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명한 비밀-9화 (9/62)

#009

수아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받아 냈다. 대체 왜 그렇게 못마땅한 눈빛을 하고 있느냐고,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탐탁지 않게 쳐다보는 거냐는 물음을 담아 그를 응시했다.

“수아야.”

시은이 수아의 팔을 툭 치며 조용히 부르지 않았다면, 입 밖으로 질문을 내뱉었을지도 모른다. 지난번 국회 청문회에서 날카로운 질문으로 스타가 되셨다는 아버지의 소식을 접했을 때가 생각나서 수아는 쓴웃음을 집어삼켰다.

부전여전이라고 궁금한 건 꼭 질문하고 싶은 걸까? 알아서 뭐 할 건데?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고 하면 어쩔 거야?

수아는 흘러나오려는 한숨을 꾹꾹 눌러 삼키며, 시안에 시선을 두고 있는 그를 조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첫 번째는 너무 단순하고, 두 번째는 특이한데 싸 보이고, 세 번째는 흔하고. 이게 답니까?”

수아보다 나이가 많은 시은에게는 반말을 쓰면서 자신에게는 꼬박꼬박 말을 높이는 것도 의문이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만큼 친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그는 모든 후배와 편하게 지냈다.

「피차 불편한데, 왜 굳이 나랑 이 일을 하려고 해요?」

어제 타파스 바에서 그가 던졌던 냉랭한 질문이 귓가를 맴돈다. 그 말을 다시 증명하듯 그는 수아를 한껏 불편하게 대하고 있다.

“후가공이 들어가면 느낌이 많이 달라질 겁니다. 첫 번째 시안에서는 세로 선에 은박 가공이, 두 번째 시안에서는 전체 그림에 에폭시 코팅이, 세 번째 시안에서는 윤곽에 홀로그램박이 들어갈 예정입니다.”

그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이 ‘흐음.’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수아는 인쇄 업체에서 샘플로 받은 카드를 건네며 설명을 이어 갔다.

“박 가공과 에폭시 코팅 예시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는 은회색 펄지가, 두 번째는 라벤더색 펄지가, 세 번째는 검은색 코팅지가 사용될 예정입니다.”

“레스토랑 분위기하고는 세 번째 시안이 어울리겠네요. 선내 인테리어가 블랙 앤 실버거든요. 여기 사진 보시죠.”

정 지부장이 건넨 태블릿 PC에서 사진을 넘겨 보는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세 번째로 갑시다.”

결정을 내리기는 했으나, 그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모객된 여행객들과 파리에서 일주일을 머물고, 보르도로 이동할 예정이다.

보르도에서는 그랑 크뤼 1등급에서 3등급 사이에 있는 샤토(Chateau: 성이라는 뜻이지만, 보르도 지방에서는 일정 조건을 갖춘 와이너리에 붙는 명칭)에 방문해 그곳에서 와인 클래스를 진행하게 된다.

수아와 시은은 파리에서의 일정뿐 아니라, 보르도에서의 일정과 뒤이은 니스 지방 투어까지 어시스턴트로 동행할 계획이다.

아껴 가며 유학 생활을 한 탓에 프랑스에 2년을 살면서도 파리를 벗어나 볼 여유가 없었다.

짧은 일정이지만 목돈도 벌고, 스타 셰프 차한승의 어시스턴트로 경력도 쌓고, 제 돈 주고 가 보기 어려운 프랑스 지방 도시와 유명 레스토랑을 둘러볼 기회이기도 했다.

“10분만 쉬었다 하시죠.”

그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 정 지부장이 휴식을 제안했다.

“그러죠.”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세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정 지부장은 의자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때까지 깊숙이 기대앉으며 의문 어린 시선으로 시은을 바라보았다.

“차한승 셰프 성격 되게 좋다고 소문났던데.”

소문과는 달리 까칠한 것 같다는 물음이 숨겨진 말이었다.

“성격 좋으세요. 후배들한테도 엄청 잘해 주시는데요? 그치, 수아야.”

시은은 수아에게 동조를 구하듯 눈을 치떴다.

“아, 네. 성격. 좋으시죠. 얼마나 좋으신데요.”

정 지부장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가늘게 숨을 내뱉었다.

“나도 차 셰프 처음 봤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근데 오늘 보니까 사람이 좀 달라 보이네.”

그는 오른손으로 목덜미를 쓸며 덧붙였다.

“자꾸 꼬투리 잡히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마치 차한승이 뒷덜미라도 잡은 것처럼 정 지부장은 고개를 가볍게 털어 냈다.

“나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올게요.”

정 지부장이 회의실 밖으로 향하자, 시은이 고개를 쭉 빼고 비밀스러운 말을 할 것처럼 목소리를 낮춘다.

“어제 선배랑 별일 없었어?”

수아는 그저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시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미심쩍다는 표정을 숨기지는 않았다.

“진짜 선배 이렇게 이유 없이 까다롭게 구시는 거 처음 보거든. 주방에서도 이렇게 날카롭지 않은 분이야. 왜 그러실까, 걱정되게.”

시은의 말투에서 진심 어린 염려가 묻어났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나도 그저께 이후로 선배랑 전화 통화만 했지, 마주 보고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거든. 선배 어딨는지 찾아봐야겠다. 뭐든 잘될 거야. 걱정 마, 알았지?”

시은은 수아의 어깨를 두어 번 다독이고는 회의실 밖으로 향했다.

“아.”

수아는 회의실 의자에 늘어지듯 기대며 한숨을 내뱉었다. 인턴 생활 하면서 별난 셰프 여럿을 만나 보았지만, 이런 종류의 별스러움은 또 처음이다.

대개 셰프는 예민한 경우가 많다. 미각뿐 아니라 후각과 시각적인 측면에서도 예민해져야 하는 직종이다 보니 업이 삶의 방식도 지배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의 경우는 인간이 직관적으로 느끼는 오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예민하게 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게 뭘까.”

스스로 생각해 놓고도 이해가 가지 않는 가정에 혼잣말이 툭 튀어나왔다.

“뭐 말입니까?”

갑작스럽게 들려온 나직한 음성에 심장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수아가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 앉는 사이 그가 대각선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두 당신이 예민하게 구는 이유를 찾느라 걱정이 태산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전할 수는 없어서 수아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는 수아의 대답은 원래부터 궁금하지 않았다는 듯이 태블릿 PC에 담긴 파일을 넘겨 보고 있었다. 수아의 시선도 자연스레 태블릿 PC에 닿았다. 그는 수십 번 보았을 파일을 보고 또 보았다.

“선배님께서 일을 수락하심과 동시에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사전 답사 없이, 현지와의 조율을 통해 장소가 섭외되었고, 필드 리허설 일정도 촉박하다고요. 프로젝트 마무리 잘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도 모르게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단둘이 있는 회의실, 프로젝트에 대한 그의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가 태블릿 PC를 향해 있던 시선을 들어 수아를 응시했다.

내내 차갑기만 했던 그의 눈빛이 이번에는 사뭇 달랐다. 흥미로운 물건을 다 보겠다는 듯한 눈빛이다.

“눈에 띄지 않는 게 어려우면.”

차갑건, 차갑지 않건. 그의 시선은 사람을 묘하게 긴장시켰다.

그리고…… 입이라도 다물고 있으라는 말을 하려는 걸까?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는 그의 시선 아래는 허를 찔린 표정이 숨겨져 있었다.

속을 들킨 게 무안해서 저러는 걸까?

만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사는 그는 타인에게 힘든 내색을 하는 법도 없다고 했다. 자존심이 센 사람일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흠 잡히는 것도 싫고, 약한 모습을 내비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는 완벽주의자.

그가 염려하는 부분을 건드리고 말았으니 싫은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보면, 이런 소리를 듣는다 한들 그는 결코 타인에게 예민하게 굴 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왜 나한테만 그러는 거냐고요, 이 성깔 더러운 놈아.

잇속으로 욕을 읊조리고 있는데, 뜸을 들이던 그가 입을 열었다.

“향수라도 좀 뿌리지 말죠. 어지러우니까.”

그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 댔다.

“향수요?”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은 수아는 팔을 들어 옷에 밴 냄새가 있나 하고 맡아 보았다.

“대체 무슨 향수를 얼마나 뿌리고 다니는 겁니까?”

그는 히스테릭한 목소리로 되묻기까지 했다.

“저, 향수 안 뿌리는데요.”

옷에서조차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오히려 회의실 안은 정 지부장이 쓰는 듯한 애프터셰이브 향으로 가득했다.

“뭔가 오해하신 것 같은데, 향수뿐 아니라…… 저는 샴푸, 보디클렌저, 화장품, 심지어 세탁 세제까지 향이 없는 것만 사용합니다.”

그 정도 기본은 있다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주방에 드나드는 사람이 가향 제품을 몸에 두르고 다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금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억지 부리시는 건가요?”

질문을 내뱉자마자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서 심장이 두근두근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는 한숨을 내뱉었다.

“미안합니다.”

뜻밖의 사과를 해 오는 남자 때문에 미간이 절로 좁혀진다.

“내가 착각했나 보네요.”

그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선을 도로 태블릿 PC로 돌려 버렸다.

프로젝트 끝나고 한번 들이받을까?

수아는 무심하게 시선을 돌려 버린 남자를 잡아먹을 듯이 쏘아보았다.

“아, 선배 여기 계셨네요. 밖에 계신 줄 알고 한참 찾았어요.”

등 뒤에서 들려온 시은의 목소리에 수아는 눈에 힘을 풀고 이내 고개를 숙여 버렸다.

“나 찾아다녔어?”

“네, 잠시만.”

시은이 그에게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며 불러냈고,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회의실 밖으로 향했다.

다중인격. 그는 다중인격인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수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회의실 밖으로 나온 시은은 쭈뼛거리며 한승의 앞에 섰다.

“무슨 일 있어?”

한승의 상냥한 질문에 귓불까지 빨개진 시은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수아가 이 프로젝트 시작하기 전부터 준비 많이 했어요. 저는 비즈니스 과정이 워낙 빡빡해서 바빴고요. 아무래도 지금 현업에 닿아 있는 사람은 수아여서, 수아가 진짜 노력 많이 했어요.”

한승은 미간을 찌푸리며 재우쳐 물었다.

“기시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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