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76화 (76/422)

76화. 영업의 비결 (1)

<언제나 팬들이 옳다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선덜랜드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며, 몽크위어마우스 탄광 터 위에 세워진 상징성을 갖췄다. 그야말로 선덜랜드 지역의 상징물이나 마찬가지인 경기장이었다.

그 경기장을 증축하겠다는 내 계획에, 팬들의 표정에는 감개무량한 빛이 떠올랐다.

그런 한편으로, 일부 팬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긴, 경기장을 짓는 데에는 비용이 든다. 런던의 명문 아스널조차,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짓느라 수년간 긴축재정에 돌입하며 허덕인 적이 있다.

우린 그럴 일 없을 거지만.

“아주 다행스럽게도 경기장 건축에 관한 비용은 FFP와는 아무 상관이 없더군요. 따라서 해당 비용은 전부 제가 처리할 것입니다.”

겨우 경기장 증축하는 정도로 구단이 재정난에 빠질 일은 없다고 슬쩍 못을 박자, 팬들의 환호가 커졌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팬들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썬, 증축이라고 하면··· 경기장 좌석을 늘린다는 이야기 맞지?”

“네, 시즌 중 경기를 보시는 동안 아무 불편함이 없도록 단계적으로 고쳐나갈 예정입니다.”

대답하면서, 나는 비로소 일부 팬들이 무엇을 저렇게 불안해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구단이 돈이 많은 경우, 축구장을 아예 새로 지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화이트 하트 레인을 떠나 핫스퍼 스타디움을 새로 지은 토트넘이나, 하이버리 대신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 둥지를 튼 아스널이 그 사례다.

“저는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경기장인지 압니다. 선덜랜드는 결코 지금의 홈 경기장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제대로 짚었는지, 팬들의 얼굴이 환하게 피기 시작했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뛰는 건 오랜 꿈이었습니다. 다른 형태로나마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점점 흐뭇해지는 팬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저 데뷔만을 꿈꾸는 선수가 없듯이, 저 또한 더 많은 성공을 원합니다. 더 많은 트로피를, 팀의 새로운 역사를,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쌓아 나갈 것입니다.”

이럴 때 보면 영상통화가 참 좋다. 사람의 표정을 바로 확인할 수 있어서.

순차적으로 버스 삼백 대에 나눠 탄 팬들을 비추는 스크린을 응시하며, 나는 미소지었다.

나를 바라보는 팬들과 똑같이, 환하게.

* * *

“보이스피싱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네 생일은 모른다니까.”

“··· 영상통화로 진행하죠.”

잠시 후 리미트리스 여의도 본사를 배경으로 한 다미의 얼굴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미는 반갑다는 듯 미소지었지만, 잠깐이었다.

다미의 단정한 얼굴에 냉철하고 이지적인 빛이 떠올랐다. 그녀의 업무 모드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를 증축하신다고요?”

다미의 눈썹이 아래로 처졌다. 뭔가 생각을 정리할 때 그녀가 늘 짓는 표정이다.

“조금 조사해봤어요.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칠만 석까지 확장이 가능하게 설계되어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렇지. 잘 조사했네.”

“경기장에 투자하는 비용은 어떻게 조달하든 FFP에서 터치하지 않는 항목이라고 들었고요.”

“정확해. 꽤 알아봤네.”

고개를 끄덕이자 다미의 눈에서 불이 튀었다.

“누구인가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누구냐니.”

“무슨 소리긴요. 그렇게 간단한 처리도 못 해서 사장님을 실망시킨 직원이 누구냐는 말씀이죠.”

“음?”

“FFP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경기장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대공사도 아니죠. 애초에 사장님 성격에 그런 대공사를 시즌 중에 치를 리도 없고요.”

“나한텐 우리 팀 성적이 제일 중요하니까.”

“어련하시겠어요? 아무튼, 그래서 여쭤보는 거죠. 그 정도 일 처리도 못해서 사장님을 번거롭게 만든 직원이 누군지···.”

“숙청이라도 할 것 같은 기세인데.”

슬쩍 농담을 던지자, 다미가 키득거렸다.

“그런 짓 안 해요. 그저, 남극 지사에 사람이 급히 필요해져서요.”

“남극에 우리 지사가 있었던가?”

“만들었어요. 방금요.”

숙청 맞네. 다미 얘 기세로 보면 조만간 달나라나 아오지 지사도 만들지도 모르겠다.

“그냥 회사가 하나 필요해져서 연락한 거였는데.”

“아, 그러면 제 업무군요. 어떤 회사 말씀이시죠?”

다미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나는 웃으며 용건을 밝혔다.

“건설 회사를 하나 갖고 싶어졌거든.”

“인수? 아니면 창립?”

“인수. 경영권을 가져오면 제일 좋고, 최소한 의결권에 영향을 줄 만큼의 지분은 확실히 챙겨오고 싶은데.”

선덜랜드를 인수한 이래, 지금까지 몇 번쯤 공사를 했다. 예를 들면 드레싱룸 리모델링이나 메가스토어 신축 같은.

하지만 경기장 증축은 지금까지와는 상황도, 규모도 다른 초대형 프로젝트에 해당한다.

다미가 미소를 지었다.

“하긴, 사장님이 칠만 석으로 만족할 리는 없으시겠죠.”

“그렇지. 그리고 사실 이번 증축 프로젝트에는 조건이 하나 더 필요해. 시즌 진행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거지.”

다미의 커다란 눈에 물음표 마크가 떠올랐다.

“사장님, 보통 대대적 공사에 돌입할 때는 잠깐 문 닫고 다른 경기장 빌려서 시즌 치르지 않나요? 그 왜, 우리나라 선수 뛰는 팀도 웸블리를 빌려 썼잖아요?”

“토트넘은 런던 팀이고, 웸블리도 런던에 있으니까. 하지만 우린 불가능해.”

우리 팬들은 웸블리에 드나들기 너무 멀다. 컵 대회 결승전 정도야 기쁘게 달려오겠지만, 매주 웸블리에 오라고 하기는 미안하다.

빌리려면 근처 경기장을 임대해야 할 텐데, 선덜랜드에 가까이 있는 경기장이라면 딱 두 곳뿐이다. 뉴캐슬의 세인트 제임스 파크, 미들즈브러의 리버사이드 스타디움.

애초에 자기들도 시즌을 치러야 하는 특성상 빌려주지도 않을 것이며, 혹시 빌릴 수 있다 치더라도 썩 유쾌한 환경은 아닐 것이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와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은, 세상에서 선덜랜드에 가장 적대적인 경기장들이니까. 시즌 내내 원정 느낌이겠지.

“축구계에는 시즌 치르면서 경기장을 증축한 사례가 꽤 있어. 다만, 경험 없는 건설사에 맡겼다가 혹시라도 경기에 차질을 주면 곤란하니까···.”

“그래서 경기장 전문 건설 업체를 알아보시는 거군요. 이해했어요.”

“맞아.”

“그리고 굳이 그런 회사를 사들이는 이유는··· 단순히 거래처 고객 취급이 아니라 제 식구처럼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해주길 바라시는 거고요.”

전부 정답이다. 하긴, 다미 얘가 괜히 리미트리스에서 내 오른팔 노릇을 하는 게 아니지.

“후보는 제가 알아볼게요. 인수 가격으로 얼마가 적정한지는 사장님이 정해 주실 거죠?”

“그게 낫겠지.”

잠시 후, 다미는 회사 몇 개를 추천했고, 나는 그중 한 곳을 지목했다.

파퓰러스.

웸블리, 에미레이츠, 그리고 핫스퍼 스타디움을 설계한 회사였다.

* * *

파퓰러스 런던의 수석 디자이너, 타일러 앨런이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구단주실을 찾은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의 일이었다.

구단주실에서는 젊은 동양인 남녀가 타일러를 맞이했다. 그중 남자 쪽이 이희성이라는 사실은, 타일러가 이미 사진을 통해 확인한 상태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타일러 앨런입니다.”

“이희성입니다. 발음하기 힘들 테니 그냥 썬이라고 하시면 됩니다.”

이희성은 스스럼없이 말했지만, 타일러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다. 타일러가 재빨리 말했다.

“사석에서는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업무 이야기를 하는 중이니 적절하지 않은 것 같군요. 제가 뭐라고 불러드리면 되겠습니까? 대주주님, 사장님··· 아니면 구단주님?”

“제가 그쪽 회사 대주주가 된 건 경영진들 관심사지 타일러 씨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닌 것 같군요. 그리고 리미트리스의 사장인 것도 타일러 씨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희성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차분했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선덜랜드 구단주로서 우리 팀 경기장 증축을 의뢰하기 위해 타일러 씨와 만난 겁니다. 굳이 공적인 호칭을 쓰자면, 구단주여야 하겠죠.”

이희성의 대답은 논리적이었고 태도는 우호적이었지만, 타일러는 속으로 쓴 입맛을 다셨다.

‘세상에 의뢰하기 전에 회사 주식부터 잔뜩 사들이는 의뢰주가 어딨다고!’

타일러는 비록 경영에 대해서 잘 아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회사의 주요 간부로 오래 일해왔다. 덕분에 투자자들이 얼마나 피도 눈물도 없는 존재인지도 잘 안다.

의뢰 전에 회사 지분부터 확보하는 모습을 보면, 엄청나게 깐깐한 의뢰임이 틀림없다.

타일러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고, 그런 속내를 모르는 이희성은 계속 차분하게 이야기를 진행했다.

“내 의뢰는 아주 간단합니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를 증축할 건데, 단계별로 할 겁니다. 그 첫 단계로, 우선 좌석부터 좀 늘릴까 싶은데요.”

“얼마나 늘리기를 희망하십니까?”

“칠천 석 정도면 가장 좋겠지만, 최소 사천 석은 늘려야 합니다. 기한은 다음 시즌 개막 전까지고요.”

‘왜 하필 사천 석이지?’

잠시 고민하던 타일러는, 눈앞의 청년이 선덜랜드 유소년 출신임을 떠올렸다.

선덜랜드의 오랜 라이벌, 뉴캐슬의 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수용인원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보다 삼천 석이 많다.

일단 뉴캐슬보다는 무조건 크게 만들어놓고 시작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사천 석 정도면, 증축 공사 규모로 딱 적당한 사이즈이기도 하다.

그래서 타일러는 오히려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겨우 그 정도 요구를 하기 위해, 리미트리스에서 파퓰러스 주식을 사들였을 리는 없으니까.

“다음 시즌 개막 전까지 최소 사천 석에서 칠천 석··· 일반적인 경기장이라면 무리한 요구라고 말씀드리겠지만,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처음부터 확장이 가능하게 설계된 경기장입니다. 문제없습니다.”

그러자 이희성의 눈이 반짝였다.

“알고 있겠지만, 이미 시즌 중입니다. 따라서 경기 관람에 아무런 차질을 주지 않는 선에서 진행해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저희가 무슨 아마추어도 아니고···.”

“내 기준에서 차질이 없다는 건··· 매치데이 당일, 우리 선수와 팬들은 공사 중인지 아닌지도 몰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타일러는 침을 삼켰다.

“알겠습니다. 각별히 주의하겠습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착공하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이희성이 짧은 한숨을 쉬었다.

“아직 이야기 안 끝났습니다. 이 정도야 그냥 고객들도 흔히 하는 요구겠죠. 겨우 이런 이야기나 하려고 주식까지 샀겠습니까?”

“어, 그러시면···.”

“전에 가 보니까 핫스퍼 스타디움 참 잘 지었더군요. 특히 화장실이 아주 인상적이던데요. 어느 화장실이 붐비는지까지 미리 알 수 있도록 해 놨더라고요.”

“네··· 와이파이 포인트 천팔백 개, 블루투스 비콘 칠백 개를 깔아서 편의시설을 안내하는 한편, 접속 수로 인원을 파악하고 있는데요.”

기계적으로 대답하면서, 타일러는 이희성이 이걸 왜 묻는지를 깨달았다.

“언제까지 설치하면 됩니까?”

다음 시즌 개막 전까지면 일도 아니겠지만, 그보다 짧으면 그것만으로도 꽤 가혹한 일정이 될 것이다.

“크리스마스 전까지요.”

이희성의 요구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안에서 가장 가혹한 일정을 지정했고, 타일러는 속으로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요구사항 중, 마지막 요구만큼 타일러를 당황시킨 항목은 없었다.

“그리고 하나 더. 이번에 증축하는 스탠드 내벽 인테리어로는 벽돌을 써야 합니다.”

* * *

“팀장님, 혹시 그거 보셨어요? 이번 주 구단 신상품요.”

수잔 베일리의 질문에, 마일즈 우드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신상품? 아니, 모르겠는데. 나는 굿즈는 자주 사는 편이 아니라서···.”

“한번 맞춰 보세요! 이번에 뭐가 나왔을 것 같으세요?”

“전혀 모르겠군.”

그러자 수잔이 배시시 웃었다.

“맞추셨으면 오히려 이상했을 거예요. 왜냐면, 이번 주 신상품은 벽돌이거든요.”

“벽돌?’

이건 또 무슨 참신하다 못해 기괴한 신상품인가. 15년째 선덜랜드 팬질 중인 마일즈였지만, 축구단이 벽돌을 판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수잔이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여러분의 이름을 새길 기회! 놓치지 마세요.]

배너 아래에는 이번에 판매된 벽돌은 전부 증축 공사에 쓰이며, 구매자의 이름을 새겨서 스탠드 벽면에 세우겠다는 설명이 담겨 있었다.

마일즈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건··· 안 살 수 없지. 장사 잘하네.”

따지고 보면 일종의 기부나 마찬가지다. 물론 구단주 이희성의 재력을 고려하면 스탠드 증축하는 정도로 기부금을 모집할 리는 없으니, 이번 벽돌 판매는 어디까지나 팬들의 참여에 의의를 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거 왜 구매 버튼이 안 보이나?”

“··· 그새 품절이라는데요.”

마일즈는 시무룩해졌다. 선덜랜드 팬의 성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자신의 이름을 넣을 찬스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으니.

나라 잃은 표정을 한 마일즈를 향해, 수잔이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안심하세요. 혹시나 해서 제가 두 개 샀거든요. 하나는 팀장님 이름 넣어 드릴게요.”

“정말 고맙네! 벽돌값은···.”

“나중에 핫도그로 갚으시면 되겠죠?”

“그 정도로 되겠나? 디너 정도는 사야겠지.”

환하게 웃는 수잔을 바라보며 마일즈는 마주 미소지었다.

그 사이에도 선덜랜드 오피셜 사이트에는 새로운 공지가 계속 올라오는 중이었다.

[올 시즌에 증축하는 스탠드의 이름은 ‘블랙캣츠 스탠드’ 입니다. 서포터 여러분이 보내주신 한결같은 사랑에 보답하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앞으로도 매 시즌, 새로운 스탠드를 증축하겠습니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가, 가장 거대한 경기장이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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