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명한 비밀-39화 (39/62)

#039

그는 수아의 손을 따스하게 감싸 쥐고는 제 옆에 앉혔다. 그의 친모는 붉게 젖은 눈으로 수아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어떤 말을 먼저 꺼내는 게 좋을지 몰라 고민하고 있는데,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요.”

그의 소개에 놀란 수아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그가 지금 친모에게 수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냥 고백했어도 놀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태생적 결핍을 마주한 순간에 흘러나온 고백은 수아의 심장을 꽉 움켜쥔 것처럼 아프기까지 했다.

“안녕하세요, 도수아입니다.”

수아는 겨우 목소리를 내어 그의 친모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마주 앉은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어 내고 한 발짝 다가와서는 수아를 포근히 안았다.

“고마워요.”

가만히 건네는 인사가 가슴을 울렸다. 짧은 문장 안에 담긴 의미가 너무도 커서 수아는 감히 어떤 반응도 보일 수가 없었다. 무슨 사연인지 제대로 듣지는 못했다. 단지 그가 어릴 적 친모와 헤어졌다는 것과 헤어진 후로 처음 다시 만났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게 없었다.

수아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고 몸을 살짝 떼 낸 그녀가 수아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 밤만이라도 머물다 갈 수 있어요?”

마치 결정권이 그가 아닌 수아에게 있다는 듯이 허락을 구하는 물음이었다. 수아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그를 흘끗 보았다. 그는 진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요.”

수아는 환한 미소를 짓기 위해 노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그의 여동생과 마주했을 때처럼 자신이 차가워 보이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서 입가가 파르르 떨릴 정도로 미소를 머금었다.

그를 위해서라면 하룻밤이 아니라 몇 날 며칠이라도 머물 수 있지만, 내일 칸에서의 일정을 소화하려면 적어도 여기서 아침 7시에는 출발해야 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그와 닮은 눈을 한 친모는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황송하단 생각이 들어서 수아의 뺨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겠다며 부엌으로 향했고, 그사이 그의 동생이 다가와 두 사람을 손님방으로 안내했다.

“여기. 이 방.”

아이가 안내해 준 방은 2층 끝에 있는 조그만 방이었다. 아이는 두 사람이 방을 둘러보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고개를 한 번 주억거리고는 1층으로 내려갔다.

방 안에는 침구가 깔끔하게 정돈된 침대와 옷걸이 하나, 그리고 작은 테이블 하나만이 놓여 있었다. 샤워를 할 수 있는 작은 욕실이 딸려 있었고, 창밖으로는 굽이치는 골목과 함께 멀리 바다가 내다보였다.

“방이 너무 예쁘다. 하루만 자고 가기 너무 아깝지 않아요?”

수아는 아무 말도 없는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빛으로 수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특유의 침잠된 분위기는 말을 잃게 만들었다.

수아는 그를 올려다보며 손을 뻗어 뺨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가 눈을 지그시 감으며 수아의 손바닥 쪽으로 얼굴을 기울였다. 함부로 위로의 말을 건넬 수도 없는 순간이 있다. 수아는 그저 그를 따스하게 어루만져 줄 뿐이었다.

“고마워.”

그의 목소리에서 물기가 묻어났다. 수아는 뺨을 어루만지던 손을 그의 목에 두르며 꼭 끌어안았다.

그녀의 친모가 차린 저녁 식탁 앞에 모두 둘러앉았다. 감사 기도를 드리자며 손을 맞잡는 분위기가 안온했다.

“사실 이사벨에게 연락을 받았어. 네가 여기 와 있다고.”

한숨을 한 번 들이켠 그녀는 조용히 말을 이어 나갔다.

“안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아틀리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단다. 혹시 네가 온 건 아닐까 해서. 와 줘서 고마워.”

따뜻한 눈길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모습을 수아는 뭉클한 기분으로 지켜보았다.

“수아?”

그의 친모는 수아에게 시선을 옮기며 이름을 불렀다. 수아 차례라는 의미였다. 수아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저는.”

갑자기 목이 콱 메고, 목에 열기가 고였다. 콧잔등이 시큰해서 잠시 호흡을 골랐다.

“이 자리에 있어서 기뻐요.”

그가 했던 사랑 고백과 그를 향한 마음이 어우러져서 하고 싶은 말이 무척이나 많았지만, 수아는 짧게 말을 마쳤다.

“다음, 사람.”

그녀의 여동생이 자신을 지목해 달라며 눈을 반짝거렸다.

“미카엘라.”

이름이 불리자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 지은 그녀는 작은 어깨를 활짝 펴고는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오빠 여자 친구 마음에 들어요.”

그의 친모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수아의 손을 꼭 잡은 그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수아는 얼굴을 벌겋게 달구었다.

“아빠?”

“만나서, 반갑습니다.”

짧은 한국어로 인사한 그의 시선이 한승을 향했다. 한승은 식탁 앞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가슴이 빠듯하게 조여 온다.

아틀리에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한승은 가슴속에 맺혀 있던 처절한 응어리가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더는 바랄 게 없다 싶은 감상이었다.

“저도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어서 기쁩니다.”

내내 제 눈치를 보던 그녀가 옆에서 가늘게 한숨을 내쉬는 게 느껴졌다. 한승은 그녀의 손을 쥔 왼손에 슬쩍 악력을 더했다. 지금 곁을 지키고 있는 그녀가 아니었다면, 절대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둘러앉은 모두의 감사 기도가 끝나고 식사를 시작했지만, 자꾸만 목구멍으로 뜨끈한 감정이 치솟아 올라서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모두 묵묵히 식사를 이어 가기만 했다.

모두 안온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 친모가 한승의 손을 잡고 조용히 읊조렸다.

“미안하다. 내 아들.”

당시 그녀가 처했던 상황에 대해서는 이사벨에게 전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한승은 그녀를 부드럽게 안고 등을 쓸어내렸다.

“보고 싶었어요.”

목구멍에 걸려 있던 말이 그제야 흘러나왔다.

“어머니.”

그녀는 한승을 꽉 끌어안으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가까스로 흘러나온 말에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품 안에서 슬쩍 몸을 떼 낸 그녀는 조용한 미소를 머금으며 대꾸했다.

“좋은 사람이 곁에 있어서 다행이구나.”

한승도 그녀를 닮은 미소를 그려 냈다.

“어머니도요.”

유방암 수술을 한 뒤,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 그녀의 곁을 다독이며 지켜 준 사람이 오랜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이라고. 한승의 존재까지도 알고 있던 그는 한결같이 그녀의 곁을 지켰다고 했다.

한국계 혼혈아를 입양해 키우면서 한승을 함께 지내는 가족처럼 떠올릴 수 있게 해 준 것도 그녀의 남편이라고 했다. 자신이 모르고 지내던 세월, 외면하려고 노력했던 순간마다 그들과 함께했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잊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찾지 못했을 거라고 여겼는데.

매 순간 기억되고 있었다.

방으로 올라온 그녀는 긴장이 풀렸는지 침대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몰아쉬었다.

“와, 시가가 어렵다는 말이 이제 이해가 가네.”

그녀는 팔을 쭉 뻗으며 뒤로 발라당 누웠다. 한승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위에 몸을 겹치며 입술을 머금었다. 그녀는 피하지 않고 한승의 목을 끌어당겨 안으며 키스에 응했다.

부드럽고 따뜻한 입안을 헤집는 동안, 한승의 손은 그녀의 티셔츠 자락을 밀고 올라가 말랑말랑한 가슴을 움켜잡았다. 도도록하게 솟은 가슴 끝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굴리자, 그녀의 숨결이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한승은 천천히 입술을 떼어 내며 중얼거렸다.

“너무 앞서갔는데? 시가?”

그러자 그녀가 뾰로통하게 대꾸한다.

“비유적 표현이거든요?”

그녀는 몸을 홱 돌려 한승을 등지고 모로 누웠다. 한승은 그녀의 뒤에 몸을 눕히며 작은 몸을 끌어안았다. 머릿속으로 그녀와 결혼하면 어떤 모습일지를 떠올리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져 갔다.

“고마워”

한승은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으며 읊조렸다.

“이사벨하고 약속 잡았다고, 나한테 막 화내고.”

그녀가 혼잣말인 것처럼 중얼거렸다.

“미안해.”

한승은 그녀의 허리를 더 꼭 끌어안으며 읊조렸다.

“막 주제넘은 짓 했다고 그러고.”

한승의 손이 달래듯 그녀의 납작한 배를 천천히 문질렀다.

“그것도 미안해.”

“주소 받아 왔다고 눈 부라리고.”

“그건 아니다.”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반박하자, 그녀가 고개를 홱 돌리며 항의하듯 쏘아보았다.

“그랬거든요?”

한승의 손이 그녀의 바지 버클을 풀고 안으로 쑥 미끄러져 내려갔다. 손바닥으로 팬티 위를 감싸며 부드럽게 주무르자, 그녀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더운 숨을 내뱉었다.

“이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열기가 밴 그녀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한승은 그녀의 감긴 눈꺼풀 위에 가만히 입을 맞추며 손끝으로 젖어 드는 비부를 문질렀다.

“쉽게 안 풀릴 거예요, 나.”

“그럼 풀릴 때까지 해도 되는 거야?”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자, 작은 몸이 파르르 떨린다. 그녀의 뺨을 입술로 더듬었다. 가쁜 숨을 내뱉는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를 파고들며 그녀의 바지를 벗겨 내렸다. 그녀의 뜨거운 손이 셔츠 자락을 걷고 들어와 배꼽 언저리를 배회했다.

한승은 그녀의 손을 끌어다 바지 버클 위에 얹어 주었다. 그녀는 주저 없이 한승의 바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불거진 속옷 위로 그녀의 손이 닿았다.

“으음.”

목울대에서 신음이 낮게 울렸다. 한승은 그녀의 팬티를 움켜잡아 단숨에 끌어내렸다. 그녀가 고개를 비틀어 입술을 떼어 내며 더운 숨을 훅 내뱉었다.

한승은 천천히 고개를 내리며 그녀의 다리 사이를 벌리고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붉게 젖은 눈빛으로 한승을 바라보았다. 열기에 흐트러진 모습이 지나치게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맑은 애액을 흘리고 있는 비부를 쭉 빨아들였다.

“흐읏.”

그녀가 평소보다 작은 소리로 신음하며 허리를 뒤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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