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9화 (589/604)

임시 처소엔 테라리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부상자가 상당히 많이 모여 있었다.

잔뜩 굳어진 얼굴로 향하니 곧바로 환자들을 돌보던 의료진이 내게 뛰어왔다.

“부상을 입으신 건가요?”

“아뇨, 다친 건 아니에요. 잠시 정비가 필요해서 들렀어요.”

내 말에 의료진은 안도의 한숨을 쉰 채 다시 환자에게로 돌아갔다.

확실히 이곳 상황은 92번째 테라리움보다 무척이나 나빠 보였다. 그래도 테라리움 안으로 들여보내지 못한 보급품이 쌓여 있었기에 물품 부족을 걱정할 일은 없어 보였다.

각종 상회에서 기부한 물품 상자들이 상표를 달고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게 보였다. 그중엔 익숙한 황금 호박 상회의 기부품도 있었다.

떠나기 전, 그쪽에 소식을 흘렸던 게 아무래도 도움이 된 듯하다.

복잡한 임시 처소 안에서 잠시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발견했다. 그곳엔 이미 낯익은 얼굴인 렉스가 앉아 있었다.

“멀쩡해 보이시는군요.”

그녀는 진심으로 놀랍다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사실 당신들이 떠난 이후로 가끔 임시 처소를 둘러봤습니다. 혹시 다쳐서 돌아오진 않았을까 하고. 하지만 기우였군요.”

오히려 나를 걱정하는 렉스의 모습이 더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러는 당신은… 다치신 건가요?”

렉스의 팔다리는 붕대로 뒤덮여 있었다. 피와 고름이 새어 나와 붕대 본연의 하얀색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부상 정도만 놓고 보면 더 이상 그녀는 이곳에 있어선 안 될 정도였다. 당장이라도 떠나 테라리움에서 고급 치료를 받아야 할 부상으로 보였다.

문득 그녀가 그저 자신은 다른 이들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을 뿐이라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이 정도면 다행입니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렉스는 전투에 직접적으로 가담하기보단 불이 삼키기 전에 시체를 회수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 갑자기 제 드라이어드가 놀라운 힘을 펼쳤습니다. 본래라면 감당이 안 됐을 상대인데 해낸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자신의 옆에 있는 드라이어드를 바라봤다. 드라이어드는 내가 다가오기 전부터 계속 날 지켜보고 있었던 건지, 그쪽으로 눈을 돌리자 단번에 눈이 마주쳤다.

“당신… 이었군요.”

눈이 마주친 드라이어드는 대뜸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날 향해 고개를 숙였다. 꼭 쥔 두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하마터면 제 드루이드를 지키지 못할 뻔했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윽고 드라이어드의 고개 아래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게 보였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렉스는 드라이어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크게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왜 내게 감사 인사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렉스를 구한 건 드라이어드로, 위기의 순간에 곁에 내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내가 대체 무슨 도움을 주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겠지.

그러나 난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드라이어드의 자생 필드가 어디인가요?”

“제 드라이어드 말씀이십니까? 자생 필드라 하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노멀 필드입니만….”

데이지의 필드였구나.

난 그녀의 말에 데이지를 불러냈다. 데이지가 나타나자 렉스의 드라이어드는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눈물이 범벅된 얼굴을 하고 데이지의 손을 붙잡았다.

“들렸어요. 당신의 목소리. 분명히 들렸어요. 제게 분명히 닿았어요. 감사해요.”

데이지는 처음에 당황했지만 이내 의연하게 그 손을 마주 잡아 주었다. 그리고 밝게 웃었다.

“들어 줘서 고마워요.”

“불러 줘서 고마워요.”

둘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어쩐지 가슴이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영혼의 부름을 성공해 낸 데이지가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그로 인해 격려를 받은 드라이어드가 자신의 주인을 구해 낼 힘을 얻게 되었으니까.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제게 설명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렉스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이분이 바로 저희 노멀 필드의 가디언이세요. 전 당신의 규율대로 이 세계의 친절한 도우미가 될게요. 소외되는 곳 없이 모든 땅을 이롭게 만들 때까지.”

가디언이 영혼의 부름을 사용하는 건 곧잘 봐 왔지만, 영혼의 부름을 들은 드라이어드의 반응을 직접 듣는 건 처음이었기에 놀라웠다.

“저희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으나 특별하게 규정되지 않은, 이 세계의 친절한 도우미입니다. 어느 땅에서나 피어날 수 있기에 소외되는 곳 없이 널리 퍼져 나가 그 땅을 이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데이지가 외쳤던 소리가 전부 드라이어드들에게 닿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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