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
침대 위에서 느껴지는 그의 숨결은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달콤하면서도, 가슴이 빠듯하게 조일 만큼 위험하게 다가온다. 그의 입술이 수아의 입술에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의 입가에 고인 미소가 진해진다.
다시금 입술이 가볍게 닿고, 떨어지고, 닿고, 떨어지고.
애가 탄 나머지 수아는 그의 가슴 위에 얌전히 올리고 있던 손을 뻗어 날카롭게 뻗은 턱 선을 감쌌다.
다시금 닿았다가, 떨어지기 직전 매혹적인 입술 사이를 가르고 혀를 집어넣었다. 딱딱한 치아 끝을 어루만지고 들어가 그의 혀를 어설프게 건드렸다.
“흐음.”
그가 낮게 신음하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는 깊게 혀를 얽고 빨았다. 목구멍이 딸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 정도로 강한 흡입력에 입을 크게 벌리며 더욱 깊이 닿기 위해 몸을 딱 붙였다. 질척이는 소음에 간간이 신음이 섞여 들었고, 더운 숨이 쉴 새 없이 부서졌다.
자연스레 몸이 뒤엉키며 수아의 다리가 그의 다리와 휘감겼다. 그는 오른손으로 수아의 등허리를 바싹 당겨 안고, 왼손으로는 가슴 윗부분을 더듬거렸다. 열기가 다시금 차올랐다.
봉긋한 가슴 윗선을 더듬던 손이 다시금 티셔츠 밑단을 들추고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 물고 빨아서 예민해진 살갗에 그의 엄지손가락이 닿았다. 까다로운 식재료를 다루듯 그는 섬세한 손길로 가슴 끝을 간질였다.
껍질을 벗기듯 손톱 끝으로 살살 긁어내렸다가, 비틀어 짜듯 엄지와 검지로 비벼 댔다.
“흐응.”
평생 내 본 적 없는 생경한 콧소리가 흘러나왔다. 팬티 안쪽이 축축하게 달라붙으며 간질거렸다.
무엇이든 닿았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무섭게 일어났다. 수아는 저도 모르게 그에게 다리를 휘감은 채로 단단한 허벅지에 몸을 비벼 댔다.
“하아.”
순식간에 입술이 떨어졌다. 그는 수아의 양 볼과 이마에 입을 맞추며 숨을 골랐다. 마침내 시선이 마주쳤을 때,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웃고 있었다. 수아 역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눈가는 새빨갛게 달아올라 버렸고, 역시 붉어진 입가는 뒤섞인 타액의 흔적으로 번들거렸다. 머리는 너무 급하다고 수아를 다독였지만, 몸은 그에게 더 닿지 못해서 안달이 났다. 마음과 몸의 인지 부조화에 심장이 아찔하게 뛰어 댄다.
“이제, 그만.”
마치 안달 난 수아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혹은 다짐하는 것처럼 속삭이는 목소리가 낮게 내리깔렸다. 수아는 왜 또 선을 긋느냐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 더 로맨틱했으면 좋겠어.”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린가 싶어서 수아는 고개를 쳐들고 그를 응시했다. 의아함 가득한 수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가 근사하게 웃었다.
“평생 기억에 남을 순간이니까.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시간이니까.”
그의 눈빛이 드물게 진중했다. 이제껏 장난기 가득했던 모습이 무색하리만큼 진지한 모습에 수아는 가만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행복할 수 있게 반짝이는 순간이었으면 좋겠어.”
수아는 한숨을 몰아쉬며 되물었다.
“그러니까 섹스는 좀 더 분위기 있는 곳에서 하고 싶다. 이거네요?”
내내 꿈결에 젖은 듯 읊조리던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아를 바라보았다.
“그 말을 왜 그렇게 어렵게 해요?”
그는 허,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다. 서로 잘 모르니까, 알아가는 유예 기간을 갖자고 조심성 있게 굴었다가, 지금은 뭐?”
한승은 발그레해진 얼굴로 여전히 가쁜 숨을 고르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눈을 치떴다. 그녀가 눈썹을 한 번 들썩이며 새침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못 할 말을 한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지금 내가 느끼기에, 우린 감정이나 생각보다 몸이 더 빨라요. 그걸 따라잡으려면 모호한 말은 득이 아니라 독이에요. 명확하게 짚어야 더 분명해진다고요. 유예 기간을 갖자는 말은, 알다가도 모를 사이가 되자는 게 아니라 분명한 관계가 되기 전에 시간이 좀 필요하다는 의미였고요.”
그녀는 머릿속에 뒤엉킨 말과 가슴속에 혼재하는 감정을 최대한 빠르고 간결하게 내뱉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로맨틱? 좋아요, 좋다고요. 나도 그런 거 좋아해요. 하지만 좀 더 정확한 언어로 말해 줬으면 좋겠어요. 있어 보이는 말로 꾸민다고 해서 무조건 멋진 건 아니거든요. 어려운 말 골라서 하는 것도 의미 전달을 방해하는 거 아시죠?”
한승은 어디까지 하나 두고 보자는 심산으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겨우 3주예요. 아니 이제 파리 일정도 반이 지났으니까 2주 반. 우린 2주 반밖에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없어요.”
“왜 2주 반이라고 생각해? 그 후에도…….”
“2주 반 후에는 어쨌든 결론을 내려야 하고.”
“지금 너는 그 결론이 부정적일 거라는 가정하에 말하고 있어.”
“아니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말하고 있어요.”
급기야 그녀가 몸을 일으켜 앉으며 한승을 내려다보았다. 가슴 위로 올라간 속옷과 티셔츠를 슬며시 당기는 그녀의 목덜미가 울긋불긋했다. 한승은 그녀가 베고 있던 팔을 접어서 목 뒤에 받쳤다.
“그러니까 우린 모호한 말로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거예요. 멋있어 보이고 싶은 건 알겠는데, 그런 말 안 해도 충분히 멋있고요. 뭔가 더 분위기를 잡고 싶은 것도 이해할 수 있는데, 지금도 충분하거든요?”
그녀의 얼굴이 뾰로통해 보이는 건 왜일까?
한승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할 말을 잃은 건지, 아니면 할 말을 정리하고 있는 건지, 미간을 찌푸린 채로 허공을 응시했다.
“도수아?”
낮게 깔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요.”
그녀는 끝내 시선을 옮기지 않고 불퉁하게 대꾸했다.
“너 지금 하다 말았다고 삐친 거야?”
그녀의 입술 사이가 슬쩍 벌어졌다가 이내 다물렸다. 정곡을 찔린 얼굴이다. 늘 서늘한 가면을 쓰고 있으면서, 제게만 총천연색 감정을 드러내며 반응하는 그녀가 예뻐 죽겠다.
한승의 입가가 뺨을 타고 올라 호선을 그렸다.
“아니거든요!”
그녀가 발끈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한승은 얼른 그녀의 허리를 끌어다 안았다. 뻣뻣하게 버티던 그녀는 이내 한승의 품으로 끌려왔다. 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로 그녀가 소리 나지 않게 종알거리는 게 느껴졌다.
“도수아. 욕은 들리게 하라니까?”
“됐다니까요.”
밖에서는 서늘한 얼굴로 도도하게 구는 여자가 품 안에서 바르작거리는 모습은 지나치게 어여뻤다.
“앙탈 부리지 마. 때 되면 다 할 거야.”
“그때가 딱 들어맞을지는 두고 봐야죠. 누가 그냥 막 해 준대요? 앙탈? 객기 부리지 마요. 오늘 같은 일 한 번만 더 있어 봐요. 유예 기간이고, 뭐고.”
객기 부리지 말라니, 반항은커녕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한승에게는 무척이나 생경한 말을 그녀는 잘도 쏟아 냈다.
한승은 그녀의 등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물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야? 설마 공용인가?”
“저쪽 문이요.”
그녀는 몸을 살짝 일으키며 부엌 안쪽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보고 싶어도 화장실 문은 열지 마.”
더럽다는 듯이 그녀가 얼굴을 굳혔다. 몸을 일으킨 한승의 시선이 바지 앞섶으로 향하자, 그녀의 시선도 자연스레 그 길을 따라왔다.
그녀가 굳은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런 반응도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그녀의 목덜미가 또다시 울긋불긋 달아오르고 있었다.
“들어오지 말라고. 궁금해도.”
한승은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켜 그녀가 가리킨 화장실 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화장실 문고리를 움켜잡은 한승은 안으로 들어가기 전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돌아섰다.
“아,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너 성깔 보통 아니다.”
멍해진 그녀의 얼굴을 뒤로하고 탁 소리가 나도록 화장실 문을 닫았다.
가향 제품을 전혀 쓰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처럼 세면기와 샤워부스까지 갖춘 화장실 안에는 깨끗한 물 냄새만 풍겼다.
“전혀 예상 못했는데.”
바지 지퍼를 내리는데, 문밖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몸이 흥분을 잘하는 편인가 봐요. 성깔 부리는 걸 보면.”
한마디도 지기 싫어서 쫓아온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자, 이미 딱딱하게 뭉친 단전 아래가 아프게 당겨 온다. 흥분을 잘하는 편이라니.
중간이 없다. 차갑거나, 뜨겁거나. 둘 중 하나다. 앞으로 평생 그녀의 뜨거운 모습은 제 차지가 되기를.
한승은 붉게 달아오르던 그녀의 눈가와 매끈하게 손에 감기는 살결과 감미롭게 울리는 콧소리를 떠올리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 * *
침대 시트 위에 올려놓은 휴대전화가 끊임없이 진동했다. 발신인은 도수아였다가, 차한승이었다가, 정 지부장이기를 반복했다.
[언니, 무슨 일 있어요? 어디 아파요, 혹시? 연락 줘요.]
까맣게 꺼졌던 화면에 반짝 불이 들어왔다. 시은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어렵사리 그에게 고백했다. 그는 일언지하에 마음에 둔 사람이 있다고 거절했다. 누구냐고, 혹시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거기까지는…… 내가 대답해 줄 수가 없는데.」
그는 상냥한 얼굴로 선을 그었다. 그의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있는 지금, 그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해서라도 선선한 대답을 내놓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는 그런 건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이 웃으며 차갑게 굴었다.
생전 보지 못했던 차한승의 얼굴이면서, 늘 보았던 차한승의 태도였다. 돌이켜 보면 그는 웃는 얼굴로 적정한 선을 유지하는 것에 능했다.
사실 그에게 꼭 필요한 어시스턴트처럼 굴었지만, 그는 한편으론 어렵게 지내는 후배들을 도울 요량으로 일을 제안했을 것이다.
한국에 그가 거느린 셰프와 교육생, 직원들만 해도 100여 명이 넘는다고 들었다. 그들 중 한두 명을 데리고 와도 될 자리에 그는 시은을 불러들였다.
그러다 둘이 엮이게 된 거잖아.
원망스럽고, 짜증이 났다. 한 번도 이렇게 무책임하게 군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될 대로 돼라.’를 넘어서는 감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아야, 나 새벽에 식중독 증상이 있어서 응급실 다녀왔어. 오늘 합류 어려울 것 같아. 나중에 연락할게.]
무책임한 문자를 수아에게 보냈다. 그가 수아를 가리키며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지만, 타인이 절대 넘어서지 못할 두 사람의 분위기를 보고 알았다. 수아에게서 답문이 들어오는 듯했지만 무시해 버렸다.
잠시 진동이 얌전해졌을 때, 시은은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심장이 쿵쿵 울렸다. 비뚤어진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길고 긴 신호음 끝에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 기시은? 웬일이냐?
“어, 세현아. 너 바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