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78화 (78/422)

78화. 영업의 비결 (3)

마일즈는 문득, 며칠 전 브렌든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수잔에게 저녁을 사게 되었다고? 드디어 해냈군!]

블랙캣츠 스탠드에 시공될 벽돌을 수잔이 대신 구매해준 답례라는 이야기에는 잠시 한심하다는 시선을 보냈지만, 잠깐이었다.

[그래도 핫도그 대신 정식 디너라면 자네치고는 아주 잘한 거야··· 그나저나, 여성과의 식사에서 꼭 기억해야 할 규칙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축구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말라는 거겠고, 두 번째 규칙은 뭐지?]

[실수할 것 같으면 1항을 다시 떠올릴 것.]

브렌든은 꼼꼼하게도 ‘두 가지 규칙’ 을 메시지로 보내기까지 했다··· 15분 간격으로.

방금 전에도 메시지가 한 통 와서, 마일즈는 그만 속으로 혀를 차고 말았다.

‘브렌든 이 친구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란 말이지. 그리고 사람이 이런 날 축구 이야기를 안 할 수 있겠냐고.’

그만큼 선덜랜드의 경기력은 참담했다. 느닷없이 주전 센터백을 잃어버린 탓이다.

수잔이 걱정스럽게 속삭였다.

“에디 선수, 혹시 다치기라도 한 걸까요? 골 넣자마자 바로 교체당하는 선수는 처음 봤는데요.”

“그랬겠지··· 다쳤을 거야.”

아마 머리를 심하게 다친 게 틀림없다고 마일즈는 생각했다.

“다행히 선덜랜드의 메디컬 팀은 영국 최고라고 들었어요. 고칠 수 있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대답하면서, 마일즈는 잠시 입맛을 다셨다. 선덜랜드 메디컬 팀 진료과목에 정신병도 들어 있는지 살짝 의심스러웠다.

그만큼 에디의 플레이는 돌발적이었고, 느닷없었으며, 뜬금없기까지 했다.

수잔을 비롯해 최근에 축구를 보기 시작한 팬들이야 시원하게 골을 넣는 모습에 환호했겠지만, 마일즈를 비롯한 골수팬들은 하나같이 쓴웃음을 짓는 중이었다.

감독의 판단은 옳다. 정상적인 감독이라면 저렇게 돌출 행동을 보이는 선수를 빼지 않을 수 없다. 설령 그 선수가 포백라인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주전 센터백일지라도.

물론, 아무리 옳은 판단이었더라도 주전 센터백이 전반 20분만에 이탈해버렸다는 사실까지 바뀌지는 않는다.

이른 시간의 교체 덕분에 로저스 감독의 경기 계획은 완전히 어그러지고 말았고, 이후 선덜랜드는 역습이 특기인 팀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페르난데스의 선방과 톰슨의 분전 덕분에 그나마 실점만은 면했지만···.

졸전이었다. 구단주가 바뀐 이래 처음 보는 졸전.

승점 3점을 챙긴 게 용한 경기를 바라보며, 마일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마일즈의 옆에서, 수잔의 한숨이 합창처럼 울렸다.

* * *

에디에게는 당연하게도 로저스 감독의 헤어드라이어가 퍼부어졌고, 경기가 끝난 다음엔 분석실에 끌려왔다.

샐리가 말을 섞기도 싫다는 듯한 표정으로 안마의자에 몸을 파묻었기에, 에디를 상대하는 건 나와 브라이언의 일이었다.

브라이언이 서툰 솜씨로 화면을 조작해, 오늘 경기를 틀었다.

“이게 네가 오늘 저지른 일이다. 잘 봐.”

주전 센터백을 잃고 휘둘리는 팀의 영상을 보고, 에디가 우울한 목소리를 냈다.

“제가 절 뺀 건 아닌데··· 요.”

에디의 대답에 샐리가 기막히다는 표정을 지었고, 브라이언은 당장에라도 에디를 잡아먹을 기세로 눈을 부라렸다.

“왜 그런 이상한 짓을 했지?”

그러자 샐리가 파묻힌 안마의자 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유니폼을···.”

에디가 황급히 해명했다.

“스티븐이 저보다 인기가 있는 거 같아서 잠깐 화가 났었습니다.”

“스티븐?”

“이적생 동기잖습니까? 에이전트도 똑같고요. 그래서 나름대로 챙겨주려고 했었는데, 알고 보니 스티븐이 인기가 저보다 좋더라고요. 이러면 제가 뭐가 됩니까?”

털어놓으며, 에디는 입술을 살짝 핥았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건 아니었습니다. 각이 보여서 한 거죠. 실제로 버밍엄을 완전히 무너뜨리지 않았습니까?”

“반만 맞는 것 같은데.”

브라이언이 한숨을 쉬며 화면을 조작했다.

“버밍엄 27번은 원래 톰슨을 마크하던 선수야. 너와 톰슨이 자리를 바꿨으니 당연히 널 마크했어야 했는데, 계속 톰슨 앞에 붙어 있었지.”

센터백이 올라올 거라고는 차마 생각을 못 했을 것이다. 오버래핑 센터백을 전술로 삼는 셰필드에서라면 모르지만, 우리는 그런 팀이 아니었으니까.

브라이언의 표정이 엄격해졌다.

“네 킥과 시야는 어지간한 미드필더를 훨씬 뛰어넘는 급이지만, 압박을 벗겨낼 발재간이 있는 건 아니야. 만일 상대 선수가 즉시 톰슨 대신 널 마크했다면 어땠겠어? 그랬으면 네 최선의 플레이는 뭐지?”

“··· 톰슨과 다시 자리를 바꾸는 겁니다.”

“그러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이번엔 결과가 좋았지만, 자칫하면 시간만 까먹을 뻔했다고! 아무리 후방에서 빌드업 잘하면 뭐 해? 시간을 까먹으면 상대도 수비할 준비를 해버리는데.”

그러자 안마의자에서 다시 우울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금이라도 코치님이 시간의 유한성을 중시하기 시작하신 건 기쁘네요.”

“시끄러워, 샐리.”

브라이언이 이를 갈기 시작했고, 나는 그를 슬쩍 제지했다. 에디를 감싸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다만 역할을 분명히 하려는 것이었다.

감독이 헤어드라이어를 퍼부은 날에는, 코칭스태프는 선수를 어르고 달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감독과 코치가 손잡고 끊임없이 헤어드라이어를 퍼부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그러느니 주급 정지를 먹이는 게 훨씬 깔끔하지.

브라이언을 제지한 다음, 에디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너는 있지도 않은 가짜 버릇을 만들어서 써먹을 만큼 영리한 선수야. 그런 네가, 충동적으로 돌출행동을 저질렀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데.”

“······.”

“한 번, 처음 한 번은 무조건 통한다는 걸 알았을 거야. 그렇지?”

에디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침묵은 긍정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나는 부드러운, 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못을 박았다.

“에디. 그런 식으로는 절대로, 영원히, 네가 원하는 걸 얻어낼 수 없을 거야.”

* * *

“자기 유니폼이 안 팔려서 그랬다는데요. 스티븐한테 밀렸다고 발끈해서 저런 거예요.”

에디가 떠나자마자, 샐리가 경기 전에 분석실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정말로 그래서 저지른 일이면 에디는 멍청이죠.”

“네. 그 멍청이가···.”

샐리는 내뱉듯이 말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또라이와 멍청이는 조금 다르거든.

브라이언이 내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브로, 그러고보니 아까··· 저 놈은 절대 원하는 걸 갖지 못할 거라고 했지? 쟤가 원하는 게 대체 뭐길래?”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주장 완장, 혹은 팀의 핵심 선수 자리가 갖고 싶어진 거겠지.”

하부 리그 팀들이 흔히 그렇듯, 우리 또한 리그 원 시절에는 노인정과 유치원 스타일로 운영되던 팀이었다.

페르난데스와 크리그, 톰슨을 비롯한 노장들이 포진했고, 스쿼드의 절반쯤은 잭과 요니, 스티븐, 에디 같은 유망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 이름 있는 선수들은 이미 전성기가 지났잖아. 페르난데스는 은퇴 직전이고, 크리그도 적지 않은 나이고, 톰슨도 마찬가지야.”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브라이언과 샐리를 위해, 친절하게 덧붙여 주기로 했다.

“에디는 지금 시위하는 거야. 지금의 노장들이 떠나고 나면, 팀의 중심이 될 선수는 바로 자기라고. 그래서 톰슨 롤을 맡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 거겠지.”

샐리가 눈을 빛냈다.

“이해했어요. 그래서 5번을 희망했고, 오버래핑 센터백을 무기로 삼는 셰필드에서 데뷔했던 거군요. 셰필드가 강등당한 다음엔 우리에게 옮겨온 거고요. 우리는 역습 축구를 하니까요.”

유일하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브라이언이 볼멘소리를 냈다.

“5번인게 무슨 상관인데?”

“코치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시겠어요?”

“그야 베켄바워지··· 아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 베켄바워. 팀의 주장이자 핵심으로 대우받으며, 팀의 황제로 군림했던 선수다.

브라이언이, 나를 향해 은근한 시선을 보냈다.

“브로, 설마 에디를 카이저처럼 대우해줄 건 아니지?”

“내가 미쳤냐.”

정신병은 고칠 수 있습니다. FC 선덜랜드 제휴 병원, 선덜랜드 로열 병원에 상의하세요.

그리고 에디는···.

“선덜랜드 로열 병원에 보낼까요?”

“브로, 금융 치료는 어떨까?”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에디에게 가장 효과적인 종류의 치료법은 따로 있기에.

그리고 그건 아마, 로저스 감독도 이미 알고 있을 방법이었다.

* * *

분석실을 빠져나온 에디를, 스티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맞이했다.

“에디, 정말로 괜찮겠어? 감독님이 아주 노발대발 하시던데.”

태도만 보면 마치 아마 계약 끝나는 날까지 안 쓸 것 같았다며 염려하는 스티븐을 향해, 에디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였다.

“괜찮아. 대안이 없으니까. 내가 전에 설명해줬지? 네 몸값 0.4에디가 얼마나 비싼 가격인지.”

“그랬··· 지?”

“그때 말했잖아. 나한테 붙은 셀온 옵션은 나를 절대 안 팔겠다는 의지라고. 그렇다면 결국 나를 쓸 수밖에 없어. 가뜩이나 우리는 센터백 뎁스가 두텁지 않으니까···.”

자신있게 말하는 에디를 향해, 스티븐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덧붙였다.

“에디··· 그게 말인데.”

스티븐은 한참을 머뭇거린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나 내일부터 센터백으로 훈련하라는데?”

스티븐의 이야기에, 에디는 그만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 * *

“에디 쟤는, 오빠가 셰필드 상대로 어떻게 이적료를 깎았는지 벌써 까먹은 건가?”

당시의 셰필드는, 스티븐이 에디 대체자라고 착각했기 때문에 협상 주도권을 내주게 되었다.

실제로 착각할만한 선수기도 하고.

우리는 윙포워드로 활용하고 있지만, 스티븐은 원래 풀백이고, 피지컬만 놓고 보면 센터백을 볼 수 있는 신체조건의 소유자다.

실제로 스티븐 같은 타입의 선수가 풀백과 센터백을 오가는 일은 드물지 않다.

“결국 대체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협상력이 달라지는 법이거든··· 이게 협상의 비결이지.”

비록 구단주로서는 여전히 초보겠지만, 투자자로서는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았다. 이런 종류의 줄다리기에서 상대에게 밀릴 일은 없다.

10라운드 프레스턴 원정, 우리는 스티븐을 센터백으로 기용했다. 그리고 에디는 아예 명단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덕분에 SNS는 불타올랐다.

- 혹시 부상인가? 하긴, 부상이 아니면 골 넣은 선수를 갑자기 뺄 리가···.

ㄴ 부상 공고 안 떴어. 버밍엄전에서 멋대로 굴어서 징계 먹는 중이겠지.

ㄴ 에이 설마··· 부상은 아닐 거야.

그동안 우리 선덜랜드에서, 주요 선수가 명단에서 빠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특별히 징계를 받을 만큼 사고를 친 선수도 없었고, 큰 부상을 당하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에 팬들의 반응은 격렬해졌다.

- 아니, 지금 에디 같이 좋은 선수를 뺀다는 게 말이 됨? 모처럼 챔피언십에서도 선두 경쟁 중이잖음?

ㄴ 그래서 더 빼야지. 멋대로 뛰쳐나가는 수비수를 불안해서 어떻게 쓰냐.

ㄴ 전술이었을 수도 있잖음? 멍청하네.

ㄴ 전술이었으면 버밍엄전에서 교체했겠냐, 축알못아.

11라운드 카디프와의 홈 경기에서도, 12라운드 루턴 타운 원정에서도 에디는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에디가 왜 빠졌느냐에서, 언제 돌아오느냐로 바뀌기 시작했다.

- 13라운드에서는 돌아오지 않을까? 상대가 셰필드니까.

셰필드, 에디의 친정 팀이다. 작년 프리미어리그에서 역대급 졸전을 펼친 끝에 강등당한 팀이기도 하다.

워낙에 작년 성적이 심각하다 보니 올 시즌까지 영향을 받을 만도 했으나, 의외로 요즘은 꽤 잘 나가는 중이었다.

특유의 오버래핑 센터백을 내세운 조직적인 전술을 앞세운 셰필드는, 챔피언십에서 선두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경쟁 상대는 우리, 선덜랜드였다.

덕분에 셰필드 팬들이 잔뜩 몰려와서 어그로를 끌기 시작했다.

- 에디가 있던 셰필드 : 19경기 연속 무승. 그럼, 에디가 빠진 셰필드는? 12경기 연속 무패!

ㄴ 이쯤 되면 지난 시즌 말아먹은 게 누구 책임인지 뻔하지 않냐?

ㄴ 고마워요, 선덜랜드!

친정팬의 이런 반응은, 이적한 선수에게 있어서는 최대의 굴욕에 해당한다.

자의식이 강한 에디라면, 더욱 굴욕적일 것이다.

* * *

SNS를 흘끔거리며, 에디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난 시즌, 셰필드가 무너진 게 내 책임이라고? 죽도록 굴러서 그나마 버티게 해준 게 누군데!’

울분이 치밀어, 그만 스마트폰을 내던지고 말았다.

지난 시즌의 에디는 물론 자기 멋대로 뛰긴 했었다. 하지만 당시의 셰필드는 최악이었고, 전술은 부정확했으며, 동료들의 사기는 그야말로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지난 시즌은 정말 부득이한 선택이었다고, 에디는 그렇게 생각했다. 팀의 패배를 막기 위한 필요악이었다고.

그런데도 셰필드의 팀메이트들은 자신을 백안시했고, 보드진은 그를 다루기 힘든 선수로 간주했다.

그래서 팀을 옮겼다. 자신을 써줄 만한 팀을 찾아서.

‘이번에도 난 그저, 팀을 위해서 노력하려던 건데.’

선덜랜드는 머지않아 톰슨을 떠나보내게 될 것이다. 그의 무릎이 안 좋다는 건 팀메이트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그리고 페르난데스 또한 곧 은퇴할 것이다.

선덜랜드는 조만간 수비진의 리더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역습 상황에서 전방에 공을 공급해줄 기점 또한 잃게 된다.

‘그래서 나를 데려온 거잖아? 수비라인의 리더가 되고, 역습의 기점이 될 선수라서.’

계기는 스티븐과의 유니폼 판매량이었지만, 그 일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한 번쯤 보여주려고 생각하고 있던 에디였다.

선덜랜드에는 내가 필요하다고. 앞으로 10년간 팀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가 여기 있다고.

내가 팀을 지키겠다고.

그렇기에, 셰필드와의 경기는 에디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경기였다. 에디를 잃은 셰필드와 에디를 얻은 선덜랜드. 둘 중 어느 팀이 더 강한지 증명할 기회이기에.

그래서 에디는, 조심스럽게 로저스 감독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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