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7화 (27/422)

27화 헌신의 대가 (2)

반짝반짝 SQ의 SNS 프로필을 한참 들여다본 결과 몇 가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지난 월드컵 공인구, OMB 버전. 덕분에 가격도 알 것 같다. 대충 팔십 파운드쯤 하겠지. 비록 내가 알고 싶은 가격은 아니지만.

제길, 아무리 봐도 숫자가 안 보여.

그래도 축구 잘 아는 사람 같긴 하다. 골키퍼에 대해서는 일전에 브라이언도 똑같은 소리를 했으니까.

골키퍼는 분명 우리 팀의 약점 중 하나라고.

마침 과로에 시달리는 브라이언을 위해, 전력분석팀을 강화해 주려고 알아보던 참이다. 브라이언과 비슷한 안목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

한 가지만 확인하면 될 것 같다.

나는 곧바로 분석실의 브라이언을 찾아,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어··· 재밌네. 전에 걔 아니야? SM 누적 칠천 시간?”

“맞아··· 이거, 정말로 너 아니지?”

“아니라고 전에도 말했잖아, 브로. 요즘 내 업무량을 좀 봐라··· SNS에 글 싸지를 시간이 있으면 잠을 자겠다.”

브라이언의 책상에는 찌그러진 에너지드링크 캔이 어지럽게 구르는 중이었다.

소 그림 하나, 괴물이 다섯. 아무래도 소 그림 드링크 회사가 축구팀을 가졌다는 사실이 영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드링크 몇 개쯤은 괜찮을 텐데. 내가 돈이 없지도 않고, 우리가 라이프치히 만나려면 4년은 필요할 테니까.

그나저나, 사람이 에너지드링크를 이렇게 퍼마셔도 괜찮은 건가?

눈짓을 보내자, 희주가 재빨리 사무실 구석에 놓인 드링크 박스를 압수··· 회수했다.

잠시 드링크 박스를 향해 입맛을 다시던 브라이언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브로, 분석관 새로 뽑아주려고?”

“네가 괜찮다면.”

“음, 전에 보내준 이력서도 재밌었고, 글을 보면 축구 보는 눈 하나는 괜찮은 사람 같아. 자세한 건 만나봐야 알겠지만.”

“오케이. 그럼 한번 불러볼게.”

나는 재빨리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반짝반짝 SQ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선덜랜드 전력분석관 자리가 빕니다. 지금 오면 아마 수석 전력분석관이 될 수 있을 텐데요. 어떠십니까?

그러자 곧바로 회신이 돌아왔다.

- 전력분석관? 그거 혹시 감독을 지칭하는 새로운 용어인가요? 저는 감독으로 지원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뭐지, 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다음 메시지가 도착했다.

- 농담입니다. 새 감독 뽑으신 거 알아요.

유머 감각이 별로긴 하지만 다행히 제정신인 것···.

- 하지만 저는 인내심이 강하죠. 그리 긴 기다림은 아닐 겁니다. 로저스 감독님은 노장이니까요.

제정신이냐?

그리고 반짝반짝 SQ에겐 안됐지만, 로저스 감독의 후임은 이미 내정되어 있다. 우리 팀 차기 감독은 브라이언이다.

- 그래서, 전력분석관 안 할 겁니까?

- 할게요. 언제부터 출근하면 되죠? 내일?

- 일단 면접부터 봅시다.

브라이언은 반짝반짝 SQ의 축구 보는 눈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나는 좀 다른 부분에 관심이 생겼다.

일단 얘가 제정신인지부터 확인해봐야 할 것 같거든.

***

면접 일정에는 브라이언이 동행하게 되었다.

“브로, 내 생각엔 대머리일 것 같아. 제정신으로 자기 SQ가 반짝거린다고 하진 않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반짝이는 건 머리겠지.”

그런 브라이언의 예상은 면접 시작부터 무너져 내렸다. 면접장에 나타난 사람은 일단 풍성한 금발의 머리칼을 자랑했으니까.

음, 머리칼이 반짝이긴 하네.

“안녕하세요. 샐리 퀸입니다.”

목소리도, 악센트도 부드럽다. 아일랜드 억양 같다.

금발벽안, 전형적인 서양 미녀 상이다. 깔끔한 바지 정장을 입어서 그런지 딱 봐도 지적인 커리어 우먼 느낌이다.

평소 희주가 종종 하던 코스프레와는, 미안하지만 격차가 상당하다. 덕분에 샐리 퀸을 안내한 희주는 퍽 시무룩해져 버렸다.

“SM 여왕···.”

“혹시나 해서 말이지만, Quinn이라고 쓰는데요.”

어쩔 수 없다. 희주와 샐리는 인종이 다르니까. 피지컬로 이기는 건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샐리의 외모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이마의 숫자였다.

오십억 원. 어떤 의미로는 브라이언의 삼백억 원 이상으로 놀라운 숫자였다.

장차 감독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는 브라이언과 달리, 여성인 샐리는 남자 선수들을 직접 통제하기에는 불리하다. 감독은 고사하고, 코치가 되기도 힘들 것이다.

따라서 코칭스태프로서 샐리의 가치는 순전히 축구 보는 안목에 붙은 가격, 전력분석관으로서의 가치다!

브라이언도 말을 잇지 못했다.

“이름이 샐리 퀸이라 SQ···.”

샐리 퀸이 웃었다.

“그럼 뭐라고 생각하신 건데요?”

“사커 아이큐의 줄임말인 줄 알았죠.”

“풉! 영국에서 사커라니 그 무슨 큰일 날 말씀을. 게다가 자기 축구 지능이 빛난다고 했으면 너무 자의식 과잉이죠.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고의는 아니었겠지만, 샐리는 방금 브라이언을 제대로 먹였다. 그것도 두 방이나.

브라이언이 투덜거렸다.

“아니, 그러면 그 아이디는 자기가 반짝거린단 소리잖아. 자의식 과잉인 건 마찬가지 아닌가?”

“그냥 객관적인 사실 적시인데요. 눈이 부셔서 거울을 제대로 못 보거든요.”

샐리 퀸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그래서 저를 전력분석관으로 고용해 주신다고요? 감사합니다. 저는 24년차 선덜랜드 팬으로서, 아버지가 이쪽에 부임하실 때부터···.”

그러자 옆에서 브라이언이 호전적인 미소를 지었다.

“축알못을 데려오면 차라리 안 뽑느니만 못하니까, 일단 축구 아는지부터 봅시다. 역습에 대해서 아는 대로 설명해 보시죠.”

“세상에는 무수한 역습 장면이 있어요. 그 모든 역습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으니, 패턴화가 필요하겠죠.”

“그럼, 패턴화해서 설명해보세요.”

“스트라이커가 롱패스를 받는 패턴이 넷, 윙어에게 연결하는 패턴이 둘, 그리고 공을 빼앗은 선수의 직접 돌파요.”

“스트라이커가 롱패스를 받는 패턴 말인데, 만일 패스를 받는 위치가 측면일 경우에는···.”

“크리그가 스트라이커인 팀에서 의미가 있는 가정일까요? 그보다는 중앙에서 공을 받은 크리그가 2선으로 공을 되돌리고 요니가 침투하는 패턴을 주력으로···.”

샐리의 대답엔 자신감이 넘쳤고, 퉁명스럽던 브라이언의 표정은 점차 풀렸다.

이윽고 두 사람은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축구는 아주 한정적인 종목입니다. 선수는 팀당 열한 명, 공은 경기장에 하나뿐이니까, 이런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그렇죠. 손 대신 발을 쓰는 종목 특성상 필연적으로 실수가 발생하고요. 결국 축구는 제한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해답을 찾는 팀이 이기는 게임이죠.”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은, 마치 사랑에라도 빠진 것 같은 뜨거운 시선을 서로 교환했다. 분위기만 봐서는 식장 잡아 줘도 괜찮을 정도로.

“그중에서도 가장 한정적인 건···.”

“시간이죠.”

그 순간, 브라이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공간이 아니라!?”

샐리의 표정 역시 구겨졌다.

“공간이요!? 아저씨, 축구 잘못 배우셨네요!”

“하! 이봐요 아가씨, 공이나 찰 줄 알아?”

“그 논리대로라면 바르샤는 메시가 직접 감독해야죠?”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고, 결혼식장 같던 면접장은 순식간에 가정법원으로 바뀌었다.

응, 파국이네.

“상사를 바꿔 주세요. 저는 이렇게 지루한 축구 믿는 사람 밑에서 일 못 해요.”

“누가 당신 상사야? 브로, 이 여자 내보내. 비현실적인 축구를 꿈꾸는 망상병자거든.”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케이, 채용합니다.”

브라이언과 축구로 논쟁할 수 있는 오십억 원짜리 전력분석관을 놓칠 생각은 없다. 심지어 축구 지식은 거의 대등한 수준이면서, 관점은 서로 다른 것 같으니 더욱 좋다.

로저스 감독과 브라이언은 사제지간이고, 축구 관련해서 의견이 갈릴 일이 없다. 상하 관계가 잘 잡혀 있다는 점에선 다행이지만, 자칫하면 전술적으로 경직될 수 있다.

분석팀에 샐리를 투입하면, 팀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모레부터 출근할 수 있겠습니까?”

“구단주님, 저는 오늘부터 당장 일할 수 있는데요. 저 사람만 치워주면요.”

그리 어려운 요구는 아니다. 애초에 샐리를 뽑는 이유는 브라이언의 업무를 덜어주려는 거였으니까.

브라이언을 전력분석팀에서 ‘치워버리지’ 못한다면 샐리를 데려올 이유가 없다.

한 가지만 확인하면 바로 뽑을 생각이다.

“그럼 내일로 합시다.”

“왜요?”

“브라이언 치우는 데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샐리 씨는 검사를 좀 받아야겠고요.”

“검사요?”

“인적성 검사, 채용할 때 다 하는 겁니다.”

적성은 됐으니 인성 검사만 철저히, 기왕이면 풀 배터리 검사로 하자.

***

다행히도, 그리고 브라이언에게는 불행하게도, 샐리의 인성에는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샐리는 면접 다음 날부터 곧바로 전력 분석 업무에 투입되었고, 곧바로 팀의 개선사항을 잔뜩 찾아서 보고했다.

나와 로저스 감독, 브라이언, 그리고 샐리가 브리핑 룸에 모였다.

“아가씨는 낯이 익는군.”

샐리가 생긋 웃었다.

“어릴 때부터 이 근처에 자주 왔었으니까요.”

과연, 24년차 팬이라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가씨가 보기엔 우리 골키퍼가 문제라고?”

“그렇습니다. 우선 준비한 영상을 보면서 말씀드리죠.”

샐리가 준비한 영상은, 뮌헨전의 장면이었다. 뮐러의 침투를 센터백 두 명이 순간적으로 놓친 상황.

뮐러의 날카로운 슛을, 그야말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쳐내는 하퍼의 모습이 생생히 찍혔다.

“일차적으로는 수비진의 문제죠. 하지만, 저는 이 장면에서 하퍼의 입이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부터 지적하고 싶네요.”

“하긴, 골키퍼는 이 상황에서 수비가 어떻게 대응할지 지시했어야 하지.”

“SNS에서는 슈퍼 세이브라며 칭찬이 자자하지만, 애초에 센터백을 커버시키고 자기가 니어포스트로 움직였으면 다이빙도 필요 없었을 거예요.”

설명을 마친 샐리는, 능숙한 손길로 영상을 조작했다.

얼핏 보면 하퍼의 선방 스페셜처럼 보이는 영상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자세히 뜯어보면 전부 수비와의 호흡이 맞지 않았고, 하퍼는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로저스 감독이 빙긋 웃었다.

“아가씨는 젊은데도 안목이 좋군.”

“축구는 20년 넘게 봤으니까요.”

로저스 감독의 칭찬에 화사한 미소로 답한 샐리가, 이내 표정을 고쳤다.

“하퍼는 팀에 필요 없는 골키퍼입니다. 감독님, 늦기 전에 결단을 부탁드립니다.”

보고를 마친 직후, 샐리는 우월감 섞인 시선을 브라이언 쪽에 향했다. 곧바로 브라이언이 반격에 나섰다.

“하퍼의 위치선정 문제는 저도, 감독님도 계속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죠. 그래서 요즘 집중적으로 다듬는 중이잖습니까? 마찬가지로 수비 조율도 개선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렇게 포석을 던진 브라이언은, 심술궂은 미소를 지으며 샐리가 준비한 영상을 조작했다.

용수철처럼 솟구치는 하퍼의 놀라운 모습을.

“선방 능력은 키우기 힘든 요소입니다. 하퍼 정도의 운동능력과 반사신경을 갖춘 골키퍼는 리그 원에는 아무도 없어요. 챔피언십에도 다섯 명이 안 넘죠.”

예리한 포인트였다. 선수 키울 때의 철칙. 판단력과 기술은 가르칠 수 있지만, 운동능력은 타고나는 요소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하퍼 같은 선수를 함부로 내보내면 부메랑을 맞을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선 하퍼를 고쳐 쓰는게 최선입니다.”

그러자 샐리의 얼굴에 놀랄 만큼 화사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머, 하퍼를 왜 내보내야 하죠? 세컨 키퍼로 쓰면 되는데?”

“이래서 현장을 모르는 사람은 안 된다니까.”

브라이언이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골키퍼는 체력 안배가 그다지 필요 없는 포지션이고, 그리고 우리 처지에 컵 대회에서 힘을 뺄 수도 없죠. 세컨 키퍼를 출전시킬 기회가 없다는 뜻입니다.”

브라이언의 의견은 상식적이었지만, 샐리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샐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상관이죠? 얌전히 벤치에 앉아있으라고 해요. 그게 계약이잖아요.”

“지난 시즌 주전이던 스물 일곱살짜리 선수를 종일 벤치에 놔두겠다고? 사커 매니저 해봤다면서? 거기서도 언해피 뜰 거 아니야!”

“어차피 내보낼 선수라면, 팀에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언해피 떠도 상관없죠?”

“게임은 그렇게 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실제 축구는 안 그래. 3년간 팀에 헌신한 선수를 그렇게 대우하는 꼴을 보면, 앞으로 누가 선덜랜드에서 뛰려고 하겠어!”

“코치님, 생각해 보세요. 어설픈 동정심 때문에 골키퍼 그대로 안고 갔다가 다 이길 경기 놓치면요?”

“우리가 안 쓸거면 하다못해 풀어 줘야지!”

“그러다 부메랑 맞으면요. 올해처럼 딱 한 경기 차이로 승격 못 하면 도대체 어떻게 책임지실 거예요?”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을 재미있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로저스 감독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 구단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지?”

내 안에서는 이미 답이 정해진 문제였기에, 대답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골키퍼는 한 명 더 영입하는 방향으로 가죠. 그리고 하퍼의 처우에 대해서는···.”

스크린에 나타난 하퍼의 얼굴, 숫자 70을 응시하며 나는 차분하게 덧붙였다.

“하퍼와 이야기하고 결정할 겁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