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37화 (37/422)

37화 첫 번째 시즌 (3)

“브라이언, 지금 찰턴 상태가 어떻지?”

“썩 좋지는 않아. 강등 직후니까. 챔피언십에서 강등된 팀에겐 딱히 보조금 안 주거든. 오히려 재작년보다도 스쿼드가 많이 빈약해졌어.”

브라이언의 표정은 미묘했다.

실제로 중요한 장면마다 우릴 잡아낸 전적이 있으니 무시할 수는 없지만, 두 팀의 전력 차이를 보면 도저히 우리가 찰턴에게 잡히는 그림을 떠올릴 수 없는 거겠지.

심지어 징크스 따위 믿지 않는 냉정한 전력분석관, 샐리의 반응은 더욱더 싸늘했다.

“잭, 요니, 크리그, 페르난데스, 톰슨까지 전부 빼도 반반으로 끌고 갈 자신이 있어요··· 풀 주전 내보내면 도저히 질 수가 없는데요?”

샐리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경기를 앞두고 흔히 하는 언플이니, 신경 쓸 가치가 없다고.

“찰턴이 어디를 홈으로 쓰더라?”

이번엔 희주가 냉큼 대답했다.

“런던의 더 밸리, 수용인원 이만 칠천 명. 아무래도 런던 팀이라 근처의 빅클럽에 팬을 많이 뺏기는 것 같아.”

팬의 숫자는 곧 구단의 재정 규모나 마찬가지고, 그에 더해 홈에서의 경기력을 좌우하는 요소다.

열광적인 팬들의 응원은 홈팀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원정팀 선수들의 사기를 꺾는 데 일조하니까.

예를 들어 우리는 뮌헨 상대로 상당히 분투했지만, 만일 알리안츠 아레나였으면 2-1은 꿈도 못 꿨을 거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나 캄 노우는 말할 것도 없고.

칠만, 팔만 명의 관중들이 미친 듯 함성을 지르기 시작하면 원정팀 선수들이 움츠러드는 건 당연한 심리거든.

그에 비하면, 이만 칠천 명의 더 밸리는 너무 작다.

그런데도 도대체 어떻게 찰턴이 우리를 잡겠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일 샐리 씨가 찰턴 감독이라면 우릴 어떻게 상대하겠습니까?”

그렇게 묻자, 샐리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한 다음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톰슨을 풀어주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으니 미드필더의 전방 압박은 필수겠죠. 그리고 중원과 수비 사이를 컴팩트하게 유지하는 건 현대 축구의 상식이니까, 수비 라인도 올리고요.”

“실제로 찰턴이 그렇게 나설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합니까?”

“찰턴은 수비적인 팀이에요. 물론 지난 시즌엔 2부리그의 언더독이었음을 감안해야겠지만요. 걱정 마세요. 찰턴의 수비 축구로는 절대 우릴 잡지 못해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브라이언에게 의견을 구했다.

“브라이언, 넌 어때? 네가 찰턴 감독이라면?”

“라인 내려야지. 아니면 크리그와 요니에게 뒷공간 다 털릴 테니까. 샐리 말대로 상식은 지켜야 하니 미드필더도 뒤로 물릴 거고.”

그러자 샐리가 곧바로 인상을 썼다.

“말도 안 돼요. 톰슨을 자유롭게 내버려 두겠다고요?”

“··· 공격수 한 명이 아래로 내려와서 붙으면 돼.”

그거 어째 기억에 있는 방식인데. 혹시 톰슨에게 아직도 고치지 못한 버릇 같은 게 남았으려나?

“3부 리거 혼자서 톰슨을 막을 수 있어요? 그게 안 되니까 톰슨인 거잖아요?”

“기량만 보면 그렇지. 피지컬도 엄청 좋고, 테크닉도 수준급이야. 이제는 특별한 버릇 같은 것도 없고.”

음, 다행이네.

“괜히 브로에게 톰슨을 사달라고 조른 게 아니거든.”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던 브라이언을 향해, 샐리가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그래서 라인 내리고 톰슨에게 전담 마크 붙이면 우릴 잡을 수 있어요? 진심으로 그렇게 믿어요, 코치님?”

“최선이긴 하겠지만, 못 잡지··· 물론 그쪽 의견처럼 라인 올리고 덤벼들어도 우릴 못 잡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야 그렇죠.”

샐리와 브라이언이 서로 곤혹스러운 시선을 교환했다. 도대체 어떻게 찰턴이 우릴 잡겠다는 건지 도저히 감이 안 온다는 표정이다.

사실 나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몸값 삼백억의 코치와 오십억짜리 분석관을 동시에 속여넘길 수 있는 전술가는 축구판에 극히 드물고, 리그 원에는 절대 존재할 리가 없다.

혹시나 해서 찰턴 감독 사진도 확인했지만, 수수했거든. 이마의 숫자는 39. 브라이언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샐리보다도 싸다.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로저스 감독이 빙긋 웃었다.

“한 가지 짐작 가는 구석이 있긴 한데··· 우릴 이기진 못하더라도 쉽게 지지 않을 방법이.”

순간적으로 모두의 시선이 로저스 감독에게 쏠렸다. 빨리 말해 달라고, 아니면 현기증 난다는 그런 표정으로.

“침대 축구지. 아예 틈만 나면 드러눕는 거야.”

답을 들은 브라이언과 샐리의 얼굴이 동시에 구겨졌다. 듣고 보니 너무나도 뻔한 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뛰어난 전술가 두 사람은 결코 떠올리지 못할 방식이다.

샐리가 나라를 잃었고, 브라이언은 이마를 확장시키려 시도했다.

하지만 이 자리의 누구조차 희주만큼 극적인 표정 변화는 아니었다.

“으으, 최악이네요. 상상만 해도 화나려고 해.”

등 뒤에 잔뜩 곤두선 꼬리가 보이는 것 같다. 뭐, 침대 축구라는 키워드를 듣는 한국인 축구 팬은 누구나 저런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자, 알았으면 이제 경기 준비나 하세. 드러눕는다는 걸 뻔히 알고 당해줄 순 없잖나?”

로저스 감독의 지시에, 브라이언과 샐리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애니를 호출했다.

언플에는 언플로 받아쳐야 제맛이거든.

마침 우릴 안티 풋볼이라고 물어뜯는 여론 정리도 되고, 딱 좋겠네.

***

[선덜랜드, 우리도 찰턴 공략법 있어.]

[선덜랜드 관계자는, 원한다면 찰턴의 선발 명단도 불러줄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홈 팬들 앞에서 드러누울 찰턴을 위해, 선덜랜드 구단주가 추천하는 침대 브랜드 21선.]

예상대로 반응은 뜨거웠다.

- 지금 누가 누구 보고 눕는다고 함? 안티 풋볼 원조 맛집 선덜랜드가?

ㄴ 그래도 선덜랜드 애들은 드러눕진 않음.

- 야, 그 스쿼드로 안티 풋볼 하는 것도 더러운데, 드러누우면 진짜 양심없지.

ㄴ 양심이 승격시켜줌?

- 찰턴도 안 누울 거임. 아무렴 홈에서 눕겠어?

- 찰턴이 허접한지, 선덜랜드가 허접한지는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경기 3분 남음.

ㄴ 이제 1분.

ㄴ 어? 진짜 누웠는데!?

***

찰턴의 움직임은 우리의 예상대로였다.

수비 라인 내리고, 미드필더도 내린 두 줄 수비. 그렇다고 톰슨을 프리로 풀어줄 순 없으니 따로 마크를 붙이긴 했다.

찰턴 9번이 아주 껌딱지처럼 달라붙었다. 톰슨과는 체격 차이가 상당해서, 꼭 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보일 정도다.

그리고 찰턴 선수들은 사소한 접촉마다 시원하게 구르고 드러눕기 시작했다.

킥오프 직후 한 번 구르고, 톰슨이 몸을 돌릴 때 뒤에 붙어있다가 넘어지고··· 잭하고 어깨싸움 하다 넘어지고.

오죽하면 찰턴 홈팬들조차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는데도, 눈 하나 꿈쩍 안하고 꿋꿋하게 구르고 눕는다.

이제 찰턴 감독만 드러누우면 아주 완벽하겠는데.

익스클루시브 박스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희주가 치를 떨었다.

“어우, 꼴 보기 싫어! 다 알고 있었는데도 진짜 짜증 나네!”

볼을 부풀리기 시작한 희주의 뺨을 검지로 찔렀다.

“복어는 잠깐 넣어 둬.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철저한 침대 축구로 나온 찰턴이었지만, 그렇다고 시도 때도 없이 드러눕지는 못한다. 아무리 그래도 누울 명분 정도는 필요하다.

떠밀렸다거나, 태클을 당했다거나, 충돌했다거나 하는 식의 명분이.

찰턴의 표적은 톰슨이었다. 톰슨은 우리 전술에서 공을 가장 많이 만지는 선수고, 마침 센터백을 봐도 될 정도로 체격도 좋으니까.

상대를 등지고 공을 받는 톰슨 특유의 플레이 스타일까지 고려하면, 자연스럽게 구를 명분을 만들 수 있다.

꽤 좋은 준비였다. 그저 우리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게 문제지만.

로저스 감독의 지시에 따라, 톰슨이 전방으로 걸음을 옮겼고, 동시에 요니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마크를 떼버릴 수 있거든.”

톰슨에게 마크를 유지할 경우 준비한 대형이 흐트러지고, 마크를 유지하지 않으면 톰슨에게 자유를 허락하게 된다.

이 전술의 유일한 난점은 톰슨이 전진한 공백을 누군가 메워야 한다는 것인데, 다행히 지난 시즌까지 요니가 3선 플레이메이커로 뛰었다.

라일 파커에게 고마워할 일이 또 생길 줄은 몰랐는데.

“오빠, 톰슨 선수 2선에서도 뛰어?”

“전문은 아니지만, 대충 흉내 정도는 내지. 똑똑한 선수고, 하드웨어도 워낙 좋으니까.”

전문 공격수는 아니지만, 강력한 슈팅 능력과 센터백에 준하는 피지컬을 가졌다. 여차하면 타게터로도 활약할 수 있는 인재다.

그런 톰슨을 기습적으로 전진시키는 플레이에 대해, 찰턴 벤치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찰턴 선수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대형만 보더라도 고뇌가 여기까지 전해진다.

결국, 찰턴의 9번은 계속 톰슨을 따라다녔다.

“계속 드러누울 거라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찰턴 9번하고 요니는 사이즈가 비슷하거든.”

톰슨 같은 거인 상대로 밀려 넘어지는 건 몰라도, 요니 옆에서 픽픽 쓰러지는 건 아무리 그래도 명분이 없다. 심판이 눈뜬 장님도 아니고.

“근데 저렇게 하면, 요니가 완전히 비지 않아?”

“꼬우면 톰슨에게서 마크 떼야지.”

요니는 볼을 갖고 자유롭게 움직였고, 잭과 이대일 패스를 주고받으며 수시로 측면으로 빠져나갔다.

요니의 발끝에서 크로스가 쉼 없이 찰턴 문전으로 날아들었고, 톰슨이 피지컬을 살려 적극적으로 포스트플레이에 가담했다.

“경합 한 번 할 때마다 눕겠지? 그래도 상관없어. 누우라고 해. 우린 그냥 골 넣을 테니까.”

견디다 못한 찰턴은 9번을 요니의 마크로 돌리면서 버텨내려 했지만, 우리로서는 오히려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전반 38분, 바이털 에어리어 부근에서 톰슨이 공을 건네받았다. 전담 마크는 붙지 않은 상황이었다.

톰슨의 왼발이 앞으로 크게 내디뎌졌다.

균형을 잡기 위해 좌우로 펼쳐진 팔, 전력으로 휘둘러진 오른발. 오로지 자신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춤사위처럼 톰슨의 몸은 그대로 공을 전력으로 쏘아 보냈다.

거의 동시에, 그물이 흔들렸다.

그라운드는 고요했다. 골을 알리는 휘슬 이외에는 어떠한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이만 칠천 명의 찰턴 팬들을 완벽히 침묵시키는 한 방이었다.

희주조차 말을 잇지 못한 채, 숨만 들이켤 정도로.

다음은 쉬웠다.

한 골을 뺏긴 찰턴은 더는 드러눕지 못했고, 울며 겨자 먹기로 라인을 올리며 반격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원래 하던 방식대로 찰턴을 요리했다.

샐리 말처럼 차라리 처음부터 공격적으로 나왔으면 차라리 까다로웠을지도 모르지만, 갑자기 라인을 올리고 덤벼드니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경기는 3-0, 우리의 압승으로 끝났다.

***

경기 종료 후, 믹스드 존.

“감독님, 최근 선덜랜드가 안티 풋볼을 한다는 비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의 질문에, 로저스 감독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우리가 하는 게 안티 풋볼이라고요? 어떤 면에서 그렇죠?”

“점수를 주지 않으려 라인 내리고 반격만 하는 축구니까요.”

“어, 그러면 메이웨더는 복싱을 안티하는 겁니까?”

순간적으로 기자의 말문이 막힌 사이, 로저스 감독은 차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세상에는 축구를 ‘안티’ 하는 방식의 축구가 존재하긴 합니다. 예를 들면 드러누워 시간을 보내는 축구죠.”

슬쩍 심술궂은 표정을 지어 보인 다음, 로저스 감독은 차분하게 덧붙였다.

“우리 선수들이 하는 축구는 다릅니다. 우린 90분간 발을 멈추지 않거든요.”

흠잡을 데 없는 깔끔한 인터뷰였지만, 그랬기에 자극적인 기사를 원하는 일부 언론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급기야 내게 마이크를 내미는 기자가 나타났다.

“선덜랜드를 인수한 이후, 거액의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수비적인 축구를 하는 모습에 팬들의 실망이 커진다는 의견이 있는데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팬이 실망해요? 혹시 찰턴 팬 아닙니까? 우리 팬들은 성원을 멈춘 적이 없는데요.”

나는 빙긋 웃으며 덧붙였다.

“팀이 지고 있을 때도, 승격에 실패했을 때도 언제나 우릴 응원해준 팬들입니다. 그런 팬에게 줘야 하는 건, 공이나 점유율이 아닌 승점 3점, 팀의 승리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5라운드에서, 우리는 포츠머스를 홈으로 불러들여 시원하게 3-1로 격파했다.

리그 5연승, 컵 대회까지 포함하면 시즌 7연승이었다.

안티 풋볼을 운운하던 목소리는 어느새 완벽하게 사라졌고, 언론은 이제 선덜랜드의 돌풍을 앞다투어 다루기 시작했다.

[폭풍 5연승! 선덜랜드, 리그 원 선두로!]

[이번 시즌은 다르다? 크리그, 득점왕 경쟁에 불붙여.]

쏟아지는 찬사 속에, 선덜랜드 데일리의 코멘트가 방점을 찍었다.

[이 팀은 리그 원에 머무르기엔 지나치게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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