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80화 (80/422)

80화. 영업의 비결 (5)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에디가 피치 위에 모습을 드러냈고, 브라몰 레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기다렸다! 에디!”

“보고 싶었다니까?”

원정 팬과 홈 팬이 똑같은 선수를 목 놓아 환영하는 장면은 축구계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편이고, 이적해온 선수가 친정팀의 레전드 중의 레전드인 경우에만 극히 드물게 볼 수 있는 모습에 해당한다.

우리 팀이라면, 아마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원정에서 페르난데스가 교체 투입될 경우에 한해서나 볼 수 있는 풍경.

그 희귀한 장면이 지금 브라몰 레인에서 펼쳐지려는 참이었다.

[우리는 에디가 보고 싶다]

[우리는 에디를 기다린다]

비슷한 문장, 하지만 속에 담긴 의미는 서로 다른 플래카드가 홈, 원정 스탠드에서 정신없이 펄럭이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무심코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선수는, 아마 선덜랜드에서는 에디뿐이겠지.

정작 에디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머리 위로 손을 올리며 들어왔는데, 심지어 두 손으론 박수를 치는 중이었다.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기를 요구하는 동작에, 관중석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희주도 옆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쟤 배짱은 진짜 좋네.”

“배짱만큼 경기력도 좋았으면 좋겠는데.”

에디의 출전으로, 선덜랜드는 원래의 포메이션을 되찾았다. 스티븐은 라이트윙으로 올라갔고, 톰슨은 3선 미드필더로 복귀했다.

4-4-2. 혹자는 4-4-1-1이라고 부를 형태. 두 줄 수비와 역습을 주 무기로 삼는 우리의 기본 전술이다.

급조한 쓰리백에서 벗어난 우리는 예리한 반격을 펼쳤고, 그만큼 셰필드의 공세도 거세졌다.

자연히 경기 또한 격렬해졌다. 비록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거의 골이나 마찬가지인 위력적인 공세를 주고받았다.

후반 45분 내내, 서로가 서로를 번갈아 두들기는 형태로 흘러간 게임의 흐름은, 경기 종료 직전에서야 움직였다.

크리그의 공을 따낸 셰필드 센터백, 오코넬이 무섭게 전방으로 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쟤는! 지가 무슨 에디야?”

“··· 저쪽이 원조야.”

심지어 에디가 지난번에 선보인 돌발행동과 달리, 오코넬의 전진은 팀 차원의 전술이다.

오코넬 본인은 사이드라인 옆을 질주하고, 사이드백은 안으로 파고들며 공간을 만들며, 센터백이 빠져나간 공백은 미드필더가 메우는 체계적인 움직임.

지금의 셰필드가 얼마나 단단한지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전진한 오코넬을 가로막은 선수는 에디였다.

승격 첫해, 셰필드 돌풍의 핵심이던 원조 센터백 오코넬과, 주전의 부상을 메꾸며, 침몰하던 셰필드를 혼자 지탱하던 신예 에디의 맞대결.

셰필드가 자랑하던 두 센터백의 충돌에, 서포터들이 아낌없는 환호를 퍼부었다.

* * *

오코넬이, 에디의 ‘버릇’ 을 눈치챈 것은 지난 시즌이 거의 끝나갈 무렵의 일이었다.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당장 다음 시즌부터 엄청 후벼파일텐데.]

오코넬의 지적에, 코칭스태프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내버려 둬. 말을 해도 못 알아들을 놈이니까.]

그만큼 당시의 에디는 안하무인이었다. 개인의 기량은 뛰어나지만, 팀 플레이를 생각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동료들의 조언을 들을 선수는 더더욱 아니다. 코칭스태프의 지시도 안 듣는 선수였으니.

‘선덜랜드에 가서 좀 나아졌나 싶었는데···.’

버밍엄전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면, 에디라는 선수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음은 명백했다. 느닷없는 질주, 당황하는 팀원들, 그리고 즉각적인 교체까지.

에디는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의 약점에 대해서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저런 선수에게는 조언해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며, 설령 조언을 했더라도 들을 마음이 없었을 테니까.

자신을 가로막는 에디와 대치하며, 오코넬이 슬쩍 물었다.

“좋은 거 알려줄까?”

“나한테 조언할 실력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까불거리는 에디를 향해, 오코넬 역시 빙긋거리는 미소로 답했다.

“글쎄? 너 정도는 수비수인 나도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자 에디가 히죽 웃었다.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듯한 웃음이었다.

동시에 에디의 오른발에 힘이 들어갔다.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하기 전, 에디가 늘 하는 습관이었다. 덕분에 오코넬은, 에디가 언제 태클할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태클 기술을 가졌더라도, 타이밍을 읽히면 무용지물이지.’

곧 날아들 태클을 피할 준비를 마치며, 오코넬은 에디를 다시 흘끗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에디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히죽거리는 에디의 얼굴은, 오코넬의 예상보다 조금 가까웠고, 훨씬 높았다.

‘높다고?’

높았다. 슬라이딩 태클 동작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오코넬은 그제야, 에디가 여전히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슬라이딩 태클은 오지 않았고, 에디는 어느새 팔을 내밀면 닿을 거리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망할 놈··· 일부러 가짜 버릇을 숨기고 있었다고? 팀메이트에게!?”

“피차일반 아닌가? 알려주지 않았던 건.”

허를 찔린 오코넬은 간단하게 공을 빼앗기고 말았다. 오코넬의 귓가에 에디의 자조 섞인 목소리가 울렸다.

“그동안은 편했지. 굳이 열심히 뛸 필요는 없었어. 우리 편도, 상대팀도 조종하면 그만이었으니까.”

“조종했다고?”

“그런데, 오늘은 좀 곤란해. 축구를 해야 하거든. 내 발로, 내 심장으로··· 날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자신을 스쳐 지나는 에디를 바라보며, 오코넬은 어째서 에디가 굳이 서서 공을 빼앗았는지를 깨달았다.

이윽고 선덜랜드의 5번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버밍엄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혹은 지난 시즌 셰필드에서 늘 보여준 모습처럼.

유일한 차이점은, 팀원의 반응이었다.

“에디가 올라간다! 받쳐 줘, 톰슨!”

“오케이, 캡틴!”

매섭게 몰아치는 선덜랜드 특유의 공세. 그 열기의 한가운데에서, 에디가 다이나믹한 동작으로 공을 걷어찼다.

필드 오른쪽 전방. 스티븐이 기다리는 쪽으로.

* * *

날아드는 공을 바라보며, 스티븐은 문득 분석실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샐리 분석관이 보기 드물게 상냥한 목소리를 내던 날이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에디가 너한테 공을 보낼 거야. 그러면···.]

[알겠습니다. 그러면 머리로 따내라는 거죠? 제 머리는, 공중볼 딸 때나 쓸모가 있는 거니까요.]

자신 있는 스티븐의 대답에, 샐리가 얼굴을 찌푸렸다. 옆에서 에디도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긴, 에디는 뇌세포 건강 때문에 공중볼 경합을 싫어하는 편이었다.

[스티비, 제발 생각을 좀 해 봐. 나는 센터백이야. 그러니 내가 보내는 패스는 필연적으로 전진 패스지?]

[그렇··· 지?]

[뒤에서 날아오는 패스를 헤더로 꽂아 넣을 방법이 어딨겠어.]

[어, 그러네.]

[데뷔전에서 보여준 바이시클 킥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스티븐은 곧바로 대답했다. 바이시클 킥은 못 한다고. 자신 없다고.

샐리가 웃었다.

[네가 할 플레이는 아주 간단해. 미리 위치를 잡고, 수비를 등진 다음, 가슴으로 받아내는 거야.]

[다음은요?]

만일 다이렉트 터닝 발리슛 같은 동작을 요구한다면, 못 하겠다고 발뺌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샐리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게 다야.]

그래서 스티븐은 샐리의 요구를 충실히 지키기로 했다. 빠른 발을 살려 위치를 선점하고, 거구를 이용해 수비를 등졌다. 그리고 가슴으로 공을 받아냈다.

비록 가슴 트래핑은 그의 특기 분야가 아니었고, 그래서 공은 볼썽사납게 튀어 나갔지만, 스티븐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축구는 열한 명 대 열한 명의 싸움이지. 그러니, 각자 자기 역할만 확실히 해 주면.]

저 멀리 바라보이는 선덜랜드 진영 쪽에서 에디가 미소짓는 모습이 보였기에.

흘러나간 공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기에.

[그 이후의 플레이는, 팀원이 메워 줄 거야.]

누구보다 빨리 공 앞에 도착한 선수는 선덜랜드의 19번, 요나스 뮐러였다.

* * *

오코넬의 오버래핑으로 시작된 플레이는, 채 10초도 걸리지 않아 우리 선덜랜드의 역습으로 바뀌었다.

하프라인 근처까지 달려 나온 에디의 판단이 완벽했다.

자신을 미끼삼아 셰필드 미드필더의 수비 복귀를 늦췄고, 확실한 롱 패스를 전달했으며, 그 와중에 하프라인을 넘어가지도 않았다.

이번 역습이 실패하더라도 셰필드에게 틈을 내주지는 않을 상황이었다.

“스티븐에게 패스하는 줄 알았는데!”

“자주들 쓰는 방법이야.”

수비를 등지고 공을 따낸 다음, 뒤에서 침투하는 아군에게 되돌려주는 방식, 우리 말고도 꽤 많은 팀이 애용하는 방식이다.

비록 에디의 킥은 톰슨처럼 딱 빈 공간에 떨어지는 소름 돋는 정밀함까지는 없었지만, 스티븐과 요니의 특성을 완벽하게 이해한 패스였다.

요니는 빈 공간에 떨어지는 패스를 가장 먼저 선점할 수는 있지만, 수비와의 경합을 이겨내지는 못한다. 요니는 기본적으로 체격이 작은 선수이기에.

그래도 상관 없다. 우리 전방에는 요니 대신 공을 따내줄 선수가 존재하니까.

그 다음은 요니의 독무대였다.

어느새 잭이 요니의 곁까지 바짝 다가간 상태였고, 요니는 멋들어진 이대일 패스를 주고받으며 잭과의 찰떡 호흡을 과시했다.

요니는 그렇게 셰필드 진영에 침투해 들어갔다. 오코넬이 아직 복귀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셰필드의 수비진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We do what we want. We do what we want.

셰필드 팬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었고, 어느새 브라몰 레인은 선덜랜드 원정팬의 열광적인 함성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셰필드 수비를 흔든 요니가, 크리그에게 결정적인 패스를 건넸다.

We are Sunderland. Say we are Sunderland.

그 함성 속에서 크리그의 오른발이 공을 걷어찼고, 셰필드 수비진이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비명, 탄식, 그리고 함성이 교차하는 가운데, 허공에 떠오른 공이 크로스바 위를 넘었다.

선덜랜드의 코너킥이었다.

동시에 심판은, 인저리타임 3분을 알리는 팻말을 들어 올렸다.

어쩌면 오늘 경기의 마지막 장면이 될 가능성이 높은 플레이.

“올라가! 전부 올라가!”

페르난데스의 독려에, 톰슨은 물론 에디까지 전부 세트피스 공격에 가담했다.

잠시 후, 키커 요니가 코너 플래그 앞에 섰다.

“오빠, 마크가 좀 이상하지 않아?”

희주의 말처럼, 셰필드의 세트피스 방어는 통상과 조금 달랐는데, 구체적으로는 센터백의 배치가 퍽 특수했다.

보통 세트피스 상황에서, 센터백은 상대 센터백을 마크하는 경우가 흔하다. 공중전에서 가장 강력한 상대는 아무래도 키 크고 덩치 큰 센터백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셰필드는 에디에게 미드필더를 붙였고, 오히려 센터백들은 톰슨과 스티븐을 마크했다.

“대놓고 무시하는 걸까?”

“어쩌면 나름대로 예리한 판단일지도 모르지. 에디의 커리어에서, 세트피스 득점은 단 한 점도 없으니까.”

에디가 셰필드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셰필드 역시 에디에 대해 잘 아는 팀이다.

“공중볼 쟁탈에 약한 편이야?”

“그렇지는 않아. 센터백치고 그다지 크지 않지만 경합 자체는 능숙하게 하거든.”

영리한 선수들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에디 역시 위치선정에는 무척 뛰어난 편이다. 게다가 점프력도 무척 출중하다.

다만, 에디는 세트피스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는 선수였다. 헤더 경합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수비 상황에서는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지만, 공격 상황에서는 나몰라라 하는 타입이었다.

언젠가 샐리에게 전해 들은 적이 있다. 에디는 자기 뇌세포 죽는 게 싫어서, 공에 머리 갖다 대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고.

조금은 바뀌었을까?

허리춤에 손을 얹은 요니가 반대쪽 손을 들어 올려 신호를 보냈다.

잠시 후 요니가 공을 높고 길게 올렸다.

중부 잉글랜드의 하늘, 매일같이 올려다보던 북동부의 하늘보다 조금 말갛고 연푸른 풍경 사이로, 희고 검은 공이 둥실 떠올랐다.

“마크! 6번 확인해!”

“26번 체크!”

셰필드 선수들의 외침에, 선덜랜드의 5번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 에디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마크를 따돌리며, 에디는 자유롭게 뛰어올랐다. 마크하는 선수보다 머리 하나쯤 더 높은 위치로. 마치 날개라도 달린 것처럼.

잠시 후, 숫자 300이 선명한 이마가 공을 내려찍었다.

골 네트가 흔들린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넣었어!?”

희주의 비명 같은 환호에, 삼천 명 원정 팬의 목소리가 덮였다.

Sunderland 'til I die. I'm Sunderland 'til I die.

[셰필드 0 - 1 선덜랜드]

라스트 미닛 골, 결승골이다.

극적인 결승골을 성공시킨 에디가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관중석 쪽으로.

“자, 잠깐··· 설마?”

친정 팀 상대로 세레머니를 하지 않는 것은 축구계의 오랜 불문율이지만, 세상에는 그런 불문율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 선수들이 있다.

전설에 남은 아데바요르의 역주행 세레머니 같은.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셰필드 팬들이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고, 페르난데스와 톰슨의 지시에 따라 잭과 요니가 에디를 뜯어말리려 달렸다.

에디가 내딛는 매 걸음마다 셰필드 팬들의 야유가 커졌고, 기세 또한 사나워졌다. 하다못해 물병이라도 내던지려는 듯 주섬주섬 주위를 뒤지는 팬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 열기의 정점 속에서, 에디는 그대로 셰필드 팬들을 스쳐 지났다.

“어?”

물건을 내던지려던 셰필드 팬들의 손길이 뚝 하고 멈췄고, 에디는 원정 스탠드 앞에서 멈춰섰다.

세레머니는 하지 않았다. 그저 원정 스탠드 앞에서 플래카드를 묵묵히 올려다보기만 했을 뿐.

[우리는 에디를 기다린다]

실룩거리는 입꼬리를 억누르며 한참동안 원정 스탠드를 바라보던 에디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뒤돌아선 등에 마킹이 선명히 보였다. No 5. 레이놀드.

[우리는 우리의 5번을 기다린다]

이제는 선덜랜드의 5번 유니폼을 걸친 젊은 센터백을 향해, 원정 팬의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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