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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14화 (14/422)

14화 처음이자 마지막 퍼즐 (4)

“선덜랜드 데일리? 거기 괜찮지.”

브라이언이 무심한 톤으로 덧붙였다.

“루머성 가십은 거의 안 다루고, 리뷰도 꽤 괜찮게 쓰는 편이야. 비전문가치고는 축구 보는 눈이 있어.”

애니 피터슨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자로서는 무척 파격적이던 그녀의 몸값도 함께.

그 정도 재능에, 13년간의 경험이 더해졌다. 그러니 축구 보는 안목 정도는 당연히 생기겠지.

“사실, 구단 관계자 입장으로서는 범인찾기 안 해서 좋아.”

“그건 확실히 괜찮네.”

나와 브라이언을 번갈아 바라보던 희주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범인찾기? 추리 소설?”

조금 전까지 인형을 스크래쳐 대용 삼아 벅벅 긁던 손길이 점차 무뎌진다. 하긴, 언제나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이는 법이지.

“영국이 추리물 본고장이긴 하죠. 제가 말한 범인찾기는 누구 때문에 졌는지를 따지는 거지만요.”

범인 찾기.

그것은 팀 스포츠의 가장 어두운 부분이자, 동시에 인기의 비결이기도 하다.

비록 팀은 졌어도 누구는 지지 않았다는 둥, 누구는 다 팀빨이라는 둥··· 소모적인 논란이지만, 그렇게 장작이 타들어 가야 팬심도 불탄다.

그리고 기사 조회수도 불타겠지.

“아이돌 쪽에서 사건사고 터지면, 팬덤에서 우리 오빠는 잘못 없다고 지들끼리 싸우는 거 같은 거네요. 이해했어요.”

하지만 선덜랜드 데일리의 기사 방향은 조금 다르다는 게 브라이언의 설명이었다.

누구누구 때문에 졌다는 쪽보다는, 이긴 팀의 활약에 초점을 맞춘다는 식이다. 경기를 어떻게 준비했고 전술적으로 어떻게 풀어냈으며, 누가 어떻게 활약했는지.

“그래서 선덜랜드 데일리 정도면 참 괜찮은 언론사긴 한데··· 문제는 조회 수가 안 나와.”

“그렇겠지. 사람들은 자극적인 걸 좋아하니까.”

“그래서 말인데, 브로. 구단주 인터뷰로 이 찌라시들을 덮어버리고 싶은 거라면··· 다른 언론사가 낫지 않을까?”

그러고는 입만 벙긋거려 덧붙인다. 교관님, 조회 수.

로저스 감독의 행방까지 함께 풀어내려면, 일단 조회 수 나오는 언론과 가까워지는 게 좋다는 뜻이겠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첫 구단주 인터뷰는 선덜랜드 데일리와 하고 싶어.”

내가 알던 애니 피터슨은, 최소한 저급한 어그로 기사를 내는 기레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브라이언의 평가로 미루어 볼 때, 애니는 지금까지 초심을 잘 지켜나가고 있다.

괜히 당장의 조회 수 때문에 기레기들과 엮이느니 제대로 된 기자와 인터뷰하는 게 낫다.

가뜩이나 우리는 아직 홍보팀도 구하지 못했으니까.

그런 취지를 전하자, 희주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오빠. 잠시만.”

빠릿한 손길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희주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로커 애비뉴의 세계적인 레스토랑에서 봐도 괜찮겠냐는데? 이거··· 혹시 접대받겠다는 소리 아니야? 세상에 믿을 기레기 하나 없다더니.”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다고 해. 내 감자튀김 대신 먹어주는 조건이면.”

희주는 두 눈 가득 물음표를 띄운 채 애니 피터슨에게 연락했고, 대환영이라는 답변을 받은 뒤에는 정말 기묘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남매니까 표정이 닮았다는 이론에 따르면, 궁금해서 미쳐버릴 것 같다는 표정이다.

나는 선심 쓰듯 동행을 제안했고, 희주는 무척 기쁘게 따라나섰다.

“프렌치프라이가 나오는 세계적인 레스토랑? 어디지? 혹시 고든 올리버가 하는 식당이야?”

“가 보면 알아.”

***

“맥도날드라니··· 사기당했어.”

확실히 희주 쟤하고 나는 친남매가 맞다. 출생의 비밀 같은 건 없는 모양이다.

13년 전의 나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여동생을 향해, 당시의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다.

“브랜드가치 세계 11위, 이 정도면 세계적인 레스토랑이지. 거짓말은 안 했다?”

“예전에 구단주님과 여기서 처음 인터뷰를 했었거든요··· 오랜만입니다. 구단주님. 애니 피터슨입니다.”

13년 만에 만난 애니 피터슨이 정중한 태도로 명함을 건넸다. 이름 옆에, 편집장이라는 직함이 눈에 들어왔다.

승진했구나. 하긴, 1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일개 기자면 너무한 거지.

그나저나 구단주님이라.

“예전에는 편하게 말씀하시더니, 오늘은 거리감이 느껴지네요.”

“이제 세계적인 투자자가 되셨고, 구단주와 취재기자로 만난 거니까요.”

“제가 불편하니까 그냥 하시던 대로 하시죠. 부탁입니다.”

그러자 애니가 웃었다.

“그럴까? 나야 좋지.”

13년 전과 인상이 꽤 달라졌다고 느꼈는데, 웃을 때 보면 예전과 똑같다. 서슴없이 감자튀김을 집어 먹는 태도도.

아, 오늘 햄버거값은 물론 내가 냈다.

“라인을 넘은 걸 축하해.”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넘은 건 아니에요.”

“하긴, 구단주로서는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섰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셈이죠. 그러므로 축하는 정말로 선을 넘었을 때 부탁드립니다.”

“그렇구나. 이번엔 골라인을 어디에 그었어? 챔피언십 승격? 아니면 프리미어리그 복귀?”

“프리미어리그 복귀··· 단기 목표는 그렇겠네요. 장기적으로는 좀 더 높은 곳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단기 목표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애니를 향해,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선덜랜드는 백투백 강등을 경험했던 팀이니, 백투백 승격 정도는 해야 수지가 맞지 않을까요? 올 시즌, 그리고 다음 시즌까지··· 2년 연속 승격이 목표입니다.

“꽤 센데?”

“독자들은 자극적인 기사를 좋아하잖아요.”

기본적으로 조회수 안 나오는 선덜랜드 데일리다. 이 정도 멘트는 해 줘야 입소문이 나겠지.

팬심 잡기에, 성적만큼 좋은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연이은 강등과 승격 실패에 좌절한 선덜랜드 팬들을 끌어들이기에는, 승격하겠다는 공약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단기 목표는 연속 승격이고, 그럼 장기 목표는?”

“그야 당연히 선덜랜드를 세계적 명문 팀으로 만드는 거죠.”

“패기 넘치네.”

“돈도 넘치죠··· 아, 진담입니다. 기사에 꼭 넣어주세요.”

애니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거, 네가 투자자 출신이라 차익 노리고 팔아치울 거란 사람들에게 하는 소리지?”

“비슷하죠. 투자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선덜랜드의 위상이 높아져서 지금보다 백 배쯤 가치가 올랐다고 가정해 보죠. 그럼 제가 구단을 팔까요. 안 팔까요?”

애니가 미소지었다.

“팔지 않겠지. 그 정도면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축구팀이니까.”

“그런데, 저는 투자한 회사 지분을 30억 달러 이하에 매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이번에도 그럴 거고요.”

괜히 투자의 신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거든.

백 배쯤 오르기 전엔 팔지 않는다. 백 배쯤 오르고 나면 팔 이유가 없다. 사실상 종신 선언이다. 그냥 무작정 안 판다고 우기는 것보다야 훨씬 설득력이 있겠지.

그 외에도 애니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구단에 대한 지역 팬들의 기대부터, 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까지.

그렇게 진행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13년 전의 과거로 흘러갔다.

“혹시, 후회한 적은 없어?”

구단주 인터뷰가 얼추 마무리되는 상황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 같은 것을 모두 밝혔으니.

그러니 애니에게 이 질문은  어디까지나 인터뷰 소재라기보다는 사소한 추억 공유에 가까운 행위다.

하지만 사실 내게는 이 안건이 본론이었다.

들려주고 싶었거든.

빨대에 입을 댄 채 그대로 얼어붙은 희주를 흘끔 곁눈질하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단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죠.”

“그렇겠지··· 무릎이 고장 났으니까.”

“사실 고장 났다기도 좀 그러네요. 축구선수는 불가능해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간단한 운동 정도는 할 수도 있고요. 좋은 점도 있죠.”

“좋은 점?”

일단 무릎 핑계로 여동생에게 운전을 시켜 먹을 수 있다는 점인데··· 이건 비밀로 해야겠지. 옆에 희주가 있으니까.

“일기예보 안 봐도 되거든요. 아침에 오른쪽 무릎이 시큰거린다? 그럼 우산 챙기는 거죠. 기상청 예보보다 훨씬 정확해요.”

내 농담에 애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웃어도 된다고 알려줘야 할까?

“무릎이 신호를 보낼 때마다, 생각할 때가 있죠. 어차피 프로가 못 될 거, 빨리 그만둘 걸 그랬다. 그랬으면 무릎이라도 온전했을 텐데.”

아니, 그냥 내가 웃자.

“하지만 그건 제가 결과를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고, 만일 노력하지 않고 포기했다면 그땐 다른 후회가 생겼겠죠. 그래도 끝까지 한번 해볼 걸 그랬다고.”

“··· 그랬을 수도 있겠네.”

들려주고 싶었다. 구단의 팬들에게.

나는 이 구단에 느닷없이 나타난 졸부 외국인이 아니라, 팀의 유소년 선수였다고. 이 팀에 내 청춘과, 소년시절의 꿈, 그리고 한쪽 무릎까지 바쳤다고.

들려주고 싶었다. 어디선가, 이 기사를 보고 있을 교관님에게.

나는 그 일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이제, 그 시절을 떠올리며 웃을 수도 있다고.

애니가 13년 전과 똑같은 표정으로 웃었다.

“좋아. 그럼 선을 넘지 못했던 유망주의 이야기, 이번 주 특집으로 내줄게.”

“어, 너무 오글거리게 쓰진 말아 주세요.”

“독자들은 자극적인 걸 좋아한다며? 걱정 마. 잘 다듬을 테니까.”

실제로 애니의 글솜씨는 퍽 훌륭했고, 오글거리는 멘트를 꽤 그럴듯하게 정리해서 기사를 내주었다.

덕분에 팬들의 반응도 꽤 누그러졌다.

- 아, 기억남. 매일 새벽에 아카데미 주위를 뛰던 애 있음.

- 구단 유소년 출신이면 진짜 근본이네.

ㄴ 결국 프로도 아니었다면서. 축알못.

ㄴ 너 한 번도 운동 안 해봤지? 개태클 당해서 인대 찢긴 거면 몰라도, 과로로 무릎이 망가질 정도면 보통 노력이 아님.

ㄴ 그래봤자 축구 못한다는 건 변함 없잖아.

ㄴ 구단주가 축구하냐? 돈은 많대잖아.

개중에는 오바한다는 의견이나 감성팔이 작작 하라는 댓글도 보였지만, 이 정도면 꽤 만족스러운 인터뷰가 되었다.

이 정도면, 잠적한 로저스 감독에게도 전해졌을 것이다.

물론 약간의 부작용도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지나치게 감동을 지나치게 주입받은 브라이언이, 느닷없이 나를 끌어안으려 덤벼들기 시작했다는 것···.

“기사 잘 뽑았네? 애니 씨, 글솜씨도 좋은 것 같아.”

그리고 희주의 반응이 문제다.

남매니까 표정이 닮았다는 이론에 따르면··· 음, 모르겠다. 나는 살면서 지어본 적 없는 표정이라서.

“그런데 오빠, 뭐 잊어버린 거 없어?

“뭘?”

“엄마 말야. 옛날부터 오빠가 기사에 나오면 빠짐없이 스크랩하셨잖아.”

아, 젠장.

희주 들으라는 인터뷰긴 했지만, 부모님에게까지 보여드릴 생각은 아니었다. 지금도 우리 부모님은 축구와 선덜랜드에 대한 원망과 한이 가득하실 테니.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우리 부모님은 딱히 영어에 능통하지도 않고, 선덜랜드 데일리가 무슨 영국의 전국구 언론사도 아니다.

따라서 희주만 잘 통제하면, 이 기사가 우리 집에 샐 가능성은 없다.

“희주 너, 이거 절대로 집에는 보내지 마라.”

그러자 희주가 냉큼 대답했다.

“벌써 보냈는데? 밑에 달린 댓글까지 싹 다 번역해서.”

그러라고 시켜준 영어 과외가 아닐 텐데.

“··· 야!”

얄밉게 혀를 낼름 내민 희주가, 곧바로 쪽지를 하나 내밀었다.

[베이커 가 112B, 선덜랜드, 타인 앤 위어]

“그 사람 주소야.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거든.”

“··· 네가 어떻게?”

“매년, 집에 편지가 왔었어. 한 번도 오빠한테 보여준 적은 없었지만.”

희주의 입꼬리가 움직였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솔직히, 난 지금도 별로 보여주고 싶진 않았어. 엄마도 그럴 거야. 그런데.”

담담하던 희주의 목소리가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빠가 전화해서 그러더라. 알려주라고. 남자가 하겠다는 걸 옆에서 말리면 안 된다고···.”

“나중에 전화라도 드려야겠네.”

“아마, 화내시지 않을까? 그럴 시간 있으면 네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하긴, 그런 분이시지.

“그러니까, 그 사람 다시 데려오고, 사진이라도 보여 드리자. 그래야 안심하실 거야.”

“턱도 없지.”

이 팀으로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 드려야지. 선수 시절 들지 못한 우승컵, 구단주로서 드는 모습을 보여 드려야지.

그렇게 설명하자, 희주가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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