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94화 (94/422)

94화. 웸블리로 가는 길 (4)

브렌든은 어지럽게 시선을 움직였다. 눈앞에 내밀어진 티켓과, 마일즈 우드의 얼굴을 향해.

“이게 무슨 티켓인데?”

“무슨 티켓이긴, 결승 티켓이지. EFL컵 결승.”

친절함 반, 어색함 반으로 미소 짓는 마일즈를 향해, 브렌든이 인상을 썼다.

“그러니까 결승전 티켓을 왜 날 주느냐는 소린데.”

“그게··· 내가 VIP 시즌권 보유자잖아? 그래서 웸블리 결승 티켓을 받았거든.”

“그래서?”

“나는 티켓이 있으니까···.”

우물거리는 마일즈를 바라보며, 브렌든은 가슴을 쳤다.

“아니 이 친구야. 그걸 왜 날 줘.”

등신아, 라는 말을 차마 면전에서 내뱉지 못한 브렌든을 향해, 마일즈가 멋쩍은 표정으로 덧붙였다.

“아니. 그게, 수잔 티켓은 이미 구했거든···.”

“그래?”

다행히 최소한의 상식은 있는 듯한 이웃사촌을 바라보며, 브렌든은 빠르게 되물었다.

“고맙긴 한데··· 설마 나도 같이 보자는 건 아니겠지?”

마일즈의 뜨끔한 표정을 본 브렌든은, 스스로의 추측이 옳았음을 확신하고 한숨을 쉬었다.

“이봐 마일즈, 나는 따로 볼 거야. 같이 볼 사람도 있고···.”

“같이 볼 사람? 혹시 여자?”

“아니 뭐···.”

우락부락한 핫도그 사내나 우락부락한 축구 펍 사장의 모습을 떠올리며, 브렌든은 애매하게 말을 흐렸다.

“그냥, 친구야.”

이렇게 말하면 듣는 사람은 당연히 여사친 같은 걸 생각하겠지만,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은 브렌든이었다.

‘그나저나, 이걸 누구와 본다.’

브렌든도 이미 결승 티켓은 구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굳이 마일즈가 준 티켓을 사양않고 받은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마일즈는 당분간 수잔과 단둘이 두는 게 좋지.’

만일 티켓을 이미 구했다고 사양이라도 하면, 마일즈는 이 티켓을 여기저기에 내밀 것 같다. 그렇다고 마일즈가 엄청 마당발도 아니니 아마 권유 대상은 직장 동료일 텐데···.

수잔과 마일즈가 같은 직장에 다닌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악의 행동이 될 것이다.

그러니 티켓은 일단 회수하고, 나중에 용도를 찾기로 생각했다. 암표에 대한 선덜랜드의 강경한 대응을 고려하면 되팔이를 할 수는 없으니, 역시 지인과 같이 보는 게 적당할 것이다.

핫도그 사내, 혹은 맥주집 사장이 적당하다. 마침 그 두 사람과는 여러 차례 함께 술자리를 가지면서 꽤 친해진 상태였다.

다음날 브렌든은 단골 축구 펍을 찾았다. 연락해보니 핫도그 사내는 이미 티켓을 구했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장사하는 사람한테 물어보는 게 좀 그렇긴 한데··· 혹시 웸블리 갈 생각 없나?”

“웸블리?”

“결승전 티켓을 한 장 선물 받아서··· 근데 나는 이미 티켓 구했거든.”

대답하면서 티켓을 슬쩍 올려놓자, 축구 펍 사장이 브렌든을 감동에 젖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고맙군. 실은 나도 가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반쯤 포기하고 있었거든.”

“사정? 역시 장사하는 사람은 하루 문 닫기 좀 그런가?”

그러자 펍 사장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사실 한 장은 구했어. 구단에서 배려해줬거든. 웸블리로 가자면서.”

“아하···. 확실히 선덜랜드 구단 스태프들이 일 잘하네.”

평소 같으면 축구 펍에서의 관람을 적극 장려했을 선덜랜드였지만, 이번에는 웸블리에 최대한 많은 관중을 모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팬들의 웸블리행을 유도하려는 목적에, 축구 펍은 방해가 된다. 그렇다고 축구 펍들을 강제로 하루 쉬게 할 수는 없으니, 가게 사장들을 티켓으로 유혹한 모양이다.

굳이 축구 펍을 차릴 정도라면 사장부터 열렬한 축구 팬, 선덜랜드 팬일 가능성이 높다. 웸블리행 티켓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을 것이다.

펍 사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암튼 한 장은 구했는데, 와이프 놔두고 가기는 좀 그래서···.”

사장이 가게 안쪽을 눈짓했다. 브렌든이 앉은 테이블 쪽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주방이 있을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럼, 와이프와 같이 가. 나는 같이 볼 사람이 따로 있어.”

브렌든은 웃으며 티켓을 내밀었다. 그러자 사장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티켓을 받아들고는 주방 쪽으로 향했다.

잠시 후, 브렌든의 눈 앞에 맥주가 놓였다. 부츠 크기 정도의 커다란 잔에 한가득.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소시지도 함께였다.

“부족하면 얼마든지 이야기하고. 티켓 준 답례니까 계산은 신경 안 써도 돼.”

부족하면 말하라고 했지만, 아무리 봐도 혼자서는 다 먹지도 못할 양이다. 브렌든은 조용히 맥주를 홀짝였다.

‘생각해보니 나도 마일즈에게 맥주라도 한잔 대접할 걸 그랬네. 나중에 둘을 이 가게로 한 번 데려와야겠어.’

그사이, 펍 사장은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가게 곳곳을 치우고, 손글씨라기보다는 차라리 캘리그래피에 가까운 근사한 포스터까지 쓱싹 그려냈다.

[EFL컵 결승 당일은 쉽니다 - 웸블리에서 봅시다]

그 모습에서 사장이 얼마나 웸블리행 티켓을 원했는지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그래도 세상엔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다.

당장에라도 문 앞에 포스터를 붙이려는 듯 움직이는 펍 사장을 바라보며, 브렌든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 가게 문 닫긴 너무 이르잖아. 아직 리그 경기도 남았고.”

그렇게 지적하자 펍 사장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웸블리에서 봅시다’ 포스터를 주섬주섬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다른 포스터를 걸었다.

[웸블리로 가는 마지막 관문, 선덜랜드 대 위컴 - 경기 당일 맥주 30% 할인]

* * *

위컴과의 경기는, 선덜랜드의 홈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치러졌다.

선덜랜드의 소년 팬, 골키퍼 지망생 짐 하워드는 오랜만에 플레이어 에스코트로 참여했고, 페르난데스의 손을 잡은 채 입장했다.

경기 중에는 누구보다 가장 뒤에 있는 골키퍼이지만, 입장은 가장 먼저 했다. 언제나 그렇다. 페르난데스는 팀의 주장이기에.

경기가 시작하기 전, 아직 누구도 들어가지 않은 피치 위에 가장 먼저 입장하는 기회는, 페르난데스를 에스코트하는 소년 팬들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었다.

‘언제까지 바라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소년 짐은 문득, 며칠 전 학교에서의 대화를 떠올렸다.

[페르난데스? 이제 늙었잖아. 곧 은퇴할 거야. 그러니까 위컴전에서나 선발로 뛰겠지. 그날은 EFL 컵에서 못 뛰는 선수들만 나오는 날이잖아?]

소년 짐은 대꾸하지 않았다. 물론 겁먹어서 피한 건 아니다. 페르난데스의 가르침을 따르고 싶었을 뿐.

[골키퍼가 맨 뒤에 서는 이유는, 모두를 지켜주기 위한 거잖니, 그렇지? 그런데 사소한 일로 화를 내고, 실망하고, 그러면 친구들이 힘들겠지?]

짐은 흘끗, 자신의 옆에서 걷는 페르난데스를 올려다보았다. 언제나처럼 차분한 미소를 머금은 페르난데스의 얼굴에서는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입장과 에스코트를 마치고 그라운드를 떠나던 짐은, 사이드라인을 넘기 전 살짝 뒤를 돌았다.

선덜랜드 선수들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 스트라이프 유니폼 사이 혼자 녹색이던 뒷모습, 여전히 곧고 흔들림 없는 1번의 모습이.

소년 짐은 잠시 그 1번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귓가에 페르난데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공을 막는 게 아니라, 팀의 패배를 막는 것이다.]

그날, 필드플레이어 전원을 로테이션시킨 선덜랜드는 엄청나게 고전했다. 변변한 공격 기회조차 잡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하지만 실점은 허용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모두의 등 뒤에 선 녹색 유니폼의 1번이, 변함없이 팀을 독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 * *

웸블리로 향하기 직전, 위컴과의 홈 경기 무승부는 우리로서는 최상의 결과였다.

비록 이기지는 못했지만, 패배는 없었다. 승점 1점을 챙겼고, 변함없이 리그 2위를 유지했다. 로테이션 멤버를 열 명이나 내보낸 것치고는 정말로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선수들의 컨디션은 어떻습니까?”

메디컬 팀장 버드가 미소를 지었다.

“아주 좋습니다. 완벽하게 풀핏입니다. 로테이션이 무척 효과적이었습니다.”

“전술 준비는?”

브라이언과 샐리가 냉큼 대답했다.

“맡겨둬, 브로. 리버풀의 예상 전술도, 선발 라인업도, 대책도 완벽하게 뽑았으니까.”

“네, 맡겨두세요.”

자신있게 대답하면서, 둘은 시선을 교환했다.

“리버풀의 최대 무기라면 역시 두 풀백이지. 젊고, 빠르고, 쌩쌩한 풀백들. 마침 측면의 중량감이 떨어지는 우리로서는 치명적인 상대야.”

“리버풀은 리그와 챔스를 병행하니까, 주전 전체를 내진 못할 거에요. 하지만 양쪽 풀백, 로보와 아놀드는 모두 나올 게 틀림없어요.”

“따라서 우리는 잭과 스티븐을 내세워 풀백의 전진을 막고, 빌드업을 제한할 거야. 그렇게 되면 승부처는 자연히···.”

“필드 중앙이 되겠죠.”

“측면이 아니고!?”

다행히 샐리와 브라이언의 이런 모습에는 다들 익숙해졌다. 그래서인지 스태프들도 미묘한 쓴웃음만 지은 채, 특별히 두 사람에게 토를 달지는 않았다.

뭐, 중앙인지 측면인지는 딱히 중요한 게 아니다. 내 경험상 이럴 때의 브라이언과 샐리는 표현만 다르지, 결국 똑같은 소리를 하더라고.

전술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브라이언은 집중력을 완벽히 되찾았고, 샐리 역시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귀중한 경험을 쌓았다.

“스태프들의 준비는 어떻습니까?”

그러자 조엘과 린다가 곧바로 대답했다.

“CS팀을 제외한 스태프들은 오늘과 내일, 버스에 나누어 먼저 이동합니다. 그리고 선수단과 스태프용 숙소로 호텔 한 곳을 전세 계약했습니다.”

“CS팀은 모레부터 이틀간 팬들을 인솔해, 런던 웸블리로 향할 계획입니다. 런던에는 선덜랜드 제휴 호텔 열일곱 군데를 확보해서, 팬들의 숙박에 아무 문제 없도록 조치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다음, 주위를 살폈다. 가장 중요한 훈련장의 상태가 궁금했는데, 하필 리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경기 전날과 당일 오전에 사용할 훈련장도 준비되었습니까? 웸블리와 유사한 사양이면 좋겠는데요.”

그래서 시설관리팀에 물어봤더니, 희주가 대신 대답했다.

“그렇진 않아. 보안성을 중시해서 빌렸거든. 대신 리지 씨가 미리 출발했으니, 선수단이 도착할 때쯤엔 웸블리와 똑같아질 거야.”

음, 그 정도면 만족이다. 흘끗 살펴보니 감독과 코치들도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리지의 잔디 세팅 능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에이미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중립 표 대부분은 선덜랜드 관중으로 예상됩니다.”

“수고했습니다.”

브라이언이 굴 파는 사이, 스태프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역시 중립 표의 확보였다. 전체 티켓의 20%는 구단에서 터치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우리는 총력전을 펼쳤다.

CS팀은 각종 지역 매체를 통해, 중립 표를 구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안내했고, 애니는 선덜랜드의 눈물나는 과거사를 맛깔나게 풀어내, 전국단위 언론과 SNS에 풀었다.

[선덜랜드의 꿈, 신흥 명문 맨체스터 시티에게 무너지다 : 13-14 EFL컵 결승전의 이야기]

[돌이켜보면, 웸블리는 선덜랜드에게 우호적인 경기장이 아니었다. 18-19시즌. 승격 플레이오프 최종전도 웸블리였으니.]

[그렇다. 경기 종료 6초를 남기고 실점하며 탈락했던 그 아픔의 자리도 웸블리였다.]

[그 아픔으로부터 몇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신흥 명문으로 발돋움하던 맨시티에게 결승에서 패배한 기억을 만날 수 있다. 85년에는 노리치에게도 결승에서 패했다. 물론, 그때도 웸블리였다.]

선덜랜드가 가진 웸블리에서의 상처들. 그 상처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며, 새로운 우승컵으로 가릴 수밖에 없음을 어필했다.

[이제 선덜랜드는 갖지 못했던 트로피에 도전한다. 그 상대는 리버풀. EFL컵의 최다 우승팀이다.]

덕분에 중립 축구 팬들의 관심을 우리 쪽으로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 그러고 보니 요즘 선덜랜드 다큐멘터리가 자주 보이던데, 이유 아는 사람 있음?

ㄴ 선덜랜드 구단주가 넷플릭스 주식 가졌잖음. 노출 늘리라고 압박했겠지.

ㄴ 주총이라도 소집했나? 아니면 이사회? 돈지랄 쩌네.

어··· 솔직히 부탁은 했는데, 이사회 소집은 안 했다. 딱히 돈지랄도 안 했고.

진짜 돈지랄을 하고 싶었으면, EFL컵 메인 스폰서를 회사채로 사서, 대회 이름을 선덜랜드컵으로 바꿨을 거라고. 아니면 그냥 리버풀에 배정된 결승 티켓을 싹 사들이거나.

··· 리버풀은 우리처럼 암표 단속 빡세게 안 하잖아?

아무튼, 지난 한달간 우리는 다방면으로 노력했고, 그 노력은 이제 결실을 얻었다. 시티 오브 선덜랜드의 축구팬들과, 그날 하루 선덜랜드를 응원할 중립 팬들까지.

결승 당일, 오만 명 이상이 선덜랜드 유니폼을 입고 응원할 것이다. 마치 웸블리가 우리 홈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갖지 못한 트로피를 향해···.

웸블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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