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
조금 전까지 일상생활을 위해 유희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무색하리만큼 그가 전해 주는 쾌락에 속절없이 빨려 들어갔다.
“아흑.”
그는 무릎을 꿇어앉은 채로 허리를 깊게 쳐올렸다. 수아는 두 발로 매트리스를 지탱한 채로 골반을 들었다가 주저앉으며 그에게 보조를 맞췄다.
단단한 그의 어깨를 잡은 손이 땀에 젖어 미끄덩거렸다. 애액으로 젖은 그의 허벅지에서도 엉덩이가 계속 미끄러질 듯했다.
수아는 허벅지에 바짝 힘을 주며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썼다.
“흐음.”
그가 애끓는 소리를 내며 수아의 가슴을 베어 물었다.
“하아.”
지독한 자극에 열감이 폭발하듯 전신을 뒤덮었다. 더는 오를 곳이 없을 것 같은 살갗의 열기는 한계를 모르고 치솟았다. 감은 눈 안쪽에도 붉은 기가 잔뜩 고였다. 수아는 그의 목을 바짝 끌어안았다. 말랑말랑한 젖가슴이 그의 얼굴에서 이지러졌다.
숨이 턱 막혀 왔다. 쾌감이 파도를 타듯 번져 갔다. 끝없이 밀려들었다가 잠시 물러갈 때면 숨통이 트이는 듯 가슴에 틈이 생기면서 동시에 허전해졌다.
갈증이 났다. 몸속 가장 은밀한 곳까지 그가 깊게 닿아 있는데도 부족해서 안달이 났다.
“흐으응. 더…….”
수아는 엉덩이를 있는 힘껏 들었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허벅지가 저릿저릿 아파 왔다. 다리에서 힘이 주르륵 빠질 것만 같아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아흐윽.”
수아가 열을 올릴수록 그는 느긋하게 움직였다. 사탕을 천천히 녹여 먹는 것처럼 유두를 입안에서 굴리며 허리를 느릿하게 쳐올렸다.
“더 빨리.”
깊은 곳까지 찌르고 있으면서 갑자기 여유를 부리는 그가 야속했다. 눈가에 투명하게 부풀어 오른 눈물이 그의 콧잔등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그가 감았던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수아를 탐닉하듯 바라보았다.
“키스, 해 줘.”
그를 내려다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이번에는 눈물방울이 그의 눈가로 떨어졌다. 눈가에 붉은 기가 맴도는 그가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일 만큼 절묘한 위치였다.
그 모습이 묘한 만족감과 고양감을 선사했다. 그가 저처럼 쾌락에 젖어 울부짖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가슴에서 가까스로 입술을 떼어 낸 그가 수아의 목덜미를 잡아끌며 입술을 집어삼켰다.
“우음.”
입안 가득 뭉툭한 혀가 들어찬 순간, 몸이 뒤로 기울었다. 그는 수아를 침대에 반듯이 눕히고 여린 몸 위에 무게를 실었다. 단단하고 뜨거운 몸이 빈틈없이 맞닿았다.
빠르게 치받는 힘에 몸이 위로 점점 밀려 올라갔다. 그가 깍지 낀 손으로 수아의 머리를 감싸고는 팔꿈치로 지탱하며 더욱 거세게 움직였다.
가느다란 다리가 허공에서 흔들렸다. 수아는 끝없이 차오르는 열기로 인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그의 건장한 목덜미와 탄탄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성적 긴장감으로 바짝 올라붙은 근육에는 끈적끈적한 땀이 배어났다.
이대로 녹아내려서 물이 되면 어쩌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 만큼 뒤섞이는 두 사람의 몸은 애액과 타액 그리고 땀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하아읏.”
심장을 토해 내고 싶을 만큼 치솟은 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수아가 고개를 비틀어 맞물린 입술을 떼 냈다. 교성과 신음이 드높이 치솟았다.
그 역시도 거친 숨을 쏟아 내며 신음했다. 흥분으로 엉망이 된 그의 음성이 듣기 좋았다. 레스토랑에서 그를 마주할 때 이 모습이 떠올라 수시로 얼굴을 붉히게 된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쾌락이 부끄러움을 가뿐하게 밀어냈다.
“아아, 흐으읏.”
밀려왔다가 멀어지는 간격이 점점 좁아졌다. 수아는 손끝을 바짝 세워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꼬리뼈에서 시작된 거품이 이는 듯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밀려 올라와 목덜미를 휘감은 순간 고개가 절로 뒤로 젖혀졌다.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도 환락 속에 잠겼다. 눈앞에서 빛이 끊임없이 부서졌다. 눈꺼풀을 꾹 내리감아도 환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 보는 무시무시한 감각에 잡아먹힐 것 같았다.
“죽을 것, 같아.”
가쁘게 내쉬는 숨결 사이로 새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살려 달라고 애원해야 하는 것도 같고, 숨이 끊기는 순간까지 감각이 지속되었으면 하는 끝 간 데 없는 애욕이 돋아났다.
온몸의 근육이 한꺼번에 수축했다가 한계를 모르고 팽창하기를 반복했다. 심장도 그보다 더 빨리 터질 것처럼 뛰어 댔다.
“하아.”
그가 신음을 토해 내며 수아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깊고 진하게 박아 넣은 움직임에 몸 안쪽이 뜨끈해지는 듯했다. 그는 느릿하고 육중하게 몇 번이고 움직이며 파정했다. 올올이 달라붙은 살결에서 그가 힘차게 팽창하는 게 느껴졌다.
목에서 숨이 끓어올랐다. 짐승처럼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수아는 까무룩 눈을 감고 생각했다. 마지막이어도 좋을 만큼 만족스러웠다고 말이다.
* * *
“내일부터는 정상 면회 시간에 올게요.”
수아의 말에 이제껏 사정을 봐주던 중환자실 수간호사가 놀란 얼굴을 했다.
“다행이네요.”
복잡한 사정은 묻지 않고 다행이라고 말해 주는 간호사의 배려가 고마웠다. 엄마 주치의와의 면담은 다음 주 수요일로 잡혔다.
누군가에게 신세 지는 건 언제나 어색하고 달갑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호의를 전제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해 왔으니 당연한 학습 결과였다.
수아는 어떻게 고맙다는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묵묵히 곁을 지키고 있는 남자의 눈치를 살피며 흘끗거렸다.
“왜, 뭐 할 말 있어?”
“고마워서요.”
짧은 말을 내뱉는데도 목구멍에 물기가 탁 걸렸다. 단단한 팔이 수아의 어깨를 휘감아 안는다. 그가 미소 띤 얼굴로 읊조렸다.
“계속 신세 지는 기분이 들어서 불편해?”
그는 수아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물었다. 수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럴 땐 반대로 생각해 봐. 내가 네 입장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는 거야. 만약에 내가 너한테 신세 져서 미안하고 고맙다고 하면 네 기분이 어떨지.”
야속하고 서운할 것이다. 가진 전부를 내어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상황이 그렇게 바뀔 리 없잖아요. 내가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지.”
“인생을 어떻게 장담하고 살아? 앞으로 살면서 힘든 일 없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니까, 수아야.”
그의 목소리가 한층 진중하게 가라앉았다.
“너는 앞으로 계속 내 옆에 있어. 내가 힘든 순간이 오면 네가 나한테 신세 진 거 갚을 수 있게. 그럼 되잖아.”
그는 행복감에 젖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수아는 가만히 입술 안쪽 살을 깨물었다. 어제 인터넷 신문사를 통해 흘러나온 기사 때문에 오늘 아침까지도 실시간 검색어에 국회의원 딸이 올라 있었다.
이제 가장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빚은 법적 절차를 통해 해결되었고, 엄마의 병원비는 그가 낼 예정이다. 돈으로 해결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고 했던 혹자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인터넷을 떠도는 추문은 지금껏 수아가 무시하고 냉담하게 대했던 것들과는 문제의 본질부터가 달랐다. 추문의 대상이 그에게로 옮겨 갔고, 그의 배경에까지 손상을 입힐 우려가 있었다.
그의 말처럼 그의 곁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은 이기심과 그에게 진 빚을 갚으며 여기서 그만 선을 그어야 한다는 비열함이 맞섰다. 어떤 것이든 자괴감이 일고 죄책감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아무 잘못 없는 그가 더러운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데도 태연하기만 했다.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사과의 말부터 흘러나왔다.
“내가 아니었으면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해요.”
그가 병원 외부 주차장으로 향하던 걸음을 우뚝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그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 머물렀다.
“나도 미안해야겠네, 그럼. 내가 아니었으면 그렇게 기사가 부풀려질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그는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며 선선히 웃었다.
“이따 저녁때 같이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
수아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어려운 이야기를 꺼낸 듯 보였다.
“누구요?”
“만나 보면 알아.”
“제가 아는 사람이에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아의 어깨를 감싸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누군지 미리 이야기해 줄 생각은 없는지 그는 특유의 미소를 머금은 채로 입을 꾹 다물었다.
누굴까, 시은 언니일까?
두 사람이 함께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해소되지 않은 의문은 퇴근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그와 수아가 신경 쓰지 않는 탓인지 직원들의 수군거림은 멎었지만, 몇몇은 수아를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가자. 오늘 콜드 키친 마무리가 조금 늦었네.”
생전 주방 마감 시간을 나무란 적 없는 그가 초조한 얼굴로 수아의 앞에 섰다. 퇴근을 하려던 직원들이 긴장된 눈빛으로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물러났다.
수아는 주차장에서 기다리지 왜 굳이 여기까지 왔느냐고 묻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 전에 볼 수 없었던 긴장감이 어려 있다.
대체 누굴 만나러 가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아직 몇몇 직원들이 머물고 있어서 입을 떼기가 어려웠다.
그의 차에 올라타자마자 불안함이 뒤섞인 물음이 툭 튀어나왔다.
“누굴 만나러 가는 건데요?”
그는 크게 숨을 한 번 내쉬고는 조수석에 앉은 수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기자 한 명이랑, 변호사.”
수아가 미간을 찡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굴었지만, 진종일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서 내려올 줄 모르는 일을 진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기자와 변호사를 만나기로 했다는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을 깨뜨릴 수 없을 만큼 갑자기 거리가 벌어진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추문의 주인공이 된 것은 억울했지만, 이로 인해 그가 더 피해를 입는 것은 원치 않았다.
“셰프님.”
깊게 가라앉은 수아의 목소리가 위태롭게 흘러나왔다. 그가 기자와 변호사를 통해 일을 수습하는 동안 겪게 될 일들이 끔찍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오해받는 일이 잦았다고 했다. 태생적 결핍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에게 추문까지 얹는 것은 가혹하다.
그동안 너무 큰 욕심을 부렸다. 그가 주는 안온함이 너무도 포근해서 이기적으로 굴었는지 모른다. 처지가 바뀌었으면 너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냐는 위약에 취해 사리 분별을 하지 못했다.
내가 물러서면 끝날 일인데.
“저 내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