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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62화 (62/422)

62화. 어제 내린 눈처럼 (4)

많은 기대를 모으며 영입된 에디는 훈련에서도 곧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물론 에디의 플레이가 모두를 만족시킨 건 아니었다. 실제로 희주 같은 경우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오빠, 에디 쟤는 의외로 수수한데? 그냥 종일 어슬렁거리기만 하고, 잘 뛰지도 않고··· 대체 뭐 하는지 모르겠어.”

아무래도 잘못 산 게 아닌가 싶은 의심을 하는 모양이다. 희주의 표정은, 신상 쇼핑에 실패했을 때의 얼굴과 완벽히 똑같았으니까.

신나서 지를 땐 좋았는데, 집에 와서 다시 입어보니 기대에 못 미칠 때 주로 짓는 표정이랄까.

그런데 내 평가는요.

“그거 수비수로서는 최고의 덕목인데.”

파인 플레이를 남발하는 수비수는 보기에는 멋지지만, 따지고 보면 그만큼 불안정한 수비수라는 뜻이거든.

에디를 상대하는 선수들의 반응 또한 그렇다.

요니의 얼굴이 아주 인상적으로 구겨졌다.

“포지셔닝이 까다롭네. 잭만큼이나 상대하기 귀찮은데.”

훈련에서 맞서기 까다로운 상대, 포지션이 다른 동료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에디가 히죽거리며 응수했다.

“경합은 기본적으로 수비가 손해 보는 장사거든. 네 번 붙어서 세 번 이겨도, 딱 한 번 뚫리면 실점으로 이어지잖아? 그러니까.”

실실 웃으며 떠들던 에디의 몸이 움직였다. 다음 순간 에디가 민첩하게 요니를 가로막았다.

“공격수를 막는 건, 탁월한 기술이 아니라 올바른 위치여야 한다··· 어이쿠! 그렇다고 내 수비 기술이 허접하다는 소린 아니었는데, 뮐러.”

“요니다.”

마주 보는 둘의 눈빛에서 불꽃이 튀는 것 같다.

반대로 스티븐 와이트는 썩 인상적이지 않았다.

잭에게는 알까기를 당했고, 공격 장면에서는 크리그와 동선이 겹쳤으며, 돌파 시도는 톰슨의 태클 한 방에 무력화되었다.

오죽하면 에디가 훈수를 뒀을 정도다.

“스티비, 생각이라는 걸 좀 해 봐. 축구선수에게 머리가 왜 달려있다고 생각하지?”

“공중볼을 따내기 위해서? 손을 쓰면 반칙이니까.”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스티븐을 바라보며, 에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네 경우에 한해선, 정답이겠네.”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브라이언도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첫 훈련을 마치고 코칭스태프끼리 브리핑 룸에 모였다.

샐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에디에 대해서는 딱히 지적할 부분이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살짝 소름 돋는 부분은 오늘 요니를 막아 세운 장면이었는데요.”

“그 장면이 왜? 특별할 것 없는 돌파 시도와 마크 아니었나?”

로저스 감독의 말처럼, 내 눈에도 특별해 보이는 장면은 아니었다.

요니는 공간지능을 이용한 기습적 침투에 능한 타입이지, 수비를 정면에서 개인 기량으로 깨부수는 선수는 아니다.

역으로 말해, 요니의 드리블 돌파를 혼자 막지 못한다면 좋은 수비수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샐리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그게··· 요니가 하도 부탁해서 에디 버릇을 좀 찾아준 적이 있거든요.”

“버릇?”

“네. 셰필드 시절의 영상을 돌려봤어요. 에디는 상대 공격수와 대치할 때 오른발에 무게를 싣는 경우가 있었죠. 슬라이딩 태클 직전의 버릇··· 이라고 생각했어요.”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걸 보니, 오늘부터는 아니라는 뜻이 된다. 즉, 에디는 있지도 않은 가짜 버릇을 일부러 영상에 남겼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샐리를 속일 수 있을 정도로!

물론 분석관으로서 샐리의 특기는 통계 분석과 팀 단위의 전술적 움직임을 뽑아내는 것이고, 선수의 소소한 버릇을 찾는 능력은 브라이언이 훨씬 낫다지만···.

“인상적이군요.”

“일류 선수라면 하지 않아요. 어차피 저런 속임수는 딱 한 번 쓰면 끝이고, 들이는 노력에 비해 이득이 너무 적죠. 다만··· 에디 정도의 유망주라면 시도할 수 있겠죠.”

언젠가 알차게 써먹을 딱 한 번을 위한 포석. 점점 더 마음에 든다.

“경기장 밖에서 더 영리한 놈이라서 그래. 첫 미팅 때 뭐라고 했는지 들었어? 발상이 썬하고 완전히 똑같더라.

“그거 기대되네요.”

빙긋 웃던 샐리가 표정을 고쳤다.

“그런데, 스티븐은 도대체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데요. 비디오를 돌려 보는 게 의미가 있나 궁금할 정도고요. 기본기가 그저 그래서요.”

유일하게 스티븐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스태프는, 로저스 감독이었다.

“선수에게 전술과 기술을 주입하는 건 코치진의 역량이겠지만, 저 사이즈의 하드웨어를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하지. 잘 키우면 괜찮을 선수야.”

그러자 브라이언이 차분하게 의견을 제시했다.

“다음주부터 기술코치를 늘릴 거니까, 아예 전담 코치를 붙여 주는 방향이 어떨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엔 그보다는 분석실에 데려와야 할 선수 같은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흠.”

로저스 감독이 흥미롭다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계속해보라는 이야기겠지.

선수 육성 방향은 전적으로 감독의 권한이지만, 허가를 얻었으면 망설일 필요는 없다. 나는 빠르게 덧붙였다.

“발재간이 인상적이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 어린 선수들 대부분에게 해당하는 이야기 아닙니까? 잭과 요니도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는 아니니까요.”

“즉, 그들 둘과 스티븐의 가장 큰 차이는··· 판단력이다?”

“판단력, 축구 지능, 전술 이해도, 어떻게 불러도 상관은 없겠습니다. 스티븐의 경우는 하드웨어는 우수하지만, 소프트웨어가 문제인 선수죠. 그 부분을 개선하는 게 우선 아닐까요?”

그러자 샐리가 눈을 빛냈다.

“매일같이 분석 영상을 보여 주면서 가르치라는 뜻이군요. 알겠어요. 보람 있는 업무가 되겠는데요?”

“그랬다가는 분석팀장이 과로로 죽을지도 모르니, 모처럼 만든 프로그램을 쓰도록 하죠. 작년 리그 원 경기 데이터 기준으로, 선수 한 명을 찍어서 보게 하면 좋겠습니다.”

샐리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었다.

“요니군요.”

“그렇습니다.”

요니는 우리 선수 중 최고 수준의 공간지능을 가졌다. 만일 스티븐이 요니의 움직임에 맞출 수 있다면 위력적인 공격진이 될 것이다.

2선 전체를 활발하게 움직이며, 필요한 순간에 귀신같이 나타나는 요니의 침투는 선덜랜드 공격력의 핵심이다.

그런 요니의 움직임에 더해, 준족의 잭이 3선에서 지원하고, 힘과 스피드를 모두 갖춘 스티븐의 측면 돌파가 함께한다면 정말로 파괴적인 공격진이 될 것이다.

“그런데 구단주님, 우리 팀 전술상 윙포워드는 수비 가담을 성실히 해야··· 아! 그건 문제가 아니겠군요.”

나는 빙긋 웃었다.

“그렇습니다.”

스티븐에게는 판단력이 나쁘다는 결점이 있다. 그러니 언제 수비하고 언제 공격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은 이제부터 오랜 시간을 들여 가르쳐야 할 것이다.

다만, 스티븐은 원래 풀백 출신이다. 수비 가담의 중요성 자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선수다.

우리 선수단 중 누구보다 압도적인 하드웨어 스펙을 가진 선수, 어떻게든 축구 지능만 탑재할 수 있다면···.

올 시즌, 챔피언십에 올라간 우리 선덜랜드의 비밀 병기가 될 것이다.

* * *

선덜랜드 팬, 수잔 베일리는 불행해졌다.

일자리를 찾아 선덜랜드에 흘러온 지 3년. 직장에서는 나름 자리를 잡았지만, 아직도 타향살이는 썩 익숙하지 않았고, 인생에 다른 낙은 별로 없었다.

뒤늦게 발견한 축구라는 새 취미에 듬뿍 빠졌지만, 그만 시즌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시즌 개막까지의 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불만스럽게 핫도그를 물어뜯는 수잔을 향해, 상사 마일즈가 낮게 웃었다.

“하긴, 올여름은 유독 재미가 없긴 해. 원래는 이적설에 막 두근거리고 그러느라 정신이 없어야 하는데.”

“이적설이요?”

“핵심 선수를 빼앗긴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고, 새로 선수를 보강할 생각에 행복회로를 돌리기도 하지. 팬들에게는 나름의 재미인데, 썬 덕분에 올 여름엔 그런 재미가 없어.”

말로는 재미가 없다고 했지만, 마일즈의 눈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하긴, 이적설 보는 재미가 뭐 중요하겠어. 그보다는 이적시장의 안정성이 중요하지. 음, 정말 이상적인 구단주를 만난 것 같아.”

올 시즌, 선덜랜드는 주요 선수를 한 명도 뺏기지 않았다.

5년 만에 리그 원 득점왕에 오르며 화려하게 부활한 크리그에게 챔피언십 팀의 구애가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루머로 판명되었다.

크리그 본인의 강력한 어필 때문이었다.

- 부진했던 나를 되살려준 팀을 두고 떠날 마음은 없다. 나는 선덜랜드다. 팀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톰슨과 하퍼는 물론, 시즌이 끝나고 은퇴할 거라던 페르난데스마저 1년간의 재계약을 맺으며 팀에 잔류했다.

심지어 구단의 유망주 둘, 잭과 요니는 모두 겨울에 공개적으로 5년 재계약까지 해버렸다.

그리고 새 영입 또한 전격적으로 추진했다.

이적시장이 열리자마자 타겟에게 접근하고는, 2주 만에 선수 두 명을 사들이면서 누구보다 빠르게 시즌 준비를 마쳤다.

그 과정에서 오버페이도 안 했으니, 선덜랜드 골수팬 마일즈로서는 눈물을 흘릴 만큼 기쁜 여름이었다.

물론, 신참 축구팬 수잔은 공유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그래서, 축구는 언제 다시 하는 건데요? 이 집 핫도그가 맛있긴 해도, 역시 경기장에서 먹어야 제맛인데···.”

그때 푸드트럭 주인이 슬쩍 끼어들었다.

“저, 말씀 중 죄송합니다만, 다음 주부터는 수요일에 못 나옵니다.”

“어, 왜요!?”

수잔은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이 푸드트럭 핫도그는, 축구와 함께 수잔의 인생에 두 가지 낙이었다. 축구 시즌이 끝나고도 모자라, 핫도그까지 빼앗겨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게, 요즘 경기장 주변이 장사가 잘된다고 해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자 옆에서 마일즈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푸드트럭 주인이야 당연히 목 좋은 데 가셔야지. 이 친구는 조금 서운하겠지만··· 그런데, 경기장 주변에 뭐 있나? 아직 시즌 개막 전이라 사람이 있을 리 없는데?”

“선덜랜드 메가스토어가 오픈했거든요. 요즘 오픈 기념 특가랍니다. 그래서 손님이 엄청 몰리나봐요.”

“그렇군. 우리도 나중에 가 봐야··· 수잔?”

마일즈를 향해, 수잔은 보기 드물게 강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팀장님, 저 오늘 반차 내고 싶은데요.”

* * *

그렇게 수잔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향했고, 경기장 옆에 올라온 건물의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커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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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걸린 현수막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눈이 빙빙 돌 것 같다. 쇼핑은 보통 여자들의 취미라지만, 수잔은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즉흥적으로 메가스토어에 오긴 했지만, 어째 주눅이 들어서 쉽게 들어가기 어려웠다.

다행히 수잔은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선덜랜드의 CS팀 직원이었다.

“저, 입구가 여러 개인데··· 저쪽 입구는 뭐죠?”

“아, 고객님. 그쪽은 클럽 박물관입니다. 이번에 새로 만들었어요. 물론 박물관을 돌아보신 다음에도 메가스토어를 이용하실 수 있도록, 연결되어 있습니다.”

“클럽 박물관이요?”

“1879년의 창단, 그리고 1892년의 첫 우승부터 지금까지 선덜랜드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보실 수 있는 공간입니다.”

직원의 설명이 무척 솔깃하게 들렸다. 오픈 기념 세일로 붐비는 메가스토어보다는, 클럽 박물관 투어가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았다.

수잔은 박물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꽤 잘 만들었네.”

역사책에나 실릴 것 같은 흑백 사진부터, 세피아 톤으로 물든 90년대의 사진과 트로피들. 옛 스타 선수의 등신대 모형과 클래식 유니폼까지 꼼꼼히 늘어놓았다.

하지만 수잔을 가장 놀라게 했던 건, 여섯 개의 1부 리그 우승컵이었다.

“생각보다 우승을 많이 했던 팀이었구나.”

3부 리그에서 필사적으로 싸우던 모습만 아는 수잔으로서는, 선덜랜드가 명문 팀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 계기였다.

자신이 몰랐던 선덜랜드의 역사를 천천히 둘러보던 수잔의 발걸음은, 마지막에 놓인 트로피 앞에서 멈췄다.

[EFL 리그 원 챔피언]

얼마 전, 수잔의 눈앞에서 페르난데스가 들어 올린 트로피다. 진품인지, 복제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트로피 주위에는 환호하는 관중들과 선수들의 사진. 그리고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선수단의 피규어 디오라마까지 꼼꼼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무척 공을 들인 전시였다.

물끄러미 트로피를 바라보던 수잔을 향해, CS팀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우승은 어제 내린 눈일 뿐이지만, 갓 내린 설경의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정도는 허락될 일이라 믿습니다.”

“그렇겠네요.”

문득, 수잔은 트로피를 들어 올리던 그날의 뜨거움을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승의 감동을 다시 느낄 날은, 과연 언제일지를.

축구를 잘 아는 상사 마일즈는, 올 시즌은 쉽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챔피언십에서의 선덜랜드는 갓 승격한 언더독이고, 고전하는 경기도 많아질 거라고, 팬이라면 그럴수록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응원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수잔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리그 원 트로피는, 선덜랜드가 들어 올린 마지막 트로피다. 이제 박물관 투어는 끝났다.

그런데도 아직, 박물관에는 공간이 잔뜩 남아 있다.

“가이드님, 그런데 저 앞의 공간은··· 뭔가요?”

혹시 공사가 덜 끝났나 싶어서 물어보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부터 팬 여러분과 함께 채워나갈 공간이랍니다. 한번 보시겠어요?”

자세히 보니, 벽마다 액자에 그림이 걸렸다. 선덜랜드의 어린이 팬들이 서툰 솜씨로 그린 크레파스 그림들이다.

“팬들이 바라는 꿈이고, 팀이 앞으로 이뤄낼 목표입니다. 목표를 이룰 때마다, 그림 대신 실물로 바꿔 나가겠습니다.”

EFL컵 우승, FA컵 우승, 챔피언십 우승, 프리미어리그 우승, 챔피언스 리그 우승··· 그리고 트레블까지.

“매년 새로운 역사를 만들 겁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닙니다. 다가올 챔피언십에서도 반드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겠습니다.”

쉽게 말을 잇지 못하는 수잔의 귓가에, CS팀 직원의 목소리가 상냥하게 울렸다.

“그러니 앞으로도 부디, 함께해주시기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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