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
외전. À l’âme en secret – 마음에 은밀히(2)
맥동하는 결합부에서 분명한 발기를 느낀 그녀는 휘둥그레진 눈빛으로 한승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안 뺏잖아. 그러니까 한 번 맞아.”
한승이 무구한 음성으로 읊조리자, 수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몰아쉬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내가 정말 한두 번 속는 것도 아니고. 한승 씨가 하는 말을 믿으면 안 되는 건데.”
억울하다는 듯이 읊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한이라도 맺힌 듯 처절했다.
“하지 말까?”
한승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처절했던 그녀의 음성보다도 더 애절하게 읍소하듯 재우쳐 물었다.
“진짜 하지 마?”
그녀가 한숨을 훅 내쉬고는 한승을 노려본다.
“해, 얼른.”
결혼한 지 3년이 넘었는데도 이럴 때, 그녀는 성적으로 직설적인 말을 내뱉어야 할 때 수줍어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한승의 장난기가 발동하고야 만다는 걸 그녀는 아직도 알아차리지 못한 눈치다.
“뭘 해야 할까?”
시치미를 뚝 떼며 묻자, 그녀가 안을 바짝 조인다.
“하아.”
갑작스러운 아찔한 감각에 한승은 저도 모르게 신음 섞인 더운 숨을 내쉬었다.
“더 할까?”
수줍어하기는 무슨. 그녀는 손끝을 세워 한승의 단단한 어깨를 야릇하게 쓸어내렸다. 어깨를 따라 내려간 손이 탄탄한 흉근을 훑고 복근으로 내려가는가 싶더니 허리춤을 살근살근 어루만진다.
“후우.”
한승은 한숨을 내뱉으며 웃음기를 머금었다.
“어쩌려고 이럴까.”
이제 임계치까지 다다랐다. 발기한 성기를 꽉꽉 조여 오는 감각을 그냥 이대로 버티는 것은 무리였다. 한승은 천천히 허리를 뒤로 빼내었다.
“하으으.”
수아가 신음을 흘리며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그가 전해 주는 아릿한 둔통과 쾌감이 어느새 꼬리뼈를 타고 올랐다. 이미 흠뻑 젖은 밀부로 그의 물건이 매끄럽게 드나들 때마다 살결이 올올이 달라붙으려는 느낌이 생생했다.
느릿한 출납이 아쉬워서 수아는 열기로 마른 입술을 혀끝으로 한 번 적셨다. 붉어진 그의 눈빛이 수아의 입술을 응시했다. 입술을 슬쩍 벌리자마자, 그의 혀가 깊이 파고든다.
아래를 채운 것처럼 입안을 만족스럽게 채우고 들어오는 혀를 핥고 얽었다. 목구멍이 뻐근해질 때까지 그의 타액을 빨아 넘겼다. 그가 거세게 부딪혀 올 때마다 찰박거리는 소음이 야릇하게 울렸다.
“흐으음.”
수아는 목을 비틀어 입술을 떼어 내며 차오른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단단한 어깨에 걸쳐 있던 수아의 다리는 이제 그의 팔뚝까지 내려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상체를 곧추세우자 힘이 빠진 다리가 매트리스 위로 미끄러져 내렸다. 한승이 손을 뻗어 우악스럽게 쿠션 하나를 집어 들었다. 단번에 수아의 젖은 엉덩이를 들어 올린 그가 쿠션을 고이고는 삽입에 힘을 실었다.
“아아! 아흐읏! 흐으.”
결합이 더 깊어지며 숨이 토막토막 끊겼다. 결혼 3년 차, 내내 콘돔을 사용해 오다가 며칠 전부터 두 사람은 콘돔을 그만 쓰자며 합의를 보았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새롭게 깨우친 감각에 미친 사람들처럼 서로를 탐닉했다.
얇디얇은 막이 사라지자 살이 쩍쩍 달라붙었다가 떨어질 때의 쾌감은 이제껏 경험해 온 오르가슴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그가 파정할 때 느껴지는 뜨거운 감각과 핏줄 하나하나가 박동하는 섬세한 느낌은 심장이 터져 나갈 만큼 매혹적이었다.
3년 동안 신혼을 충분히 즐겼다고 생각했는데, 남편과의 섹스에 이토록 심취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으으. 너무 좋아. 으읏.”
이미 한 번 오르가슴을 느낀 탓에 예민하게 달궈진 몸은 금세 절정을 느꼈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고, 눈이 저절로 감겼다. 끓는 피가 살갗을 통해 다 빠져나갈 것처럼 전신을 빠르게 흘렀다.
이제껏 목이 쉴 정도로 신음을 내지르던 수아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처럼 거대한 쾌락이 삽시간에 전신으로 흩어졌다. 그가 수아의 몸을 바짝 끌어안으며 벌어진 입술 새를 파고들었다. 그의 나직한 신음이 입안으로 쏟아졌다.
“으음.”
꽉꽉 조여드는 질 내벽으로 왈칵거리는 움직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뜨겁게 퍼지는 감각에 머릿속이 혼몽했다.
* * *
피임하지 않은 지 한 달쯤 되는 시점이었다. 가슴이 생리 때와는 다르게 묵직해지고 골반 선을 타고 생경한 통증이 일었다. 그 또한 주방에 오래 서서 일할 때 통증이 이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나 임신한 것 같은데?”
아침 식사 자리에서 여상히 건넨 말에 그는 마시고 있던 주스를 뿜어 버렸다.
“나 없이 병원 다녀왔어?”
수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니, 몸이 좀 달라요. 가슴도 커진 것 같고. 골반도 벌어지는 것처럼 막 아파.”
“에이, 그래도 어떻게 피임 끊자마자 임신이 돼?”
“맞는 것 같은데.”
“테스트기 사 올까?”
“그냥 병원 가 보지, 뭐.”
“오늘?”
수아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한승은 못 말리겠다며 눈동자를 한 바퀴 돌렸다.
“와, 진짜 결혼 전에는 몰랐다. 도수아 성격이 이런지.”
확신을 가진 일에는 돌아가는 법이 없었다.
“내가 원래 고집이 센 편인데, 한승 씨가 맨날 오냐오냐하니까 결혼하고 더 버릇이 나빠졌나 봐.”
“말이나 못 하면.”
한승은 사랑스러운 아내의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아침 먹고 바로 병원 가 볼까?”
그녀는 그러자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비승 그룹에서 운영하는 의료 재단의 가족 주치의를 찾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되면 병원을 들락거린 일이 본가에 전해지게 될 테고, 임신이건 아니건 귀찮은 일이 먼저 생길 수 있으니 동네에 가까운 병원부터 가 보기로 했다.
두 사람은 쭈뼛거리며 어색하게 여성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어떤 진료 받으러 오셨어요?”
“아, 아이 때문에…….”
“소아과 진료는 안 보는데요.”
그녀는 고개를 빠르게 내젓고는 대답을 정정했다.
“임신 검사요.”
“아, 그럼 2층 산과로 가셔서 접수하시면 됩니다.”
어쩐지 어리바리해진 두 사람은 산과에 접수한 뒤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테스트기 해 보고 올 걸 그랬나?”
그녀가 시무룩한 목소리를 냈다.
“도수아 님!”
“네.”
진료 전 간호사가 수아를 상담실로 불러 기초적인 질문을 던졌다.
“테스트기는 해 보셨어요? 초음파 바로 보시면 될까요?”
“아니요. 테스트기는 안 해 봤는데요. 생리가 늦어지고, 몸이 좀.”
“아, 그럼 소변 검사부터 할게요.”
간호사는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받아 오라며 종이컵과 뚜껑이 달린 시험관을 내밀었다.
“화장실 안에 설명서 있으니까, 그대로 하시면 돼요.”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화장실로 향했고, 한승은 회장실 앞에 서서 그녀를 기다렸다. 빠르게 볼일을 마친 그녀는 한승이 보지 않도록 시험관을 손으로 감싼 채로 간호사에게 건넸다.
“와, 진짜 뭔가 민망해.”
산부인과에 처음 와 보는 두 사람에게는 모든 게 어색하고 생경하기만 했다.
이윽고 간호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이거 보시겠어요?”
정사각형 모양의 진단 키트에 선명한 빗금이 나타나 있었다.
“임신 맞는 것 같네요. 초음파 보실게요. 이쪽으로 오세요.”
기뻐할 새도 없이 얼떨떨한 기분으로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결혼하신 지는 3년 되셨고, 아이 원하시는 것도 맞고. 생리 예정일에서 5일 지났네요? 오늘 아기집만 확인 가능할 거예요. 한번 볼까요? 자, 아빠는 이쪽에 서서 보시면 되고요.”
아빠라는 말에 한승은 얼이 나간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었다.
“여기 화면에 반짝거리는 하얀 점 보이시죠? 다음에 오실 때는 심장 소리도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축하드려요.”
산모수첩을 받아 들고, 챙겨 먹어야 할 영양제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병원을 나선 두 사람은 주차장에 세워 둔 차에 오를 때까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동안 봉사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일이 많았고, 이제 아이를 가져도 될 만큼 여유가 생긴 것 같아서 피임도 하지 않았으며, 병원에 오기까지 전혀 거부감이 없었기에 임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얼이 나간 두 사람은 차 안에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먼저 헛웃음을 흘린 건 수아였다.
“진짜 임신이네.”
한승도 그녀를 따라 웃었다.
“나보고 아빠라더라?”
“어, 나 의사가 한승 씨한테 아빠라고 했을 때, 완전 소름 돋았잖아. 아빠라니……. 저렇게 철없는 사람이.”
“뭐?”
수아가 아까의 헛웃음과는 다른 함박웃음을 머금으며 대꾸했다
“두 번도 한 번이고, 세 번도 한 번인 사람인데. 숫자도 못 세는데, 아빠래. 애한테 셈하는 법은 꼭 내가 가르쳐야겠다.”
한승이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되게 아쉬운 눈치네?”
“어, 좀 아쉽네요.”
수아가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괜찮아. 안정기 지나면 해도 된댔어.”
한승은 심각한 사안을 다루듯 미간에 미세한 주름까지 잡아 가며 말했다.
“누가 그랬는데?”
“아까 너 간호사랑 안에서 사전 면담할 때, 거기 꽂혀 있는 책자 보니까 그렇더라.”
수아는 눈을 가늘이며 한승을 한 번 노려보았다.
“왜 그래? 너도 아쉽다며?”
“그래서 그런 것부터 알아보셨어요?”
놀리는 듯한 수아의 말투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그런 것부터 알아본 거 아니거든. 그게 그냥 눈에 들어온 거지.”
“준비 많이 해야겠다, 우리 한승 씨 아빠 되려면.”
“그러게.”
인생의 새로운 막이 열리는 순간이 있다. 장막 뒤에 서서 보이지 않는 앞을 가늠해 볼 때면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때론 두려움이 너무 커서 한 발짝 나아가지 못하고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때도 있다.
한승은 그녀의 작은 손을 꼭 움켜잡았다. 수아도 그의 커다랗고 따뜻한 손을 부드럽게 맞잡았다. 마음에 은밀히 숨어든 사랑은 때론 한 발짝 나아갈 용기가 되어 주고, 때론 서로 기댈 수 있는 힘이 되어 준다.
막이 열리는 순간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인생은 아름답다.
모두의 삶이 그러하듯이.
『투명한 비밀』 외전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