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58화 (58/422)

58화 챔피언십으로 가는 길 (5)

선수에 대한 욕심과 원칙 사이에서 내가 고민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챔피언십 승격을 확정한 우리는, 내친김에 리그 원 우승을 향해 달렸다.

승격을 확정하면서 동기부여가 조금 꺾이진 않을까 염려했지만, 오히려 훨씬 시원한 경기가 이어졌다.

“그야 우리 감독님 밑에서 어느 놈이 설렁설렁 뛰겠어? 챔피언십 승격했다고 좋아하는 놈은, 리그 원이 한계라고 곧바로 선을 그으시더만.”

하긴, 로저스 감독은 그런 사람이었지.

덕분에 선수들의 동기부여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가장 크게 변한 선수는 역시 크리그였다.

지난 두 시즌 내내 리그 다섯 골에 그쳤던 크리그는, 올 시즌엔 벌써 26골을 뽑으며 자신의 커리어 하이 골을 기록했다.

그렇게 우리는, 리그 원 우승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했다.

***

38R. 선덜랜드 대 옥스퍼드.

크리그는 생각했다. 요즘은 느낌이 아주 좋다고.

[다행이네요. 공격수는 여러모로 민감하니까요.]

언젠가 선덜랜드 구단주 이희성이 말했던 것처럼, 스트라이커는 섬세한 존재다. 사소한 계기로도 영점이 틀어지고, 한번 부진에 빠지면 거짓말처럼 침묵한다.

물론 좋은 공격수일수록 영점이 쉽게 틀어지지 않고, 기복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크리그의 경우, 무려 2시즌간 침묵했었다. 그러니 기복이 적다는 기준으로 크리그를 평가하면 결코 좋은 공격수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크리그를 한결같이 믿어준 사람이 있다. 잘할 거라며 격려해주고, 그를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남자가.

‘참 신기하단 말이지.’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지금처럼.

‘오늘은 집요하게 왼쪽만 파헤쳤지.’

언제나처럼 톰슨의 롱 패스가 그라운드를 갈랐고, 그때마다 잭이 왼쪽 측면을 파고들었다. 덕분에 옥스퍼드 수비진의 균형이 틀어졌다.

‘그러니까, 진짜는 오른쪽이지.’

잠시 후, 톰슨의 롱 패스가 오른쪽으로 향했다. 크리그의 예상대로였다. 그리고 공을 따라잡은 요니가 기습적인 크로스를 올렸다.

기습적인 전환에, 옥스퍼드 선수들은 반응하지 못했다.

골키퍼도, 수비수도, 제자리에 멈춰선 스틸 사진처럼 정적인 풍경.

그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선수는 선덜랜드의 22번. 스트라이커, 빌 크리그였다.

트래핑은 하지 않았다. 마치 돌려차기와 같은 동작으로, 그의 발이 그대로 공을 걷어찼다.

옥스퍼드의 골네트가 세차게 출렁였다.

크리그의 오른발이 가볍게 그라운드에 내려앉은 순간, 득점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관중들의 함성이 그 뒤를 이었다.

[고오오오오올! 올 시즌 리그 27골! 과묵한 골 사냥꾼, 빌- 크리-그!]

“온 파이어!”

언제나처럼 들끓기 시작한 홈팬들의 함성, 그 열기의 한가운데에 서서, 크리그는 왼쪽 가슴에 주먹을 올렸다.

[잘할 겁니다. 내 안목은 빗나간 적이 없으니까요.]

크리그는 그대로 주먹을 뻗었다. 관중석을 향해서.

언제나 같은 장소, 익스클루시브 박스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 남자를 향해서.

[FC 선덜랜드, 우승 확정까지 9점]

***

39R. 브리스톨 대 선덜랜드.

브리스톨의 홈, 메모리얼 스타디움은 지난 시즌, 선덜랜드가 간발의 차이로 승격 플레이오프 티켓을 놓쳐버린 경기장이다.

선덜랜드 선수들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담긴 경기장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클럽 유스 출신에게는 더욱 중요한 장소였다.

요나스 뮐러, 요니는 기억하고 있다. 그날 돌아가는 길에 흐느끼던 팬들의 모습을.

“모조리 죽여 버릴 검다.”

그러고 보니, 그날 일을 기억하는 선수가 한 명 더 있었다. 요니는 잭을 바라보며 낮게 속삭였다.

“날뛰는 건 좋은데, 치즈는 먹지 마라. 너 슬슬 위험해.”

그러자 잭이 웃었다.

“걱정 마. 마법 주문을 배웠거든.”

“마법 주문?”

“구단주님이 나한테만 특별히 전수해 주셨다 이말이지. 나에 대한 애정의 증명 아니겠어?”

‘그건 너만 옐로카드를 퍼먹기 때문이지.’

으스대는 잭을 바라보며, 요니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구단주님과의 관계를 너무 과시하지 않는 게 좋을 텐데. 크리그 씨가 널 묻어버릴 것 같거든.’

잭을 바라보는 크리그의 눈빛이 평소와 달리 무척 싸늘하다. 이대로라면 오늘 두 사람의 핫라인은 평소보다 조금 삐걱거릴 것이다.

하지만, 선덜랜드에는 또 하나의 유스 출신이 있다.

작고 왜소하지만, 경기장 안에서는 누구보다 재빠르고 영리한 19번이.

“19번은 별로 안 빨라! 내가 충분히 잡을 수 있으니까, 잭이나 똑바로 마크해!”

브리스톨의 센터백, 딕슨이 마치 으름장을 놓듯 부르짖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요니는 속으로 생각했다.

‘육상이라면 당신이 나보다 빠르겠지.’

하지만 축구는 단거리 경기가 아니고, 동시에 출발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잭이 왼쪽 측면으로 빠질 거고, 크리그 씨가 오른쪽으로 두 걸음 움직일 거야. 그렇게 되면···.’

3초 후, 브리스톨의 아크서클 앞에 거짓말처럼 공간이 생겨났다.

그 공간에 가장 먼저 나타난 선수는 요니였다.

톰슨의 패스가 지체없이 요니의 앞에 도착했다. 조금 비스듬한 각도에서, 채찍처럼 휘어져 들어오는 날카로운 로빙 스루.

슬쩍 발을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 충분한 패스다. 득점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네트가 흔들리기도 전에, 요니는 삼천 명의 원정 서포터를 향해 달렸다.

지난 시즌 이곳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던, 그럼에도 올 시즌 다시 메모리얼 스타디움을 찾아온 팬들을 향해.

요니를 맞이하는 선덜랜드 서포터석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삼천 명 서포터들이 머플러를 들어 올렸다. 붉은 색과 흰 색, 선덜랜드 유니폼에 존재하는 단 두 가지 색상의 머플러를.

붉은 바탕, 하얀 색 숫자 19. 자신의 등번호를 카드섹션으로 그리는 서포터를 바라보며, 요니는 끓어오르는 포효를 내질렀다.

[스스로 정하는 거지.]

이 순간, 독일에서 온 이방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선덜랜드가 사랑하는 유소년 출신 축구선수, 요나스 뮐러만이 있을 뿐이었다.

[FC 선덜랜드, 우승 확정까지 6점]

***

40R. 피터버러 대 선덜랜드.

톰슨이 공을 따낸 순간, 피터버러의 왼쪽 공간은 텅 비어 있었다.

잭은 반사적으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다음 순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잭의 눈앞에 공이 나타났다.

‘터치 다섯 번이면 슛까지 이어나갈 수 있겠어.’

피터버러 선수들보다 한 발 앞서 출발했기에 잭은 충분히 가속할 시간을 얻었다. 친구 요니가 누구보다 빨리 나타나는 선수라면, 잭은 누구보다 빨리 달리는 선수였다.

선덜랜드 최고의 준족, 잭의 발이 잔디를 박찰 때마다 주위의 풍경이 휙휙 밀려 나갔다.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피터버러의 골문, 그 옆에는 마치 신기루와 같은 풍경이 피어올랐다. 요니가 받았던 카드섹션 축하다.

솔직히 말해, 미치도록 부러웠다.

‘오늘 원정골을 넣으면 나도 받을 수 있을까?’

순간, 잭은 발에 뭔가 걸린 느낌을 받았다. 순간적으로 그의 주위에서 중력이 사라졌다.

어깨에, 등에 둔탁한 타격감이 느껴진 것은 그다음이었다. 잭은, 자신이 잔디를 구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골이 코앞이었는데!’

카드섹션 축하가 눈앞에서 산산히 부서져 내리는 듯한 환상에 잭은 입술을 깨물었다.

당연히 피터버러 선수의 파울이 선언되었다. 선덜랜드의 프리킥이다.

“미안, 다치진 않았지?”

손을 내미는 피터버러 선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잭이 웃으며 손을 잡았다.

“Sik-bang.”

“무슨 소리야?”

“한국어로 식빵이라는 뜻임다.”

“한국어?”

“우리 구단주님 한국 분이잖슴까? 기분이 좋아지는 주문이라고 하셨슴다.”

잭은 며칠 전, 구단주와의 면담을 떠올렸다.

[잔디를 구른 다음 식빵을 구우면··· 아니, 말하면 아주 좋아.]

[잔디를 구를 때 말임까?]

[태클 당해서 넘어졌거나 그럴 때 있잖아.]

[아, 알겠슴다. 담부턴 태클 당하면 주문 외워보겠슴다.]

어째서 식빵이라고 말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의미는 이해했다. 절대로 거친 태클로 갚아주지는 말라는 소리다.

욱하는 성향이 있는 잭에게는 꽤 효과적인 마법 주문이었다. 잭은 유니폼에 묻은 잔디를 툭툭 털고 아크 부근으로 향했다.

프리킥 전담 키커, 톰슨이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잠시 후, 낮고 빠른 패스가 잭의 발을 향했다.

‘이거지!’

오늘은 반드시 넣는다. 그리고 카드섹션 세레머니 받으러 갈 거다. 잭은 그렇게 다짐하며 오른발로 공을 건드렸다.

공의 기세를 조금 줄이며, 궤도를 슬쩍 비틀었다. 그와 동시에 잭은 골대를 향해 돌아섰다.

옆에서 누군가 유니폼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라면 충분히 뿌리칠 수 있었겠지만, 급히 몸을 돌리던 잭은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

‘Sik-bang?’

균형을 잃고 무너지는 잭의 눈 앞에, 자신이 돌려놓은 공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그 뒤의 피터버러 골대까지.

쓰러져도 상관없었다. 골은 이제 사정권이기에.

뒤로 넘어지면서, 잭은 최대한 발을 앞으로 뻗었다. 공에 닿도록.

공에 발이 닿은 것과 자신의 몸이 잔디 위를 구른 것중 어느 게 먼저였는지, 잭은 확신하지 못했다. 어차피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공은 피터버러 골대 왼쪽 구석을 확실히 통과했으니까.

잔디를 굴렀지만 식빵을 구울 필요는 없었다. 축구 선수에게는 그라운드를 굴러도 기분좋은 순간이 있기 마련이기에.

자신의 위에 포개지는 동료들의 몸 사이로 선덜랜드의 서포터석이 똑똑히 보였다.

하얀 배경, 붉은 18번.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카드섹션 응원을 바라보며, 잭은 활짝 웃었다.

[FC 선덜랜드, 우승 확정까지 3점]

***

41R. 선덜랜드 대 블랙풀.

We are Sunderland. Say we are Sunderland.

선덜랜드 유스들을 미쳐 날뛰게 만드는 함성을 들으며, 톰슨은 조용히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뛰는지 아닌지도 모를 만큼 차분히 가라앉은 박동이 손끝에 전해졌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는 냉정한 선수였고, 일부에서는 감정이 없는 것 같다는 평가도 들었다. 보직의 영향일 것이다. 그는 후방 플레이메이커이고, 늘 침착함을 유지해야 하는 포지션에서 뛰고 있기에.

‘혹은, 심장을 두고 왔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오늘은 희미한 심장 박동이 느껴진다. 리그 원 우승이 코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선덜랜드라는 팀에 그만큼 애정을 느끼게 된 걸까.

톰슨은 문득, 경기 전 주치의와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무릎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완치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요.]

매주 톰슨의 무릎을 살피는 주치의는 틀림없이 그렇게 단언했다.

[놀랍게도 시즌 전보다 상태가 나아졌습니다. 한 시즌을 풀로 쉬었어도 이 정도는 아닐 겁니다.]

주치의는 놀랍다고 평가했지만, 톰슨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선덜랜드에 오기로 한 날, 확답을 받았으니까.

[우리는 최고의 의료진과 트레이닝 설비를 갖출 거야. 적어도 네가 은퇴하는 날까지는, 네 무릎이 박살나지 않도록 해주겠어.]

구단주 이희성은 톰슨과의 약속을 지켰다. 메디컬 팀은 물론, 구단 곳곳을 최고의 스태프로 채웠다.

[조금이라도 통증이 느껴지면 바로 이야기하세요··· 그나저나 톰슨 선수는 근육이 정말 좋군요.]

[다음 경기는 흐릴 것 같아요. 7번 그라운드 잔디를 평소보다 1밀리 더 짧게 세팅할 거고, 조금 습하게 만들었어요.]

여전히 그의 심장은 스탬포드 브릿지에 남아 있지만, 이제는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도 퍽 친숙해졌다. 몸에 걸친 붉은 유니폼도, 도시를 가득 메운 팬들의 뜨거운 함성도.

We do what we want. We do what we want.

그러니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할 것이다.

Sunderland ’til I die.

언젠가 선수로서의 끝이 다가올 때까지, 선덜랜드에서.

“톰슨 씨!”

자신을 부르는 요니의 외침에, 톰슨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공이 그의 발 앞까지 굴러와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블랙풀 선수들이 일제히 물러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선덜랜드의 공격은 대부분 톰슨의 발끝에서 시작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다.

하지만, 블랙풀 선수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다.

‘어쩌나, 여긴 사정권인데.’

매일 연습하는 훈련장과 완벽하게 똑같은 잔디. 이제는 친숙해진 영국 북동부의 거친 바람. 이 조건에서 피터 톰슨의 킥은 확실하게 골대까지 닿는다는 사실을.

블랙풀 선수들은 모르고, 톰슨은 안다.

잠시 후, 피터 톰슨의 오른발이 불을 뿜었다.

We are Sunderland. Say we are Sunderland.

선덜랜드의 3부 리그 우승을 확정하는 골이었다.

***

46R. 선덜랜드 대 노샘프턴.

[선덜랜드 2 - 0 노샘프턴]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을 들으며, 페르난데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덜랜드의 올 시즌은 사실상 다섯 경기 전에 이미 끝났지만, 페르난데스는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마지막 홈 경기는 팬들 앞에서 트로피를 드는 경기이기에.

패배한 채로 트로피 앞에 서고 싶지는 않았다. 골키퍼로서의 욕심을 더하면, 기왕이면 클린시트를 기록하고 싶었다.

언제나처럼 페르난데스는 오늘도 골키퍼의 의무를 다했다. 휘슬이 길게 세 번 울릴 때까지.

하지만 오늘은 한 가지 의무가 더 남아 있었다.

환호하는 팬들 앞에서 가장 먼저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주장의 의무이자 권리가.

[FC 선덜랜드. EFL 리그 원 챔피언]

빛나는 트로피 앞에 서서, 페르난데스는 천천히 골키퍼 장갑을 벗었다. 손에 밴 땀이 눈에 들어와서 그만 쓴웃음을 지었다.

‘이 나이에 긴장해볼 줄은 몰랐는데.’

국가대표와 클럽에서 이미 수많은 우승을 경험한 페르난데스였지만,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순간의 긴장만은 쉽게 가시지 않는 것이었다.

동료들에게 티내지 않으려 태연히 유니폼에 손을 문지르자, 옆에서 하퍼가 물색없는 소리를 했다.

“하긴, 주장이 들기엔 너무 가벼운 트로피겠네요.”

페르난데스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처음 영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는, 팀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었던 페르난데스였다.

그저 선수로 더 뛸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자신을 원하는 팀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행복했을 뿐, 선덜랜드라는 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어차피 3부 리그 팀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선덜랜드에는 1부 리그 못지않은 열정적인 팬들이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갈망하던 트로피 또한, 1부 리그 우승컵 못지 않은 가치가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트로피다.

페르난데스는 고개를 들어 관중석을 올려다보았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만 구천 명의 팬들과 눈이 마주쳤다. 누구보다 기쁠 텐데도, 숨죽여 기다리는 팬들이.

물론, 페르난데스는 팬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목표가 3부 리그 우승이 아님을 안다.

올 시즌은 어디까지나 챔피언십으로 가는 길일뿐.

[정말로 당신은 지금 은퇴해도 만족할 수 있습니까?]

만족할 수 없다. 그랬기에 선덜랜드에 와서 1년간의 선수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페르난데스는 아직도 자신이 만족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이 트로피는, 나한텐 정말로 가볍지 않아. 하지만, 우리 팬들에게는 가벼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내년엔 더 큰 트로피를 가져오자.”

“아이, 아이, 캡틴!”

선덜랜드 선수단 전원의 합창을 배경삼아, 마침내 페르난데스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사만 구천 개의 함성, 그 뜨거운 메아리가 시티 오브 선덜랜드 전체로 퍼져나갔다.

***

“또 우냐?”

“안 우는데? 브로, 누가 운다고 그래.”

하긴, 브라이언의 입은 실실 웃고 있긴 하다. 얼굴은 온통 눈물로 범벅이지만.

그런 브라이언을, 로저스 감독이 부드러운 손길로 끌어안았다. 감독과 코치라기보다는 스승과 옛 제자로서.

“샐리는요?”

“분석실에 돌아갔네. 우승은 이미 5라운드 전에 결정된 거라, 자기는 호들갑 떨고 싶지 않다더군.”

거짓말이다. 희주가 이 자리에 모습을 비추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겠지.

펑펑 울면 화장이 번지니까. 그러니 남들 눈에 띄는 자리에 있고 싶지 않은 거다.

나 또한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다.

메모리얼 스타디움의 익스클루시브 박스에서, 친정팀의 몰락을 지켜봐야 했던 날로부터 딱 1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사랑하는 친정팀도, 그리고 나도.

선덜랜드는 이제 리그 원을 떠난다. 빛나는 우승 트로피를 들고, 챔피언십으로 향한다.

그리고 나 역시 구단주로서의 삶이 퍽 익숙해진 모양이다. 팀이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벅찬 감격의 순간조차, 머릿속 한 구석에서는 목록이 만들어지는 중이니까.

메가스토어를 열고, 드레싱룸을 리모델링하고, 선수를 사 오고, 팀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한 그런 생각들.

이제 곧 여름 이적시장이 열린다. 이천만 파운드가 넘더라도 에디를 데려올 것인지, 아니면 내 원칙을 지킬지에 대해서도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래도 오늘 하루쯤은, 트로피를 종일 바라보고 싶었다.

들려주고 싶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놀이에 불과한 공차기와 사랑에 빠졌던 20년 전의 어린 나, 부서진 무릎을 붙잡고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던 13년 전의 나에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고. 줄곧 꿈꾸던 모습과는 조금 다른 형태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꿈에 도전하고 있다고.

“이 팀과 함께, 세계 축구의 정상까지 올라갈 거야.”

트로피에 비치는 과거의 내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그렇게 독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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