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85화 (85/422)

85화. 선덜랜드를 위한 하나 (5)

“팀장님··· 혹시, 우시는 건가요?”

“아니, 안 우는데.”

마일즈는 최대한 무감각하게 대답하려 노력했다.

울 이유가 없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순간, 눈물은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울지 않기로 선수와 약속까지 했는데.

그런데도 자꾸만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아마도··· 믿기지 않아서겠지.’

선덜랜드와 아스널의 상대 전적은, 오늘을 포함해 51승 41무 62패다. 이렇게 보면 선덜랜드가 약간의 열세를 보이는 정도로, 격차는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선덜랜드가 우세하던 시기를 찾아보려면 최소 50년쯤은 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특히 마일즈가 팀을 응원해온 세월은 절대적인 열세였다.

상대전적 2승 7무 14패. 심지어 마지막 승리로부터 거의 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 마일즈는 이번에도 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아스널은 절대, 선덜랜드가 이기지 못할 상대라고.

마일즈의 예상은 기쁘게도 빗나갔다. 오늘의 승자는 선덜랜드였다.

“팀장님, 벌써 그러시면··· 트로피 따면 통곡하시겠네요.”

옆에서 달래는 수잔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며, 마일즈는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로 트로피를 딸 수 있을까?’

구단주가 바뀐 다음, 곧바로 트로피를 추가하기는 했다. 리그 원의 트로피를. 그렇지만 컵 대회의 트로피는 하부 리그의 우승 트로피와는 가치가 전혀 다르다.

EFL 컵은, 수십년 전의 명문 선덜랜드조차 갖지 못했던 트로피니까.

그때 마일즈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마일즈는 눈을 깜빡여 눈물을 짜낸 다음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만 울어. 지금 아주 온 사방에 생중계 중인데. 수잔이 보면서 얼마나 한심해하겠어?]

마일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관중석 곳곳에 설치된 세계 최대 규모 스크린에 그의 얼굴이 가득 떠오른 채였다.

마일즈의 눈물에 감동을 받은 것인지, 주위에서도 눈을 훔치는 관중들이 늘어났다.

덕분에 피치 위에서는 잭이 불만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그는 마이크까지 들었다.

“약속하시지 않았슴까? 두 번 다시 안 우신다고! 저는 팬들이 우는거 정말 싫어함다!”

“그랬었지요. 약속했었어.”

마일즈는 최대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비록 목소리가 잘 들릴 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스크린에 비친 입모양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을 테니.

잭이 빙긋 웃었다.

“모처럼 이겼는데, 분위기 이게 뭠까? 책임지십쇼.”

“책임?”

마일즈가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렸다.

[신사의 나라인 우리 영국에서는 낯선 풍습입니다만,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야구나 미식축구, 농구 같은 데서 중간중간 커플을 종종 카메라에 잡을 때가 있습니다.]

“나는 커플이···.”

마일즈는 말을 흐렸다. 아닌데, 라고 덧붙이면 정말로 큰일날 것 같아서.

[우리 구단주 썬의 조국, 대한민국에서도 활성화된 문화라고 하는데요. 미국 친구들은 이런 문화를··· 키스 캠이라고 부른다더군요.]

관중석 곳곳에서 새어나오던 훌쩍임이, 환호성에 완전히 묻혀 버렸다. 건너편 스탠드에서는 아예 난동까지 일어났다. 얼굴을 알아보기 힘든 거리지만, 누구 소행인지 알 것 같다. 주모자는 브렌든이겠지.

옆에서 수잔이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저, 팀장님.”

“어, 이런 난처한 상황에 휘말리게 해서 아주 미안하게 됐네.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내가 잘 처신할 테니, 자네는 그냥 모른 척 하고 가만 앉아 있으면···.”

“우리 회사는 미국계 기업의 자회사죠?”

“그렇··· 지?”

“미국 문화를 따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네요?”

의미를 곱씹기도 전에, 마일즈의 시야가 가려졌다. 수잔의 얼굴로.

잠시 후 입술에 한없이 부드럽고 따스한 촉감이 느껴졌고, 경기장은 휘파람과 환호로 가득했다.

[하다못해 직접 했어야지, 마일즈 이 등신아··· 축하한다!]

* * *

한편, 경기를 마친 양팀 감독들을 향해 기자들의 인터뷰 공세가 이어졌다.

- 멋진 경기였습니다. 승리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시티 오브 선덜랜드 모두의 승리였습니다. 성원을 보내주신 팬 여러분, 그리고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모범적이지만 상투적인 멘트로 응답하는 로저스 감독을 향해, 기자들은 조금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 다음 5라운드 상대가 레딩으로 정해졌습니다. 맨시티와 맨유, 리버풀, 첼시, 레스터가 모두 남아 있는 와중에 레딩이라면 상대적으로 쉬운 추첨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아스널 꺾은 직후 레딩을 만난다면 누가 봐도 낙승을 예상하겠지만, 질문을 받은 로저스 감독의 표정은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우리가 아스널을 이길 거라고 믿는 축구 관계자는 아마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우리 스스로 이번에 증명한 셈입니다. 팀의 네임밸류나 뛰는 리그의 차이는, 단판승부에서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요.”

로저스 감독이, 진지하게 답변했다.

“전력을 다할 겁니다. 그게 상대에 대한 존중이자, 팬들에 대한 존중이니까요. 아스널이 오늘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 또한 최선을 다해 5라운드에 임할 것입니다.”

한편 적장인 아스널 감독 아르테타는, 우리 경기력에 칭송을 보냈다.

“선덜랜드는 무척 잘 짜여진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역동적인 축구를 하고, 빠른 전환이 인상적인 팀이었죠.”

- 전환이 빠르다고요?

“아틀레티코의 두줄 수비는 물론, 게겐프레싱으로 대표되는 독일식 축구와도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 두 축구는 느낌이 퍽 다르다고 생각했는데요.

“공격과 수비 중 무엇을 중시하느냐는 점에서 디테일의 차이가 있지만, 본질은 빠른 전환이라는 점이죠. 선덜랜드의 축구는 바로 그 빠른 전환을 구현한 축구였습니다.”

적장의 인터뷰는 칭찬 일색이었고, 오늘 우리가 시도한 코너킥 트릭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지면 인터뷰 자리에서 졸렬해지는 감독들이 적지 않은데, 아르테타는 꽤 신사적인 편이었다.

물론 모두가 아르테타의 인터뷰를 호의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로저스 감독은 쓴웃음을 지었으며, 브라이언과 샐리는 아주 치를 떨었다.

“우리 상처에 제대로 소금 뿌리고 돌아간 느낌인데.”

“상처?”

브라이언의 푸념이 처음엔 얼핏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가 이겼는데 무슨 상처인가 싶어서.

샐리가 빠르게 덧붙였다.

“독일식 게겐프레싱도, ATM의 두줄 수비도 결국 많이 뛰는 축구라 체력소모가 크거든요··· 우리 축구도 그렇고요.”

“전술 특성상 조직력이 중요해서 스쿼드를 크게 늘리지도 못해. 필연적으로 부상에 시달리는 선수가 늘어나고, 다치지 않더라도 체력의 저하는 피할 수 없지.”

“많이 뛰는 축구를 하는 팀들이 시즌 하반기로 갈수록 힘들어하는 이유죠. 그래서 게겐프레싱으로 재미 본 감독은 많아도, 게겐프레싱을 오래 쓴 감독은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런 말이 있었나?

하긴, 클롭조차 요즘은 어느 정도 타협했을 정도니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서, 나는 상처에 소금 뿌렸다는 말을 이해했다. 가뜩이나 챔피언십은 일정이 혹독하기로 악명이 높으니까.

“즉, 아르테타의 의도를 악의적으로 해석하자면 일종의 힌트를 준 셈이 되겠군요. 우리는 곧 리그에서 힘이 빠질 거라고.”

샐리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르테타 본인이 그럴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덕분에 챔피언십 팀들은 우리 공략법의 힌트를 얻은 셈이죠.”

그래서였을까.

챔피언십에서 우리의 기세가 조금씩 꺾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상위권에 머무르는 중이고, 아직 무패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대신 무승부가 꽤 늘어났다.

영국 팀이라 다행이다. 한국이었으면 분명히 무재배 명가 소리를 들었을 테니까.

원인은 몇 가지를 들 수 있었다.

이번 시즌에는 EFL 컵을 최우선한다는 내 요구에 응하기 위해, 로저스 감독이 리그에서 로테이션을 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른 이유로는, 우리를 상대하는 팀들이 주로 체력적인 약점을 공략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우리와 순위 경쟁을 펼치는 챔피언십 상위권 팀은 어김없이 소모전으로 응수했다. 서로 많이 뛰는 축구를 해보자는 식으로.

원래대로라면 어리고 젊은 선수가 많은 우리가 소모전에 훨씬 유리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EFL컵 5라운드에 진출한 챔피언십 팀은 우리와 레딩 뿐이라, 일정상 부담이 다르기 때문이다.

반면, 하위권 팀은 어김없이 잔뜩 내려앉았다. 마치 물어보는 듯한 태도였다.

[우리가 내려앉아 버티면 몰아칠 체력은 있고? 너희 주중에도 경기 있잖아?]

그런 식으로 비기는 경기가 늘어나자, 급기야 브라이언이 한탄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브로, 몇년 전 버턴이 보여준 것처럼 아예 리그는 포기하고 컵에 올인하는 건··· 무리겠지?”

“그건 안 돼. 최소한 승격 플레이오프권 정도는 유지해야지.”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 그리고 2위에게 주어지는 직행 티켓도 포기할 수 있다. EFL 컵을 들어올리기 위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뼈아프지는 않다.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지지 않을 자신도 있고.

하지만 EFL 컵을 들어올리기 위한 대가로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포기한다면? 그건 바보다.

“당분간 로테이션을 좀 더 적극적으로 돌려 가면서 체력을 관리해 줘. 시즌 끝까지 퍼지지 않도록.”

그렇게 당부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지금의 선덜랜드를 위해, 구단주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먼저 떠올리기 쉬운 방법은 역시 피로를 풀어줄 설비와 인력이지만, 그 부분은 이미 해결했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드레싱룸에는 스파와 마사지실이 붙었고, 훈련장에는 산소 캡슐이 놓였다.

이미 메디컬팀 인력은 충분히 강화된 상태이며, 원정 경기에는 버스 세 대가 선수 관리를 위해 따라붙는다.

“오빠, 식사를 더욱 개선하면 어때? 매 끼 삼계탕 먹이자. 스태미너에 좋잖아. 아니면 보약 지어 먹여도 괜찮지 않을까?”

“아무거나 막 먹이면 큰일난다.”

든든하게 먹이자는 아이디어에는 동의하지만, 보약은 문제가 있다. 혹시라도 특정 성분이 도핑 테스트에 걸리기라도 하면? 음, 구단 말아먹을 짓이지.

그러자 희주가 한숨을 쉬었다.

“아이 참, 의식주 개선은 기본인데.”

“그러게. 의식주 개선이 가장 기본이지.”

갑자기 희주에게 용돈을 좀 더 쥐어주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면서, 나는 재빨리 메시지를 보냈다.

파퓰러스의 수석 디자이너, 타일러에게.

* * *

요니는 여느 때처럼 여유로운 걸음으로 훈련장에 향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은 선덜랜드 선수 중 누구보다도 느긋했다. 클럽하우스의 기숙사에서 살기 때문이다. 훈련장까지 걸어서 도보 5분이니, 어쩌면 최고의 출퇴근 환경인 셈이다.

기숙사 현관을 나서려던 요니의 눈에 일련의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시설관리팀장 조엘, 그리고 십수 명의 사내들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조엘이 먼저 인사했다.

“요니 선수,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세요. 무슨 공사라도 하나요?”

요니는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구단주가 바뀐 이래, 공사는 선덜랜드에서는 퍽 흔한 이벤트가 되었다. 지금도 아카데미 한쪽 구석에서는 땅을 갈아엎어 축구 훈련장을 추가하는 중이다.

조엘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부터 클럽하우스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진행됩니다.”

“저는 못 들었는데요.”

요니의 얼굴이 굳어졌다. 다른 공사라면 모를까, 클럽하우스를 뜯어고칠 경우 기숙사에서 사는 요니에게는 생활에 직결되는 문제다.

조엘이 부드럽게 웃었다.

“안심하십시오. 이번 리모델링 공사는 선수단 여러분이 훈련하는 시간에만 진행합니다. 클럽하우스에서 쉬는 동안에는 절대 방해가 되지 않게 하라는 구단주님의 특명이 있었습니다.”

조엘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설명할 때마다, 그 옆에서는 말쑥한 남성이 어깨를 움츠렸다.

“리모델링이라면···.”

“특급호텔 수준으로 고치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저는 굳이 그런 호화로운 방이 필요 없는데요. 마음은 고맙지만 낭비가 아닐까요? 기숙사에서 사는 선수는, 유소년들 말고는 저 혼자니까···.”

조엘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앞으로는 선수단 전원에게 방을 지급하여, 원하는 선수는 언제든지 자기 방에서 쉴 수 있게 배려할 계획입니다.”

원정 경기를 위해 이동하는 등, 스케줄에 따라 선수단이 미리 클럽하우스에 모여서 준비할 상황이 생긴다. 그럴 때 숙박할 수 있는 용도로 쓴다는 게 조엘의 설명이었다.

“요니 선수의 생활에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만, 그래도 혹시 불편하신 경우 근처의 호텔을 준비해 두었으니 언제든지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준비하겠다, 가 아니라 이미 준비했다는 말씀이군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저는 침구에 민감한 편이라···.”

불편하지 않으니 그냥 기숙사에 머무르겠다는 우회적인 의사를 밝히자, 조엘이 슬며시 웃었다.

“계약을 통해, 호텔의 비품은 기숙사에서 쓰시는 것과 동일하게 맞췄습니다.”

“그 계약이라는 거··· 혹시 인수 계약 아닙니까?”

“그건 제가 대답드리기엔 좀···.”

조엘이 미소로 얼버무리려는 찰나, 요니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맞아. 우리 스태프는 최고지만, 그래도 클럽하우스를 선수단용 숙박 시설로 운영하려면 나름의 노하우가 필요하니까··· 그런 스태프를 따로 키우느니, 호텔을 하나 사는게 빠르지.”

돌아보니 역시 구단주 이희성의 모습이 보였다. 본격적인 공사를 앞두고 클럽하우스 내부를 점검하기라도 한 모양이다.

전직 선수 출신인 이희성이 무척 부지런하다는 사실은 이미 요니도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를 표하며, 요니는 생각했다. 팀이 달라지는 모습을 아마 가장 많이 지켜본 사람은 요니 자신일 거라고.

클럽하우스에 거주하는 특성상, 수많은 최신 설비들이며 구단 스태프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팀의 변화는 항상 극적이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구단주가 직접 챙기는 이상, 클럽하우스 개선 역시 최고의 결과로 돌아올 것이 틀림없었다.

“최고의 경기력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무척 고마운 멘트지만, 그런 건 팬 앞에서 해야지.”

미소짓는 구단주에게 인사를 건넨 다음, 요니는 훈련장으로 향했다.

코앞까지 다가온 EFL컵 5라운드를 준비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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