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101화 (101/422)

101화. 라스트 댄스 (1)

<내가 사용한 유일한 도핑은 바로 끊임없는 노력이었다 - 로베르토 바조>

프리미어리그 진출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확신은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승격 준비를 착착 진행해 나갔다.

“구단주님··· 테슬라 로드스터 28대가 주차장에 도착했는데요.”

왜 28대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1군 선수단은 스물다섯 명. 감독과 수석코치까지 지급하더라도 한 대가 남는데?

“혹시 한 대는 희주 네가 사적으로 쓰려고 끼워 넣은 거···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물어보려다 말았다. 물론 희주는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애지만, 테슬라와의 계약은 다미가 진행했다.

“우리 1군 선수는 스물여섯 명이랍니다. 갑부 오라버님.”

그러면 유에파 규정 위반··· 아, 해리슨이 있었지. 21세 이하 선수는 25인 제한에 안 들어가니까 상관없다. 이래서 어린 선수, 유망주가 좋은 거지.

물론 유망주에게는 여러 부작용도 있다.

다행히 가장 대표적이며 치명적인 부작용, ‘터지지 않을 수 있음’은 선수의 가치를 볼 수 있는 내게는 전혀 해당하지 않지만, 다른 부작용은 전부 평등하게 적용된다.

일단 잘 키우기 힘들고, 어느 정도 키우기 전까지는 도저히 즉시 전력감이 될 수 없다는 점··· 이번 경우는 아직 차를 몰 나이가 아니라는 부작용도 추가된다.

해리슨의 로드스터는 앞으로 2년간은 구단 주차장에 세워 둬야겠네.

상황을 파악한 희주가 기막혀 했다.

“오빠, 금액 확인하고 사인한 거 아니었어? 어떻게 로드스터 몇 대 주문했는지를 모를 수가 있어?”

“오차인 줄 알았지.”

“한 대에 이십만 달러짜리가!? ··· 아, 오빠한테는 오차 범위 맞구나.”

희주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조엘이 달려 들어왔다.

“클럽하우스 리모델링이 끝났습니다.”

조엘의 안내에 따라 클럽하우스를 살피러 나갔더니, 그새 풍경이 꽤 많이 바뀌었다.

“우선 정원의 조경을 개선했습니다. 숙소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게요! 느낌이 확 다르네요? 화사한 느낌이 들어요.”

정원 조경 같은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나는 잘 모르겠지만, 희주는 퍽 익숙하고 편안해 보였다. 마치, 낯선 클럽하우스에서 친숙한 인테리어의 향기가 느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 혹시 우리 시공 맡은 업체에서 백화점 명품관도 디자인했나?

조엘은 잠시 후 우리를 클럽하우스 내부로 안내했다.

“선수들 방은 전부 지정실을 씁니다. 문은 얼굴 인식으로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만, 지금은 마스터키를 쓰겠습니다.”

조엘이 곧바로 문을 열고 우리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가 손을 놓자 문이 천천히 움직였고, 닫히기 전에는 살짝 멈췄다.

“혹시라도 선수들이 발이 끼는 일이 없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네요.”

선수 기숙사에서 숙박 중, 문짝에 발이 껴서 다쳤다고 하면? 황당한 부상 사유 세계 랭킹에 들어갈 게 확실하다. 당연히 신경 써야겠지.

“숙소의 조명은 시간에 따라 자동으로 변경되며··· 왜 그러십니까?”

조엘이 나와 희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마 우리 둘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아서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계속 안내해 주시죠.”

이유는 자명하다··· 우리는 일단 신발부터 벗어야 마음이 편하거든!

하지만 영국에선 영국 법을 따라야겠지. 혹시라도 동양인 선수가 입단하면, 따로 현관을 설치해주면 될 일이다.

“일부러 테이블이나 침대를 걷어차려고 들지 않는 한, 다칠 일은 절대 없습니다.”

선수의 발가락이 닿지 않게 침대 다리를 안쪽으로 밀어 넣거나, 각종 가구의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하고 완충재를 꼼꼼하게 넣는 등의 배려가 이루어졌다.

“방마다 백 인치 TV를 넣었습니다. 한국제 최고급 제품입니다. 다만, 각도상 침대에서는 볼 수 없게 설치했습니다.”

인테리어 수준은 별 다섯 개 호텔급. 음, 이 정도면 만족할 수 있다. 나는 마침내 오케이 신호를 보냈다.

“수고했습니다.”

조엘의 표정은 의기양양했지만, 그 옆의 인물은 퍽 지쳐 보였다. 건축업체 파퓰러스의 수석 디자이너, 타일러의 안색이 영 좋지 못했다.

그의 찌든 얼굴이나, 희미하게 느껴지는 드링크 냄새에서, 과로하는 사람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우리 분석실에 가면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래서 오히려 기대감이 들었다.

조엘은 허례허식이 심한 성격이 아니다. 리모델링 공사 보고에 건설업체 직원을 일부러 불러냈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굳이 파퓰러스의 수석 디자이너가 동행한 이유는, 따로 용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눈이 마주치자 타일러가 피곤에 찌든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보고드립니다. 경기장 증축을 예정보다 빨리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천 석짜리 블랙캣츠 스탠드가 완공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로써, 이제 우리 수용인원은 ‘그 팀’보다 많아진다.

“좋은 소식이군요. 팬들은 언제부터 들어올 수 있습니까?”

“4월 20일 이후입니다.”

시선을 보내자, 희주가 재빨리 대답했다.

“44라운드부터 쓸 수 있겠네. 45라운드는 원정이지만, 46라운드는 홈이야.”

즉, 챔피언십에 머무르는 동안 두 경기 정도는 블랙캣츠 스탠드를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판을 키워야겠군요.”

그동안 챔피언십 관중 동원 관련 기록은 죄다 뉴캐슬의 것이었다. 단일 경기에서 세인트 제임스 파크를 가득 메웠던 기록이 있고, 평균관중 동원에서도 우리보다 위였다.

요즘은 우리도 매 경기 만석을 찍고 있지만, 수용인원의 한계로 정식 관중은 사만구천 명. 반면 뉴캐슬은 시즌 평균 오만 명을 넘겨 본 팀이다.

지금의 우리는 넘을 수 없는 기록이고, 사실 딱히 깨고 싶지도 않다. 뉴캐슬의 평균관중 기록을 깨기 위해서는 챔피언십에 한 시즌 더 머물러야 할 테니까.

하지만 단일 경기 기준이라면, 뉴캐슬의 관중 동원 기록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그 팀’ 상대로는 일단 뭐든지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게 선덜랜드 종특이니까 말이지.

44라운드에 맞춰 관중을 최대한 끌어들일 방법을 고민하면서, 나는 클럽하우스를 빠져나왔다.

* * *

구단 차원에서 승격 준비를 진행하는 사이, 우리 선수단 역시 분투하고 있었다.

그래도 36라운드까지는 일주일이라는 시간 여유가 있으니 조금 숨을 돌릴 수도 있겠지만, 37라운드와 38라운드는 사흘, 나흘 간격으로 경기를 치르는 일정이었다.

지옥 같다 못해 아주 주옥 같다. 도대체 누가 짰는지 원, 참 가족 같은 협회다.

챔피언십 팀들이라면 누구나 감수하는 일정이라지만···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남들보다 컵 대회 하나를 더 뛰었다.

그런데도 선수단의 분투는 놀라웠다. 브라이언조차 감탄할 정도로.

“브로, 나 몰래 무슨 약이라도 풀었어?”

···그랬다가 도핑 테스트 걸리지. 혹시라도 문제 생길까봐 보약도 못 먹였는데.

아, 참고로 우리 삼계탕에는 아무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코리안 트래디셔널 치킨수프 만세다.

그렇다고 아무런 도핑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선수들이 사용한 도핑은, 아마 동기부여겠지.

혹은, 감정이거나.

존경할만한 주장, 페르난데스에게 우승 트로피를 들게 해주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우리 선수단은 똘똘 뭉쳤고, 가혹한 일정에도 불평 없이 죽기 살기로 달리고 있다.

선수단의 작당모의를 본의 아니게 확인한 페르난데스 역시, 동료들의 마음에 호응하고 있었다. 이번 3연전 내내 페르난데스는 그야말로 귀기가 서린 것처럼 분투했다.

평소처럼 능숙하게 선수들을 조율하고 독려하는 것은 물론, 직접 화려한 선방 쇼를 몇 번이나 선보였다. 위기도 몇 번 있었지만, 실점은 하지 않았다.

세 경기 모두 클린시트를 해냈지만, 완봉이라는 단어가 주는 여유로운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골을 내주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듯한 기백, 날 선 긴장감이 전해졌다.

아, 어쩌면 금융치료도 일부 선수에게는 도핑 효과로 작용했을 것이다. 에디는 새로 지급받은 로드스터에 아주 대만족한 모양이니까.

덕분에 세 경기에서 승점 9점을 챙겼고, 1위와의 승점 차이를 5점으로 좁히는 데 성공했다.

그래도 일정 자체의 가혹함은 어쩔 도리가 없어서, 리그 39라운드를 앞둔 시점에서는 마침내 부상자가 나오고 말았다.

부상당한 선수는 크리그였다.

“최소 열흘 정도는 쉬면서 관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진통제 한 방 놔 주시면 괜찮을 겁니다. 계속 뛸 수 있습니다.”

크리그의 요구에, 메디컬 팀장 포터가 곧바로 응수했다.

“정 그러면 감독님 사인받아 오세요.”

물론, 로저스 감독은 고려할 가치도 없다는 것처럼 진통제 요구를 일축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선수의 혹사, 부상에 대해 무척 깐깐한 팀이다.

그렇게 크리그가 두 경기를 빠지게 되면서, 팀에는 대체자 문제로 비상이 걸렸다.

크리그는 우리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고, 지난 시즌 리그 원 득점왕 출신이기도 하다.

비록 챔피언십에 올라오면서 득점 빈도는 퍽 줄었지만, 챔피언십에서는 수준급 공격수에 속한다.

우리 팀에서도 소중한 인재고, 당장 대체자가 없다는 점에서 보면 페르난데스나 톰슨을 잃는 것보다도 뼈아픈 손실이었다.

브라이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요니와 스티븐을 최전방으로 보낼까 싶은데요. 크리그의 득점력을 메꾸려면,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그 둘을?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혹시 스티븐과 요니를 빅 앤 스몰로 쓰겠다는 소리인가 싶어서.

샐리가 고개를 저었다.

“요니는 펄스 나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지만, 정통 공격수는 아니에요. 요니를 공격수로 써볼 거라면 스티븐은 윙에 놔두는 게 나아요.”

샐리의 입을 떠난 소리는 거기까지였지만, 입술은 좀 더 움직였다. 모양으로 보면 내용은 뻔하다. 축알못이라는 뜻이다.

브라이언 역시 곧바로 응수했다.

“펄스 나인? 찬스메이킹과 연계 능력에 속으면 안 돼. 요니는 미끼가 되기보다는 역으로 파고드는 타입이지. 그러니 스티븐과 투톱으로 쓰는 게 나아.”

브라이언도 딱 거기까지만 말했지만, 입술은 좀 더 움직였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해도 되겠지.

“공격 상황은 그렇다 치고, 우리 수비 상황은요? 그동안 스티븐을 왜 윙포워드로 썼는지 잊으신 거 아니죠?”

스티븐은 판단력에 약점이 있는 선수다. 약 1년간 샐리의 세뇌 교육을 받아 개선되고는 있지만,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았다.

특히 수비 상황에서의 역할이 한정적이었다. 원래 풀백 출신이던 특성상, 스티븐은 측면에서 상대 풀백을 견제하는 플레이는 능숙하지만 그 외의 수비에는 서툴다.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브라이언은 오히려 혀를 찼다.

“이렇게 머리가 굳었으니 겨우 분석관이나 하는 거지. 그야 수비할 때는 옆으로 넓게 벌려서 상대 풀백을 견제시키면 그만이잖아?”

“축알못 코치님이 떠올릴만한 수준의 생각을 저도 안 해본 건 아닌데, 그러려면 10번 롤이 비잖아요?”

무슨 소리인지 따라잡기 힘들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나는 간신히 두 사람이 생략한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스트라이커로 출전한 스티븐이 수비 상황에서 상대 풀백을 상대하려면, 윙어가 없는 포메이션이라는 뜻인데, 우리 팀 사정을 고려하면 다이아몬드 4-4-2겠지. 다이아몬드의 꼭짓점을 맡을 선수는 당연히 요니다.

크리그 대신 요니가 최전방에 서는 게 전제이므로, 다이아 4-4-2를 쓸 수 없다는 게 샐리의 지적이고.

젠장. 전술 천재들 같으니라고.

“알아듣는 자네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는데··· 저 친구들은 전술 짜는 게 일이지만, 자네는 구단주잖나?”

로저스 감독이 미소와 함께 나를 위로하는 사이에도, 샐리와 브라이언의 논쟁은 계속 이어졌다··· 내버려두면 슬슬 시간과 공간 이야기까지 거슬러 오를 낌새다.

분위기를 전환해줄 필요가 있겠지 싶어서, 슬쩍 화두를 던졌다.

“그러지 말고, 절충해보죠.”

구단주라는 내 신분 덕분에, 곧바로 샐리와 브라이언이 논쟁을 멈추고 내게 시선을 보냈다.

“브라이언, 크리그가 없는 조건에서 우리 팀의 최선은 빅 앤 스몰 투톱이고, 스티븐을 톱으로 올리려면 4-4-2 다이아몬드가 최상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맞아. 역시 브로야. 말이 잘 통한다니까!”

신나서 떠드는 브라이언에게서 고개를 돌려, 이번엔 당장에라도 불만을 드러낼 것 같은 샐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경우 요니의 베스트 포지션은 투톱이 아니라 다이아몬드의 꼭짓점이라는 게 샐리 생각인 거죠?”

그러자 샐리의 표정도 누그러졌다.

“물론이죠. 역시 구단주님이 코치를 하시는 게 맞다니까요?”

“바지 코치 시켜먹으려고 그러는 거 다 압니다··· 아무튼, 답 나왔네요. 포메이션은 4-4-2 다이아몬드. 그리고 스몰 역할에는 요니 대신 다른 선수를 넣으면 어떻습니까?”

브라이언과 샐리가 곧바로 침묵했다. 전술 천재 두 사람이라면, 내가 말하는 ‘다른 선수’가 누구인지 곧바로 짐작했을 테니까.

로저스 감독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졌다.

“다른 선수라면?”

나는 숨을 한 번 들이쉰 다음 대답했다.

“해리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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