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팀을 떠받치는 재료 (1)
<누구도 혼자 플레이할 수 없다. - 펠레>
FC 선덜랜드의 메디컬 팀장, 해리 버드는 아침부터 운이 좋지 않았다.
토스터와 다리미가 사이좋게 고장 났고, 구두 밑창이 터진 데다, 자동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혹시 엔진에 문제가 있나 싶어 보닛을 열었더니, 이번엔 소나기가 쏟아졌다. 흠뻑 비를 맞은 버드는 옷을 급히 갈아입은 다음에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결과는 지각이었다.
바쁜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향하면서, 버드는 생각했다. 이보다 운이 나쁠 수 없는 아침이라고.
하지만 세상에는, 불운이 겹쳐서 직장에 지각한 샐러리맨보다 더 운이 나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지각 출근하는 길에 고용주와 마주치는 샐러리맨 같은 것.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선덜랜드 구단주, 이희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버드는 자신의 오늘 운세가 최악 중의 최악임을 직감했다.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 기회에 확 쳐낼까.”
기분 탓인지, 확 죽여 버릴까처럼 들린다. 아마 지각 출근이라는 상황 때문일까.
움찔해서 바라봤지만, 이희성은 아직 그를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버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
“팀장님, 좋은 아침이네요!”
··· 옆에 서 있던 구단주 비서가 이쪽을 눈치챘고, 상냥한 인사를 건넸다.
악의라고는 1그램도 느껴지지 않는 밝은 목소리였지만, 지금의 버드에게는 꼭 법정의 고발처럼 들렸다.
천천히 이희성이 몸을 돌렸고, 눈이 마주치자 부드럽게 웃었다.
“햄버거 사 오십니까?”
대충 햄버거 사 오느라 지각했냐는 의미로 받아들인 버드는 얼굴을 붉혔다.
“네, 네, 그게··· 아무래도 이제 나이가 있다 보니 키오스크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서요.”
“폭설도 성공하지 못했던 위업을 햄버거 가게가 해냈네요.”
“네?”
“브라이언에게 들었습니다. 재작년 겨울의 기록적인 폭설에도 정시에 출근하신 분이라고요.”
일반적으로는 미담에 대한 칭찬이겠지만, 지각한 현장에서 고용주에게 듣고 있자니 어쩐지 생각이 복잡해지는 멘트였다.
“그게···.”
버드가 어색한 미소를 짓자, 이번엔 옆에서 구단주 비서, 이희주가 끼어들었다.
“근데 팀장님! 그 햄버거 말인데요. 혹시 구내식당 메뉴가 마음에 안 드셔서 그런가요?”
버드는 잠시 망설였다.
오늘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맞지만, 그렇다고 구내식당 운영팀에는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최대한 운영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말을 조심히 골랐다.
“평소엔 맛있는데, 오늘 나오는 코리안 치킨 수프는 입에 안 맞습니다.”
“코리안 치킨 수프? 아, 삼계탕 말이군요.”
“쌤지탱···?”
“그냥 코리안 치킨 수프라고 부르기로 하죠. 입에 안 맞으신다고요?”
“닭은 괜찮은데 속에 넣어둔 이상하게 생긴 나무 있잖습니까? 너무 써서 먹기 힘들더라고요.”
“인삼이요? 그거 몸에 좋은 건데··· 아쉽네요.”
아깝다는 듯 입맛을 다신 구단주 비서가, 수첩을 꺼내 메모를 시작했다.
그 모습이 꼭 살생부 적는 것처럼 보여서 버드는 목을 움츠렸다.
이희성이 웃었다.
“아 맞다. 이따 잠깐 저랑 이야기 좀 하시죠. 희주가 전화드릴 겁니다.”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였지만, 버드에게는 꼭 사신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
버드의 사연을 전해 들은 메디컬 팀의 넘버 투, 앤드루 포터가 얼굴을 찌푸렸다.
“팀장님, 사회생활 진짜 못하시네!”
“뭔 소리야.”
“바빠서 그렇다고 답했어야죠. 요즘 너무 바빠서 밥 먹으러 내려갈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햄버거 사 온 겁니다! 어때요, 간단하죠?”
“이 멍청아, 늦었다고 했잖아. 지각한 주제에 바쁘다고 입을 털면 통하겠냐?”
한 차례 짜증을 퍼부어준 다음, 버드는 입맛을 다셨다.
“하여간 그놈의 키오스크! 불편해 죽겠네.”
“익숙해지면 편해요. 그냥 포기하고 적응하세요.”
“말세야, 말세. 왜 자꾸 그렇게 기계로 사람을 대체 못 해서 안달이 난 건지···.”
버드의 푸념에, 포터가 쓴웃음을 지었다.
“인건비 때문이겠죠. 그러고 보니 팀에서 요즘 기계 잔뜩 사들이던데, 우리도 큰일난 거 아니에요?”
하긴, 얼마 전부터 훈련장엔 드론이 떠다녔고, 최근에는 무슨 안마 의자인지를 엄청나게 사들인 것 같았다.
‘설마, 안마 의자로 메디컬 팀을 대체하려는 건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키오스크 일을 겪고 나니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가 싶었다. 적어도 스태프 인건비보다는 안마 의자가 훨씬 싸게 먹힐 테니까.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며, 버드는 겉으로는 최대한 상사다운 태연함을 보이려 노력했다.
“그래도 메디컬 팀은 괜찮지 않을까?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꼭 장담할 수는 없죠. 우리 설비는 틀림없이 프리미어리그 급, 아니, 그중에서도 상위권이잖아요?”
“그렇지. 경기장 사이즈만 해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니까. 그러니까 직원을 엄청 써야 해. 맞아. 우리 경기장 사이즈만 봐도 절대 사람 못 잘라야 정상이지.”
포터가 우울한 목소리를 냈다.
“그 반대죠. 우리 팀 인력은 리그 원 팀에 어울리는 규모를 넘어섰거든요. 지금이야 구단주가 의욕적으로 돈 대려는 거 같지만, 인내심 떨어지면 가차 없을걸요.”
“인내심은 넉넉할 거야. 구단 유소년 출신이고, 돈도 엄청 많다고 들었으니까.”
“오자마자 감독 잘라버린 거 아시잖아요.”
그러고 보니 버드도 봤다. 오늘 아침, ‘이 기회에 확 쳐낼까.’ 라고 말하는 구단주의 모습을.
‘확, 죽여, 버릴까’ 처럼 들리던 목소리를 애써 잊으려 노력하며, 버드는 최대한 차분하게 대응하려 노력했다.
“아무튼, 우리도 조심해야지. 기계에 대체 당하지 않으려면 오늘도 더 열심히···.”
그때, 창밖을 흘끔거리던 포터가 우울한 소리를 냈다.
“팀장님, 혹시 저거 보이세요?”
포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생소한 기기들을 부지런히 이고 지고 나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산소 캡슐이네? 피로 회복용으로 쓰는 거잖아. 빅클럽에서 많이들 쓰는 건데, 저게 뭐 어쨌다고?”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버드와 달리, 포터는 침착했다.
“메디컬 팀에게 있어 키오스크에 해당하는 물건이 드디어 들어온다는 뜻이죠.”
***
구단주실에 불려온 해리 버드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야말로 사색이 된 상태였다.
그래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가 선수였다면 지금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이적 시장이 열린 시절, 구단주실에 불려온 선수가 들을 이야기는 뻔할 테니까.
하지만 버드는 스태프고, 굳이 이적 시장에 방출당할 오해는 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군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겁에 질린 이유를 모르겠다.
그가 나이 어린 신입이라면 혹시 또 모르겠다. 구단주인 나는, 스태프들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사장 같은 거니까. 하지만 버드는 메디컬 팀장이고 나이도 적지 않다.
사장실에 온다고 겁을 집어먹을 나이는 진작에 지났을 것이다.
뭐, 어차피 고민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버드 팀장님, 용건은 두 가지입니다.”
“네, 네.”
용건이 두 개라고 대답을 두 번 할 필요는 없을 텐데··· 대충 그만큼 긴장한 거라고 해석하면 되겠지.
책상 너머에서 꿀꺽 침을 삼키는 버드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려 노력했다.
“우선, 이번에 팀에 산소 캡슐을 도입했습니다. 그러니 리커버리 프로그램에 캡슐 사용을 포함해 주세요. 그리고 메디컬 팀 스태프 말인데요.”
“구단주님, 저희 스태프는 모두 프로페셔널하고, 성실합니다. 다들 노련한 친구들입니다. 선수들도 메디컬 스태프의 마사지를 좋아할 겁니다.”
“그야 그렇겠죠.”
“그러니 부디 메디컬 팀 인력은 그대로 두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건 조금 곤란하다. 올 시즌은 평소보다 훨씬 가혹할 테니까.
일반적인 역습 축구면 체력적으론 좀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하는 두 줄 수비는 고도의 조직력이 요구된다. 따라서 당분간은 로테이션도 자주 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줄부상이 터지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상황인데, 인력을 그대로 두겠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버드 팀장님. 정말로 인력 더 안 필요합니까? 내 생각엔 늘려야 할 것 같은데요.”
“인력을··· 늘려 주신다고요?”
“아까부터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수비 축구는 선수들에게 걸리는 부담이 크니까요.”
“죄송합니다. 저는 꼭 메디컬 스태프를 해고하시는 줄 알고···.”
“내 손으로 복직시킨 사람들을 한 달 만에 다시 잘라버리는 특수한 취향은 없습니다.”
딱 잘라 말하자 버드의 얼굴이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몇 명 필요합니까?”
“네, 네, 급한대로 물리치료사 세 명 정도면···.”
메디컬 팀에 필요한 인력은 나보다 버드가 잘 알겠지만, 아무리 봐도 세 명으로 될 것 같지는 않다.
일부러 줄여 말하는 원인은 짐작이 간다. 구단주가 돈 쓰라고 말했다고 정말로 펑펑 질러버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거든.
메디컬 스태프라는 키워드를 듣자마자 해고부터 연상하는 소심한 버드로서는, 도저히 필요한 인력을 펑펑 요청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우선 열 명 뽑죠.”
“가, 감사합니다!”
“산소 캡슐 관리 인력은 안 필요합니까?”
그러자 버드가 냉큼 대답했다.
“네, 저하고 포터 부팀장이 다룰 수 있는 모델입니다. 조금 구형이긴 하지만 문제없습니다.”
“구형이라고요?”
“네, 구단주님. 올해 초에 다른 브랜드에서 신형이 나왔거든요. 큰 차이는 아니지만요.”
브랜드 이름을 물어본 다음, 희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들었지? 새로 주문 넣어.”
“그럼 지금 캡슐은? 반품할까?”
“그러기도 뭐하니까··· 신품 도착하면 구형은 근처 아마추어 축구팀에 기부하자.”
“오케이. 바로 주문 넣을게.”
희주는 콧노래라도 부를 듯한 기세로 곧바로 주문에 나섰다. 돈 쓰라고 하면 주저 없이 질러버리는 인재의 전형적인 사례다.
버드가 당황한 시선을 보냈다.
“구단주님, 별 차이 안 납니다. 지금 모델 그대로 쓰셔도 괜찮습니다.”
“아뇨. 우리 설비는 무조건 최고여야 합니다. 특히 선수들의 몸 관리에 필요한 설비는요. 그리고 경기장이나 훈련 설비에 투자하는 금액은 FFP에 걸리지도 않습니다.”
누가 들으면 쓸데없는 돈지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선수가 부상당하는 것보다는 낫다.
나는 천천히 물었다.
“버드 팀장님. 다시 묻겠습니다. 정말로 메디컬 팀에 인력 더 안 필요하십니까? 설비는요?”
“제대로 조사해서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세요.”
그러자 버드는 몇 번이고 고개를 굽신거리고는, 마치 해트트릭을 기록한 공격수처럼 달려 나갔다. 이러다가 복도에서 세레머니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
“삼계탕은 생각보다 호불호가 갈리더라. 영국 사람 입맛은 우리랑 많이 다른가 보구나. 구내식당도 좀 더 연구가 필요하겠네.”
희주가 수첩에 적은 메모를 내밀었다. 만나는 직원마다 소감을 듣고 간단하게 정리한 내용이었다.
대충 보니 아주 맛있다는 반응이 6, 도저히 못 먹겠다가 3이었다. 의외로 중간은 거의 없었다.
“호불호가 갈리니까 선택지를 주면 해결될 것 같아. 메뉴를 늘리고, 카페테리아 식으로 하면 어떨까? 단가가 좀 오르긴 하겠지만··· 그 정도는 투자할 수 있잖아?”
괜찮은 생각 같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버려 둬.”
“왜?”
“현장 사정을 아는 실무자가 생각하는 대책이 훨씬 더 괜찮을 테니까. 위에서 시키는 것보다 훨씬 나아.”
그러자 희주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과연 잘 될까? 우리 직원들은 다들 비용에는 굉장히 민감하잖아.”
“조금만 기다리면, 곧 바뀔 거야.”
값비싼 산소 캡슐을 대량으로 주문하고, 하루 만에 신형으로 갈아치웠다. 처음부터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이보다 더 명확한 메시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구단주는 돈을 아낄 생각이 조금도 없다고.
팀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돈을 물 쓰듯 할 거라고.
실제로 바로 다음 날, 구내식당 운영팀장과 영양사가 함께 구단주실 문을 두드렸다.
“저, 구단주님. 식대 예산을 조금만 올리면 안 될까요? 품이 좀 들어가더라도 메뉴를 늘려 보고 싶은데요.”
나는 지체없이 대답했다.
“그러죠. 기왕이면 주방 직원도 더 뽑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