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55화 (55/422)

55화 챔피언십으로 가는 길 (2)

그날부터 수시로 분석실에 향했다. 영입할 만한 선수가 있는지 살펴보기 위한 목적이었다.

내 목적을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은 샐리였다.

“주로 상대 팀 선수를 보시네요?”

“아, 네.”

샐리는 프로그램 제작자고, 내가 누구를 찍어 보는지는 화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역시, 영입할 선수를 살펴보실 목적인가요?”

“그런 셈이죠.”

굳이 샐리 앞에서 둘러대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영입 이외의 이유로 다른 팀 선수를 살펴볼 명분도 없다.

분석가라면 또 모르지만, 내 업무는 구단주다.

샐리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좋은 선수가 있었으면 이미 말씀드렸을 거예요.”

“혹시나 싶었습니다.”

큰 기대를 하진 않았었다. 샐리의 프로그램은 아직 베타 테스트 단계고, 들어 있는 데이터는 전부 리그 원 경기니까.

3부 리그에 우리가 영입할 만한 선수가 남아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저 복권 긁는 심정으로 살펴본 것뿐이다.

얼마 전까지 요니와 잭 같은 보물이 묻혀 있던 곳이니까.

하지만 복권은 절대 여러 번 연속으로 터지지 않으니 복권인 것이다.

화면에 보이는 선수들의 가치는 대체로 이십억 원에서 삼십억 원 사이를 오갔다. 아주 가끔 더 비싼 선수도 보이지만, 인상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나를 향해, 샐리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구단주님은 항상 그런 식으로 투자하시나요? 자기 눈으로 하나하나 보면서요.”

“전부 다는 아닙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회사가 있으니까요.”

예전, 축구를 그만두고 처음 투자를 시작했을 때는 모든 후보를 직접 눈으로 살폈다. 그땐 도와줄 사람도 부족했고, 돈도 없었으며, 남는 건 시간뿐이었으니까.

지금은 다르다. 돈도, 도와줄 사람도 충분하다.

“투자 이야기라면, 요즘은 스크리닝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기준으로 추천할만한 회사를 골라 오면, 그중 가장 좋은 투자처가 어딘지, 얼마에 사서 얼마에 팔지에만 내가 관여합니다.”

“이 팀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네요?”

“스태프를 마구 늘릴 수는 없으니까요.”

FFP 때문에 말이지.

프로그래머 정도는 외주로 돌릴 수 있다. 영상팀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프로그래머나 촬영 인력을 잔뜩 고용할 축구팀은 없으니, 딱히 의심을 사지도 않을 거다.

그렇지만 다른 보직, 예를 들어 코치나 팀닥터 같은 인력은 전부 우리 스태프 인건비로 잡히는 부분이니, 무분별하게 늘릴 수는 없다.

스카우터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사람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내 눈보다 정확한 스카우터는 존재할 수 없으니, 굳이 스카우터를 고용하는 건 낭비다.

그놈의 FFP.

나는 잠시 유에파 본부를 노려보았다. 물론 사람의 육안으로 보일 거리는 아니겠지만, 동쪽 하늘 어딘가에 있겠지. 스위스니까.

한 20년만 늦게 FFP를 도입했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아니면 차라리 첼시와 맨시티가 나타나기 전에 시작하지.

지금은 꼭 나만 돈 못 쓰는 거 같아서 너무 억울하잖아.

잠시 입맛을 다신 다음 차분히 덧붙였다.

“축구와 투자가 다르다는 건 이해합니다. 투자자는 돈 되는 주식을 싸게 사면 되지만, 축구단은 필요한 선수를 사와야죠.”

예전 같았으면 가치보다 이적료가 싼 선수들을 잔뜩 사재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요즘은 그러지도 못한다. 선수단은 25명 이하로 꾸려야 하니까.

그놈의 FFP!

“그리고 어느 포지션이 필요한지 판단하는 건 나보다는 코칭스태프의 업무라는 것도 압니다.”

일부러 스크리닝 같은 걸 따로 해줄 필요는 없다는 의사를 돌려 말하자, 샐리가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이해해 주시니 다행이지만, 스태프로서는 조금 아깝기도 하네요. 모처럼 통큰 구단주를 만났는데, 마음에 드는 선수가 없어서 못 사면 아쉽잖아요?

“영입을 안 하진 않을 겁니다. 그저 리그 원 선수에는 별 관심이 없을 뿐이죠.”

샐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챔피언십 선수들을 보여달라는 뜻이군요? 최대한 빨리 준비할게요.”

“무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분석 프로그램이 완성된 것도 아니고, 데이터를 모으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압니다.”

브라이언도 그렇지만, 샐리의 업무량도 적지 않다.

이번에 분석 프로그램이 생겨서 사정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샐리는 기본적으로 경기를 수십번 돌려 보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전용 안마의자를 지급받았을 정도로.

그런데도 샐리는 흔쾌히 대답했다.

“괜찮아요. 제가 무리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 그렇긴 한데···.

“기껏 소프트웨어 업체 하나 샀더니 그쪽 직원들이 모조리 탈주하는 결말은 사양하고 싶군요. 챔피언십 전체 데이터는 나중에 준비해도 됩니다. 지금은···.”

“강등당할 팀부터 보면 되나요? 챔피언십, 그리고 프리미어리그 강등권도요.”

일상에서는 나사가 반쯤 나간 것 같지만, 축구 관련해서는 일머리가 참 잘 도는 사람이다.

나는 빙긋 웃으며 일어섰다.

“네, 강등 직후가 가장 싸죠.”

가격도 가격이지만, 원래는 비매품이었을 선수들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게 된다.

팀의 기둥뿌리를 장만할 찬스다. 든든한 센터백은 틀림없이 팀의 기둥이니까.

***

그리고 당연하게도 다른 기둥은, 우리 스타디움이다. 팀의 근거지이자, 팬들과 소통할 채널이니까.

스타디움의 개선 아이디어를 널리 모집했고, 그때마다 우리 스태프들이 다양한 의견을 냈다.

주로 먹거리 관련 의견이 많았다.

“지난번 ‘그 팀’ 투어를 다녀오고 느낀 건데, 우리도 경기장 안에 대형 스낵바 하나쯤은 갖췄으면 하는데요.”

하긴, 그건 나도 동감이다. ‘그 팀’ 상대로는 이제 아주 작은 것 하나도 지고 싶지 않으니까.

“푸드트럭과 노점 가판대를 개선해서 팬들의 반응은 무척 좋아졌어요. 하지만 그건 우리 수입은 아니니까···.”

“아, 그리고 애 키우는 엄마 입장에선 염려스러웠어요. 아무래도 노점 음식은 위생 문제도 있고, 일단 너무 자극적이라···.”

다음 시즌부터는 식당에 좀 더 힘을 주어야 할 것 같다.

그런 의견을 정리하고 있는 사이, 희주가 다음 손님을 구단주실로 안내했다.

특이한 조합이었다.

레스토랑 쉐프 카일, CS팀장 린다, 그리고 신상품기획팀장 아드리안이었으니까.

팀장급 스태프 세 명이 나한히 들어오는 것도 별일인데, 심지어 조합도 참신하다.

도저히 용건이 짐작이 가지 않는다.

린다가 대표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구단주님, 스타디움 투어에 스페셜 코스를 추가하는 건 어떨까요? 런치 메뉴를 함께 포함하는 코스인데요.”

아, 그런 제안이라면 린다와 카일이 함께 들어올 만한 용건이다.

“묶음 판매군요. 구단 입장에서는 당연히 편하고 매출도 늘어서 좋지만, 팬들에게 내세울 특색이 있습니까? 자칫하면 마이너스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3부 리그 수준에서는 과분한 만큼의 팬을 가졌고, 챔피언십에 올라가도 우리보다 팬이 많은 팀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스타디움 투어의 매출을 늘리자고 팬들에게 욕먹을 짓을 하면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

린다와 카일이 시선을 교환했다. 선수 교대 사인이다.

카일이 앞으로 나섰다.

“스페셜 코스에 제공되는 런치 메뉴는, 선수의 식단을 모티브로 삼으려 합니다.”

“선수 식단?”

“그렇습니다. 지난번 만찬에서의 레시피를 토대로, 선수들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꾸준히 개발해 왔는데요. 이걸 일반 고객들에게도 써먹을 수 있을까 해서요.”

“재미있군요.”

계속해 보라는 의미의 시선을 보내자, 카일의 얼굴에 조금 자신감이 붙었다.

“영양 성분을 표시해서 프로 선수의 엄격한 몸 관리를 보여주는 한편, 그 와중에도 맛있는 식사가 가능하다는 걸 알리려고 합니다.”

“구단 이미지에도 긍정적이겠네요.”

선수들이 감자튀김 같은 걸 집어먹는 꼴을 보면 관리 똑바로 안 한다고 난리겠지만, 그렇다고 닭가슴살이나 오트밀 같은 것만 먹이면 너무한다는 반응도 나올 것이다.

따라서, 선수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식단을 제공하려 고민한다는 모습은 플러스 요소다.

“다만, 영양 성분을 전부 오픈하는 건 상대 구단에 정보를 주는 꼴이니 적당한 선을 찾아봅시다.”

“알겠습니다.”

사실상 허가가 떨어진 셈이라, 린다와 카일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리고 선수별로 차이가 있는 부분도 보여주면 재밌을 겁니다. 잭과 요니라면, 평소 즐겨 먹는 컴버랜드 소시지를 곁들이고, 페르난데스는···.”

“쉐이크는 샘플로 보여주는 방법을 쓰겠습니다. 레스토랑에 온 손님에게 돈 받고 팔긴 너무 미안한 물건이라···.”

“딱 맛만 볼 정도로 주면 되겠죠. 아무튼, 이번 아이디어는 아주 좋군요. 당장 추진합시다.”

확실히 못을 박자 카일은 입이 귀에 걸렸다.

하긴, 먹거리 관련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는 상황이니, 레스토랑의 책임자로서는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카일의 곁에서, 이번엔 린다가 다시 제안을 시작했다.

“그리고 두 번째 아이디어는, 스타와의 점심 서비스입니다. 보통 경매로 풀리니까, 우리도 경매로 내는 거죠.”

이건 미묘하다.

돈이 될 거라는 확신은 있지만, 대신 선수의 시간이 볼모로 잡힌다. 경기력을 생각하면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아이디어다.

“선수의 시간을 구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군요. 비시즌 중. 감독님의 허가를 받고, 개인적으로 동의한 선수에 한해서 진행한다면 모르겠지만요.”

그러자 린다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뇨. 구단주님이요.”

무심코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팔리겠어요?”

“버핏과의 점심도 팔리잖아요. 엄청 비싸게요.”

“그 사람은 오마하의 현인이잖아요.”

“대신, 구단주님은 투자의 신이시죠.”

미치고 팔짝 뛸 것 같다. 공공연히 떠들 수는 없지만, 나는 투자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거든.

버핏 같은 사람이야 자기 투자 철학이 확실하겠지만, 나는 그런 게 없다.

[어떻게 기업을 고르십니까?]

[창업주의 이마를 봅니다.]

어휴, 사이비 냄새.

그동안 투자업계에서 괜히 얼굴 없는 투자자로 머물렀던 게 아니다. 투자 관련해서 나는 말을 적게 할수록 좋다. 한 마디라도 말할수록 더 사이비로 보일 뿐이다.

언론 상대로야 입 다물고 신비로운 척 미소만 지으면 알아서 해결되겠지만, 나와의 식사를 경매로 팔아버리면 그럴 수도 없다.

린다가 눈짓하자, 이번엔 아드리안이 나섰다.

“확답을 주시기 전에 한 가지만 보고 드리겠습니다. 우리 피규어 중에서, 구단주님 피규어 판매량이 전체 4위에 해당됩니다.”

생각보다 높긴 한데···.

“1위는 잭이고, 2위는 페르난데스겠죠. 3위는 요니입니까? 아니면 크리그?”

“페르난데스는 3위입니다. 요니는 5위고요. 크리그는 7위죠.”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든다.

“2위는 누굽니까?”

“비서님입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구단주실 입구에서 이쪽을 바라보며 의기양양하게 브이자를 그려 보이는 희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판매량 파악에 뭔가 오류가 있는 거 아닙니까?”

아니면 희주가 지 용돈으로 사재기했겠지.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그딴 걸 사갈 리 없어.

“뮌헨전 앞두고, 구단 영상에 비서님이 나갔잖습니까? 그래서 홍보 효과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기가 차네 정말. 다른 의미로 기분이 나빠지려고 한다. 그 영상엔 나도 같이 나갔거든.

아니, 내가 쟤보다 안 팔린다고?

“뮌헨전에서 오랫동안 침묵했던 크리그의 골이 터지면서, 선덜랜드의 행운의 여신 같은 이미지로 등극했습니다.”

행운의 여신은 무슨. 쟤는 펠레급 부두술사인데. 쟤가 이길 거 같다고 말한 경기에서 우리 한 번도 못 이긴 거 모르나? 아, 팬들은 모르겠네.

“저도 여동생이 하나 있다 보니 구단주님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지금 드리고픈 말씀은 스태프 피규어가 의외로, 정말 의외로 잘 팔린다는 거죠.”

아드리안의 곁에서, 이번엔 린다도 다시 거들기 시작했다.

“투자자 히손 리가 아니라, 선덜랜드 구단주 썬에게 매력을 느끼는 팬들이 그만큼 존재한다는 증거 아닐까요?”

“으음. 어디까지나 구단주로서 나가는 거라면 찬성입니다. 투자 관련 이야기는 그대로 밥상 엎습니다. 미리 공지하세요.”

“감사합니다!”

만면에 미소를 짓는 린다와 아드리안, 그리고 카일을 바라보며 나는 한숨쉬듯 말했다.

“한 가지 조건 더 답시다. 경매 낙찰 금액과 정확히 똑같은 금액을, 내가 사비로 기부합니다. 지역 자선단체에요. 이것도 미리 공지하세요.”

경매 금액 키우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지.

그러자 아드리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실거면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는 조건이 어떠십니까? 그게 훨씬 깔끔하고 구단 이미지에도 좋아 보이는데요.”

“내가 미쳤습니까? 왜 우리 구단 수익을 줄여 잡아요?”

자세한건 나중에 우리 회계팀과 유에파 감사팀이 치열하게 싸워서 결정하겠지만, 일단 ‘구단주와의 점심’ 은 구단 상품이니 FFP상 문제없는 정식 수익일 확률이 높다.

금액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FFP상 문제 없는 수익은 정말 소중하다.

그와 반대로 내 사비는 FFP에 무조건 걸릴 비목이다. 내가 우리 구단에 합법적으로 돈 꽂으려면, 구단주 피규어라도 사재기하는 수밖에 없다.

덕분에 [선덜랜드 구단주와의 점심 식사] 가 경매에 나갔고, 십만 파운드라는 금액에 낙찰되었다.

이틀 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레스토랑 특실에서 낙찰자와 마주 앉았다.

“구단주님, 처음 뵙겠습니다. 제이미 버튼입니다.”

“반갑습니다. 이희성입니다. 썬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겉으로는 반갑게, 그리고 차분하게 대답하면서, 나는 속으로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마의 숫자는 80. 점심 한끼에 십만 파운드라는 낙찰가에서 이미 짐작했지만, 일단 직업을 떠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인물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런 이유에서 경계한 것만은 아니었다. 제이미 버튼에게서는 돈 만지는 인간 특유의 냄새가 났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저는 선덜랜드 구단주로서 이 자리에 나온 겁니다.”

“물론입니다. 아니었으면 굳이 거금을 써서 만나려고 하지 않았겠죠.”

제이미 버튼이 천천히 명함을 내밀었고, 나는 차분히 명함을 받아들었다.

연락처, 주소, 처음 보는 회사의 이름 같은 것들보다 더욱 선명히 보이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에이전트]

이 자는 지금, 나한테 선수를 팔러 나온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