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6화 (26/422)

26화 헌신의 대가 (1)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 프란츠 베켄바워>

전반 종료 직전 한 골을 허용한 뮌헨은, 후반에는 그야말로 노도와 같은 총공세에 나섰다.

심지어, 골키퍼까지 주전으로 교체했을 정도로.

뮌헨의 거친 공세, 후반 45분 내내 퍼부은 맹공에 우리는 끈질기게 버티고 저항했다.

스코어보드는 끝까지 움직이지 않았고, 경기는 우리의 2-1 패배로 끝났다.

몇 번이나 위기를 맞이했지만 끝내 가라앉지 않는 투혼을 보여준 선수들. 열한 명의 투사를 로저스 감독은 열렬한 포옹으로 맞이했고,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격려했다.

그리고 그라운드에서는 양 팀 선수들이, 경기에서 미처 다 풀어내지 못한 남은 아쉬움을 나눴다.

톰슨을 향해 뮐러가 이를 드러냈다.

“챔스에 나와. 반드시 복수해줄 테니까.”

“이봐, 그쪽이 이겼잖아. 복수는 무슨.”

뮐러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 정도론 부족하지. 점수 차이도, 경기의 무게도 전부··· 그러니까 챔스 꼭 나와라!”

챔스에 나오라는 뮐러의 거듭된 요구에, 톰슨은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톰슨의 시선이 아래쪽에 향했다. 오른쪽 아래, 자신의 무릎이 있는 방향이다.

의미는 명확했다.

우리는 현재 3부 리그 팀이고, 따라서 챔스 진출은 아무리 빨라야 4년 후에야 가능해진다.

4년.

구단 재건을 꿈꾸는 내게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지만, 무릎에 폭탄이 달린 서른 살 축구선수에게는 어쩌면 영겁과도 같을 시간.

최고의 관리를 받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긴 했지만, 톰슨 자신이 4년 뒤의 미래를 장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잠시 아래쪽을 내려다보던 톰슨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빙긋 웃어 보였다.

“그때까지 뛸 수 있겠어? 우리는 챔스 가려면 아무리 빨라도 3년인데.”

3년이라고?

생소한 숫자에, 옆에서 희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4년 아니야? 프리미어리그 승격까지 2년, 승격 첫 해에 바로 챔스권에 들어야 간신히 4년이잖아. 그나마도 엄청 기적이고.”

톰슨의 진중한 성격을 고려할때 숫자를 착각했을 가능성은 없다. 잠시 고민한 끝에, 나는 어째서 [빨라야 3년] 인지를 깨달았다.

“올해 FA컵을 들면 내년에 유로파에 나갈 수 있으니까. 유로파 우승팀은 챔스 진출권이 있거든.”

“그건 좀 판타지네.”

내 생각에도 별로 해볼만한 도박은 아니다.

컵 대회에서 한탕을 노리기보다는, 리그에서 착실하게 위로 올라가는게 훨씬 이득이다. 승격하면 그만큼 더 좋은 선수들을 데려올 수 있고, 그만큼 팀을 강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그 사이, 그라운드에서는 뮐러와 톰슨의 대화가 이어졌다.

“이봐 톰슨, 우리 딱 한 살 차이거든? 네가 그 때까지 뛸 수 있으면 당연히 나도 뛸 수 있지.”

“어이쿠, 대선배님··· 그 무렵에는 딱 한 살 차이로 은퇴와 현역이 갈리는데요.”

“죽는다··· 아무튼, 챔스 꼭 나와라! 서로 은퇴하기 전에!”

서로를 바라보던 뮐러와 톰슨이 사이좋게 웃었다. 잠시 후, 둘의 주먹이 허공에서 가볍게 부딪혔다.

다음을 기약하는, 남자의 작별 방식이었다.

***

“이봐, 꼬맹이.”

요니는 비록 스스로를 꼬맹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지금의 호칭이 자신을 지칭하는 것임은 분명했다.

독일어였으니까.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키미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너는 왜 그런 기량으로 3부 리그에서 뛰는 거냐? 냉큼 분데스로 옮겨 와.”

“저는 여기가 좋아요. 팬들이 사랑해 주시니까요.”

“독일 팬들도 사랑해 줄거야. 무뚝뚝한 독일인도 축구에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거든··· 아, 너도 독일인이니 그건 알겠지.”

요니는 대답 대신 웃었다. 거절의 의미였지만, 키미히는 의외로 끈질겼다.

“그래도 독일인이니까, 독일에서 뛰는 게 행복할텐데? 특히 같은 팀에··· 저 18번이 있다면 더 그렇겠고.”

18번, 잭의 등번호다. 무심코 요니는 잭을 향해 시선을 옮기고 말았다.

어찌나 땀을 흘렸는지 유니폼이며 머리칼이 온통 젖었다. 마치 물에 담근 것처럼.

그런데도 잭은 조금도 지치지 않은 것처럼 스탠드 앞까지 다가가서 두 손을 흔들며 펄쩍펄쩍 뛰는 중이었다.

“끝까지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함다! 새 시즌엔 더 좋은 경기 보여드리겠슴다!”

“사랑한다! 잭!”

“네! 저도 사랑함다!”

그런 잭의 모습이, 요니는 무척 눈부시다고 생각했다.

선덜랜드에서 나고 자라, 줄곧 FC 선덜랜드에서만 뛰는 순혈의 로컬 보이.

잭은 일반적으로 팀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는 유소년 출신중에서도 유별날 정도의 충성심의 소유자였고, 스스럼없이 팬에게 인사하고, 소통하는 성격까지 갖췄다.

그야말로 애교 많은 강아지, 주인만 바라보는 충견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강아지는,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누구보다 용맹한 사냥개로 돌변한다.

잭이야말로 팬들에게 사랑받기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춘 선수라고, 요니는 그렇게 생각했다.

반면 요니는 잭처럼 열정적인 선수는 아니었다. 주력도, 체력도 잭에게는 훨씬 미치지 못하기에.

그는 천성이 무뚝뚝한 독일인이었고, 잭처럼 팬들에게 스스럼없이 굴지도 못한다.

팬들이 자신에게 보내주는 성원이 가짜라고 느낀 적은 없었지만, 요니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아마 자신과 잭을 저울에 달면, 선덜랜드의 팬심은 틀림없이 잭에게 기울 것임을.

“네가 여기서 선수생활을 하는 이상, 쟤하고 계속 비교당할 거야. 넌 결국, 외국인 선수잖아.”

“···.”

“한번쯤 생각해 봐. 네 고향이 어디인지.”

반론하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요니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돌아서는 키미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때 친숙한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렸다.

[오늘도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를 찾아주신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FC 선덜랜드의 희성 썬 리 구단주가 경기장을 찾아주신 팬 여러분께 인사드리겠습니다.]

‘구단주? 구단주님이라고?’

요니는 눈을 깜빡였다.

잠시 후, 통로 사이로 선덜랜드의 구단주, 이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에는 늘 정장 차림이었는데, 오늘 복장은 특수했다. 붉은 색 스트라이프, 선덜랜드의 유니폼이다. 이 자리에 모인 서포터들과 똑같은 차림인데도, 꼭 선수처럼 보였다.

‘그라운드 위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선수 출신이라서?’

그런 이희성에게 쏟아지는 팬들의 환성은 뜨거웠다.

요니 자신에게, 혹은 잭에게 쏟아졌던 박수갈채를 훨씬 뛰어넘는 열렬한 반응은, 마치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보는 듯했다.

선수단 파악이 끝났으니 일부 포지션을 보강하겠다는 말에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렀고, 팬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말에는 뜨거운 갈채가 쏟아졌다.

“약속합니다. 오늘의 패배는, 이번 시즌 선덜랜드가 홈에서 기록할 마지막 패배일 것입니다.”

자신감 넘치는 구단주의 인사에, 팬들은 열정적인 함성으로 화답했다.

그 모습이 요니는 무척 부럽게 느껴졌다.

결코 로컬 보이가 될 수 없는 외지 출신. 심지어 영국인조차 아닌 외국인의 몸으로도 저렇게 팬들에게 사랑받는다는 사실이.

***

팬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통로를 빠져나오려는데, 한쪽 구석에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요니였다.

“뭐 해? 다들 기다릴 텐데.”

“그냥요.”

요니의 표정은 어두웠다. 천하의 바이에른 뮌헨 상대로 결정적인 역습을 만들어낸 선수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비유하자면, 꼭 주인에게 혼난 강아지 같다.

시선을 보내자, 요니가 재빨리 덧붙였다.

“한 가지 여쭤보고 싶어서요.”

“나한테?”

“네, 구단주님은··· 우리 유소년 출신이잖아요?”

“맞아, 그랬었지. 프로는 되지 못했지만.”

대답하자, 요니의 얼굴에 부러움이 떠올랐다.

“외국인이신데도, 구단주님은 이방인이 아니셨네요. 저렇게 팬들이 사랑해 주시니까요. 그러니까···.”

“돈 쓰겠다는 구단주 싫어할 팬이 세상에 어딨냐.”

“하지만···.”

“예전, 내가 선덜랜드 유니폼을 입었을 때는, 너희들처럼 사랑받지는 못했어. 나는 그저 유소년이었고, 프로 선수는 아니었거든.”

물론, 나름의 애정을 받아본 기억은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로콜라 한 캔은 끝까지 남겨 두던 구멍가게 아저씨.

몸을 더 불려야겠다면서 소시지 구이를 내밀던 노점상 아주머니.

비가 오던 날, 젖은 머리를 닦으라며 수건을 내밀던 청년.

그렇기에, 이곳은 내게 또 하나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절대로, 지금의 잭이나 요니가 누리는 만큼의 사랑을 받아본 적은 없다. 아무리 축구에 미친 영국 북동부 사람들이라지만, 유소년 선수 얼굴까지 알아볼 사람은 무척 드무니까.

“그럼 혹시, 선수 시절에는 브라이언 코치님을 부러워하거나 그러신 적도 있나요?”

“당연하지. 걔는 데뷔했잖아. 나는 못 했고.”

웃으며 대답했는데도, 요니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게,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브라이언 코치님은 로컬 보이고, 구단주님은 이방인이니까 팬들의 관심도 좀 달랐을 것 같아서···.”

“브라이언이 좀 더 인기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방인이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왜냐면 그걸 정하는 건 팬들이 아니거든.”

“그러면요?”

“스스로 정하는 거지.”

대답을 들은 요니의 얼굴은, 꼭 한 방 맞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요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요나스 뮐러, 너는 뭐지? 이방인이야?”

반사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아뇨. 선덜랜드 선수입니다.”

방금 전까지는 애정을 구하는 강아지같던 요니의 얼굴이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그렇게 정했습니다.”

싸울 준비가 된 늑대처럼 보였다.

***

“수고했어, 오빠.”

그라운드를 빠져나오자, 희주가 손수건과 음료수를 건넸다. 조금 땀이 났기에 배려가 고마웠다.

기쁘게 받아들면서, 희주에게 슬쩍 물었다.

“맞다. 그러고 보니 인터넷 반응은 좀 어때?”

“오빠 유니폼? 잘 어울린대. 혹시 선수들 줄부상당하면 땜빵 시키자는 소리도 나왔어.”

“애초에 프로 데뷔도 못 한 사람을 무슨.”

쓴웃음을 짓자, 희주가 헤실거렸다.

“리그 원에서는 충분히 통하지 않을까? 내 의견이 아니라 SNS, 참고로 자기 엄청 진지하대.”

“그건 됐고, 경기 반응이나 읊어 봐.”

“난리도 아니야. 완전 대박.”

“어느 정도길래?”

그러자 희주의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떠올랐다.

“음음, 제가 이래 봬도 투자의 신으로 불리는 남자의 유일한 친동생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돈으로 말씀드리자면!”

“백만불짜리 경기였다는 진부한 표현은 쓰지 말고.”

“안 그래. 리그 원 신기록 경신했다더라··· 암표 거래가격이.”

“어, 그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티켓에 프리미엄이 붙는 건 좋지만, 암표는 팬심을 좀먹는 요소다.

뭐, 조만간 단속해야겠지.

“그거 말고는?”

“어, 오늘 요니 플레이 완전 대박이래. 거기서 그냥 흘리다니, 축구 천재 아니냐는데? 뮐러의 라인 침투를 아주 제대로 갚아줬다고 난리야.”

대답을 듣는 내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잭도 호평이야. 90분을 뛰고도 태연하게 관중석 앞에서 꼬리치는 모습이 꼭.”

“사냥개 같대?”

“응, 잭 러셀 테리어래. 귀엽네.”

귀여운가? 견종은 잘 몰라서, 감이 오지 않는다.

“아, 감독님 칭찬도 있어. 부진하던 크리그를 살려낸 로저스 매직.”

그렇게 우리 팀에 대한 칭찬을 신이 나서 읊어나가던 희주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잠깐, 골키퍼가 별로였다고? 눈이 있긴 한 거야?”

“뭐라고 하는데?”

“선방에 속으면 안 된다. 화려한 선방은 그저 위치선정이 개판이라 그런 거다. 애초에 골대 앞에 버스 세웠는데 골키퍼 혼자 눈에 띄는 게···.”

“잠깐 내놔 봐.”

나는 희주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받아들었다.

- 요약하자면, 하퍼와 포백라인 사이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첫 실점의 원인이 된 세컨볼은 결국 하퍼의 커뮤니케이션 미스였다.

신랄한 비평보다도, 아이디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 선덜랜드가 위로 올라가고 싶다면, 골키퍼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반짝반짝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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