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81화 (81/422)

81화. 선덜랜드를 위한 하나 (1)

<11명이 함께 잘못된 전술을 하는 것이 각 선수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보다 낫다. - 위르겐 클롭>

경기 후, 믹스드 존의 주인공은 당연히 에디였다.

- 13라운드, 선덜랜드가 셰필드를 따돌리며 챔피언십 선두 자리를 굳혔습니다! 승리의 주역, 결승 골의 주인공 에디 선수를 모셨습니다. 에디 선수, 복장이 무척 독특한데요?

“아, 이거요?”

에디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티셔츠를 가리켰다. 가슴팍에는 ‘Miss me?’ 가 선명했다.

“사실은 언더레이어로 입고 나갔었죠. 골 넣으면 상의 벗을까 싶어서요. 선덜랜드 팬들은 물론, 셰필드 팬들도 저를 너무 보고 싶어 하셔서.”

- 그런데 상의를 벗지는 않으셨는데요.

“네, 생각해보니 브라몰 파크는 저한테는 제 2의 고향 아니겠습니까? 유니폼 탈의도 일종의 세레머니라, 홈 팬들에게 실례가 될 것 같더군요.”

거짓말이다. 그보다는 감독의 눈치를 살핀 거겠지. 징계 후 첫 복귀전에서 괜히 유니폼 벗다가 카드라도 먹으면 정말로 곤란해졌을 테니까.

만일 그랬으면 로저스 감독은 에디를 절대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에디의 속내나 우리 팀의 내밀한 사정까지 알 리 없는 기자들은, 웃으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 오늘 득점은 여러모로 특별한 골이었습니다. 친정팀 상대로 득점하셨죠? 게다가 세트피스 득점은 커리어에서 처음이고 한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 그랬나요? 득점에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 몰랐습니다. 누가 골을 넣었는지, 그런 건 팀의 승리에 비하면 조금도 중요하지 않거든요.”

입에 침이라도 좀 바르지.

기자들은 깊은 감동을 받은 모양이지만, 나를 비롯한 선덜랜드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표정 관리를 위해 노력했다.

- 버밍엄전에서 갑자기 교체된 이후, 지난 두 경기동안 명단에서 제외되었는데요. 이유가 있었나요?

“선발 명단은 전적으로 감독님의 결정이며, 저를 비롯한 선수단 전원은 감독님의 판단을 존중하고 지지합니다.”

- 세간에는 감독과의 불화설이 나오는데요.

“불화요? 그런 거 없습니다. 저는 그저 감독님이 뛰라시면 뛰고 쉬라시면 쉽니다. 저는 타고난 팀 플레이어거든요.”

잠시 입술을 핥던 에디는, 다음 멘트를 끝으로 믹스드 존을 빠져나왔다.

“저를 기다려주신 모.든.분.들.께 오늘의 승리를 바치고 싶습니다.”

에디의 마지막 멘트에 셰필드 팬들은 격분했고, 선덜랜드 팬들은 환호했다.

- 에디 저거 싸가지 보소. 하나도 안 변했네.

ㄴ 에디가 안 변했다고? 겁나 잘하던데? 그럼 에디 데리고 말아먹은 작년 셰필드는 얼마나 개판이었단 소리임?

ㄴ 우리 작년에 개판인건 맞는데, 에디 저새끼 때문에 개판된 거임.

ㄴ 우리팀 와서는 겁나 잘하는데? 셰필드가 못 써먹은 거 아님?

- 에디가 겨우 팔백만 파운드라고? 고마워요 셰필드!

ㄴ 에디 팔백만 파운드면 솔직히 선덜랜드도 양심은 없네. 완전 강도짓한거지.

ㄴ 선덜랜드 (X) / 이희성 (O)

기사에 달린 댓글을 확인하던 희주가 발끈했다.

“아니 우리 오빠 양심이 어디가 어때서!”

살다 살다 여동생이 다 편들어주는 걸 보니, 조만간 전 세계적 흉작이 닥칠 것 같다. 콩 선물이라도 투자해 두는 게 좋으려나··· 해가 서쪽에서 뜨면 농사 망하는 거 맞지?

“원래 투자자라는 직업이 그래. 조금이라도 비싸게 샀다 싶으면 호구 취급당하고, 싸게 사면 양심 없단 소리를 듣지.”

“그럼 정가에 사들이면?”

나는 잠시 입술을 핥은 다음 대답했다.

“사람 몸값에 정가가 존재하면 투자자라는 직업이 왜 필요하겠니.”

물론 정가는 존재한다. 내 눈에만 보여서 그렇지. 무릎 깨먹고 은퇴한 전직 유소년 축구선수를 투자의 신으로 만들어준 비결이다.

다행히 희주는 납득했고, 깊게 추궁하진 않았다.

“그건 그렇네.”

양심이 욱신거리는 기분을 억누르며, 슬쩍 말을 돌렸다.

“다른 반응은 없고?”

그러자 희주가 빙긋 웃었다.

“주로 우리 선덜랜드 팬들 같긴 한데, 에디의 변모가 기대된대.”

그건 나도 기대되는 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에디의 성격 그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에디는 여전히 까불거렸고, 어떻게 하면 자기가 더 튈 수 있는지, 팀에서 어떻게 더 영향력을 확보할지 궁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다만, 영향력을 획득하려는 방법 자체는 분명히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오죽하면 브라이언이 호평했을 정도다.

“에디? 요즘은 괜찮아. 궂은 일도 서슴없이 하고··· 전에는 피하던 공중볼 경합도 엄청 적극적으로 하더라.”

에디에 대한 호평에, 샐리도 한 마디를 보탰다.

“요즘 퍽 말이 많아졌어요. 예전엔 주로 스티븐하고만 이야기했는데, 요즘엔 잭이나 요니와도 자주 토론하고 그러더라고요.”

“잭은 워낙 사교적이라 그렇다 치고, 요니와도 자주 어울립니까? 의외군요.”

“처음엔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는데, 요즘은 의외로 죽이 잘 맞는 모양이더라고요. 지금도 분석실을 점거 중이에요··· 한번 보시겠어요?”

그래서 브라이언과 샐리가 사이좋게 구단주실로 밀려난 거였군. 고개를 끄덕이자 샐리는 곧바로 우리를 분석실로 안내했다.

마침 분석실엔 스티븐과 에디, 잭과 요니가 모두 모여 있던 참이었다.

에디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패스할 선수를 어떻게 정하냐고? 간단한데··· 내 경우는 카트 테스트를 하는 편이지.”

“카트 테스트?”

생소한 용어에 선수들은 물론, 지켜보던 브라이언과 샐리마저 호기심을 나타냈다. 무리도 아니다. 나도 궁금하니까.

에디가 히죽거렸다.

“자, 상상해 봐. 우리가 다 같이 카트를 타러 갔어. 근데 스티비, 네 카트가 고장났어! 브레이크가 듣지 않아. 앞에는 잭과 요니가 있어.”

스티븐은 조마조마한 표정이었지만, 잭과 요니는 곧바로 김샜다는 반응을 보였다.

“··· 트롤리 딜레마라고 부르지 않나?”

“시끄러워, 잭··· 축구에선 무조건 카트여야 해.”

하긴, 실제로 크라우치가 카윗 쪽으로 핸들을 꺾은 적이 있었다. 알론소는 카트로 밀어버리긴 너무 소중하다는 이유로.

디테일을 중시하는 에디다운 집착이었다.

“아무튼 스티비? 생각해 봐. 핸들을 누구 쪽으로 틀어야 하지?”

“어, 그 상황이면···.”

“오케이.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는 없어. 그저 머릿속으로 한번 쭉 생각해보면 충분해. 미리 해두면 경기 중 누구한테 공을 넘겨야 할지 분명히 판단할 수 있을 거야.”

스티븐은 큰 감명을 받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잭과 요니의 반응은 신통찮았다. 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요니는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나라면 무조건 에디 네 쪽으로 꺾을 텐데.”

“오, 어리석은 요나스. 그건 불가능해. 세계의 법칙 때문이지··· 너는 신을 해칠 수 있나?”

밖에서 지켜보던 나는 그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친한 거 맞습니까?”

“의외로 친하던데요.”

하긴, 에디도 요니도 둘 다 영리한 선수들이다.

서로 다른 축구관을 가지는 동안에는 싸우기도 했겠지만, 견해 차이를 좁힐 수만 있으면 극적으로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둘 다 축잘알이라 이야기 자체는 잘 통할 테니까.

요즘 들어 브라이언과 샐리가 그다지 투닥거리지 않는 것처럼.

“브로, 뭔가 오해하는 모양인데··· 나는 그냥 포기한 거야. 사람이 축알못을 어떻게 설득하겠어?”

“어머, 올해 들어 처음으로 코치님과 의견이 맞는 모양인데요.”

··· 둘 다 축잘알이면 이야기가 잘 통할 것이다. 요니와 에디처럼.

아무튼, 에디가 팀에 녹아들려고 노력한다는 것쯤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덕분에 선덜랜드는 정말로 강력해졌고, 챔피언십에서는 무패를 질주했다. 그리고 EFL컵 3라운드에서는 홈에서 울브스를 잡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언론에서는 그야말로 매일같이 우리를 찬양하는 중이었다.

[최근 10년간 가장 강력한 선덜랜드, 무패 질주!]

[여섯 번째 챔피언십 트로피를 들어올릴 것인가?]

[로저스호, EFL컵 ‘순항’. 갖지 못한 트로피를 향한 전속전진!]

그래서 요즘은 경기 보는 맛이 난다. 우리 경기가 있는 날마다 정말로 행복하다고 느낄 정도로.

하지만 구단주의 일은 대부분 경기가 없는 날 이루어진다.

풋볼 스퀘어 개선 프로젝트도 그런 업무 중 하나였다.

* * *

계기는 CS팀장 린다의 보고였다.

“표 구하기 힘들다는 민원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하긴, 경기력이 좋을수록 티켓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지금의 선덜랜드는 내가 부임한 이래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니, 경기를 직관하려는 팬들도 늘어난 거겠지.

경기를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의 니즈에는 최대한 부응하려 노력하고 있다. 경기장 옆에는 풋볼 스퀘어를 운영 중이고, 근처의 축구 펍도 널리 제휴하고 있다.

선덜랜드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덜랜드의 축구를 화면으로나마 볼 수 있게 바꿔나가는 중이다. 특히 풋볼 스퀘어는 경기장 관중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응원의 열기까지 느낄 수 있다.

그러고도 모자라 증축을 선언한 상태니까, 팬들의 아우성은 그만큼 선덜랜드 경기를 보고 싶다는 애정 어린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린다의 보고를 듣고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구단주님··· 그게···.”

머뭇거리는 린다의 표정을 보기 전까지는.

“간혹 빈 좌석이 보이는데도 표를 구할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팬들의 민원이 접수된 것입니다.”

“우리 경기는 매일 만석 아니었습니까?”

“네, 거의 만석이지만··· 소수의 빈 좌석이 분명히 있습니다.”

티켓은 전석 매진되었고, 경기장을 눈으로 대충 보기엔 꽉꽉 들어찬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빈 좌석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린다의 보고가 내 눈짐작보다는 훨씬 정확할 것이다. CS팀은 직접 티켓을 확인하고 고객을 들여보내는 사람들이니, 몇 명이 왔는지 가장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표는 전부 팔렸는데 자리가 빈다고?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긴 사람들인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한 희주를 향해, 차분히 덧붙였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기는 팬들도 없진 않겠지. 하지만 본질은··· 암표겠군요.”

그러자 린다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암표상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풋볼 스퀘어 쪽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듯하다는 제보도 있었구요.”

“풋볼 스퀘어에서요?”

선덜랜드 골수팬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우리 암표를 팔고 있다고?

“네, 구단주님. 거긴 선덜랜드 경기가 너무 보고 싶은데 표를 못 구한 사람이 드글거리는 곳이니까요.”

어, 그러네. 생각해보니 암표상 입장에서는 물 반 고기 반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곧바로 조엘을 호출했다.

“구단주님, 암표상 문제는 시설관리팀에서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근절이 쉽지는 않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아시다시피 암표상들은 노련하고 눈치가 빠릅니다. 구단 직원 유니폼이 눈에 띄면 곧바로 도주하죠. 그렇다고 우리에게 사법권이 있는 것도 아니라 압수수색 같은 것도 못 하고요.”

곤란해하는 조엘에게서 시선을 돌려, 린다를 바라보았다.

“현재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CS팀에서는, 입장하는 고객의 성명과 예약 내역을 확인해, 불일치하는 경우에는 암표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해당 티켓을 무효로 처리하고 입장을 거부합니다.”

구매자만 처벌하는 셈인데,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다. 암표라도 사서 경기를 보겠다는 팬은 손해를 보고, 우리 표를 되팔아치우는 암표상은 이득을 보니까.

심지어 경기장에 빈 자리가 생기게 만들기까지 한다니, 참기 어렵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일 표를 예매한 고객이, 자기가 지정한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습니까?”

그러자 조엘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네? 물론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암표상은 이용 안 할 텐데요.”

“네. 암표상은 이용하지 않겠죠. 그래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선의의 피해자를 막아야 하니까요.”

“앞으로 타인 명의의 티켓으로 입장을 시도한 경우, 티켓의 원 주인도 제재합니다.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티켓을 영원히 팔지 않을 겁니다.”

계도기간을 둘 것이며, 그 사이 티켓 분실 신고 시스템이나 티켓 양도 시스템을 갖춰서,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는 지시를 덧붙였다.

보고를 마친 조엘과 린다가 각자의 업무에 복귀한 후, 희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빠, 티켓 양도 시스템을 만들면 암표상들도 그 서비스를 이용하면 그만 아니야? 따로 웃돈 받은 다음 우리 시스템으로 티켓 이전해주면 되잖아.”

오히려 암표상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거 아니냐는 지적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수도 있겠지만, 기록이 남을 걸 좋아할 암표상은 없어. 티켓을 대량으로 뿌리거나, 지나치게 자주 양도하는 경우 암표상으로 간주하면 그만이니까.”

그러자 희주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구나! 그럼 암표상도 곧 근절할 수 있겠네?”

그러면 좋겠지만, 겨우 시스템을 다듬는 정도로 암표상들을 근절할 가능성은 없다.

암표상들은 방법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그러니, 진짜 대책은 현장에서 만들어내야 한다.

풋볼 스퀘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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