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100화 (100/422)

100화. 열기가 남아있는 동안 (2)

챔피언십 35라운드, 로더럼 원정에서 우리는 무승부를 기록했다.

1위와의 승점 차이는 7점으로 벌어졌다. 아직 2위 자리는 지켰지만, 3위와의 차이는 승점 2점 차이에 불과하다.

솔직히 말해,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로더럼은 하위권에서 강등 싸움을 벌이는 팀이었으니까.

선수단의 사기는 더할 나위 없이 드높았지만, 몸놀림이 썩 가볍지는 않았다. 피로의 여파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상대보다 EFL 컵 경기를 더 치렀기 때문에.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 메디컬 팀장 버드가 곧바로 보고를 시작했다.

“팀 전체적으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입니다. 특별히 상태가 나쁜 선수는 없습니다만.”

더 안 좋다. 그냥 다들 피곤해 죽겠다는 소리니까.

브라이언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당분간 로테이션을 더 세심하게 돌리는 수밖에는 없겠는데. 혹은··· 신인을 기용하거나.”

샐리가 차분하게 말했다.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가죠? 구단주님도 올 시즌은 승격이 목표라고 하셨으니까요. 어차피 1위나 2위나 똑같이 자동 승격이잖아요?”

심지어 3위 이하가 되더라도, 플레이오프에서만 이기면 승격할 수 있기는 하다.

그래도, 노골적으로 플레이오프를 노리는 건 곤란하다.

1위를 목표로 하다가 현실적인 이유로 2위나 3위에 머무르는 것은 괜찮지만, 처음부터 플레이오프 진출을 목표로 하다가는 오히려 미끄러질 수 있다.

“챔피언십 우승까지 노리자고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현실적으로 버거운 목표니까요. 그래도 선수들에게는 티 내지 말아주세요.”

진지하게 말하자, 샐리가 침을 삼켰다. 내 말뜻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곧바로 로저스 감독이 나직하게 말했다.

“세상에는 우승컵 하나 들었다고 파티를 벌이는 선수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 꼴은 못 봐. 시즌이 끝나면 좀 느슨해질 필요도 있겠지만, 아직은 아니야.”

“에이, 감독님. 설마 우리 선수들이 그러겠어요?”

하긴, 브라이언의 말처럼 팀의 고참들은 하나같이 프로페셔널하고, 어린 선수들은 열정과 충성심이 넘친다.

우리가 목표를 낮춰 주면 모를까, 컵 하나 들었다고 자기들끼리 풀어질 팀은 아니다.

그렇게 믿었는데···.

“오빠, 쟤들 왜 저러는 거지?”

··· 우리 선수단의 움직임이, 살짝 이상하다.

* * *

처음으로 이상 행동을 보인 선수는, 잭이었다.

“어? 내 가방이 어디 갔지? 내 가방 본 사람?”

희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잭이 가방 같은 걸 들고 다녔던가? 소시지 가방 말고는 본 적이 없는데.”

아무리 잭이 유스 출신이고 아카데미를 제집처럼 쓴다지만 그래도 훈련장에 소시지를 싸 들고 올 정도로 개념이 없지는 않다.

아무리 봐도 가방은 핑계다.

게다가··· 아무리 봐도 국어책 읽기잖아.

“혹시 트레이닝 룸에 두고 온 거 아니야?”

잭의 서툰 연기에 요니까지 가세하고 말았다. 덕분에 옆에서는 희주가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빠, 용케 쟤들 데리고 세트피스 트릭 써먹을 생각 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그러게··· 사실 두 번째는 쉬웠지만.”

처음 시도했던 아스널전의 임팩트가 너무 큰 탓에, 상대가 저절로 속아줬던 거니까.

이윽고 잭과 요니의 연기에, 스티븐과 에디, 심지어는 해리슨까지 가세했다.

설마, 어린 선수들끼리 일탈 행동을 벌이려는 건가?

“오빠, 시설관리팀 불러서 찾아준다고 할까?”

“아니, 내버려 둬.”

혹시라도 자기들끼리 몰래 파티라도 벌이려고 저러는 거라면, 현장을 덮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기왕이면 톰슨이나 크리그, 하퍼 같은 베테랑이 따끔하게 일침을 놓으면 더욱 좋고···.

“나도 같이 찾지. 다 같이 찾으면 금방일 거야.”

··· 톰슨, 너까지 대체 왜 그러냐?

관찰한 결과, 주장 페르난데스를 제외한 선수단 전원이 국어책 읽기를 시도하며 자기들끼리 어디선가 접선을 시도하려는 징후가 포착되었다.

“페르난데스 선수, 혹시 다 같이 우승 기념 파티라도 한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초대받지 못했기 때문에··· 보니까 절 따돌리려고 하는 것 같더군요.”

페르난데스의 눈빛은 싸늘했다.

“원래 고참 선수가 끼어드는 건 눈치 없는 짓이죠. 하지만 저는 팀의 주장입니다. 혹시라도 다들 벌써 풀어져서 샴페인을 따려는 거라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파티를 한다 치더라도 굳이 페르난데스 선수 몰래 따로 모인다는 건 굉장히 이상하군요.”

강렬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가진 페르난데스는, 주장으로서 팀을 잘 장악하고 있는 편이었다. 선수단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주장이었다.

겨우 파티 좀 벌이고 싶어졌다고 페르난데스를 따돌리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페르난데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 닭가슴살 셰이크만 먹는 사람을 파티에 부르진 않겠죠.”

아, 그런 이유라면 설득력이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나와 페르난데스는 조용히 우리 선수단의 뒤를 밟았다.

* * *

선수단의 행선지는 브리핑 룸이었다.

“아무리 봐도 파티를 벌이기에는 부적절한 장소 같은데요, 캡틴.”

브리핑 룸에서 할 수 있는 ‘파티’라고는 기껏해야 소시지 파티 정도다. 그런데 잭은 오늘 비장의 컴버랜드 소시지를 가져오지 않았다.

하지만 페르난데스는 철저했다.

“구단주님, 방심은 이릅니다. 한곳에 모여서 이동할 수도 있으니까요.”

속삭이면서, 우리는 창밖에서 브리핑 룸 안을 관찰했다.

쭉 둘러앉은 선수단의 앞에, 피터 톰슨이 천천히 섰다.

“다 모였지?”

톰슨, 네놈이 주동자였냐?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솔직히 나는, 우리 팀에선 네가 페르난데스 다음으로 프로페셔널한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톰슨의 입에서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멘트가 흘러나왔다.

“다들 알겠지만 이번 EFL컵 우승 트로피는 내가 들었잖아?”

“네, 톰슨 씨가 그날 매치 캡틴이었으니까요.”

사실상 EFL컵 한정으로는 클럽 캡틴이나 마찬가지였다. 톰슨은 올 시즌 EFL컵의 거의 모든 경기에 출전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EFL컵 우승 직후,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역할 또한 톰슨의 몫이었다.

원래 톰슨은 페르난데스에게 양보할 생각이었으나, EFL컵에서 1분도 뛰지 않았던 페르난데스가 완강히 거절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톰슨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오늘 너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작년, 리그 원에서 우승했을 때의 일을 기억하지?”

하퍼가 곧바로 대답했다.

“네, 그때··· 주장에게 올해는 더 큰 트로피를 들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맞아. 그래서 사실, 캡틴에게 EFL컵을 들게 했다면 완벽했을 거야. 하지만, 팀 사정상 그러지 못했잖아?”

톰슨의 이야기에 선수단은 침묵했다. 그리고 브리핑 룸 밖의 페르난데스 역시 말이 없었다.

우리의 올 시즌 최우선 목표는 EFL컵이었고, FA컵은 우선순위 밖이었다. 우리 전력으로 FA컵까지 노렸다가는, EFL컵도 들지 못했을 것이다.

FA컵에선 진작에 탈락했다. 따라서 선덜랜드가 올 시즌 차지할 수 있는 트로피는 이제 챔피언십 우승컵뿐이다.

톰슨의 연설이 이어졌다.

“우리가 EFL컵에 올인하는 동안, 다른 팀은 리그에 몰두했어. 2위로 밀려났고, 승점도 부족해. 우리가 전승해도 1위가 전승한다면 기회는 없을지도 몰라.”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톰슨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현실적으로 우승은 쉽지 않아. 하지만, 그게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러니 약속을 지킬 각오가 된 사람은···.”

에디가 불쑥 끼어들었다.

“어, 나는 약속 안 했는데.”

“Neon, si, noon.”

“무슨 소리야, 요니? 애프터눈 같은 건가?”

“비서님한테 배웠어. 너 같은 사람에게 쓰는 말이라던데.”

낮은 웃음소리가 났다.

“뭐, 약속은 안 했어도 우승은 할 겁니다. 셰필드에 순위 밀리느니 차라리 죽죠.”

“톰슨 씨. 굳이 불러모아서 다짐까지 받지 않아도 괜찮은데요. 너무 뻔한 소리잖아요?”

“팬들이 보고 계심다. 단 한 경기라도 느슨하게 뛰고 그러면 안 됨다.”

브리핑 룸 안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선수단을 보며, 나는 차분하게 중얼거렸다.

“파티 같은 건 안 하는 모양이네요.”

“···그러게요. 엿듣지 않는 게 좋을 뻔했습니다.”

페르난데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보스턴 백에서 천천히 골키퍼 장갑을 꺼내서 손에 끼웠다.

“연습이라도 하시려고요?”

“다른 이유로 끼운 거지만··· 네, 당장에라도 연습을 하고 싶군요. 열기가 남아있는 동안에요.”

“가시죠. 어울려 드리겠습니다.”

“구단주님을 수고롭게 하기는 죄송한데요.”

“제가 아카데미에 있을 때 페르난데스 선수는 스페인 주장이었죠? 유로에서도 우승하셨고··· 그래서 페르난데스 선수 상대로 한 골쯤 넣어보는 게 어릴 때 꿈이었습니다.”

“쉽진 않으실 겁니다.”

“네. 압니다··· 하지만 그게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겠죠.”

훈련장으로 향하며, 나는 생각했다.

이 선수들을 위해, 구단주로서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다고.

* * *

“보이스피싱을 방지하기 위해, 내 생년월일을···.”

“900820. 민번 뒷자리도 불러드려요?”

화면 너머에서 다미가 화사한 미소를 지었고,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이스피싱은 아닌 것 같긴 한데··· 회사에 그런 거 입고와도 되는 거야?”

문제의 발단은 다미의 복장이었다. 리미트리스 본사에 화상통화를 넣었더니, 화면 너머에서 선덜랜드 유니폼을 입은 다미가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덕분에 다미가 있는 곳이 리미트리스인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인지 구분이 안 가서, 당황하고 말았다.

“오늘은 캐주얼 데이인데요.”

언제부터 회사에 캐주얼 데이 제도가 생겼냐고 물을 기력은 없었다. 어차피 그런 것쯤, 다미가 맘대로 지정하면 그만이다.

다미 쟤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여의도를 떠나 선덜랜드에 와 있으니까.

“그리고 이 유니폼이 뭐가 어때서요? 사장님이 보내 주신 거잖아요?”

“회사에 입고 오라는 용도는 아니었는데···.”

그러자 다미가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업무상 필요해서 입은 거예요. 스폰서의 로고가 유니폼과 어울리지 않는다. 중요한 포인트였어요. 따라서 스폰서의 로고를 직접 유니폼에 맞춰 보면서 후보를 선정했죠.”

다미가 웃으며 인쇄물을 잔뜩 흔들어 보였다. 선덜랜드 유니폼 패턴을 배경으로 인쇄된, 유명 기업들의 로고들이다.

“그거랑 직접 유니폼을 입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컨펌은 사장님이 하실 테니까요.”

다미는 보란 듯 유니폼에 로고를 가져다 댔고, 덕분에 시선이 잠깐 가슴 부근에 향했다··· 가끔 나는, 다미 쟤가 순혈 한국인이 맞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스폰서 후보는 다음 원칙으로 선정했어요. 기업의 로고가 유니폼과 보색이 아닐 것. 그리고 최소한 페북과 비슷한 수준의 인지도가 있는 기업일 것.”

“그래야 하나?”

혹시라도 리미트리스의 강압에 의해 스폰서를 맡았다는 뒷말이 나오지 않으려면 대기업을 고르긴 해야 하지만··· 굳이 페북과 비슷한 인지도여야 할 이유는 없을 텐데.

다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요. 유니폼과 로고가 안 어울린다는 이유로 기각이라니, 최다미 일생일대의 굴욕이거든요.”

즉, 어디까지나 ‘새 스폰서가 페북보다 더 조건이 좋은 곳’이라 골랐다는 명분을 원한다는 모양이다.

“여러 회사와 접촉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테슬라를 추천드려요. 로고 디자인이 마음에 들고, 옵션도 괜찮아요.”

“옵션?”

“테슬라를 선택할 경우, 선수단 전원에게 최신형 차량을 지급하고 경기장에 슈퍼차저를 짓는 옵션이 따라오는데요.”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세단이나 슈퍼차저 건설비는 내 돈으로 해결할 테니, 그만큼 광고비나 더 얹으라고 해.”

“그러실 줄 알고, 미리 그 조건으로도 협의를 진행했어요··· 그리고 슬리브 스폰서인데요. 아마존과 넷플릭스가 희망하고 있어요.”

네임밸류로 보면 당연히 아마존이다. 제시한 금액도 아마존이 살짝 많아 보인다. 다만···.

“아마존 정도 기업이 슬리브 스폰서 지망이라는 게 조금 걸리는데.”

“굳이 선덜랜드 스폰서를 하고 싶진 않지만, 어디까지나 리미트리스와의 관계를 봐서 해준다는 느낌이네요.”

“그럼 넷플릭스는?”

다미가 웃으며, 소매에 넷플릭스 로고를 가져다 대 보였다.

“넷플릭스는 자기들이 먼저 연락해 왔어요. 이전에 다큐멘터리로 좋은 관계를 맺은 만큼, 앞으로 서로 시너지가 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데요.”

마침 우리는 자체 영상팀을 보유하는 등, 여러모로 영상 쪽을 신경 쓰던 팀이었다. 마침 상대가 원하기까지 한다면 시너지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넷플릭스로 하지.”

그러자 다미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아 맞다. 사장님, 어디까지나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했을 때의 조건으로 협의한 거예요. 승격 못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승격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생각하지만, 100%는 아니다. 우리는 경쟁 팀들보다 훨씬 가혹한 일정을 소화했고, 피로가 쌓여 있다.

1위와 2위는 자동 승격이지만, 3위부터는 승격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된다.

웸블리의 분위기에는 이미 익숙해졌다. 그리고 플레이오프 특유의 단기전에는 챔피언십의 어떤 팀보다도 강하다고 생각한다. EFL컵에서 우승하면서 증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다. 공은 둥글고, 상대적 약팀도 단기전에서는 강팀을 잡아낼 수 있다. 이 또한, 우리가 EFL컵에서 증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어제까지라면 조금 다르게 대답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모른다. 방심하긴 이르다는 식으로.

하지만 나는 오늘, 우리 선수단의 각오를 확인했다. 2부 리그 우승을 위해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선수들을.

그 열기가 남아 있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반드시 승격할 테니까,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조건만 신경 쓰면 돼.”

그러자 화면 너머에서 다미가 배시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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