금을 치렀으니 무시해도 될 텐데. 문득 돈 문제로 힘들게 했다던 이리스 파티의 전 길드가 떠올랐다. 그 길드라면 옳다구나 내팽개치지 않았을까?

“하, 그나저나 라운 이 녀석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일단 저희가 전투할 당시 그를 납치할 만한 외부 세력은 없었어요.”

만약 제3의 적이 접근했다면 드라이어드들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다.

“더구나 그 역시 드루이드니 드라이어드들의 보호를 받았겠죠. 어쩌면 단독적으로 따로 떨어진 건 자의였겠죠. 그 이후 돌아오지 못한 건 타의일 수도 있고요.”

이리스 파티가 갑자기 길을 잃게 된 현상을 그가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77번째 테라리움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숨이 차오르도록 빠르게 걸으며 불안으로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요란하게 마차로 이동할 때와 달리 도보로 이동하는 게 불의 시선을 덜 끌었기에 오히려 습격이 줄어 이동 시간이 크게 지체되진 않았다.

“냄새는 괜찮으십니까?”

“괴롭죠. 토하고 싶을 정도예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점점 받아들이고 있어요. 마치 감내해야 될 시련처럼 말이죠. 마차 밖으로 나와 운동을 해서 그런가?”

걱정을 덜기 위한 농담조였지만 잘 통하진 않았다. 사실 내가 초월적인 힘을 얻었다고 해서 육체까지 만렙이 된 건 아니다. 오히려 제이보다 하향되면 하향됐지, 평소처럼 학교를 잘 다니다 막 다른 세계로 넘어온 내 본래의 육체였기에 체력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즉, 룽카는 날 걱정과 더불어 의심하고 있었다.

“아….”

마침내 77번째 테라리움의 바로 근처까지 도착했고, 난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지도가 없었다면 이곳에 테라리움이 있었다는 걸 인지 못할 정도로 훼손이 심각했다. 그나마 간간이 집터가 보였지만 오던 길에 봤던 사람들이 떠난 후의 유랑 부락과 정도가 다를 바 없었다.

우리가 맞섰던 수많은 불의 습격이 표지판, 인도, 외부 방어벽 등의 과거 인적을 이미 모두 태워 없앤 후였고 그런 습격이 더욱 더 사람들의 왕래를 막아 이 장소가 고립되게 만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지독한 악취는 이 근방에서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제가 찾던 곳이… 저곳 같아요. 다음 테라리움에 넘어가지 않아도 될 듯한데…. 어쩌면 라운 역시 저곳에 있을지도 몰라요.”

나는 멀리 보이는 테라리움 입구 쪽으로 다가가기를 주저하며 룽카에게 말했다. 악취가 마치 더 이상 다가오면 내 몸을 모두 썩게 만들어 버리겠다고 경고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그러나 저 넓은 곳을 오늘 안에 전부 수색하는 것도 무리니… 당장은 외곽을 위주로 살펴보는 걸로 할까요? 곧 날이 어두워질 거예요”

악취를 느끼지 못하는 그 역시 테라리움의 깊은 곳까지 가는 것이 걱정되는지 고심하는 표정이 가득했다.

목을 타고 들어오는 공기에도 부정한 것이 섞인 것처럼 불쾌했다. 갈수록 끈적해지는 공기. 마치 흐르기를 거부한 것처럼 한 곳에 고이고 고여 썩은 공기가 모여 있는 듯했다.

이런 비슷한 느낌을 이전에도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그곳은 시간이 멈춰 고이고 고였던 곳이었다.

“정말 라운과 실종 사건 그리고 의뢰인님께서 쫓고 계시는 길드원들의 정신을 교란시킨 현상 모든 것이 하나로 엮여 있다 보시는 겁니까?”

“항상 그랬어요.”

이유 없는 서브 퀘스트는 없더라.

“제가 겪은 모든 일들은 우연이 아니었고 항상 연계되어 있었죠. 이건 어쩌면 그 모든 세부적인 일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큰 흐름을 본능적으로 쫓게 만드는 제 직감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라운이 사고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나는 사고를 쫓아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지금 눈앞의 모든 사건들이 제겐 그저 단서로 보여요. 어떠한 근본에 다가갈 수 있는 단서요.”

룽카의 말처럼 난 사방으로 흩어지는 물줄기가 결국 하나의 커다란 흐름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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