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79화 (79/422)

79화. 영업의 비결 (4)

“무슨 일이지, 에디?”

“헤헤··· 감독님! 지난번 노리치전에서 톰슨 선수가 맹활약하지 않았습니까?”

눈이 마주치자 에디는 붙임성 있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로저스 감독이 빙긋 마주 웃었다.

“그랬지.”

“노리치는 톰슨의 친정팀이죠. 아무래도 노리치 선수들과 경기장의 특성을 잘 알기 때문에 활약할 수 있었던 게 아니겠습니까?”

로저스 감독의 얼굴엔 여전히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계속 말해보라는 듯한 표정에 에디는 용기를 얻었다.

“아시다시피 저도 셰필드에서 데뷔했고, 작년에는 팀의 핵심으로 뛰었습니다. 그쪽 선수들 대부분을 아주 잘 압니다.”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괜히 헤어드라이어만 시원하게 얻어맞고 쫓겨났을 뿐이다.

시무룩하게 사무실을 빠져나온 에디를 향해, 주장 페르난데스가 말을 걸었다.

“혹시 사과는 했나?”

“사과요?”

에디는 물끄러미 페르난데스를 바라보았다.

뭘 사과하라는 거냐고 묻지 않았던 건, 상대가 페르난데스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팀의 주장이고, 월드클래스로 불리던 레전드다. 전성기의 위상을 놓고 따지면 선덜랜드에서 뛴 누구보다 위대한 선수다.

아무리 안하무인인 에디라도, 주장의 중재는 일종의 찬스라는 것까지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즉시 사과드리죠.”

일단 감사부터 표하는 에디를 향해, 페르난데스가 미소를 지었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연애는 해 봤나?”

“아뇨? 저 같은 슈퍼스타가 한 명의 여자에게 묶이는 건 너무 아깝죠. 축구계의 손실이 너무 크지 않겠습니까?”

대답을 들은 페르난데스의 미소가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연애라도 해봤으면 자주 들었을 문장이 있는데···.”

“압니다. 저도 저를 사랑하죠.”

깊은 한숨을 내쉰 페르난데스가, 무시무시한 말을 입에 담았다.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

“어··· 하필 그 대사를 주장님한테 들을 줄은 몰랐네요. 분석관님이나 비서님한테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누구한테 들어도 별로 좋지는 않을 거야. 내 와이프는 아나운서였거든. 꽤 미녀였지.”

농담을 주고받던 페르난데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래서 에디 또한 진지함을 되찾았다.

“앞으로 달려 나간 점,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건 네 잘못이라긴 좀 그래. 나로선 딱히 놀랍지도 않고. 예전 팀에서 하도 많이 경험해봐서 말이지.”

에디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페르난데스가 머물던 팀은 레알 마드리드고, 특히 1기 갈락티코 시절엔 값비싼 공격수들을 잔뜩 사들이기로 악명 높았다.

그러니 수비 진영의 누군가 슬금슬금 올라가 버리는 모습은, 페르난데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것이리라.

“공격하러 올라간 거 자체는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은 그걸 미리 말하지 않은 것··· 허락이 아닌 용서를 구한 거야.”

“죄송합니다.”

순순히 사과하는 에디를 향해, 페르난데스가 단호한 목소리로 못을 박았다.

“미리 말했어야 했어. 네가 톰슨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그랬으면 우린 팀 적으로 톰슨과 너를 스위칭하거나, 혹은 너를 기습적으로 전진시키는 다양한 전술을 시도할 수 있었겠지.”

“명심하겠습니다.”

“어필은 훈련장에서 하는 거다.”

주장의 중재에 에디는 깊은 감사를 표했으며, 곧바로 감독실을 찾아가 다시 사과했다. 앞으로 어필은 훈련장에서 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감독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효과가 영 없지는 않았는지 더 이상 헤어드라이어를 퍼붓지는 않았다.

셰필드 원정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스타팅은 아니었지만, 벤치에는 돌아갈 수 있었다.

에디는 우선 그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 * *

“아마 당분간은 말을 잘 들을 겁니다. 그렇다고 얌전해지지는 않겠지만 고분고분하게 구는 시늉 정도는 하겠지요. 영리한 친구니까요.”

페르난데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우선 그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고분고분하게 구는 시늉이면 괜찮습니다. 고생했습니다.”

“아뇨. 주장이 했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은 진작에 나섰어야 했는데요.”

“이전에는 별 효과가 없었을 겁니다.”

에디가 없는 동안 우리는 3연승을 기록했다. 버밍엄전에서는 전반 20분간 뛰었으니 어쩌면 2.5연승일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전부 이겼다.

즉, 선덜랜드는 에디 없이도 이겨나갈 수 있는 팀임을 보여준 것이다.

다행한 일이었다. 자기 없이 못 이긴다는 모양새가 되면 에디가 얼마나 뻣뻣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니까.

그때 희주가 마실 것을 내왔다. 눈웃음으로 슬쩍 희주에게 감사를 표한 페르난데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하지만, 에디에게 그날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알려주지는 못했습니다. 자기도 팀의 일부이며,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어디에도 없음을 알려주지도 못했고요.”

“네. 그런 건 말로는 전해지지 않죠. 아마 시간이 걸릴 겁니다. 페르난데스 선수도 경험하셨을 텐데요.”

그러자 페르난데스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세계 최고의 명문 팀의 주장이자 갈락티코의 멤버였던 선수이니, 팀보다 자기가 위대하다고 착각하는 스타는 수도 없이 만나봤을 것이다. 어쩌면 페르난데스 자신조차 어렸을 때는 그렇게 착각했을 수도 있고.

“보통 다른 팀들은, 그런 버릇없는 선수는 2군에 박아두는 편입니다. 길들여질 때까지요.”

“압니다. 사실 로저스 감독님도 그러자고 했습니다. 내가 반대했지만요.”

그러자 페르난데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구단주님이 반대하셨다고요? 의외군요. 구단주님 정도 되는 분이 이적료나 주급이 아까우실 리는 없는데···.”

옆에서 희주가 냉큼 끼어들었다.

“팔백만 파운드요? 에이, 우리 오빠가 그거 버는 데 몇 분이나 걸린다고요.”

아니, 아무리 투자의 신이라도 분 단위는 아닌데··· 아닌가?

뭐, 어차피 썩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다. 페르난데스 역시 내 수입에는 그다지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다른 쪽이었다.

“역시, 에디가 팀의 미래이기 때문입니까?”

페르난데스의 질문에 나는 문득 에디의 얼굴을 떠올렸다. 까불거리는 입매,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잘났음을 확신하는 눈동자, 그 위의 이마에 드러난 숫자 300까지.

에디의 재능이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만으로 선수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재능을 온전히 꽃피우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과 헌신이 뒤따라야 한다고 믿기에.

팀에 헌신하지 않는 선수에게 팀의 미래를 맡길 생각은 없다. 에디의 가치가 300이 아니라, 900이었어도 마찬가지다.

나는 대답 대신 눈 앞에 놓인 컵을 홀짝였다.

“우리 오빠는, 선수를 뛰지 못하게 하는 방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아 참, 구단주님은 그런 분이셨죠.”

이대로라면 희주 녀석이 멋대로 결론을 내려버릴 것 같아서 덧붙였다.

“에디는 1군에 남겨두는 게 훨씬 많이 배울 거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우리 1군에는 에디의 롤모델이 되어 줄 사람이 많다.

선덜랜드에 모든 걸 바친 스태프가 있고, 진짜 월드클래스의 품격을 갖춘 골키퍼와 누구보다 프로페셔널한 미드필더가 있다.

아직 어리지만, 누구보다 팀을 사랑하는 유스 출신 듀오가 있고, 반짝임은 없지만 그 대신 우직하게 성장해 나가는 유망주가 있다.

그리고···.

[감독은, 선수들의 인생을 책임지는 자리가 아니다. 경기의 승패를 책임지는 자리지.]

인생을 책임져줄 수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그렇기에 더욱 선수들을 아끼는 ‘교관’ 로저스 감독이.

사흘 후, 우리는 셰필드로 향했다.

* * *

챔피언십 13라운드, 셰필드 대 선덜랜드.

챔피언십의 1위 자리를 다투는 두 팀의 대결을 맞아, 셰필드의 홈 브라몰 레인 곳곳에 현수막이 걸렸다.

[우리는 에디를 보고 싶다]

“에디도 꽤 사랑받는 선수였나봐? 저런 대접은 톰슨도 못 받은 건데.”

눈을 동그랗게 뜨는 희주를 향해,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 저거 도발인데.”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나오라는 뜻이다. 스타팅에 들지 못해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하는 에디로서는 더욱 굴욕적인 취급이었다.

설명을 들은 희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디 난리 났겠네. 자기 내보내 달라고 조르지 않을까?”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을 거야.”

페르난데스가 힌트까지 준 상태다. 어필은 훈련장에서 하라고.

경기에 대한 의욕을 보이는 것까지는 좋지만, 자칫 선을 넘으면 정말로 2군에 처박히는 수가 있다.

예상대로 에디는 벤치에서 얌전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겠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조용하고 차분했다.

잠시 후,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둘 다 쓰리백이네?”

“맞아. 셰필드는 원래 쓰리백을 쓰니까.”

셰필드가 자랑하는 오버래핑 센터백은, 쓰리백의 양쪽 센터백이 마치 좌우 풀백처럼 측면으로 전진하는 전술이다.

프리미어리그 승격 첫 해, 셰필드를 9위까지 끌어올리는 기적을 이끌어낸 전술.

비록 지난 시즌에는 밑천이 드러났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챔피언십에서는 12경기 무패를 달리며 변함없는 강력함을 과시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원래 포백을 선호하던 우리 선덜랜드는, 최근 에디를 선발에서 빼면서 쓰리백으로 전환한 상태였다.

에디를 대체하기 위해 스티븐을 투입하고, 스티븐의 부족한 판단력을 보충하기 위해 톰슨을 센터백 자리로 끌어내린 것이다.

브라이언과 샐리가 고심 끝에 준비한 맞춤 전술이었다.

덕분에 경기 초반, 두 팀은 팽팽하게 맞섰다.

셰필드의 센터백들이 수시로 측면을 파고들며 우리 수비를 교란했고, 윙백들은 안으로 파고들며 빈틈을 만들어내려 시도했다.

한때 1부 리그에서도 돌풍을 일으켰던 예리한 공세에, 선덜랜드는 필사적으로 맞서며 저항했다.

페르난데스가 목소리를 높여 수비라인을 통솔했고, 톰슨이 적재적소를 직접 틀어막았다.

스티븐 역시 육탄 방어를 불사하며 힘을 보탰다.

눈을 떼기 어려운 일진일퇴의 공방.

그런데도 자꾸만 시선이 벤치로 향하고 말았다.

지난 시즌 오버래핑 센터백의 중심이었고, 올 시즌 선덜랜드 포백라인의 핵심이던 선수에게로.

* * *

자신이 없는 풍경을, 에디 레이놀드는 묵묵히 바라보는 중이었다.

‘배셤은 아직도 올라오는 타이밍이 뻔하네. 이런 식이면 금방 뺏을 수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곧바로 요니가 배셤을 가로막았다.

아무리 전술적으로 다듬으려 하더라도, 센터백의 발재간에는 한계가 있다. 3선 미드필더 출신인 요니를 따돌릴 수 있는 센터백은 극히 드물다.

측면으로 빠져나오려던 배셤은 곧 붙잡히고 말았다.

‘요나스를 따돌리는 건, 나라도 자신 없을 정도니까.’

그 다음 전개는 불을 보듯 뻔했다. 요니가 공을 빼앗을 것이고, 셰필드는 역으로 요니에게 압박을 가해 시간을 벌 것이다.

지난 1년간 에디 자신이 질리도록 수행했던 전술이다.

모를 리는 없다.

‘··· 내가 훨씬 나아. 모든 면에서.’

오버래핑하는 타이밍은 물론, 시야의 차이도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 에디는, 자신이라면 공을 빼앗기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전에 다른 선수에게 공을 패스했을 테니까.

남다른 자의식을 제쳐두고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에디는 배셤보다, 셰필드 수비진의 어느 누구보다 킥이 뛰어난 선수다.

‘그런데, 어째서 셰필드는 이렇게나 단단한 거지?’

작년, 19연속 무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던 형편없던 팀은, 올 시즌 챔피언십에서 12라운드 무패를 달리는 최강의 팀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선덜랜드는.

‘버티지 못할 줄 알았는데.’

자기가 없다고 해서 실점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페르난데스와 톰슨이 있는 선덜랜드 상대로 점수를 뽑아낼 수 있는 팀은 챔피언십에서는 극히 드물고, 적어도 프리미어리그까지는 올라가야 만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에디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선덜랜드는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했으니까.

공수의 기점이 되는 톰슨을 수비라인까지 끌어내리고, 요즘 윙포워드로 활약하는 스티븐까지 수비수로 전환시켰다. 팀의 공격력이 반토막이 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3연승.

그리고 오늘,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던 셰필드 상대로도 원정에서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

가슴 속이 부글거려서, 에디는 그만 피치에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우리는 에디를 보고 싶다]

브라몰 레인의 구석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홈 팬들이 에디를 조롱하기 위해 올린 그 현수막이.

분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에디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에디의 시선에, 다른 플래카드가 보였다.

[우리는 에디를 기다린다]

‘아주 꼼꼼하게도 붙여 놨네. 원정 스탠드까지 저런 걸··· 원정 스탠드?’

눈이 마주치자, 세차게 플래카드를 흔드는 선덜랜드 서포터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에디가 있던 셰필드 : 19경기 무승? / 에디가 있던 선덜랜드? : 9경기 무패!]

[우리는 우리의 5번을 기다린다]

순간 에디는, 눈 앞이 흐려졌다고 생각했다. 그런 에디의 어깨 위에 누군가의 손이 올라왔다.

거칠지만 따뜻한 손이.

“어떤가, 후반에 뛸 준비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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