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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1화 (1/422)

1화 라인 위에서

처음으로 인터뷰를 해본 건 17살 때의 일이었다.

지금이야 밥 사준다는 말에 홀릴 일은 없겠지만, 13년 전의 나는 유소년 축구선수였다.

유소년 축구선수.

용돈 삼기에도 빠듯한 주급을 받으며 프로가 되기 위해 엄격한 훈련을 반복하는 성장기 청소년을 가리키는 용어다. 필연적으로 몸도, 지갑도 홀쭉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런 내게, 점심은 물론 디저트까지 사주겠다는 말은 무시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하물며 로커 애비뉴에 위치한 세계적인 레스토랑에서 식사나 하면서 천천히 인터뷰하자는 말을 들은 이상, 도저히 거절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도착한 식당은 내 예상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레스토랑치고는 묘하게 친숙했는데, 구체적으로는 한국에서도 자주 봤던···.

“저, 기자님.”

“응?”

나를 불러낸 기자, [선덜랜드 데일리]의 애니 피터슨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내 표정은 침통했다.

“제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여긴 맥도날드인데요.”

“맞아. 세계적인 레스토랑이지. 브랜드가치는 세계 8위. 요식업 중에 따지면 단연 으뜸이야. 거짓말은 안 했어.”

어이가 없어져서 물끄러미 바라보자 애니는 곧바로 순순히 사과했다.

“미안, 아무래도 우리가 지역 신문이다 보니 원고료가 박해서···.”

아무래도 기자 지갑 역시 만년 다이어트 상태인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선덜랜드 지역 경기가 썩 좋지 못하다고 듣긴 했다.

“남편도 요즘 힘들다고 하고···.”

“뭐, 괜찮아요. 정어리 파이보단 햄버거가 나으니까요.”

학교를 그만두고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맡긴 지 벌써 5년. 이제는 영어도 퍽 유창해졌고, 슬슬 이곳 선덜랜드가 고향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영국 전통 요리만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못했다.

성장기 청소년에게 극심한 운동량이 더해지면 보통은 철근도 씹어먹을 식욕이 탄생할 테지만, 그래도 정어리 파이나 장어 젤리는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맥도날드 정도면 나쁘지는 않다. 나쁘지는.

“겨우 햄버거라서 미안하지만 대신 마음껏 시켜도 돼.”

“진짜요?”

“그럼! 당연하지. 라지세트 시켜 줄까?”

“아뇨. 버거에 패티만 추가해주세요. 감자튀김은 필요 없고요. 음료는 제로콜라로요.”

“관리 철저하네.”

애니는 쓴웃음을 지었지만, 곧바로 표정을 고치고는 빅맥 세트 두 개를 주문했다. 버거 하나는 패티 추가, 음료 하나는 제로콜라로.

“감자는 필요없다고 말씀드렸는데···.”

“내가 먹을 거야. 말했잖니? 요즘 우리도 형편이 안 좋다니까.”

아, 네. 그러셔야겠죠.

약간의 시간이 지난 다음, 감자튀김 두 봉지를 알뜰하게 마무리한 애니가 입을 열었다.

“인터뷰는 처음이지? 부담 갖지 말고 그냥 편하게 이야기해도 괜찮아. 기사로 옮기기 전에 내가 교정할 테니까.”

“왜곡하시는 건 아니죠?”

“우리가 무슨 옐로페이퍼도 아니고, 그랬다가는 경기장 출입금지 당하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기사 나오면 먼저 보여 주세요.”

애니가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철저하네. 알았어.”

기레기는 운동선수의 적, 만고불변의 진리다. 애니가 기레기라는 보장은 없지만, 조심해서 나쁜 건 없겠지.

감자튀김 기름이 번들거리는 손을 물티슈로 대충 닦은 애니가 품에서 녹음기를 꺼냈다.

“우선 해트트릭 축하해, 히손.”

“희성.”

“히썬?”

제길, 포기하자.

“발음하기 힘들어! 예명 같은 거 없어? 애칭이나.”

“주위에선 썬이라고 하더군요.”

애니가 웃었다.

“좋은데? 마침 소속팀도 선덜랜드고, 이미지도 긍정적인 것 같으니까. 표기는 SUN으로 하면 될까?”

“부르는 거야 편하신 대로 하셔도 되는데, 기사에는 정확히 본명으로 표기해주세요.”

“고집 세네.”

“한국인이니까요.”

분데스를 지배한 갈색 폭격기, 맨유에서 활약한 두 개의 심장··· 수많은 한국 선수들이 해외에서 뛰었다.

영어권 사용자들이 썩 발음하기 쉬운 이름들은 아니었고, 홈 팬들에게는 별명이나 애칭으로 불린 선수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본명 대신 애칭이 적힌 유니폼을 걸쳤던 선수는 없다.

이름 표기는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긍지다.

결국 오늘은 “썬” 이라는 애칭을 쓰기로 하고, 향후 기사를 낼 때는 팀에서 배포한 정식 로마자 표기를 베껴 적기로 합의했다.

“좋아, 다시 시작하자. 썬? 해트트릭 축하해.”

“고맙습니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을 것 같아. 상대는 맨유 유스였으니까. 맨유는 강팀이잖아, 그렇지?”

“뭐, 그렇죠.”

당시의 맨유는 그야말로 EPL의 정점, 구름 위의 팀이었다. 맨유 유스 상대로 해트트릭을 올렸더니 곧바로 지역 일간지가 인터뷰하러 달려올 정도로.

“게다가 제 2의 퍼디난드라고 불리는 천재 센터백, 리오 수네스도 건재했고. 오늘은 네가 완전히 압도했지만 말야. 비결이라도 있었어?”

나는 웃음기를 억누르며, 겉으로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수네스는 물론 대단한 선수지만, 이름값에 주눅들지 않고 제 플레이에만 집중한 게 오히려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거짓말이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놈은 실제로는 그저 그런 선수이며, 프로 데뷔도 못 할 재능. 제 2의 퍼디난드는 전적으로 언플의 산물이라는 걸.

수네스의 이마에 보이는 숫자 0을 보면 뻔하다.

오히려 진짜 무서운 놈은···.

“사실, 헨도의 패스가 워낙 좋아서 발만 가져다 대면 넣을 수 있는 수준이었어요. 세 골 모두 말이죠.”

“헨도라면, 조 헨더슨 말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 헨더슨. 애칭은 헨도. 우리 선덜랜드 유스팀의 자랑이자 최고 재능의 유망주로 불린다.

“네, 헨도는 틀림없이 프로가 될 선수죠. 아마 내년 생일 전에 콜업될걸요?”

애니가 웃었다.

“하긴, 그 친구도 엄청 유망하니까. 우리 선덜랜드 유스가 자랑하는 유망주 듀오 아니겠어?”

“유망주 듀오로 묶이기엔, 헨도와 저는 격차가 좀 심한데요.”

미드필더와 공격수의 조합이라 자주 묶이는 것뿐이지, 실제로는 재능 차이가 역력하다.

내 재능이 결코 헨도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세상 다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에이, 농담도. 오히려 내가 보기엔 네가 훨씬 유망해.”

립서비스도 잘하시네.

혹시라도 진심이라면 기자를 그만두는 게 좋다. 적어도 스포츠 신문 기자는 하지 말아야겠지.

헨도의 이마에는 600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내 눈에만 보이는 그 숫자의 의미는, 축구선수로서 헨도의 가치가 대략 육백억 원에 달한다는 것.

따라서 헨도는 당연히 프로가 될 재능이며, 높은 확률로 빅클럽의 주전이 될 선수다.

어쩌면 챔스 우승팀에서 뛰게 될지도 모른다. 조만간 맨유 아니면 첼시로 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아니면 요즘 돈 많이 쓴다는 맨시티도 괜찮겠지.

“맞다! 썬, 어제 네 골을 넣을 수도 있었잖아? 엄청 아까웠지!”

“별로요.”

“어째서? 마지막 슛, 골라인을 넘을 뻔했잖아? 내가 보기엔 거의 90%는 넘어갔어.”

네 번째 슈팅은 골라인 위에 머물렀다. 애니의 말처럼 득점에 한없이 가까운 슛이긴 했지만, 결국 라인을 넘어가지는 못했다.

라인을 완전히 넘지 못하면 판정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금 밟는 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까웠다” 며 눈을 깜빡거리는 애니를 향해,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생각보다 먼저 입이 움직였다.

“저기, 기자님.”

“응?”

“축구의 판정은, 두 가지뿐이에요. 라인을 넘었느냐. 넘지 못했느냐. 라인 위에는 아무리 오래 머무르더라도 소용없어요. 중간은 없거든요.”

“라인 위에는 오래 머물러도 소용없다··· 넘었느냐, 넘지 않았느냐. 중간은 없다.”

애니의 표정이 심각해졌고, 나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지금 그 이야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줄래? 나도 기사로는 안 낼게. 이번엔 해트트릭 소감만 싣기로 하자.”

“죄송합니다. 괜히 건방진 소리를 해서···.”

“그런 게 아니야. 오히려 너무 마음에 드는 말이라, 좀 더 결정적인 순간에 실어주고 싶어서 그래.”

화 안 났으면 다행이긴 하지만···.

“좀 더 결정적인 순간? 혹시 네 골, 혹은 다섯 골쯤 넣을 때 말인가요?”

“아니, 네가 라인을 넘어서 프로가 될 때 말야.”

이번에는 내 얼굴이 심각해질 차례였다.

남의 몸값을 아는 내가, 사람의 가치가 보이는 내가··· 나 스스로의 가치를 모를 리가 없다.

축구선수 이희성. 가치는 제로.

죽기 살기로 연습했다. 남들이 자는 밤에도 종일 달렸고, 남들보다 두 시간 먼저 일어나 공을 찼다.

그렇게 노력한 지 벌써 5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영국에 건너왔고, 선덜랜드 유스에서도 주전 취급을 받고 있다.

지금의 나를 축구공에 비유하자면, 골라인 위에 걸친 상태. 조만간 라인을 넘어갈 것처럼 보여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바꿔 말하면, 나는 아직 골라인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축구는, 라인을 넘어가지 못하면, 결과로는 이어지지 않는 스포츠다.

“혹시 제가 프로가 못 되면요?”

“그럴 리가 있겠어? 만에 하나, 그런 불상사가 생기면 내 안목이 최악인 거니까··· 그럼 나도 기자 그만둘게.”

“그만두지 마세요.”

농담처럼 말하는 애니를 향해, 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내 눈에 보이는 애니의 가치는 삼십억 원. 축구선수였다면 기껏해야 3부에서나 뛸 수준이겠지만, 기자 몸값으로는 파격적인 거액이다.

그러니 언젠가 애니는 엄청 유명한 기자가 되겠지.

일개 유망주가 프로가 되느냐 못 되느냐의 사소한 문제에 기자 생명을 걸기에는, 너무 아깝다.

“그만둘 리가 없지. 어차피 썬, 네가 프로가 될 테니까.”

“제가 프로가 못 되더라도, 그만두진 마세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니가 그런 나를 올려다보며 눈을 깜빡였다.

“인터뷰 끝났으면 먼저 돌아가도 될까요? 슬슬 연습할 시간이라서요.”

“응? 그, 그래. 알았어. 숙소로 돌아간다는 거지? 태워다 줄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뛰어갈게요.”

“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그래. 차 타고 왔으니까 금방이지, 뛰어가면 한 시간은 걸리겠다.”

“햄버거 먹었잖아요. 칼로리 오버했어요. 뛰어야죠.”

언젠가는 선수로 뛰지 못할 순간이 온다. 유스 팀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1년 남았을 뿐이니까.

축구선수로 존재할 수 있는 것도,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순간도 오직 지금뿐이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잠시 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따라왔다.

“썬! 너는 꼭 프로가 될 거야! 모든 노력이 보상받는 건 아니라지만, 그래도 너는 꼭 프로가 되어야만 해!”

응원은 고마웠지만, 보상을 바라지는 않는다.

내 눈에 보이는 내 가치는 여전히 제로. 축구를 계속해온 지금껏, 한순간도 바뀐 적이 없으니까.

처음에 오기로 시작했던 노력은, 이제 와서는 그저 확인에 가까운 절차에 불과했다.

사람의 가치를 보는 내 눈은 과연 정확한지를.

한번 매겨진 0원짜리 가치는 어떤 노력으로도 결코 바꿀 수 없는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걸 알게 되면, 라인을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골라인 대신 사이드라인을 넘게 될지라도. 다시는 경기장 안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라도.

최소한, 후회하지는 않을 거라 믿었다.

축구를 그만두게 된 건, 그로부터 1년 뒤의 일이었다.

오버 트레이닝으로 무릎이 망가졌기 때문인지, 단순히 재능이 없었기 때문인지는 스스로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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