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108화 (108/422)

108화. 돌아가야 할 곳으로 (2)

챔피언십 46라운드, 최종전 상대는 스토크였다.

스토크의 올 시즌 성적은 이름값에 미치지 못했고, 챔피언십에서도 6위에서 7위 사이를 오가는 팀이었다.

스토크 감독이 경질된다는 소식을, 우리는 누구보다 먼저 확인했다. 아마 스토크 관계자를 제외하면 가장 빠르게 확인했을 것이다.

계기는 사소한 것이었다.

“스토크라··· 까다롭겠는데.”

리그 일정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더니, 희주가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기껏 6, 7위 오가는 팀이니까 별로 경계할 필요 없지 않아? 우리는 챔피언십 1위잖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가슴을 펴는 희주를 향해, 나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글쎄··· 오히려 4위나 5위쯤 하는 팀이었으면 정말로 별 신경 안 썼을 텐데.”

챔피언십 6위까지는 승격 플레이오프 티켓이 주어진다. 즉, 스토크 입장에서 최종전은 승격 플레이오프에 가느냐 마느냐가 달린 일전이다.

즉, 스토크는 죽기 살기로 덤벼들겠지.

마침 우리로서도 놓칠 수 없는 경기였다. 1위를 탈환하긴 했지만, 셰필드와의 승점 차이는 0, 혹시라도 미끄러지면 트로피를 코앞에서 빼앗기게 된다.

“스토크에 대해서는, 아주 사소한 정보라도 꼼꼼하게 챙겨 줘.”

뭔가 사소한 거라도 좋다는 내 지시를, 희주는 곧바로 구단 관계자들에게 전달했다.

우리 스태프들은 곧바로 소식을 물어왔다.

“구단주님, 스토크 훈련장에서 뭔가 비밀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데요? 정보 통제의 정도가··· 거의 39라운드 선덜랜드급이라더군요.”

39라운드면, 해리슨이 데뷔전을 준비하던 무렵이다. 그 정도 정보통제라면 뭔가 강수를 준비하는 게 틀림없다.

혹시 유소년이라도 데뷔시키려나 싶어서 좀 더 캐보니, 뜻밖의 정보로 이어졌다.

“스토크 감독이 짐을 쌌다고 합니다.”

“근거 있습니까?”

“감독 집무실에 누런 종이박스가 두 개 들어갔습니다.”

평상시였다면 지나친 억측이라고 일축했겠지만, 이번에는 무시하기 어려웠다.

훈련장의 강도 높은 정보 통제, 승격 플레이오프 막차를 타야만 하는 6위 팀의 상황까지 고려하면 스토크는 무조건 감독을 바꿀 생각이라고 봐야 한다.

소식을 전해 들은 브라이언이 머리를 긁었다.

“성가시겠네. 감독 경질은 그 자체만으로 버프가 되거든. 팀의 분위기가 바뀌고, 선수들이 죽기 살기로 뛰는 효과가 있지.”

곤란하다는 듯한 브라이언과는 달리, 샐리는 퍽 냉정해 보였다.

“뭐, 통계의 허점도 있겠지만요. 감독이 경질당할 정도면 애초에 팀 상태가 바닥인 거죠. 나빠질 데가 없으니 뭘 해도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어요.”

브라이언과 달리 샐리는 감독 경질 버프의 효과에는 부정적인 것처럼 보였다. 듣고 보니 일리도 있는 말이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겠지. 혹시라도 발목 잡히면 코앞까지 가져온 트로피가 날아가는 수가 있거든.

조용히 결의를 다지는 사이, 샐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누구래요?”

결국 샐리도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옆에서 희주가 재빨리 보고했다.

“아직 누군지는 몰라요. 공식적으로는 아직 감독 안 바뀌었고요.”

“흠··· 감독 선임이 늦어지나?”

“혹시, 경질이 루머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우리를 교란하려는 목적으로 루머를 흘려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생각하기엔 수법이 너무 번거롭다.

“그보다는··· 우리에게 정보를 주지 않으려고 수작을 부리는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경질은 이미 이루어졌을 것이고, 발표만 미루는 거겠죠.”

대답하면서, 나는 스토크 차기 감독으로 거론되는 후보 목록을 눈으로 훑었다.

맨 위에 계시는 껌 좀 씹던 영감님··· 은 다행히도 이미 은퇴했고, 혹시 복귀하더라도, 치매라도 오지 않은 이상 스토크 감독을 맡을 이유는 없다.

같은 이유에서 나는, 유치원 원장님도 아웃시켰다.

그렇게 감독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을 살펴보던 내 눈에, 문득 한 명의 이름이 눈에 띈다.

라일 파커.

내가 구단주로 오기 전까지 선덜랜드의 감독이었던 인물의 이름을 발견하고, 나는 싸늘하게 웃었다.

“이 사람이겠네.”

스토크가 굳이 감독을 바꾸는 이유, 그리고 그렇게 감독을 바꾼다는 정보를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감추는 이유는 뻔하다.

최종전에서 승점을 가져가기 위한 목적이겠지. 그 상대는 당연히 우리일 테고.

우리를 저격하려는 목적이라면, 우리 팀을 지도했던 감독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희주가 치를 떨었다.

“그 인간 싫은데. 진작 묻어버렸어야 했나 봐··· 브라이언 씨, 감독은 어디다 묻어야 해요?”

“테크니컬 에어리어가 좋겠죠. 기왕 묻을 거면 빨리 묻어버리는 게 좋습니다. 파커는 선덜랜드에 대해 아주 잘 아는 감독이니까요.”

대답하는 브라이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기가 죽어 보였다. 마침 파커에 대한 평가, 그러니까 선덜랜드에 대해 아주 잘 아는 감독이라는 표현도 살짝 걸리고.

나와 똑같이 느꼈는지, 샐리가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왜요, 코치님. 자신 없어요?”

“자신이 없다기보다는 확신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러자 샐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고, 희주는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다음에 이어질 말을 짐작하기에, 나는 슬쩍 자리를 떴다.

“브라이언 씨, 우리 오빠가 오자마자 한 일 기억나요?”

“그라운드에 왔었죠.”

“그런 디테일 말고, 구단주로서요.”

파커를 자르고, 브라이언을 코치로 삼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브라이언이 훨씬 낫다고 믿었으니까.

팀에 대한 애정이나 성실함은 물론, 재능만 따져도 파커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친구끼리 이런 이야기를 대놓고 하기는 너무 낯 뜨겁고, 남이 내 안목 운운하는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기도 민망하다.

구단주실을 빠져나오는 찰나, 문틈으로 브라이언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긴, 제가 이렇게 굴면, 썬의 안목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 되겠네요.”

다 좋은데, 기왕 나 나가길 기다렸으면 문 닫고 해라. 문 닫고.

* * *

며칠이 지난 후, 스토크는 우리 예상대로, 감독을 라일 파커로 변경했음을 알렸다.

오피셜 공개 전까지는 신중했던 스토크였지만, 일단 정보를 풀어놓기 시작하니 거침이 없었다.

스토크는 곧바로 언론 플레이를 시작했다.

[명장 라일 파커, 선덜랜드 시절을 회상하다.]

시티 오브 선덜랜드에서의 좋은 추억이나 팬들의 환대가 지금까지도 그립다는 식의 개소리를 구구절절 늘어놓은 기사였다.

“무슨 의도지? 새삼 사과라도 하고 싶다는 거야?”

기사를 읽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희주를 위해, 슬쩍 설명해 두었다.

“최종전은 우리 홈에서 하니까 말이지.”

자기는 좋은 감독이었으며, 그저 한 걸음 차이로 승격에 실패했을 뿐이라고··· 그렇게 어필하는 이유는 뻔하다.

사만구천 석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이제 스탠드 증축으로 오만삼천 석이 된 빛의 경기장에 모여들 우리 팬들이 무섭다는 뜻이겠지.

그러니, 우리 팬들의 독기를 조금 빼고 싶었을 것이다.

내 추측을 전해 들은 희주의 눈빛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그거 풀어버릴까? 예전에 파커 잘라버릴 때 확보한 자료들.”

“놔둬.”

이번엔 훨씬 좋은 게 있거든.

우리는 곧바로 영상으로 응수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당신과 함께했던 순간을@선덜랜드_오피셜]

파커 재임 시절, 선덜랜드가 치렀던 드라마틱한 경기 하이라이트와, 그에 대한 팬들의 반응을 모았다.

···다시 말하면, 승격에 실패하고 팬들 우는 영상이라는 뜻인데, 딱히 구하기 힘든 영상은 아니었다. 선덜랜드 다큐멘터리에서 발췌하면 그만이니까.

명확한 메시지에, 곧바로 SNS가 뜨거워졌다.

- 그러고 보니 아직도 라일 파커 원하는 사람 있음?

ㄴ 사진은 원함. 샌드백에 붙이게.

- 그런데 정말로 블랙캣츠 스탠드 열린 거 맞아? 왜 티켓이 없어?

왜냐면 전 좌석 매진이니까요, 고객님.

풋볼 스퀘어에서 진 치고 기다리던 사람들만 안으로 흡수해도 사천 석 정도는 뚝딱이거든.

[블랙캣츠 스탠드를 VR로 즐겨보세요! #내년에도 #증축 @선덜랜드_CS팀]

[1위 탈환한 날 풋볼 스퀘어 기억해? 그래서 말인데, 1위 확정하는 날은 어떻게 되려나? #밤새 #달려보자 @선덜랜드_오피셜]

SNS를 통한 무차별 공세에, 원래부터 뜨거웠던 경기장 주변은 그야말로 과열 직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챔피언십 우승을 위한 마지막 관문을 향했다.

챔피언십 최종전, 46라운드. 선덜랜드 대 스토크.

경기장을 메운 오만삼천 명의 팬들, 그리고 풋볼 스퀘어와 축구 펍들을 가득 메운 선덜랜드 팬들의 목소리가 온 공기를 진동시켰다.

프리미어리그 승격은 이미 확정이지만, 챔피언십 트로피까지 들고 올라가느냐 마느냐에 팬들의 관심이 옴팡지게 모인 것이다.

하물며, 최종전 상대 스토크를 이끄는 인물은, 전임 감독 라일 파커이니, 장작이 타오르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팬들의 기대만큼 두 팀은 시작부터 뜨겁게 충돌했고, 경기의 양상은 비등하게 흘러갔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 흐름에 처음으로 변화가 생긴 건, 전반 15분의 일이었다.

* * *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서서, 브라이언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경기의 흐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토크의 대응이 그의 예상보다 퍽 훌륭했던 탓이다.

‘게다가··· 느낌도 어째 영 좋지 않고.’

전술적으로 묘수를 둔다기보다는, 선덜랜드의 약점을 찾아서 후벼파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물론, 원인은 짐작이 간다.

라일 파커의 소행이겠지.

“읽어 보셨나 보네요. 예전에 제출했던 분석 보고서. 줄곧 반응이 없길래 계속 무시당한 줄 알았는데요.”

슬쩍 야유하자, 라일 파커는 뻔뻔하게 응수했다.

“요즘 자네가 부쩍 맹활약을 한다길래, 혹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나 싶어서 확인했지. 다시 읽어보니 꽤 괜찮더군··· 힌트도 많고.”

힌트라는 말의 의미는 명백했다.

2년 전, 브라이언은 라일 파커 밑에서 전력분석관으로 일했었고, 수많은 분석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경기 분석 보고서에는 아무래도 분석가 개인의 색깔이 묻기 마련이다. 좋아하는 축구 취향부터, 전술을 짜는 스타일까지.

“전부 내다 버리신 줄 알았는데요.”

“요즘은 디지털 시대 아니겠나. 스캔 떠 놨었지.”

“언젠가 선덜랜드를 상대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요?”

슬쩍 야유하자, 라일 파커는 의외로 진지하게 답했다.

“사람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 자네가 팀을 떠날 수도 있었지.”

“하긴, 그럴 수도 있었겠군요.”

브라이언은 심드렁하게 대답했지만, 사실은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혹시라도 이희성의 도착이 하루만 늦었으면, 아마 브라이언이 잘렸을 테니.

하지만 이 순간, 브라이언의 관심사는 자신, 혹은 라일 파커의 거취 문제가 아니었다.

‘스캔을 떴다고? 그랬었단 말이지?’

예전에 파커가 보이던 태도와는 너무나 상반된 행동이었다.

당시의 파커는 브라이언을 축알못으로 취급했고, 보고서는 항상 제대로 읽지도 않고 집어 던졌다. 속마음은 어떻든, 적어도 겉으로는 그런 태도를 유지했다.

‘그런 사람이, 내 보고서를 스캔 떴다고?’

브라이언이 줄곧 생각해 왔던 의문, 그리고 그의 친구 이희성은 절대 알려주지 않았던 이야기가 있다.

[라일 파커는 어째서 하루 만에 잘렸던 건가?]

브라이언이 아는 이희성은 결코 가혹한 타입이 아니다. 단순히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감독을 잘라버릴 리는 없다.

‘능력이 없어서··· 라는 이유도 아니었겠고.’

정말 끔찍하게 싫어하는 감독이지만, 그래도 파커의 능력에 대해서는 브라이언도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었다. 당시의 선덜랜드는 파커보다 나은 감독을 구하기 힘들었다.

그런데도 친구는 파커를 하루 만에 잘라 버렸고, 자기 보고서를 무가치하다고 무시했던 사람은, 지금 그 보고서의 내용을 토대로 브라이언을 압박해오고 있다.

이쯤 되면 브라이언도 슬슬 눈치챌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래도··· 스포츠를 한다는 사람이 태업까지는 하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었지만.’

브라이언이 쓴웃음을 짓자, 그 표정을 오해한 파커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옛 감독과 전력분석관은 나란히 그라운드를 응시했다.

“스토크를 맡은 지 겨우 일주일이죠? 이 정도로 단단하게 버틸 줄은 몰랐는데요.”

“뭐, 자네 보고서가 그만큼 좋았나 보지. 확실히 자네는 분석가로서는 특출난 소질이 있어. 그러니 코치로서도 곧 대성할 수 있을 거야.”

“칭찬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많이 분석했던 경기가 누구 것인지, 혹시 잊으셨습니까?”

이희성이 구단주로 오기 전, 브라이언이 전력분석관으로 머무르던 시절.

혹은, 라일 파커가 선덜랜드를 엉망으로 만들던 무렵.

당시의 브라이언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줄곧 갇혀 있었다. 잔디를 깎고, 매점을 관리하고, 바에서 농약 맛 칵테일을 만들어내느라 원정 경기에 동행하지 못했었다.

당시, 그가 분석할 수 있었던 유일한 자료는 전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치러진 경기들이었다. 상대는 매번 바뀌었지만, 홈팀은 절대 바뀌지 않았다.

그 홈팀의 감독이었던 사람이 지금 그의 옆에 있다. 스토크의 감독으로서.

‘고작 보고서 몇 장으로 남의 전술을 간파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어째서 자기 전술은 간파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브라이언은 차분하게 신호를 보냈다.

“플랜 B.”

지시에 따라 움직임을 바꾸는 선덜랜드 선수들을 바라보며 브라이언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 그가 준비한 플랜은 아직 일곱 가지가 남아 있었다. 라일 파커의 축구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라일 파커 본인보다도, 훨씬 더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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