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99화 (99/422)

99화. 열기가 남아있는 동안 (1)

<하지만, 난 아직도 배가 고프다. - 거스 히딩크>

EFL컵 우승 직후, 시티 오브 선덜랜드에서는 연일 축제가 펼쳐졌다.

우선 우승을 확정 지은 경기 당일 밤, 도시에서는 또다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듣자니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남아 있던 스태프들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모양이다.

선덜랜드로 돌아오는 원정 버스에서, 우리는 그 장면을 실컷 감상했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에어쇼를 추가했다. 우승을 축하할 겸, 희주의 오랜 아쉬움을 해소해줄 목적이었다.

“아니, 에어쇼 이야기는 오빠가 처음 꺼냈던 건데···.”

그랬었나?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한편, 지역 언론에서도 특집 기사를 쏟아내며 호응했다.

[FC 선덜랜드, 창단 이래 첫 EFL컵 획득!]

[챔피언십 팀이 EFL컵에서 우승하는 것은 무척 드문 일로서···.]

무척 드물다고는 해도, 최초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잠시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 밖에도 EFL컵 우승 관련한 기사들은 다양했다.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피터 톰슨, 그 감동의 순간!]

[선덜랜드, 또 다른 투자 성공사례 되나? 맨시티와 선덜랜드의 ‘평행이론.’]

[최고로 드라마틱한 프로포즈? 축구를 사랑하는 남녀의 로맨틱한 모습.]

호기심에 기사를 열어 보니, 경기장에서 우리 레플리카를 입은 남녀가 반지를 주고받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찍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얼굴이 어째 친숙하다. 예전에 아마 우리 홈에서 키스타임에 나왔던 커플 같다.

그나저나 아무리 축덕이라지만, 축구장에 여친 데려와서 프로포즈라니···.

내가 보기엔 나중에 부인에게 10년쯤 바가지 긁힐 소재 같은데, 우리 여성 스태프들은 어째 흐뭇한 표정으로 기사를 바라보았다.

“응원하는 팀이 트로피를 드는 순간에 일생을 같이하기로 약속한다고요? 정말 부럽네요. 멋있어요.”

“네, 멋지죠. 너무 로맨틱해요.”

리지와 샐리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이 아가씨들은 진성 축덕이었지.

그리고 CS팀의 에이미는, 자식 결혼시키는 부모처럼 아련한 표정으로 기사를 바라보았다. 어째 ‘내가 키웠다’ 는 나레이션이 따라붙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처럼, EFL컵 관련 기사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딱 하나만 빼고.

“신문사에 연락해서, 당장 기사 내리라고 해요.”

희주와 생애 두 번째 이산가족 상봉을 연출 중인 내 사진을 노려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 * *

나와 희주가 포옹하는 기사는 곧바로 사라졌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영원히 출입 못 하고 싶냐는 애니의 서슬푸른 경고에, 여차하면 광고를 모조리 끊어버리겠다는 내 암시가 더해진 성과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 사람들의 기억까지 모조리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리미트리스 본사에 연락했을 때, 나는 그 점을 여실히 체감했다.

영상통화 화면 너머에서, 다미가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좋잖아요? 감동적이고요.”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하긴, 감동적이긴 하지. 스포츠가 주는 감동에 취하면 술보다 무섭다는 사례니까.”

전에도 한 번 감동에 취해 실수했던 것 같은데··· 이래서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건가?

다미가 키득거렸다.

“괜찮아요. 개미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사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가끔, 나는 다미의 발상을 도저히 따라잡지 못할 때가 있다··· 사진과 개미가 대체 무슨 관계인데?

다행히 다미는 사진 이야기를 길게 끌지는 않았다. 다미의 커다란 눈동자에 가득하던 장난기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입가의 미소도 자취를 감췄다.

리미트리스에서의 내 오른팔, 최다미의 업무 모드다.

“승격 때문에 연락하신 거죠? 아직 확정까지는 아니지만, 거의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들었어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축구 관계자들은 이미 내년도 프리미어리그 명단에 우리를 포함한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정도는 아니었다.

컵 대회 우승 직후 경기력이 떨어지는 것은 축구계의 상식이다. 목표를 달성해 긴장이 풀리기 때문이기도 하고, 컵에 모든 걸 올인한 후유증이기도 하다.

단순히 팀의 전력만 보면 승격은 아무 문제 없겠지만, 우린 아직 배가 고프다. 고파야 한다.

뭐, 그래도 승격 준비는 미리미리 시작해야지. 나는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

“슬슬 내년도 유니폼 메인 스폰서를 알아보고 싶은데.”

그러자 다미의 얼굴이 환하게 피었다.

“그러시군요. 마침 꼭 추천드리고 싶은 회사가 있는데요.”

어, 어딘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리미트리스겠지.

혹시라도 내가 OK하면, 다미는 아마 스폰서 계약을 챙긴다는 명목으로 수시로 영국에 날아올 게 뻔하다.

“리미트리스는 안 돼.”

다미는 생각보다 순순히 물러났다.

“하긴, 구단주가 소유한 기업은 피하는 게 좋겠죠. 그러면 페이스북은 어떠세요?”

마침 지분도 적당히 가지고 있으니, 협상하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스폰서가 되어 줄 만한 기업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보통은 기업을 홍보하기 위해 축구 유니폼에 로고를 넣는 거지만, 우린 그 반대로 할 수 있어요. 페이스북 로고가 붙으면 선덜랜드에 대한 관심이 커질 거에요.”

듣고 보니 장점이 많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거기는 로고가 파란색이잖아?”

“네, 그런데요?”

“우리 유니폼은 빨간 색이라서 안 어울릴 것 같아.”

“아 네···.”

다미의 눈이 죽은 것 같다. 늘 고생하는 다미를 달랠 겸, 빠르게 덧붙였다.

“아직 다음 시즌 개막까지는 시간이 있다. 이런 부분까지 포함해서 준비하려고 미리 연락한 거니까, 천천히 알아봐 줘.”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인 다미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그녀의 단정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맞다. 사장님. 그러고 보니 사무실에 뭐가 왔던데요?”

“아, 네 거야. 선물.”

“지금 바로 뜯어봐도 될까요?”

고개를 끄덕이자, 다미는 곧바로 카메라 너머에서 박스를 뜯기 시작했다. 다미의 표정은 밝았다··· 박스 안에서 우리 유니폼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음, 다미의 눈이 아까보다 더 죽은 것 같아서 빠르게 덧붙였다.

“특별 주문한 마킹 유니폼이야.”

정확히 말하면 주문은 희주가 했지만.

“00번이네요? 아, 사장님이 그 팀 0번이었죠?”

다미는 퍽 행복해 보였다.

* * *

브렌든은 퍽 행복해 보였다.

아마 사흘 연속으로 축배를 들었던 영향이 컸다. 단골 축구 펍의 사장 부부가 한턱 내겠다고 제의했던 것이다.

“티켓 넘겨줬을 때 이미 한턱 냈었잖아?”

“그 정도로는 부족하지. 양보해준 티켓 덕분에, 팀이 우승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덕분에 브렌든은 지난 며칠간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옆 축구 펍에 출근 도장을 찍었고, 더는 못 먹겠다고 손사래를 칠 때까지 후한 대접을 받았다.

‘투자는 이렇게 하는 거지.’

티켓 하나로 정말 후한 대접을 받은 브렌든은 행복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티 오브 선덜랜드의 하늘은 사흘간 휘황찬란했다. 매일 밤 폭죽이 터졌고 낮에는 에어쇼가 펼쳐졌다. 갖지 못했던 EFL 컵, 50여년만에 차지한 메이저 트로피에 모두가 감격에 사로잡힌 것이다.

선덜랜드를 위한 기도와 노래가 도시 곳곳에 울려 퍼지는 열기 속에서 브렌든 역시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던 브랜든의 눈에, 플래카드가 보였다. 선덜랜드 메가스토어였다.

[EFL컵 우승 축하 세일! 기념 신상품도 놓치지 마세요!]

무척 빠른 행보였다.

“확실히 일 잘하는 구단이란 말이지.”

우승 기념 세일 정도야 어느 구단이나 다 하는 거지만, 사흘만에 기념 신상품을 찍어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마 결승을 앞두고 미리 만들었을 것이다.

“직원들 용기가 대단하네. 혹시라도 우승을 못 하면 전량 폐기했어야 할 텐데···.”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대체 어떤 신상품을 찍어냈을지.

호기심 어린 발걸음으로 메가스토어에 들어가자, CS팀 직원이 상냥하게 맞이했다.

“우승 기념 신상품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정중히 묻자, 직원이 싱긋 웃고는 친절하게 안내를 시작했다.

“우선, 이쪽의 상품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승 기념 씰입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씰은 전부 한정판인데요.”

브렌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선수들의 2등신 캐리커쳐였는데, 선수마다 특색을 살려서 잘 그렸다. 가격도 착하고···.

“한정판이라고 했죠?”

“네. 동일한 씰은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브렌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팬들의 용돈으로도 살 수 있는 기념품을 만들라는 구단주의 지침에 따라 세상에 태어난 썬덜랜드 기념 씰은, 현재는 무척 저렴하게 팔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한정판이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몇 년 지나면 반드시 가격이 오를 것이다.

‘투자는 이렇게 하는 거지.’

브렌든은 주저 없이 주문했다.

“선수단 전부, 두 세트씩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다른 상품도 보시겠어요? 이번에 새로 나온 우승 기념 레플리카 킷인데요.”

얼핏 보기엔 기존 유니폼과 똑같은 디자인이었지만, 소매가 달랐다. 기념 유니폼에는 EFL컵 로고가 선명하게 들어갔다. 우승팀만 쓸 수 있는 특권, 황금색으로.

“참고로 73년 클래식 킷을 사셨던 분들은, 우승 기념 레플리카 50% 세일을 해드리고 있어요.”

50% 세일이라는 효과 때문일까, 우승 기념 유니폼도 무서운 기세로 팔려나가는 중이었다.

‘하긴, 선덜랜드 유니폼에 황금 패치가 붙는 일은 드물겠지. 언제 또 우승하겠어.’

브렌든이 머리를 굴리는 사이, 직원이 상냥하게 덧붙였다.

“우승 기념 킷은 내년 EFL컵이 끝날 때까지만 판매합니다. 그때만 입을 수 있는 유니폼이니까요.”

브렌든은 곧바로 납득했다. 원래 황금패치나 별 같은 장식을 유니폼에 붙일 수 있는 권리는, 보통 대회마다 한정적으로 제공되는 편이었다.

따라서 이 유니폼 또한 일종의 한정판, 사두면 가치가 오를 것이다. 투자는 이렇게 하는 거라며 브렌든은 다시 한번 스스로를 칭찬했다.

“유니폼도 두 장 포장해 주시고요··· 그런데 저건 뭡니까?”

“네, 미니 EFL컵 트로피입니다. 선덜랜드 피규어 세트에 호환됩니다.”

브렌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프로포즈를 성공시키고 행복에 젖어 있을 마일즈를 놀리기 딱 좋은 상품 같았다.

‘장난은 이렇게 치는 거지.’

우승 기념 신상품을 알차게 쓸어담은 브렌든은 대만족 상태가 되어 메가스토어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곧바로 장난감 트로피를 마일즈에게 보냈다.

[친애하는 마일즈 우드 귀하, 15년간 응원하던 팀의 첫 메이저 트로피 획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 *

[이에 약소하나마 트로피를 동봉하오니···.]

브렌든이 보낸 기념 트로피 피규어를 받아든 마일즈는 이를 갈았다.

트로피 피규어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경기장 피규어와 선수단 피규어에 호환되는 물건으로, 여러모로 악명 높은 상품이었다.

가격이 다소 비싸긴 하지만 그런 만큼 퀄리티는 훌륭해서 팬으로서는 도저히 안 살 수 없는 물건인데, 하필이면 증식한다는 점이 무서웠다. 수잔의 평가에 따르면···.

“선덜랜드 피규어 세트 말인데요. 한 개도 안 산 사람은 있어도, 한 개만 산 사람은 아무도 없대요.”

그래서 애써 피규어에서 눈을 돌리던 중이었는데, 하필이면 브렌든이 보란 듯이 트로피 피규어를 선물하고 만 것이다.

‘이제 이 피규어도 증식하겠지··· 듣자니까 수잔도 이미 한 세트를 산 모양인데···.’

혀를 차는 마일즈에게, 브렌든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마일즈, 혹시 기사 봤어? 너희들 기사 나왔던데.]

마일즈는 한숨을 쉬었다.

[봤지. 이틀 전에 나왔잖아.]

선덜랜드 지역 일간지에 두 사람의 모습이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덕분에 마일즈는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수잔과 같은 직장 동료라는 특성 때문에, 두 사람이 출근하자마자 무수한 질문의 요청이···!

그런데 브렌든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그거 말고, 오늘 새로 나온 기사.]

잠시 후 브렌든에게서 링크가 도착했다.

[화제의 커플은 15년차 시즌권 보유자로 밝혀져··· FC 선덜랜드, VIP 팬에게 최고의 예우를 다할 것.]

마일즈는 말을 잇지 못했다.

기사를 보고, 구단 측에서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그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입장할 때마다 [VIP 고객님, 마일즈 우드] 의 이름을 불러주는 CS팀 직원들이 있었으니까.

그래도, 곧바로 이렇게 대응해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구단 관계자는, 만일 두 사람이 결혼할 경우 리버뷰 브래서리를 식장으로 제공하겠다고 밝혀···.]

아래에는 부러움에 찬 댓글이 한가득 달렸다.

- 선덜랜드 진짜 통 크네. 의리도 있고.

ㄴ 의리는 저 남자도 만만치 않음. 15년이면 백투백 강등부터 2년 연속 승격 실패까지 다 보면서도 시즌권 계속 샀다는 소리 아님?

- 아, 그래서 선덜랜드 시즌권 어디서 사냐고!

ㄴ 이번에 증축하면 시즌권 늘린다던데.

- 리버뷰 브래서리? 그게 뭐임?

ㄴ 경기장에 딸린 레스토랑. 음식은 괜찮은 편. 코스요리 중에 스쿼드 스페셜이라고, 선수용 식단 있음.

ㄴ 누가 선수식을 돈 주고 사 먹음?

조심스러운 손길로, 마일즈는 댓글에 답을 달았다.

ㄴ 먹어봤는데, 칼로리 제한이 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정말 맛있었습니다. 스태프와 선수들의 노력을 짐작하게 하는 레스토랑입니다.

* * *

“구단주님! 리버뷰 브래서리 매출이 폭증하고 있습니다. 결혼식장 관련 기사 덕분입니다.”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보고하는 레스토랑 쉐프 카일을 향해,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잘됐네요. 홍보 기사는 사소한 계기일 뿐, 여러분의 꾸준한 노력 덕분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모처럼의 찬스니까, 우승 기념 메뉴라도 하나 추가하는 건 어떻습니까?”

첫 우승의 감동, 그 열기가 아직 팬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동안 최대한 선덜랜드를 더 뜨겁게 달궈야 한다.

이제 곧 우리는 프리미어리그로 올라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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