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명한 비밀-33화 (33/62)

#033

수아는 이불 속에 파묻혀 있던 팔을 꺼내 그의 목에 둘렀다. 물씬 풍기는 그의 향에 취하고, 그의 입가에서 넘어오는 타액에 젖는다. 수아의 몸을 휘감고 있던 이불이 침대 아래로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갔다.

면 트레이닝복을 입은 작은 몸 위로 그의 단단하고 우람한 몸이 겹쳐졌다. 그가 팔과 다리로 매트리스를 짚고 버티는 탓에 무게감이 실리지는 않았다.

대신 입안을 할짝거리며 감질나게 굴던 그의 혀가 울컥 넘어왔다. 오돌토돌한 입천장을 뾰족한 혀끝으로 훑고 들어와 예민한 점막을 부드럽게 애무한다.

“으응.”

수아는 매트리스에 딱 달라붙어 있는 등을 떼어 내며 상체를 슬쩍 들어 올리고는 그의 목을 당겨 안았다.

열기에 부풀어 오른 말랑말랑한 가슴이 그의 단단한 상체에 닿아 이지러졌다. 옷을 사이에 두고 닿았을 뿐인데도 살갗이 찌릿할 정도로 전율이 흐른다.

고개를 들어 올려 그를 더 깊이 탐하기 위해 다가갔다. 매트리스를 짚고 버티던 그의 오른팔이 수아의 등허리를 휘감아 안았다. 온전한 구속감이 주는 안정감에 다리 사이가 짜르르할 만큼 젖고 말았다.

더 다가왔으면 좋겠는데, 그의 움직임은 헤설펐다. 견디지 못할 열기에 휩싸인 수아는 옴짝달싹하지 않는 그의 다리에 제 다리를 얽었다.

진득하게 붙어 있던 입술이 아슬아슬하게 멀어져 갔다.

“하아.”

더운 숨이 여과 없이 터져 나왔다. 가다듬기도 힘든 벅찬 숨이 흐르는 입술 위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수아는 그가 방심한 틈을 타 얼른 그의 입술을 빨아 물고는, 그의 어깨를 밀며 몸을 굴렸다.

그에 배에 올라탄 채로 상체를 바짝 붙이며 입안을 파고들었다. 그의 커다란 손이 수아의 어깨를 세게 움켜잡았다.

타오르는 듯한 열기와 그를 온전히 차지하고 싶은 열망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본능적으로 엉덩이를 움직인 순간, 그의 단단한 배 위로 비부가 비벼졌다.

“흐음.”

끓어오르는 신음이 목울대에서 흩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미젖을 빠는 갓 난 포유류처럼 그의 입술과 혀를 빨고 핥아 마셨다.

어깨를 감싸 쥐고 있던 그의 손이 팔뚝을 부드럽게 쓸고 내려와 수아의 옆구리를 감쌌다.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 게 목구멍에서 느껴졌다. 그의 손바닥이 납작한 배로 향하는가 싶더니 은근히 밀어낸다.

몸이 위로 들리며 입술이 자연스레 떨어졌다. 물기 어린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가도 붉게 달아올라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나가자, 그만.”

그는 달래듯 다정한 미소를 머금으며 수아를 올려다보았다. 아쉬움에 몸이 바짝 타오를 것만 같다. 그는 얼굴이 발긋하게 달아오른 수아를 가만히 침대 위에 내려 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씻고 나와서 얼른 준비해.”

그는 손목에 찬 시계를 한 번 확인하고는 덧붙였다.

“렌트카 인수할 시간이라 내려가 봐야 해. 지금쯤 호텔 앞에 도착했을 거야.”

“렌트카?”

아직 가시지 않은 무절제한 열기가 목소리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우리 어디 가요?”

의아한 물음이 툭 튀어나왔다.

“가 보면 알아.”

그는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않은 채, 먼저 침대에서 일어났다.

“30분이면 괜찮아? 너무 촉박한가?”

“아녜요. 충분해요.”

아쉬움에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웃는다.

“그렇게 서두를 거면 진작 깨우지.”

그는 수아의 볼을 손가락 등으로 부드럽게 한 번 쓸고는 준비하고 로비로 내려오라는 말과 함께 방을 나섰다.

보르도 시내를 빠져나와 1시간여를 달린 차는 중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포도밭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여기가 어딘데요?”

창밖을 지나는 예스럽고 투박한 돌담에 시선을 빼앗겼던 수아는 천천히 운전석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운전대를 잡은 그의 얼굴은 여유로워 보였다.

거창한 목적의식으로 행해지는 경건한 행위가 아닐지라도, 밀폐된 공간에 나란히 앉아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순간의 감상은 가슴이 뭉클뭉클 차오르기에 충분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드라이브를 하는 건가 보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앉는 단순한 행위 자체가 이토록 뭉클하게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와 함께 있으면, 아니 어제 그의 단단하고 안온한 품 안에서 마침내 벽을 무너뜨린 순간부터 사소한 일상에도 의미가 부여되었다.

“어딘지 말 안 해 줘요?”

재우쳐 물은 순간, 차가 멈춰 섰다.

“내리자.”

그가 뾰로통해진 수아의 뺨에 순식간에 입을 맞추고는 멀어졌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운전석 문을 열고 내리는 그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

“그래서 여기가 어딘데요?”

수아가 그의 뒤를 바짝 따르며 물었다. 그가 갑자기 우뚝 멈춰서는 바람에 동그란 이마가 너른 등판을 콕 찍었다.

“아야.”

수아는 본능적으로 반 발짝 뒤로 물러서며 이마를 문질렀다.

“글쎄.”

짓궂은 계략이라도 꾸미고 있는 것처럼 그의 눈빛은 보기 드물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는 오묘한 미소를 띤 채 수아를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좀 더 로맨틱하고, 좀 더 분위기 있는 곳이랄까?”

그는 수아의 어깨를 와락 감싸 안고 발걸음을 옮겼다. 두 뺨에 열이 오르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조금 더 로맨틱했으면 좋겠어. 평생 기억에 남을 순간이니까.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시간이니까.」

꿈꾸듯 읊조리던 그에게 무심하게 던졌던 말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섹스는 좀 더 분위기 있는 곳에서 하고 싶다. 이거네요?」

열기에 잠식당해 있을 때는 몰랐다. 가슴이 이토록 떨릴 줄은, 손끝이 저릿할 정도로 기대감이 피어날 줄은.

“왜 아무 말도 없어?”

수아가 당황한 것을 눈치채고 묻는 말에는 철저한 그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여기까지 오는 모든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렌트카까지 마련한 그의 준비성에 수아는 하마터면 혀를 내두를 뻔했다.

“그래서 여기가 어디라고요?”

끝내 장소 이름은 말해 주지 않아서 물은 말이었다. 절대 할 말이 없어서 건넨 말이 아니다.

“생떼밀리옹.”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지명이다. 그는 수아의 손을 잡은 채로 오랜 시간을 버텨 왔을 돌길을 따라 조용히 걸었다. 포도 수확기의 끝물을 맞이하고 있는 작은 마을은 포도밭을 오가는 일꾼들로 붐볐다.

따뜻한 햇살이 상앗빛 벽돌에 내려앉아 오렌지빛으로 물들였다. 중세시대부터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던 종탑과 벽을 타고 흐드러진 담쟁이덩굴이 더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주황색 지붕 위를 오가는 고양이조차 처음 보는 사람을 피하지 않고 차분하게 눈을 맞춰 온다.

앞으로 살면서 지금만큼 평온한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그를 탐하고 싶은 지독한 열망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안온하면서도, 초조하지만, 절대 불안하지는 않은 기분. 수아는 아슬아슬한 감정 구도에 기막혀 하면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배고픈데.”

수아의 입에서 나른하게 흘러나온 말은 지극히 본능에 가까웠다. 그와 함께 호텔 앞 카페에서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신 게 오늘 먹은 음식의 전부였다.

“다 왔어.”

가로지르는 붉은 유리로 장식된 계단을 그와 함께 올랐다.

중세에 지어진 건물과 현대적으로 개축된 벽체가 기가 막히게 어우러졌다. 벽면 장식과 테라스를 뒤덮은 붉은색 유리 돌멩이는 현대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마치 중세 건물에 와인 방울이 떨어져 내려서 테라스에 고이고, 벽을 따라 흘러내리는 것 같은 모습이다. 맑고 투명한 와인색 유리에 햇빛이 부서지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가 미리 예약해 두었다는 테라스 좌석에 앉자, 생떼밀리옹의 짙푸른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여기서 유명한 맛집이래. 나도 처음 와 봐서 맛이 어떨지는 모르겠네. 와인 마실래? 나는 운전해야 해서 안 될 것 같은데.”

그는 아쉽다는 듯이 웃으며 물었다.

“저도 와인은 됐어요. 와인 없는 점심 메뉴로 할래요. 참깨 소스로 버무린 참치 회랑 오징어 먹물 리소또, 초콜릿 무스 케이크가 좋겠어요.”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능란하게 주문을 마쳤다. 소스의 농도와 조리의 정도를 세밀하게 주문하는 그를 바라보며 수아는 하마터면 넋을 놓을 뻔했다.

속수무책으로 빠져 버렸다. 대체 어떤 논리에 순응해야 지금의 감정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가 다 동원된대도 불가능할 거라고 수아는 생각했다.

“왜 그렇게 봐?”

“멋있는 것 같아서요.”

포도밭을 스치고 불어온 바람이 포플러 잎 사이사이를 노닐다 수아의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갔다.

“멋있으면 멋있는 거지. 또 멋있는 것 같다는 말은 뭐야.”

그는 근사한 미소를 머금으며 의자를 살짝 옮겨와 가까이 앉았다.

잔잔한 바람이 머무는 포도밭을 내려다보며 두 사람은 식사에만 집중하는 듯했지만, 심장 박동은 기분 좋게 오르고 있었다.

“음식이 전체적으로 좀 짠 것 같네. 어땠어?”

그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냅킨을 집어 입술을 부드럽게 눌러 닦으며 물었다.

“참치 회는 참깨 소스가 조금 짰는데, 오징어 먹물 리소또는 담백하고 좋았어요.”

“똑같이 만들 수 있겠어?”

그의 뜬금없는 질문에 수아의 미간이 대번에 좁아 들었다.

“글쎄요. 몇 번 해 보면 될 것 같기도 하고.”

“도수아, 대단하네. 한 번 먹어 본 음식을 만들 수 있다고 하고.”

그는 짓궂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이제.”

그가 내민 손을 수아는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떨리는 게 티 날 것 같아서, 수아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내밀었다.

“이게 뭐야.”

그는 수아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서, 손깍지를 끼며 웃음을 터뜨렸다. 연한 살이 나부끼는 느낌은 지금 이 순간이 서러울 정도로 자극적이다. 당장에 그를 끌어안고 싶은 충동이 인다.

“참아. 가까우니까.”

속을 읽은 것처럼 낮게 읊조린 그의 음성이 탁하게 울린다.

레스토랑 앞에서 다시 차에 오른 그는 생떼밀리옹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고지대를 앞에 두고 멈춰 섰다.

“다 왔어.”

그가 길게 시선을 끌어 조수석에 앉은 수아를 바라보았다. 기대감에 젖은 순간, 짙은 그의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열기가 바짝 오르고, 허벅지가 저절로 오므려질 만큼 전율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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