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82화 (82/422)

82화. 선덜랜드를 위한 하나 (2)

지금까지의 상황을 파악해 보면, 암표 거래가 가장 활성화된 곳은 선덜랜드 풋볼 스퀘어였다.

“영국 되팔이는 평화나라 같은 건 안 쓰나?”

“영국은 의외로 그렇더라고··· 생각보다 오프라인 문화가 활성화된 나라라서 그런 것 같은데.”

그러자 CS팀의 에이스, 에이미가 웃으며 덧붙였다.

“인터넷에 글을 올려 거래하다 보면 괜히 추적당할까 염려스러울 거에요. CS팀에서 파악한 바로는, 온라인에서는 선덜랜드 표만 유독 적게 거래되거든요.”

우리 표만 온라인에 안 풀린다고?

의아해하는 나와 희주를 향해, 에이미가 설명했다.

“구단주님은 돈이 많고, 유명 IT 기업 여러 군데에 투자하고 계시잖아요? 그러다 보니 괜히 온라인에 글 쓰다가 꼬리 잡히는 게 아닌가 염려하는 거 같아요. 구단주님의 행보를 보면 이상하지 않은 일이죠.”

내 행보가 어디가 어때서? 의아해하는 사이, 이번엔 희주도 가세했다.

“하긴, 사람들이 그러더라. 무슨 마트에서 물건 사는 것만큼도 고민 안 해보고 축구단을 샀다고.”

“구단주님이 암표 때려잡으려고 페북이나 구글 지분을 사들여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할 걸요. 경기장 지으려고 건설회사 지분 사시는 분이니까요.”

“아니, 왜 그런 오해가 퍼졌는지 모르겠는데.”

손사래를 치자 에이미가 장난기 어린 시선을 보냈다.

“어머, 구글이나 페북은 너무 비싼가요?”

“비싸기도 하고, 구글하고 페북 지분은 이미 갖고 있어서요.”

“······.”

아무튼, 풋볼 스퀘어에서 거래되는 암표만 때려잡으면 해결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CS팀과 시설관리팀, 경비팀의 인력을 차출해서 새로운 프로젝트팀을 만들기로 했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새 팀으로 배정됩니다.”

“암표대응팀인가요?”

누군가 묻길래,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암표대응팀은 어감이 별로 좋지 않군요. 정식 명칭은 스퀘어관리팀으로 하겠습니다. 풋볼 스퀘어를 관리하는 게 여러분의 주 업무입니다.”

물론 스퀘어관리팀의 주 업무는 암표 잡는 역할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CS팀에서는 경력 5년 이상의 베테랑 위주로 차출했고, 경비팀과 시설관리팀에서도 각각 노련한 팀원들을 데려왔으니.

경비팀에서 옮겨 온 사내가 손을 들었다. 명찰을 확인하자, 니콜라스라는 이름이 보였다.

“수단 방법 안 가려도 됩니까?”

“불법은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 팬들에게 불쾌감을 주면 당연히 안 되지요.”

“암표상은요?”

“그건 우리 팬이 아니고요.”

“즉, 불법만 아니면 된다는 뜻이군요. 알겠습니다. 이 기회에 확실히 보여드리겠습니다. 영국은 원래 도일과 크리스티의 나라 아니겠습니까?”

탐정물을 찍는 건 좋은데, 기왕이면 일상추리물로 부탁하고 싶다. 사람 죽어 나가는 건 여러모로 곤란하다.

니콜라스가 웃었다.

“예산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신고포상제가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침 최근 동양인 팬, 특히 한국 팬이 꽤 늘어났다던데요.”

“한국 팬이요?”

내가 되묻자, 이번엔 CS팀 출신 직원, 도로시가 끼어들었다.

“예전에 한국 선수가 뛰던 팀이기도 하고, 구단주가 한국인이라는 점이 어필했다고 보입니다. 다큐멘터리도 한몫했고요.”

감사의 의미로 넷플릭스 주식 좀 더 사 모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니콜라스의 의견이 계속 이어졌다.

“암표상은 아무래도 외국인을 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지 물가를 잘 모르고, 피해를 입어도 현지인처럼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도로시도 거들었다.

“동양계는 딱 봐도 외국 관광객 티가 나서 암표상들의 표적이 되는 일이 흔하다고 들었습니다. 영어가 서투른 경향도 있고요. 아, 물론 구단주님과 비서님은 예외지만요.”

요즘은 한국 사람들도 영어 잘하는데···.

“신고포상제를 도입하자는 의견은 알겠습니다. 한국 관광객을 활용하는 방법도 괜찮아 보이는군요. 그런데 포상을 준다고 널리 알리면, 암표상도 경계하지 않겠습니까?”

알리지 않으면 포상제의 의미가 없는데, 알리면 암표상들이 대책을 세울 가능성이 생긴다.

니콜라스도 답변이 조금 궁해졌는지 뺨을 긁적였다.

“한국어로 알리면 어떨까 싶은데요. 한국어 할 줄 아는 영국인은 거의 없으니까요.”

“요즘 번역기 성능이 워낙 좋아서···.”

그러자 희주가 웃으며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 한꾹인꽌꽝꺢여러뿐.

어, 이건 구글도 번역 못 하겠네. 세종대왕님, 존경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암표에 대해, 티켓 가격의 열 배를 포상금으로 주는 제도를 시행했다··· 물론 내 사비로.

만일 암표를 웃돈 두 배쯤 주고 사더라도 적잖은 차익이 남을 가격이다.

그리고 당연히 회수된 암표는 발권내역을 추적해, 멤버십을 정지하는 강경한 대책을 세웠다.

* * *

선덜랜드의 VIP 팬, 15년차 시즌권 보유자 마일즈 우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퇴근하고 나서, 같이 경기장에 가지 않겠나?”

그러자 수잔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고, 다음 순간 곧바로 가느다랗게 변했다.

마일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째 작년에 리즈와의 승부차기를 지켜보던 순간보다 훨씬 떨렸다.

이상하다. 같이 경기 보러 가자고 말하는 건 그렇게나 편한데, 이유를 모르겠다. 마일즈는 바짝바짝 마른 입천장을 핥았다.

문득 브렌든의 조언이 떠올랐다.

[경기가 없는 날이지만, 경기장에 가야 하는 이유? 간단하지. 메가스토어에 신상품이 나왔다고 해. 여자들은 신상이라면 못 참거든.]

[그럼 나와 같이 갈 이유가 없지 않나?]

[마일즈, 자네 목 위쪽에 달린 건 대체 어디다 써먹나? 옷을 골라 달라고 하면 되잖아.]

마일즈의 긴장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수잔이 웃었다.

“좋아요.”

“경기가 없는 날이긴 하지만, 메가··· 좋다고?”

“네, 좋아요.”

수잔은 다시 한번 흔쾌히 대답했고, 그렇게 두 사람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향했다.

마일즈의 차를 이용했기에, 필연적으로 풋볼 스퀘어 앞을 지나게 되었다. 풋볼 스퀘어는 고객용 주차장에서 가장 가까운 시설이었기에.

수잔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팀장님! 여기 좀 바뀐 거 같아요. 전에는 그, 암표 파는 아저씨들이 접근해서 좀 싫었는데요.”

“그렇더군. 요즘 한창 때려잡는다던데.”

대부분의 구단은 암표에 그리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는다. 이미 팔린 표이기 때문일 것이다.

구단 차원에서 직접 암표를 때려잡는 경우는 기껏해야 챔스 티켓 정도다. 심지어 혹자는 경제 논리를 내세워, 웃돈 붙은 암표가 거래된다는 건 티켓이 너무 싸다는 증거라며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구단주가 사비까지 털어 암표상을 때려잡는 팀은, 아마 선덜랜드 정도가 유일할 것이다.

‘하긴, 이렇게 세심하게 챙겨주니까 구단주 유니폼까지 팔릴 정도겠지.’

덕분에 풋볼 스퀘어의 분위기도 퍽 바뀌었다.

“음악 소리죠?”

“요즘은 버스킹 명소가 되었다더군.”

풋볼 스퀘어의 분위기는 밝았고, 지금처럼 경기가 없는 날에는 버스킹부터 각종 이벤트가 끊이지 않았다.

도심에 위치하는 유리한 입지 조건 덕분에, 풋볼 스퀘어 주변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많은 편이었다. 구단에서 전담 관리팀까지 뽑아서 관리하자, 요즘은 선덜랜드 지역의 랜드마크로 발돋움하는 중이었다.

그때 스크린 쪽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미라고 해요.”

“주디입니다.”

스크린에 모습을 비춘 아이들은 선덜랜드 레플리카를 입고 있었다. 남자애는 0번, 그리고 여자애는 18번이었다.

“동생 데리고 경기장에서 축구를 보는 게 제 꿈이에요. 그래서, 매일 용돈을 모으고 있어요.”

“오빠와 함께 축구를 보는 게 꿈이에요. 그래서, 저도 매일 용돈을 모으고 있어요.”

““티켓을 구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어요.””

합창처럼 외친 남매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경기장을 더 크게 짓는다고 했으니까요. 선덜랜드는 약속을 지키는 팀이니까요.”

“예전에, 썬하고 만난 적이 있어요. 축구가 너무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더니 스크린을 설치해 줬어요.”

“오빠와 저한테 유니폼도 선물했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기다릴 수 있어요. 아저씨들도 같이 기다리실 수 있죠?”

스크린을 바라보던 마일즈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독신인 마일즈는 아이들과 친하지 않았기에 아빠미소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삼촌미소 정도는 될 법한 미소였다.

“애들 보기 부끄러워서라도 여기선 절대 암표 못 사겠군.”

“그러게요.”

수잔의 표정도 한없이 흐뭇해 보였다.

“그러면 팀장님, 모처럼이니 메가스토어라도 갈까요? 신상 나왔다던데요. 요즘은 에디가 입었던 티셔츠가 인기래요.”

“Miss me? 그것도 판다고?”

마일즈가 웃었다. 확실히 선덜랜드가 굿즈 장사는 정말 열심히 한다. 조만간 Why always me? 같은 것도 팔아먹을 기세다··· 뭐, 어차피 사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아니다.

“다음 기회에. 오늘은 경기장으로 가지.”

그러자 수잔의 눈이 처음으로 동그랗게 떠졌다.

“스타디움 투어인가요?”

“비슷해.”

마일즈는 잠시 심호흡을 한 다음, 주위를 흘끔거렸다.

어린 남매가 사라진 스크린 너머에서는, 페르난데스의 선방 하이라이트가 흘러나오는 참이었다.

“아프지 않냐고요? 물론 아픕니다. 프로 선수의 킥은 정말 강력하죠. 몸으로 막다 보면 피멍이 들기 일쑤고요··· 그래도 골을 허용하는 것만큼 아프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문득, 마일즈는 화면 너머의 페르난데스와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다.

“용기를 내는 거죠.”

잠시 후, 마일즈는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최상층으로 수잔을 안내했다.

리버뷰 브래서리. 선덜랜드가 운영하는 고급 레스토랑의 이름이다.

“여기는···.”

숨을 삼키는 수잔에게, 마일즈는 천천히 대답했다.

“저녁 사기로 했었지.”

“약속, 잊어버리신 게 아니었군요.”

“응, 줄곧 기억하고 있었지. 조금 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야.”

“고맙습니다!”

수잔의 얼굴 가득히 피어난 아름다운 미소를 바라보며, 마일즈는 생각했다. 용기를 내길 정말 잘했다고.

‘선덜랜드에 썬이 돌아온 다음부터, 좋은 일들만 계속 이어지는 느낌이 드는데.’

15년간 응원해온 팀은 승승장구하는 중이고, 구단은 날마다 발전하고 있으며, 축구를 계기로 수잔과 퍽 가까워지기도 했다.

심지어 식사까지 맛있었으니, 인생이 잘 풀린다고 느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마일즈는 무심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말았다.

“축구는, 사람들의 인생에 특별한 순간을 줄 의무가 있다.”

“정말 멋진 말이네요. 누가 한 말인가요?”

눈을 빛내는 수잔을 바라보며, 마일즈는 순간 아차 싶었다. 문득 브렌든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수잔 정도면 보기 드문 축구팬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네나 나 같은 축덕은 아니야. 괜히 앞에서 축구 관련 명언 읊지 말라고.]

“그, 그냥 떠오른 말이야···.”

다행히 수잔은 마일즈를 추궁하는 대신, 식사에 몰두했다.

“선수식이라고 해서 맛없을 줄 알았는데, 진짜 맛있네요··· 페르난데스식 쉐이크만 빼면요.”

“그, 그러게. 하하하!”

아스널의 전설적 감독, 벵거를 향해 마음속으로 거듭 사과하면서, 마일즈는 그렇게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하지만 마일즈의 사과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EFL컵 4라운드 대진표가 나온 순간, 마일즈는 벵거에 대한 사과를 취소했음은 물론, 아스널에 대한 원망과 저주까지 덧붙였다.

선덜랜드의 4라운드 상대가 바로 아스널이었기에.

* * *

아스널에 대한 원망은 물론, 대진표 뽑은 추첨자까지도 저주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오만상을 쓰는 나를, 브라이언이 슬쩍 위로했다.

“브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챔피언십의 다른 팀들 같았으면 좋아 죽었을 상황 아니야?”

“그 팀들은 우승 트로피 안 노리고, 평소 입장료 수익도 얼마 안 되니까.”

하부 리그 팀들은 아스널 정도 되는 빅클럽 만나지 않으면 절대 경기장이 만석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설령 경기장이 가득 차도 기껏해야 이, 삼만 석 규모에 그친다.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사만구천 석이 매일같이 매진되는 팀이고, 덕분에 구단 차원에서 암표상을 때려잡아야 할 정도가 되었다. 아스널이 아니라 어디 8부리그 팀을 만났어도 수익엔 큰 문제가 없다.

“흥행 좀 줄어도 만만한 팀이 걸렸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나를, 브라이언이 계속 위로했다.

“브로, 요즘 아스널은 예전 그 팀이 아니야. 우리 유스 시절 아스널 만났으면 사실상 사형선고지만, 지금 아스널이면 그래도 해볼만은 해.”

옆에서 샐리도 거들었다.

“게다가 4라운드잖아요? 단판 승부니까요. 변수가 많으니 자이언트 킬링에 유리하죠.”

하긴, 홈-어웨이 2연전을 치르는 4강전에서 만났으면 훨씬 까다로웠을 것이다. 차라리 단판이 낫지.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로저스 감독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방침에는 변화가 없나?”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 EFL컵은 올 시즌 팀의 1순위 목표입니다.”

EFL컵. 영국 축구에 존재하는 모든 트로피들 중, 선덜랜드가 갖지 못한 유일한 트로피.

선덜랜드를 위한 하나, 올 시즌 내가 팀과 팬들에게 줄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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