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3화 (58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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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관리원과의 만남을 끝낸 후 테라리움 밖으로 나왔다.

출입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드라이어드들이 반색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드라이어드를 개화시켰길래 네 영혼이….”

다급하게 내 몸의 안위를 살피던 엘더는 뒤에서 따라오는 맹그로브를 발견하고 형용하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맹그로브는 허공을 유유히 헤엄치며 다가오더니 엘더와 바곳, 가막살나무를 보고 활짝 웃었다.

“내 새로운 친구들인가 보군!’

“친구! 친구!”

“저건 또 무슨… 해괴한 드라이어드야?”

곁에 있던 엘더가 슬쩍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맹그로브에 대해 모르는 걸까?

물론 모든 드라이어드들이 서로에 대해 아는 건 아니었지만 세계수 안에서 메스키트가 키웠으니 어쩌면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맹그로브도 가디언이니까.

혹시 메스키트는 알고 있었을까? 세계수 안에 다른 가디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오션 필드의 가디언, 맹그로브야.”

“리버 필드가 아니라? 또 다른 가디언이 세계수에 있었다고? 메스키트처럼, 얼마든지 다른 드루이드가 열매로 개화시켰을 수도 있는 상황 아니야? 대체….”

엘더는 꽤나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것보다 그 자식이 열매 두 개를 다 가져갔으면 어쩌려고 했던 거지. 그럼 한 번에 두 그루의 가디언을 깨우게 되는 셈이잖아.”

“맹그로브는 세계수 안에서부터 날 느끼고 날 만나러 왔대. 마거리트처럼 말이야….”

내 말에 엘더는 다시 알 수 없는 표정이 되었다.

“오호, 꽤나 귀여운 드라이어드로군. 옆에서 알랑거리는 모습이 과거 눈꽃을 보는 기분이야.”

“뭐? 누가 알랑거린다고…!”

맹그로브는 정말 귀엽다는 눈으로 엘더를 바라봤다. 마치 손주를 보는 것 같은 얼굴로 말이다. 그리고 엘더는 당연하게 그의 행동에 화를 냈다.

“잠깐, 이럴 때가 아니야. 지금은 전투에 집중하자.”

맹그로브의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은 충분히 엘더와 부딪힐 만했기에 급하게 중재했다. 특히나 엘더는 메스키트처럼 자신을 묘목 취급하는 드라이어드를 싫어했으므로….

물론 맹그로브의 나이로 따지면 엘더는 갓 태어난 묘목이긴 했다.

나이대로 따지면 실새삼과 잘 맞으려나….

“상황은 어때?”

내가 테라리움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전투를 치렀을 이들에게 물었다.

“내가 맹그로브를 개화한 후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오긴 했는데. 내 생각대로라면 좀 나아졌어야 하는데?”

“너… 아니 영혼의 변화는 없으니 세계수 가지를 얻은 건 아닐 테고.”

“갑자기 상황이 많이 나아졌어요. 땅이 재생하기 시작했거든요.”

답은 바곳에게서 나왔다. 그는 이 일대의 축복의 힘이 돌아와 불을 상대하기 훨씬 수월해졌노라고 말했다.

“뭘 한 거야?”

“밥 좀 주고 왔지….”

그렇게 말하곤 엘더의 시선을 피했다. 다이아를 얼마나 펑펑 쓰고 왔는지 알면 엘더가 노발대발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난 행정 관리원을 만나 93번째 테라리움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왔다.

세계수가 언제 내게 시련을 내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이상 세계수 가지를 늘리는 건 좋지 않지만, 내가 가지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기에 투자를 명목으로 막대한 양의 다이아를 ‘기부’하고 왔다.

더 이상 다이아를 수급할 수 없다는 점에서 93번째 테라리움은 약해질 일만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드루이드 활동에 가장 근본이 되는 세계수의 축복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불을 해치우는 것보다도 세계수 가지의 축복의 힘으로 불의 기세를 억누르는 게 가장 효과적이며 시급한 일이었다.

불이 곧바로 먹이가 풍부한 더 앞 번대 테라리움으로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축복의 균형이 견고해 제힘을 발휘하기 힘들기 때문에 테라리움을 하나라도 더 무너뜨리는 게 본능적으로 이득임을 그들은 아는 것이지.

그래서 세계수의 93번째 가지가 축복의 힘을 회복할 수 있도록 막대한 양의 다이아를 퍼붓고 돌아왔다. 얼마나 굶주렸는지 밑 빠진 독처럼 다이아가 끊임없이 들어갔지.

물론 이 행동은 임시방편이나 다름없었다. 세계수 가지는 힘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이아를 공급해 줘야 했다. 내게 빨대를 꽂은 가지들의 상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현재 이 일대에 회복된 축복이 유지되는 시간은 짧을 예정이기에 그 안에 승부를 결정지어야 했다.

“맹그로브, 이 지역에 있는 오션 필드의 드라이어드들을 격려해 줄 수 있어?”

“물론이지.”

그가 문제없다는 듯 씨익 웃었다.

“그런데 이미 이곳엔 다른 필드의 기운들도 느껴지는군. 그들은 모두 본래의 의무를 깨달은 건가? 내가 알기론 나 못지 않게 녀석들도 수호의 의무에 손을 놓은 지 오래됐을 텐데.”

“맞아. 내게 온 가디언들은 모두 맡은 바 의무를 다하고 책임을 지기로 했어. 네가 느끼는 이 일대의 기운이 그 증거야.”

“대단하군. 넌 정말 세계를 구할 드루이드도다. 역시 나의 선택은 한 치의 틀림도 없도다!”

“대단해! 대단해!”

“탁월한 선택!”

맹그로브는 황금으로 만든 삼지창을 쭉 내뻗었다. 그러곤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저 쪼그만 녀석들은 뭐야?”

엘더가 맹그로브 주위를 빙빙 도는 미니미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맹그로브는 숲을 이루는 게 특징인 드라이어드라 그런지 그게 형상화된 게 아닐까? 그가 한마디 하면 저 일곱이 곧바로 뒤따라 말을 거들어서 앞으로 좀 시끄러울 거야. 그런데 귀엽지 않아?”

내 말에 엘더가 끔찍하다는 눈을 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쉽지 않군….”

집중하고 있던 맹그로브가 조금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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