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61화 (61/422)

61화. 어제 내린 눈처럼 (3)

셰필드의 회신을 받은 희주가 피식거렸다.

“오빠, 천삼백만 파운드에 20% 셀온이라는데?”

“혹시 낮술 하셨냐고 물어봐.”

물론 외교적 수사를 듬뿍 발라서.

두다다다-! 경쾌한 타이핑 소리가 울렸다. 희주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탭댄스를 췄다.

그때 키보드 소리에 조금 다른 소리가 겹쳤다. 거친 발소리, 그리고 문 열리는 소리다. 덕분에 나는 얼굴을 보기 전부터 방문객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구단주실에 무단으로 뛰어 들어올 만한 인간은 희주와 브라이언뿐이거든.

그런데 희주는 지금 여기 있으니까 당연히 범인은 브라이언이다.

“브로, 설마 받아들일 생각은 아니겠지!?”

“혹시 너도 낮술했냐?”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팔 생각 없다” 며 버티던 쪽에서 먼저 역제시까지 한 마당인데, 이걸 한방에 덥석 물면 내가 투자의 신이냐? 등신이지.

에디가 아니라 메시나 호날두를 팔겠다고 했어도 일단 한두 번쯤 깎고 봐야 할 상황이고, 심지어 셰필드 단장 본인조차 내가 곧바로 수락한다는 기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걱정을 할 만한 사람은 역시 축구밖에 모르는 브라이언뿐이다.

낮술 이야기를 들은 브라이언의 얼굴이 누그러졌다.

“하긴, 브로가 그런 호구 딜에 낚일 리가 없지. 그나저나 셰필드도 욕심이 너무 과하네.”

희주가 슬쩍 끼어들었다.

“분할 지급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선심 쓰듯 말하던데··· 근데 우리 오빠는 할부 안 좋아하는데.”

“뭐, 일단 이적료 세게 불러 놓고, 나중에 조금 양보해줄 테니 20% 셀온은 유지하자는 식으로 풀어가려는 거겠지.”

그러자 브라이언이 히죽 웃었다.

“알면 안 낚이겠지? 20% 셀온은 과해. 10% 정도로 깎아보는 게 어때?”

“아니, 20% 셀온은 유지할 거야. 너무 무자비하게 가격을 후려치면, 앞으로 영원히 거래가 끊기는 수가 있거든.”

축구와 투자의 차이점 중 하나는, 투자자에게는 하늘의 별만큼 다양한 거래처가 있지만, 축구 구단의 수는 상대적으로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한번 보고 말 사이라면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면 그만이지만, 앞으로 또 거래해야 한다면 약간의 여지는 남겨 둬야 한다.

하지만 브라이언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브로. 마침 좋은 병원이 있는데. 선덜랜드 로열 병원이라고.”

“아, 그 병원 괜찮죠. 구단 제휴 병원이니까요. 선덜랜드 시즌권, 멤버십 보유자는 우대해 드리고 있으니 애용 부탁드립니다!”

희주 너는 도대체 누구한테 PPL을 하는 거냐.

“브로, 에디는 앞으로 몸값이 오를 게 틀림없는 선수야. 5년 후에 에디가 몇천만 파운드가 될지 누가 알겠어?”

나는 안다. 에디의 이마의 숫자는 300, 환율로 치면 대략 이천만 파운드 정도다. 앞으로 에디가 순조롭게 전성기를 맞이할 때의 적정 가치 또한 그 정도 선이 될 것이다.

그리고···.

“브라이언, 에디의 몸값은 언제쯤이 가장 비쌀까?”

“신이 아닌 이상 알 수 없지만··· 한 4~5년 후가 가장 비싸겠지? 센터백은 보통 스물일곱 살 정도가 가장 비싸니까.”

“내 생각도 그래. 그런데 그때 우리가 뭐 하고 있을까? 내 생각엔, 4년 뒤의 선덜랜드가 선수를 팔아서 차익을 벌기 급급한 팀은 아닐 것 같은데.”

투자와 축구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투자는 지분을 싸게 사고 비싸게 팔아 차익을 남기는 행위지만, 축구는 선수를 사서 성적을 얻는 행위다.

“싸게 사 온 선수를 비싸게 되팔아 이적료 수입을 남긴다고? 좋지. 돈 버는 걸 세상에 누가 싫어하겠어. 하지만 그건 셀링 클럽의 관심사야.”

선덜랜드의 관심사는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몇 년 후 에디가 무사히 풀포텐을 찍는다면, 나는 절대로 에디를 되팔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셀온 비율이 몇 프로인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

반대로 에디가 잘 크지 못했다면?

그 경우 에디를 팔아서 받을 이적료는 푼돈이니, 마찬가지로 셀온 비율이 몇 프로인지는 큰 의미가 없다.

슬슬 내 의도를 눈치챈 브라이언이 눈을 빛냈다.

“팔지 않으면 셀온이 몇 프로인지는 의미가 없다는 거구나.”

“선덜랜드를 셀링 클럽으로 만들 생각은 없거든.”

브라이언과 잠시 눈빛을 교환한 다음, 나는 천천히 희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셀온 비율은 안 깎을 거야. 대신 이적료를 깎을 거고. 모처럼 분할도 받아주겠다고 했었지? 당연히 그 조건도 알차게 써먹어야지.”

셰필드는 우리의 유력한 승격 경쟁자 중 하나고, 그들이 에디를 판 돈으로 사들이는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우리의 적이 된다.

그러니 셰필드에게 현금은 가급적 적게 줄수록 좋다.

지시를 받은 희주가 부지런히 셰필드 단장 해리스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천만 파운드에 20% 셀온이면 어떠냐는데?”

“천만 파운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그럼 10% 셀온으로 깎아.”

“셀온은 안 깎는다고··· 아, 협상용 카드구나.”

빨리 배우네.

몇 차례 조율한 결과, 에디의 이적료는 최종적으로 팔백만 파운드로 정해졌다.

이적료의 절반은 5년간 분할 지급하고, 에디가 재이적할 경우 이적료 수입의 20%를 지급하는 조건이 붙었다.

* * *

[FC 선덜랜드, 에디 레이놀드 영입!]

- 에디 레이놀드면 빅클럽하고 링크 떴던 애 아님? 진짜 싸게 샀네!

- 셰필드의 미래가 헐값에 팔려나감 ㅠㅠ

- 이쯤 되면 투자의 신이 아니라 공갈의 신 아니냐? 스물세 살 영국산 센터백이 팔백만 파운드라고?

- 오늘도 신에게 투자의 비법을 배웁니다. 일단 싸게 사라! 그런 의미에서 낙폭과대주 하나 추천합니다. 해머슨PLC라고···.

ㄴ 혹시 템즈강 수온이 궁금해진 거임?

중간에 이상한 의견이 섞여 있긴 했지만, 에디 레이놀즈의 영입은 대체로 호평을 받았다.

에디는 올 시즌 진짜 잘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고, 에디의 가세로 선덜랜드의 센터백 문제가 단숨에 해결될 거라는 기대감이 컸다.

반면, 함께 영입한 스티븐 와이트의 경우는 혹평을 받았다.

[FC 선덜랜드, 스티븐 와이트 영입!]

- 스티븐 와이트는 대체 뭐하는 듣보잡임?

- 조낸 유명한데. 돌아오지 않는 풀백. 걔 나온 경기 하이라이트 찍어 보면 한 절반은 걔가 뚫렸을걸?

ㄴ 절반밖에 안 된다고? 체감상 더한데.

ㄴ 절반 맞음. 왜냐면 나머지 절반은 오버래핑 나가서 화면에 안 잡혔거든.

- 오늘부터 매일 선덜랜드 쪽으로 절합니다. 블랙번 서포터 일동.

* * *

스티븐 와이트. 올해 스물두 살의 선수.

블랙번에서는 레프트백으로 출전했는데, 어려서 경험이 부족한 걸 감안하더라도 무척 평가가 박한 선수였다.

애초에 챔피언십 주전감이 아니라는 평가가 많았다. 블랙번에서도 원래 주전 풀백이 갑자기 부상으로 이탈하지만 않았으면 한 경기도 못 뛰어봤을 선수였다고.

심지어 스티븐 와이트를 영입하겠다는 의견을 들었을 때, 우리 코칭스태프들의 반응 또한 아주 싸늘했으니까.

하물며, 윙어로 써볼 생각이라는 의견에는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브로, 그러니까 지금··· 이 선수를 사서 윙어로 전환을 시키자고?”

“정확해.”

그러자 이번엔 샐리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풀백이 윙어로 성공하는 사례보다 윙어가 풀백으로 성공하는 사례가 훨씬 많아요. 그나마 어릴 때 이야기고요. 뭐, 풀백은 인기 없는 포지션이거든요.”

“이봐, 지금 나 디스하는 거지?”

그러고 보니 브라이언이 유스 시절부터 풀백 출신이긴 했다.

“풀백이 얼마나 중요한 포지션인 줄 알아? 현대 축구의 꽃! 판단력, 활동력, 주력, 수비력, 그리고 공격력까지 두루 갖춰야 일류 풀백이 될 수 있어.”

축구 지능 이외의 다른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전직 풀백의 항변에, 샐리는 무척 침착하게 응수했다.

“그럼, 그 모든 능력을 갖춘 유망주를 발견하면 코치님은 어느 포지션으로 키우시겠어요?”

“당연히 미드필더로 키우겠지.”

다시 말하지만, 브라이언은 축구 지능 이외의 다른 능력을 그다지 갖추지 못했다.

샐리가 웃었다.

“거 봐요.”

“······.”

침묵하는 브라이언을 대신해, 로저스 감독이 나섰다.

“잠재력이 느껴지는 선수인 건 맞네. 일단 나이가 어리고, 하드웨어가 무척 좋아.”

사이즈로만 보면 일단 센터백을 볼 수도 있는 덩치인데, 심지어 발도 빠른 편이다. 기록을 보면 스티븐의 스피드는 잭과 거의 호각이다.

샐리가 냉담하게 대답했다.

“문제는, 하드웨어 이외에는 다른 장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지만요.”

90분 내내 뛰어다녀도 까딱없는 잭과 달리, 스티븐은 체력적으로 평범하다.

발재간도 딱히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수준이었는데, 원래 풀백인 것을 고려하면 공격력은 평균 이상, 수비력은 평균 이하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풀백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 판단력은···.

판단력은 스티븐의 가장 형편없는 부분이었다. 괜히 돌아오지 않는 풀백이라며 조롱당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샀다.

스티븐 와이트의 이마에 선명하게 떠오른 숫자 150을 보며, 나는 확신했다.

이 선수는 절대 풀백으로 성공할 수 없다고.

그런데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스티븐 와이트는 언젠가 150억짜리 축구선수가 될 게 확실한 재능이다.

두 가지 사실의 모순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스티븐 와이트는 지금, 잘못된 포지션에서 뛰고 있다.

물론 스티븐이 반드시 윙포워드로 대성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저 스티븐이 원래 측면에서 뛰던 선수고, 그가 주로 보여주는 직선적인 돌파가 윙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가 어느 포지션에서 뛰어야 제 실력을 발휘할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어쩌면 미드필더, 혹은 센터백, 아니면 스트라이커로 써야 진가를 발휘할 수도 있다.

이제부터 차분하게 알아보면 된다.

스티븐은 어린 선수고, 그에게 들인 이적료 삼백만 파운드는 팀에게도, 그리고 선수에게도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이다.

* * *

“부담스러워 죽겠습니다.”

이적 후 첫 미팅. 감독과 구단주, 그리고 프레스 팀장 애니가 이적생 두 사람과 함께했다.

스티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같은 선수에게 삼백만 파운드라니··· 헛돈 쓰신 게 아닌가 해서요.”

그러자 옆에서 에디가 히죽 웃었다.

“그렇지. 스티비. 엄청 비싼 이적료니까 정진해야 해.”

삼백만 파운드가 비싸서 정진해야 하는 몸값이면, 팔백만 파운드에 20% 셀온까지 붙은 자기는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소리인가 싶어서 흥미롭다.

에디가 눈을 가늘게 뜨고 노래처럼 흥얼거렸다.

“스티비, 네 이적료는 무려 0.4에디에 달하니까 말이지. 엄청 비싼 거야.”

그 말에는 천하의 로저스 감독조차 쓴웃음을 지었다.

“혹시 본인 이적료가 너무 싸다는 야유인가?”

“그럴 리가요. 이제부터 몸담을 구단인데, 알뜰하면 좋죠. 사실 이적료 비싸 봤자 저한테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요. 선수는 주급이 제일 중요하죠.”

하긴, 에디는 이번에 적잖은 주급을 얻어냈다. 기본급 자체는 싼 편이지만, 수당과 옵션을 떡칠했다.

에디가 고용한 팔십억 원짜리 에이전트, 제이미의 수완이었다.

애니가 웃으며 말을 돌렸다.

“에디 선수, 그래도 비싼 이적료가 선수의 자존심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본인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만족하나요?”

그러자 에디가 히죽 웃었다.

“저는 셰필드와 선덜랜드가 당장의 이적료를 깎아서라도 셀온 20%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협상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만족스럽습니다.”

“흥미로운 의견인데요? 어째서 셀온 20%가 무척 만족스럽다는 거죠?”

“그야 셰필드는 제 몸값이 무지하게 오른다고 생각했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당장의 이적료를 깎아서라도 셀온에 집착한 거고요.”

“그 해석대로라면 선덜랜드는 당신 몸값이 안 오를 거라고 생각했다는 뜻이 되지 않나요?”

물어보는 애니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눈빛에는 호기심이 가득하다. 하긴, 보직이 바뀌었다고 기자 시절 버릇까지 사라진 건 아닐 것이다.

그러자 에디 레이놀드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이제 스물세 살이거든요. 몸값이 오르지 않는다면 성장이 멈췄다는 건데··· 그런 가정으로 저와 계약했으면 저능아겠죠.”

표현이 좀 그렇긴 하지만, 흥미롭다.

빙긋 웃으며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 선덜랜드는 왜 셀온 조항을 유지했을까?”

“저를 팔아치울 생각이 없다는 이야기죠. 안 팔면 셀온이 몇 프로든 아무 상관 없잖아요.”

머리 좋은 선수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경기장 밖에서도 영리한 선수인 줄은 몰랐는데.

성격은 좀 그렇지만.

에디가 다시 히죽 웃으며 스티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스티비, 이제 네 몸값 0.4에디가 얼마나 비싼 금액인지 알겠지? 앞으로 먹튀 소리 안 들으려면 죽도록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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