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명한 비밀-7화 (7/62)

#007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들었다. 따르는 후배가 많았고, 그의 선배 기수들도 그를 향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서 유명한 레스토랑을 여러 개 운영 중인 그는 미디어에도 좀처럼 얼굴을 내비치는 일이 없었다. 늘 겸손하고 진지한 태도로 요리에 임했고, 미디어의 반짝 홍보를 통한 요행을 바라지도 않았다.

수아보다 몇 기수 앞서는 선배부터 몇 기수 늦은 후배에 이르기까지 그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젊은 나이에 빠르고 안정적인 성공을 이루었으면서도 결코 자만하는 법이 없었다.

능력과 인품을 두루 갖춘 그에 대한 신망은 두터웠고, 한국에 돌아가 그의 밑에서 일하는 걸 목표로 삼은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런 그가 파리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막연히 한번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아니 솔직히 만나고 싶었다. 그의 소신과 열정, 그가 추구하는 가치가 궁금해서 한 번만이라도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다면 좋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시은이 제안해 온 일은 그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보다 훨씬 고차원적이었다.

그리고 당장에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수아에게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이건 내일 아침까지 내가 다 먹어야겠네.”

수아는 지나가는 직원을 불러 계산서와 함께 음식을 모두 포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직원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순식간에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음식들을 거둬 갔다.

한숨을 폭 내쉬며 테이블 위에 허물어져 내리는데, 가방 안에서 휴대전화가 울려 댔다. 벨 소리로 짐작건대 메신저를 통해 한국에 있는 엄마가 전화를 걸어 온 듯하다.

휴대전화를 꺼내 든 수아의 얼굴에 미소가 어린다. 역시나 엄마다.

“어, 엄마.”

― 우리 딸, 아침은 먹었어?

“응, 먹었지. 많이 먹었어. 엄마는 이제 저녁 드셨어?”

파리 시각 10시 반, 한국은 저녁 6시 반이었다.

― 그럼, 엄마도 저녁 많이 먹었지.

거짓말. 불 꺼진 집 안에 홀로 앉아서 찬밥에 물이나 말아서 후루룩 마시곤 봉사 활동하러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거다.

“아빠는?”

― 네 아빠 요즘 아주 신나셨어.

아빠가 신이 났다는 말에 수아의 가슴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존경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혼란스럽게 뒤섞였다.

“또 무슨 일로 신이 나셨대?”

사춘기 시절 아버지와 끝없이 대립각을 세웠더랬다. 아버지의 정의감이 가족을 힘들게 하는 걸 아느냐고, 제발 돈이 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대들기도 여러 번이었다.

― 응, 엄마가 봉사하러 다니는 집 애들 있잖니.

엄마는 범죄를 저지르고 재소 중인 부모의 손이 닿지 않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어릴 적, 범죄자의 자식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엄마도 끝없이 미워했던 적이 있었다. 죄지은 사람의 자식을 돌보기 위해 나에게는 소홀하지 않으냐며 배부른 소리를 해 댔었다.

엄마는 단 한 번도 수아에게 소홀했던 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당신 몸은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새벽부터 일어나 따뜻한 밥을 새로 지어서 아침밥을 차려 주셨고, 골을 부리던 수아가 잠들면 몰래 방에 들어와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곤 하셨다.

― 걔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아빠가 법안 발의하신대. 어제 비서관이 다녀갔는데, 당에서 아버지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으시단다. 네 아버지 이제 빛 보려나 보다.

돈이 되지 않는 재심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던 아버지는 지난 총선에서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국회의원이 되었어도, 선한 일만 골라서 하는 만큼 돈이 되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여기저기 퍼 주는 탓에 궁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잘 됐네. 아빠 좋아하시겠다.”

― 그러니까 너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거기 일이나 잘해.

“알았어. 그리고 엄마.”

― 응, 딸.

수아는 망설이는 기색을 내보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더 밝은 목소리를 냈다.

“다음 주쯤에 내가 엄마 병원비 보낼 거야. 이번에는 시기 놓치지 말고 추적 검사 잘 받아요. 이제 5년이잖아.”

5년 전 유방암 수술을 한 엄마는 한쪽 가슴을 잃었다.

―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돈을 보내. 엄마가 보낸 학비도 고스란히 돌려보내면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자마자, 아버지는 자신의 젊은 시절 성정을 똑 빼닮은 수아가 한국을 잠시 떠나 있기를 바랐다. 가슴에 금배지를 달고 지내다 보면, 재심 변호사로 활동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부당한 일들을 겪게 될 게 불 보듯 뻔했다.

이제 성인이 된 딸이 그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아버지는 쉽게 알아차렸다.

「어릴 때부터 가고 싶다고 했잖니. 이참에 가거라.」

수아는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자마자, 프랑스 파리로 날아왔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멀리 있으면 소원해지니, 이쪽이 나은 선택이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늘 엄마가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를 누구보다도 이해하는 사람이기에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엄마였지만, 정작 그런 엄마를 챙겨 주고 보듬어 줘야 할 자신이 한국에 없으니 얼마나 적적할까 싶어서 마음이 아렸다.

「그래도 수아야. 엄마는 괜찮아. 엄마는 네 아빠가 하고 싶은 일 하는 거 돕는 게 행복하고, 우리 딸이 하고 싶은 공부 하는 거 지켜보는 게 행복해.」

그럼 엄마 행복은 괜찮은 거냐고 묻고 싶어질 때가 있다.

순간 말끝마다 괜찮냐는 물음을 달고 사느냐고 물었던 남자의 얼굴이 눈앞을 스쳤다. 그 남자 밑에서 일한 돈을 한국에 보내야 하는 상황. 그런데 남자는 불쾌하다는 듯이 자리를 떴다. 어쩔 수 없이 입안이 쓰다.

“아, 엄마 딸이 좀 능력이 좋아야지? 여기 프로젝트 하나 진행하고 있는데, 이 몸이 어시스턴트로 뽑혔거든? 페이도 레스토랑 인턴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세. 이것만 하고, 교수님이랑 쇼콜라 프로젝트 하나 하고 나서 바로 한국 갈게요.”

― 무슨 소리야? 얘는! 네가 한국에 왜 와? 프랑스에서 멋진 셰프님 되셔야 할 분이 왜 한국엘 와?

“뭐 한국 가서는 멋진 셰프님 못 하나? 프랑스 빵 질려. 이제 엄마가 해 주는 밥 먹고 싶어. 엄마 얼굴 못 본 게 벌써 얼마야.”

어학연수 6개월, 디플롬 과정 18개월. 2년이 지나도록 수아는 한국에 가지 못했다. 그사이 엄마는 추적 검사를 놓치고, 늦고. 병원에 가는 일이 수월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쓴소리가 흘러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아빠는 다른 사람은 끔찍하게 도우면서, 엄마 병원 가는 날짜는 왜 맨날 잊어먹는 거야? 이번에도 잊기만 해 봐. 내가 국회의원 도진택 씨 가정에 소홀하다고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글 올릴 거야.”

― 허이구. 국회의원 딸이 ‘우리 아빠 나랏일에 바빠서 집에 소홀해요!’ 하고 징징거린다고, 어느 국민이 찬성 눌러 줄까?

이런 상황에 익숙한 엄마에게선 능청맞은 대꾸가 술술 잘도 흘러나왔다.

“병원 꼭 가. 아낄 걸 아껴야지. 병원비 아끼고 그러지 마.”

― 아이고, 알았어. 알았어. 귀에 딱지 앉겠네. 우리 딸 오늘도 즐겁게 보내. 엄마는 우리 딸 웃는 얼굴만 생각해도 행복하다.

엄마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흘러넘쳤다.

“나는 윤진희 여사님이 징글징글하게 말 안 들어 먹어서 너무 밉다.”

볼멘소리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시은에게서 메시지가 들어왔다.

[수아야, 시간 날 때 전화 줘.]

냉랭하게 돌아서던 남자의 뒷모습이 떠오르며 한숨이 흘러나왔다.

― 우리 딸,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일은 무슨. 내가 여기서 프랑스 남자랑 눈 맞아서 실연의 아픔이라도 겪고 한숨 폭폭 내쉬고 있는 걸까 봐?”

― 언 놈이 우리 딸을 찼어? 그놈 눈깔이 삔 거지. 근데 수아야, 엄마는 사위랑 말은 통했으면 싶네.

“그럼, 오늘부터 프랑스어 공부하시든지요.”

일부러 키득거리고 웃으며 엄마를 놀려 댔다. 엄마는 빽 소리를 지르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딸이 하는 건 다 좋으시다면서, 프랑스인 사위는 또 싫으셔.”

엄마를 떠올리자 뭉클하게 가슴이 차오른다. 수아는 또다시 한숨을 한 번 몰아쉬며 시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언니. 메시지 주셨죠?”

― 어, 수아야. 어디야?

“저 지금 뮐로(Mulot)요. 아침 먹으러 나왔어요. 언니는 아침 먹었어요?”

수화기 너머에서 불편한 침묵이 흐른다.

― 그게 수아야.

수아는 잠자코 시은의 불안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너 혹시 한승 선배랑 무슨 일 있었어?

불길한 예감은 잃어버린 퍼즐 조각처럼 어디선가 나타나 자리를 차지하곤 한다.

“면접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아침에 잠깐 뵀어요.”

또다시 침묵.

“한승 선배가 뭐라고 하셨어요?”

― 그게……. 너는 안 되겠다고 하셔서. 내가 일단 다른 사람 구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씀드려 놨거든. 너 뭐 실수한 거 있어? 나도 한승 선배가 그렇게 화난 목소리로 전화하는 건 처음이어서, 지금 되게 당황스럽거든.

시은은 진심으로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한승 선배가 언니한테 화를 냈어요?”

그리고 혼란스러운 것은 수아도 마찬가지였다.

― 어, 다른 사람 구하라고 하는데, 목소리가 너무 무서워서 혼났어. 혹시 뭐 실수했어? 두 사람 무슨 일 있었던 거야? 한승 선배 그런 사람 아니고, 너도 그럴 애 아닌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수아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착실하고, 정이 많으며, 통솔력도 있는 시은은 유일하게 수아의 배경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번에 페이가 센 아르바이트가 있다며 먼저 일을 제안해 준 것도 시은이었다.

수아는 덕분에 엄마 검사비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며, 한시름 놓았었다. 수더분한 사람이니까, 시은이 추천하는 인사라면 절대 마다하지 않을 거라는 말도 했었다.

나만 사람 보는 눈이 이상한 건가?

마주했던 남자는 결코 수더분한 사람이 아니었다. 예민하고, 감정적이고, 시비 거는 게 주특기인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웃는 낯으로 대하려고 해도 자꾸만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

“제가 한번 다시 연락해 볼게요, 언니.”

― 그래. 나도 한 번 더 잘 이야기해 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자, 우리. 응? 한승 선배가 뭔가 오해했나 보다. 잘 풀어 봐. 알았지?

시은과 통화를 마친 수아는 대체 무엇을 오해했는지 모를, 자신의 눈에만 성깔 더러워 보이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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