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존중의 방식 (1)
<우리의 모든 영혼을 담아, 승리를 위해. - 디에고 시메오네>
눈이 마주치자, 하퍼와 샘이 동시에 인사를 주고받았다.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구려.”
요즘은 리지가 선덜랜드 잔디 관리인의 대명사로 통하지만, 오랫동안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잔디를 지켜온 사람은 바로 샘이었다.
‘샘 아저씨’ 는, 팀에 오래 머문 선수들에게는 리지보다 훨씬 친숙한 존재였다. 어느덧 팀에서의 5번째 시즌을 맞이한 하퍼 역시 샘과 안면이 있었다.
“이 시간에는 처음 뵙는 것 같네요. 보통은 오전에 나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요. 보통 그 시간에 잔디를 손보니까. 지금은 직접 잔디를 만질 일이 없으니 이 시간에 나오지만.”
노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늙은이가 새벽부터 나와서 자리를 지키면 아무래도 후임이 신경을 쓰게 되지요. 그러니 적당히 자리를 비워주는 게 서로 좋지 않겠소?”
하퍼는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네요. 언제나 할아버지가 옆에 붙어 있으면 리지 씨도 업무를 보기 힘들 테니까요.”
“덕분에 손녀딸 피해서 이렇게 오후에나 어슬렁거리는 신세가 되었다오.”
미소를 주고받은 다음, 하퍼는 슬쩍 발아래에 시선을 돌렸다. 언제나처럼 잘 관리된, 완벽한 컨디션의 잔디가 눈에 들어왔다.
잔디도, 그리고 잔디 관리인도 무척 잘 자라는 중이었다.
“이제는 굳이 둘러보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자라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는 게 늙은이들의 즐거움이라오.”
너스레를 떨어 보인 샘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나저나, 고민이 있는 얼굴이신데.”
하퍼는 빙긋 웃었다.
선덜랜드 관계자 중에서 이 노인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유독 하퍼는 샘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오랜 기간 묵묵히 팀에 헌신해온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인에 대한 호감 때문일까. 하퍼는 주저없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어째서 자신이 나서는 컵 대회에서 라인을 끌어올리고, 페르난데스가 지키는 리그에서는 수비를 굳히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고민을 들은 샘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늙은이는 축구는 잘 모르지만···.”
물론 지나친 겸손이었다.
27년간 경기장 밖에서 핫도그만 팔았어도 축구판 사정에 빠삭해졌을 텐데, 심지어 샘은 팀의 전술에 따라 잔디의 컨디션을 바꿔야 하는 관리인으로 일했다.
전문적인 프로 코치 수준의 식견까지는 아니겠지만, 어지간한 선수 수준의 안목은 될 것이다.
하퍼는 대답 대신 빙긋 웃으며 샘의 조언을 기다렸다.
“하퍼 선수. 내년에 예정대로 프리미어리그에 돌아간다면, 그때 우리 위상은 어떻게 되겠소?”
“아마 전통의 명문이라고···.”
“기자들 같은 소리 마시고, 다른 팀들 눈으로는 어떻겠냐는 거요.”
하퍼는 솔직히 대답하기로 했다.
“6년 만에 1부 리그에 돌아온 승격팀이니, 강등권 경쟁을 펼치는 언더독 취급을 받을 겁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언더독이 수비 축구를 선택하는 건 합리적이고 간단해요. 그러니 지난 시즌부터 미리 준비했던 거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언더독도 누군가를 먹잇감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소?”
먹잇감이라는 단어의 어감을 하퍼가 곱씹는 사이, 샘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예컨대, 노리치는 지금 1부에서 하위권이지요? 그러니 우리가 내년에 1부 리그에서 노리치를 만났다면 서로 잡아먹어야 할 상대 아니겠소?”
“그렇습니다.”
“그러면 컵 대회는 절호의 찬스지요? 우리가 정말로 내년에 노리치를, 혹은, 1부리그의 다른 중하위권 팀들을 잡아먹을 수 있을지 판가름할 기회니까요.”
“아···!”
감탄하는 하퍼를 향해 샘 노인이 웃었다.
“대단하지 않소? 내년에 1부 리그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벌써 고민하는 모습이.”
“네, 우리는 정말 좋은 구단주를 얻었군요.”
대답하면서, 하퍼는 주먹에 힘을 주었다.
라인을 올리는 축구는 자신보다 페르난데스가 더 낫다는 식의 약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플레이에 팀의 내년 방침이 영향을 받게 된다. 부담스러운 한편으로, 팀이 자신을 믿고 있다는 느낌에 기운이 났다.
“고맙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고생하시구려.”
하퍼에게 빙긋 웃어준 샘 노인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27년간 가꾸고, 이제는 그 손녀가 기르는 잔디 쪽으로.
하퍼는 문득, 샘의 눈빛이 로저스 감독의 것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 성장을 확인하는 즐거움, 그리고 이제 물러나는 아쉬움이 적당히 섞인 눈빛.
그것은 틀림없이, 감독이 구단주 이희성과 코치 브라이언을 바라볼 때의 시선과 닮아 있었다.
* * *
노리치 원정 경기를 앞두고, 나는 조엘을 다시 호출했다.
“이번에 캐로우 로드에 향하는 우리 팬들이 몇 명쯤 됩니까?”
“확인된 것만 대략 만에서 만이천 정도로 추측됩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군요.”
노리치의 홈, 캐로우 로드의 정원은 약 이만칠천 석이고, 만이천 명으로는 여전히 과반수엔 미치지 못한다.
그래도 일반적인 원정 경기 분위기와는 퍽 다를 듯한 느낌이 든다.
조엘이 웃었다.
“프레스팀의 기사가 워낙 좋았고, 강등팀으로 같이 묶지 말라는 노리치 팬덤의 반응도 우리 팬들을 자극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일단, 우리 경기력이 화끈하고요.”
플리머스 상대로 다섯 골 차이의 대승을 거둔 게 기대감을 높였다는 분석이었다.
팬들은 일단 팀의 승리를 가장 원하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수비 축구보다는 여러 골을 터트리는 시원한 축구를 선호하는 게 사람 본성이다.
“그나저나 만 명, 혹은 그 이상이라면··· 우리 팬들도 꽤 무리했겠군요. 노리치는 꽤 먼데요.”
선덜랜드는 북동부 팀이고 노리치는 남동쪽에 위치한다. 따라서 선덜랜드에서 노리치에 가는 길은 그야말로 영국 횡단이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노리치가 영국 남서쪽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지만, 애초에 영국은 남북으로 길쭉한 섬나라라서 거리 자체가 상당하다.
“경기 전날과 당일, 버스를 동원합시다. 우리 팬들이 같이 가주겠다는데, 최대한 지원해야 도리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뉴캐슬전에서 버스 백 대를 동원했으니, 이번에는 삼백 대쯤 불러야 할 것 같다··· 조엘이 알아서 하겠지.
“아, 그리고 원정용 차량은 어떻게 되어 갑니까?”
“곧 완성됩니다. 우선 1호차는 푸드트럭에 들어가는 주방 설비를 탑재해, 스태프와 선수들의 영양을 책임질 수 있게 구성했습니다.”
내 질문을 예상했는지, 조엘은 미리 사진까지 준비한 상태로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2호차와 3호차에는 메디컬 팀이 사용하는 장비를 넣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아카데미에 있는 비품은 모조리 탑재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 우리 훈련장이자 메디컬 팀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그곳 비품 전부면··· 음, 굉장하네.
“구급차 제조 업체의 도움을 받아, 차 안에서 모든 설비의 사용이 원활하도록 설계했습니다. 그리고 4호차는 메디컬 팀이 단체로 탑승합니다.”
“선수들은요?”
“5호차와 6호차입니다. 해당 차량에는 일부 좌석 한정으로 영상통화 장비가 부착되었습니다.”
“흥미롭군요. 전술 소통 용입니까?”
감독이 5호차, 브라이언이 6호차에 타서 각각 선수들을 통솔하면서 전술적 토론을 주고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조엘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용도는 아니고, 선수의 강력한 요구 때문에 넣었습니다. 이동 중에 팬들과 소통하게 해달라고···.”
조엘은 그렇게만 말했지만, 나는 강력한 요구를 했다는 ‘선수’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18번 지정석이겠죠?”
“19번 지정석에도 같은 세팅이 들어갑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팬들하고 화상통화 풀어주면, 걔들은 이동중에 쉬지도 않고 떠들 텐데요.”
“그럼 떼버릴까요?”
내버려두면 컨디션 조절을 못 할 것 같지만, 잭과 요니는 팬들과의 교감에서 힘을 얻는 타입이니 무작정 못하게 하기도 좀 그렇다.
“놔두세요. 대신 코칭스태프가 강제로 끌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죠.”
“알겠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강제로 영상통화를 꺼버리면 팬들이 싫어하지 않을까요?”
조엘이 은근한 시선을 보냈다.
의미는 명백하다. 우리 팀에는 경기 직전에 컨디션을 관리할 필요가 전혀 없으면서, 팬들이 꽤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 있거든.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차에도 영상통화 장비 세팅하세요.”
구단주용 리무진에, 그 정도 장비는 실을 자리가 있을 거다. 아마도.
* * *
EFL컵 2라운드, 노리치 대 선덜랜드.
노리치의 홈, 캐로우 로드는 경기 시작 전부터 뜨거웠다.
We are Norwich and We will sing on our own.
We are Sunderland. Say we are Sunderland.
양 팀 서포트의 함성이 쉼 없이 울려 퍼지는 캐로우 로드의 미디어석에서, 애니는 차분하게 노트북을 두드렸다.
[여전히 홈팀 노리치의 팬이 과반수 이상이지만, 선덜랜드의 붉은 유니폼도 만만치 않게 경기장을 메웠다. 그만큼 오늘 경기를 기대하는 팬들이 많았다는 것이리라.]
애니는 잠시 고개를 돌려, 원정 서포터석에 시선을 보냈다. 홈팀 노리치 팬들 못지 않게 열정적으로 날뛰는 선덜랜드 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무려 만이천 명이나 되는 팬들이.
열성적으로 원정 티켓을 구매한 선덜랜드 팬들의 정성에, 구단 역시 이틀 동안 버스를 삼백 대나 동원해서 실어 나르는 성의로 화답했다.
‘구단과 팬이 함께 걷는 모범적인 장면이었지? 아, 손이 근질거리네 정말!’
참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애니는 다시 경기 사전 분석에 집중했다.
[오늘 경기의 관전 포인트는 크게 세 군데로 압축될 것이다. 우선, 양 팀의 주포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선덜랜드의 크리그와 노리치의 푸키.]
때마침 선수들이 천천히 경기장에 걸어 나오는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 모두 22번을 달고 있었기에, 애니는 양 팀의 스트라이커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두 선수 모두 전형적인 골 사냥꾼이며, 지난 시즌 리그 득점왕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22번은 일반적으로 스트라이커가 선호하는 등번호는 아니었다. 하지만 애니는, 22번이야말로 푸키와 크리그를 가장 잘 상징하는 번호라고 생각했다.
한번도 1부 리그에서 활약하지 못했고, 유로나 월드컵에서 날뛰지도 못한 선수들. 그들에게 수많은 스타 골잡이가 사용한 9번이나 10번은 썩 어울리는 번호가 아니었다.
하지만 22번을 쓰는 스트라이커 두 사람은, 지난 시즌 하위 리그의 득점왕들이다.
챔피언십의 득점왕 푸키와, 리그 원 득점왕 크리그.
그리고 두 명의 22번 못지 않게 애니의 시선을 잡아끄는 선수들이 있었다.
붉은 색과 노란색 유니폼의 물결 속에서, 유일하게 홀로 다른 색 옷을 입은 선수들.
양 팀의 골키퍼 에드워드 하퍼, 그리고 티모시 크룰이다.
[두 번째 관전 포인트는 양 팀의 골키퍼이다. 선덜랜드의 하퍼, 그리고 노리치의 크룰. 두 선수 모두 드라마틱한 승부차기 장면으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떨쳤다.]
두 골키퍼 모두 선방 능력에 강점이 있고, 필연적으로 승부차기에도 무척 강한 편이었다.
[네임밸류는 크룰이 훨씬 앞서지만, 순수한 선방 능력으로는 하퍼도 크룰 못지 않다. 일단 하퍼는 크룰보다 세 살이 젊고, 선방은 나이의 영향을 크게 받는 능력이다.]
물 흐르는 듯 양 팀 골키퍼에 대해 서술한 애니의 손길은, 세 번째 포인트로 넘어가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이 경기를 준비한 양 팀의 전술일 것이다. 지금의 노리치는, 강인한 전방압박과 숏카운터를 특기로 삼는다.]
그리고 올해의 선덜랜드는, 컵 대회에서는 노리치와 마찬가지로 라인을 올린 채 전방압박을 무기로 삼고 있다.
지난 시즌 리그 득점왕 출신의 공격수를 보유했고, 승부차기에 강한 든든한 골키퍼를 남겨둔 채 서로 라인을 올리는 두 팀의 충돌.
[따라서 오늘의 경기는···.]
아직 휘슬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애니는 어쩐지 경기의 흐름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난타전이 될 것이다.]
잠시 후 킥오프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고, 경기는 선덜랜드의 선축으로 시작되었다.
* * *
애니가 작성한 사전 경기 예측처럼, 경기는 시작부터 난타전 양상으로 흘렀다.
킥오프와 동시에 노리치의 초록 유니폼이 거세게 밀고 들어왔다. 절묘한 톰슨 대책이었다. 마치 무슨 매뉴얼이라도 만들어 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피터 톰슨을 상대하는 법 : 하나, 애초에 톰슨에게 공을 주지 않는다. 둘, 이미 공을 줬다면 톰슨 전방의 공간을 틀어막은 다음 톰슨을 포위한다.>
‘고양이를 피하는 방법 :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같은 급의 대책이긴 한데··· 이게 의외로 잘 먹혔다.
“톰슨 선수 컨디션이 별로인 거 같은데··· 혹시 동네에 적응을 못 한 거 아닐까?”
“그럴 리가.”
쟤는 작년 여름까지 노리치 선수였고, 어제 저녁엔 단골 가게들 한바퀴 싹 돌고 왔을 정도로 동네 적응 잘했다.
그저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하던 2부, 3부리그 팀과 노리치의 압박 사이에는 커다란 수준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혹은, 노리치가 톰슨을 상대하는 데 익숙하거나.
톰슨은 압박을 피해 공을 길게 걷어내야 했고, 덕분에 공은 노리치에게 넘어갔다.
“윽! 시작부터 뺏겼어!”
오만상을 찌푸리는 희주와 달리, 나는 침착했다.
“괜찮아. 이제부터 다시 뺏으면 그만이니까.”
노리치는 톰슨이 패스할만한 공간을 내주지 않는 방식으로 공을 따냈다. 즉, 노리치는 잭과 요니, 스티븐을 모두 근접 마크하는 중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잭과 요니, 그리고 스티븐 모두가 노리치 선수와 붙어 있는 상황, 전방 압박하기 좋은 조건이다.
준족의 영건 세 명이 노리치의 후방을 부지런히 누비며 몰아세우자, 노리치 역시 압박을 피해 공을 길게 걷어내고 말았다.
그렇게 킥오프 직후부터 우리와 노리치는 서로를 격렬하게 압박했고, 수시로 서로 공을 뺏고 뺏는 싸움을 거듭했다.
그 와중에도 스코어는 움직이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격렬히 압박해 공을 빼앗았지만, 그 와중에 영양가있는 공격으로 이어가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균형이 무너진 건 전반 10분의 일이었다.
우리의 왼쪽 측면을 파고든 노리치 선수가, 박스 안쪽으로 짧은 패스를 밀어넣었다.
미리 박스 안쪽에서 기다리던 푸키의 발에 공이 연결되고 말았다.
“꺄악! 안 돼!”
희주의 비명 위에, 캐로우 로드 홈팬들의 함성이 덮였다.
푸키의 터치는 단 두 번뿐이었다.
볼 트래핑 한 번, 그리고 필사적으로 달려나오는 하퍼를 피해 반대쪽 포스트로 슬쩍 밀어 넣는 슛 한번.
[노리치 1 - 0 선덜랜드]
불과 10분 만에 선제골을 뽑아낸 홈 팬들이 미친듯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We’re the green yellow army.
“에스컬레이터가 뭐 어째? 1부 리그 와서나 떠들어라!”
“선덜랜드 하는 꼬라지 보니까 내년에 못 만나겠다!”
선제골을 뽑아낸 노리치의 기세는 더욱 거세졌다. 한 골을 뽑았는데도 변함없이 라인을 올리고, 거칠게 밀고 들어왔다.
초록, 그리고 노란색의 물결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톰슨을 포위했다. 마찬가지로 절묘한 타이밍이라, 톰슨은 이번에도 공을 걷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궤적의 끝에 크리그의 모습이 보였지만, 이미 그의 곁에는 노리치 수비가 붙어 있었다. 크리그가 경합했지만, 공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흘러나온 공이 노리치의 아크서클과 하프라인의 중간쯤을 굴렀다.
“제발!”
희주의 외침이 통했을까, 세컨볼을 가장 먼저 따낸 선수는 선덜랜드의 19번, 요니였다.
이번에도 많은 터치는 필요하지 않았다. 순간적인 가속으로 수비 한 명을 따돌린 요니는, 두 번째 터치로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요니의 오른발이 세 번째로 공을 건드렸을 때, 캐로우 로드는 환호와 비명으로 뒤덮였다.
We do what we want. We do what we want.
수비가 가로막을 틈도 주지 않은 반박자 빠른 슛.
We are Sunderland. Say we are Sunderland.
요니의 발을 떠난 공이 잔디 위를 가로질렀다. 페널티 박스를, 그리고 골마우스를 가른 슛은 노리치 골키퍼의 손을 피해 니어 포스트에 그대로 꽂혔다.
“선덜랜드의 보물!”
“요니! 사랑한다!”
우리 홈을 연상시킬 만큼 뜨거운 함성 속에서, 요니가 그대로 원정 팬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미끄러졌다.
[노리치 1 - 1 선덜랜드]
시작부터 치열하던 경기는, 그렇게 점차 난타전 양상으로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