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116화 (116/422)

116화. 내일을 위한 투자 (1)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그 사람은 끝난 것이다.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같은 축구선수라고 해도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사람마다 전부 다르다. 예를 들어 발롱도르 6회에 빛나는 축구의 신이라 불리는 선수조차 활동량이나 높이에는 약점을 보이는 것처럼.

투자자도 마찬가지다. 잘하는 종류의 협상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종류의 협상이 있다.

내 경우 구단 상대로 선수를 사고파는 협상과, 큰 틀에서의 판짜기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다.

선수의 잠재가치가 얼마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지만, 투자자라는 직업 때문이기도 하다. 기업 상대로 지분을 사고 팔아보면, 선수 장사는 정말 쉬운 협상에 속하니까.

반면 에이전트 상대로 주급을 협상하는 식의 디테일에는 약한 편이다. 왜냐면···.

“주급 협상이요? 맡겨주세요. 제 전문 분야니까요.”

··· 그동안 리미트리스의 연봉 협상을, 다미에게 전부 떠맡겼기 때문이다.

투자회사 특성상 보통 직장보다는 급료가 센 편이지만, 그래도 회사의 수익에 비하면 인건비는 푼돈에 가까웠다. 리미트리스의 경쟁우위는 창업주의 가치를 보는 내 눈에서 나오지, 고용된 애널리스트들이 만드는 게 아니니까.

그러니 투자자 시절엔, 인건비를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고, 사실 구단주로 변신한 뒤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단 스태프에게는 경쟁팀 대비 후한 대우를 해줬지만, 그래봐야 스태프 월급. 인건비가 신경 쓰일 정도의 금액은 아니었다.

그리고 선수 주급도 뭐, 태반이 하부 리그 선수들이라 크게 신경쓸 정도는 아니었고.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선덜랜드는 이제 1부 리그 팀이고, 올 시즌부터는 1부 리그급 선수를 데려올 것이다. 주급도 그에 맞는 수준으로 올려야 선수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그렇다고 막 퍼줄 수도 없다. 기존 선수들과의 주급 균형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밀한 계산, 디테일을 살린 협상이라면 아무래도 나보다 다미가 훨씬 낫다.

하물며, 깐깐하기로 업계에 소문이 자자한 독일인 에이전트를 상대하는 거라면···.

“사장님은 기본적으로 직원 대우가 너무 후해요. 하물며 프로 운동선수라면··· 도대체 얼마나 퍼 주실지 걱정이긴 했어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다미 너 정도로 받아가는 선수는 거의 없어.”

그러자 다미는 뭐가 좋은지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저한테는 특히 후한 편이시니까요.”

네 이마에 얼마가 붙어 있는지 알면, 후하다는 소리는 절대 못 할 텐데.

“그럼 아예 이 기회에 이직할까요? 선덜랜드 재무담당자로요.”

다시 말하지만 사람마다 잘하는 일은 다 다르고, 최다미는 리미트리스에 있을 때 가장 빛난다. 그러니 리미트리스에 계속 묶어둬야 한다. 가급적 종신으로.

“선덜랜드와 리미트리스 SM&C가 에이전트 계약을 맺는 방식은 어떨까?”

“좋은 생각이세요! 구단 측 협상을 대리해 주는 에이전트도 있는 모양이니까요.”

다미는 퍽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아예 선덜랜드 구단 사무실에 죽치지는 못하겠지만, 선수의 주급 협상 때마다 슬쩍슬쩍 영국 오겠다는 정도의 계산은 하고 있겠지.

뭐, 그 정도는 휴가인 셈 치자. 다미 쟤는 평소에 연차도 안 쓰니까.

“그럼, 곧바로 협상에 착수할까요?”

“그 전에, 마인츠에 오퍼부터 넣는 게 순서야.”

“그렇군요··· 축구는 어렵네요.”

다미가 무서운 기세로 시무룩해지려는 것 같아서, 재빨리 덧붙였다.

“구단끼리의 협상은 내가 직접 진행할 거야.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고. 조금만 기다려 봐.”

“네, 저 기다리는 거 완전 잘해요.”

뭐, 기다림은 투자자의 중요한 덕목이니까. 특히 리미트리스같은 타입의 투자회사는 긴 호흡의 투자를 선호한다.

슬슬 영상통화를 끝내려니까, 다미가 웃었다.

“아 맞다! 사장님, 다큐멘터리 잘 보고 있어요.”

다미가 말한 다큐멘터리란, 당연히 우리 팀 이야기였다. 넷플릭스와의 콜라보로, 선덜랜드 다큐멘터리 3시즌을 찍게 된 것이다.

앞의 두 시즌이 짠맛이었다면, 이번엔 꽤 달달하다. 라이트한 축구팬들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덕분에 시청률도 꽤 잘 뽑혔다고 들었다. 그에 따라 온라인 굿즈 판매량도 무섭게 늘어났다.

이래서 일단 성적부터 내고 볼 일이지.

“재밌게 보고 있다니 다행이네.”

미소와 함께 통화를 마친 다음, 나는 곧바로 희주에게 통보했다.

“마인츠로 날아갈 거야. 이적 협상하러.”

그러자 희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팩스 안 보내고?”

“질질 끌면 뺏기는 수가 있거든.”

페르난데스의 은퇴식을 계기로, 선수들의 무척 호의적으로 바뀌는 중이다. 선수를 제대로 대우해주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구단이라고.

하지만 그런 인식에는 반대급부도 있다. 선덜랜드는 돈이 많고, 구단주가 돈 쓸 생각 만반이라는.

당연히 상대 구단은 조금이라도 더 이적료를 뜯으려 할 테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협상이 길어진다.

“오빠 상대로 협상 길게 해서 좋을 거 없지 않아? 투자의 신이니까. 길게 끌면 끌수록 파는 쪽만 손해 볼 텐데···.”

“일대일 협상이라면 그렇겠지만··· 축구판에는 팀이 많거든. 투자의 신이 눈독 들이는 유망주, 어떻게 보여?”

그러자 희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 모양이었다.

“음, 중간에 가로채고 싶겠네.”

“그러니까 빠르게 결판내려는 거야. 끼어들지 못하게··· 그러니까 전용기를 구했으면 좋겠는데.”

그동안은 영국 내 클럽에서 뛰는 선수들 위주로 영입했었고, 따라서 비행기를 타더라도 국내선으로 해결했었다.

그러니 굳이 전용기까지는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1부 리그 팀이 되었고, 유럽 각지에서 선수를 데려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유럽 원정도 다녀야 할 테니, 전용기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필요하다.

그래서 전용기 이야기를 꺼냈더니, 희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빠 전용기 한 대 있잖아?”

“그건 리미트리스 사장용이거든.”

공사 구분은 확실히 해야지.

“혹시 전용기 준비에 시간 걸릴 거 같으면, 일단 마인츠에는 일반 항공기로 다녀와도 괜찮고.”

골키퍼 말고 다른 선수도 사야 하는 마당이니, 시간 끌어서 좋을 거 하나도 없다.

“알았어.”

희주가 곧바로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인츠에 공문을 보내고, 경비팀과 일정을 조율했으며, 에어버스에 주문을 넣었다.

그 결과···.

“오늘 저녁 비행기로 출발, 그리고 내일 점심에 마인츠 단장과 만날 거야. 뭐 해? 짐 안 싸고.”

희주의 얼굴이 꽤 의기양양하다. 아무래도 너무 기세가 오른 모양이라, 슬쩍 덧붙였다.

“짐은 뭐하러 싸.”

사면 되는데.

* * *

마인츠 단장은 덩치 큰 중년의 사내였다.

마치 곰을 연상하게 하는 외모의 단장은, 용건을 듣고 호쾌하게 웃었다.

“리델이 갖고 싶으시다고? 보는 눈이 있군. 모처럼 투자의 신이 뛰어든 거니까, 솔직히 이천오백만 유로는 받고 싶은데.”

‘솔직히’ 라는 표현에서 미루어 보면 이천오백만 유로를 뜯어내겠다는 생각까지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이천오백만 유로면 리델의 잠재가치를 넘어선 금액이다.

게다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희주가 슬쩍 테이블 위에 자기 폰을 올려놓았다. 보니까 한국어로 된 메시지를 자기 폰에 띄웠다.

[비싸! 마인츠 클럽레코드가 이천팔백만 유로던데!]

걱정 마라. 그 가격엔 절대 안 사니까. 아무리 이적시장이 미쳐 돌아가는 중이라지만, 나는 절대로 오버페이할 생각은 없다.

“아직 어리고, 검증도 안 된 선수를 그 가격에 사면 투자의 신이라 불리진 않겠죠.”

“그 말도 일리는 있군. 그럼 천팔백만 유로면 어떻겠나?”

“갭이 꽤 크군요.”

확실히 갭이 너무 크다. 인심 크게 써서 깎아줬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처음 부른 가격 자체가 터무니없다는 뜻도 된다.

마인츠 단장의 곰 같은 얼굴이 구겨졌다.

“솔직히 말해 리델은 애초에 별로 팔고 싶지 않은 선수야. 우리도 애초에 선수로 장사할 생각도 없고. 그래도 최소한의 성의라는 게 있는 거 아닌가?”

밑지고 판다는 가게 주인장 말을 믿기 어려운 것처럼, 선수로 장사 안 하겠다는 말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그래서 조금 기다렸더니 마인츠 단장이 곧바로 덧붙였다.

“다만 리델은 우리 유스 출신이고, 선수 본인의 희망도 있다 보니 오래 아껴줄 팀으로 보내고 싶은 것뿐이라고.”

“오래 아껴줄 팀이요?”

확실히 리델을 오래오래 데리고 있을 생각이긴 하지만···.

“다큐멘터리 잘 봤어. 페르난데스 인터뷰가 아주 걸작이더군.”

“그렇군요.”

일단 애매하게 대답했다. 사실 나는 아직 못 봤거든. 내가 요즘 다큐멘터리 볼 시간이 어딨겠어?

나중에 돌아가는 길에 비행기에서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사이, 마인츠 단장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아무튼, 그래서 천팔백은 받겠다는 거야. 그 정도 몸값은 써야 애지중지 다룰 것 아닌가? 몸값이 싼 선수는 아무래도 막 다루게 되는 법이니까.”

“다큐멘터리 보셨으면, 저희가 선수 함부로 다루는 구단 아니라는 것쯤은 확인하셨을텐데요.”

“자네는 믿지만, 감독이나 코치까지 믿을 수는 없지.”

일단 천팔백만 유로가 기준 가격인 모양이다. 우리 돈으로는 대충 이백사십억 원, 선수의 잠재가치에 비하면 충분히 싸지만, 그렇다고 아주 좋은 딜까지는 아니다.

워크퍼밋 문제도 있으니 너무 무자비하게 깎기는 뭐하지만, 조금은 더 깎고 싶다. 좋은 방법이 없으려나.

“그럼 셀온은 어떠십니까?”

“선덜랜드 셀온은 악독하기로 유명하던데, 대놓고 선수 안 팔겠다는 포석이라면서?”

에디 사건으로 이미 소문이 난 건가. 아무튼, 마인츠 단장이 내 의도를 이해했다면 다행이다.

“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제가 거는 셀온만큼, 선수 오래 쓰겠다는 의사 표명도 없죠.”

선수를 아껴달라는 말의 몇 %가 진심일지는 나도 모른다. 100%일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0%는 아니라는 것

선수를 위한 마음이 크다면, 내 제안을 무시하진 않을 것이다.

“20% 셀온, 천오백만 유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단장이 슬쩍 덧붙였다.

“단서를 하나 더 붙이지. 만일 셀온 조항이 발동될 경우, 그 최소 금액은 삼백만 유로로 한다.”

즉, 나중에 선덜랜드가 리델을 천오백만 유로보다 싸게 팔 경우에 대한 보장을 원한다는 뜻이다.

의미는 명백하다.

리델을 팔지 마라. 혹시라도 키워서 팔아먹을 생각이라면, 정말로 잘 키워야 할 거다. 절대 망가뜨리지 말고.

마인츠 단장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군요.”

“이적 협상과 별개로, 한 가지만 더 약속해줄 수 있겠나? 당장 주전으로 써 달라고는 말 못 하지만, 그래도 세컨 키퍼 정도는 시켜 줘. 한창 커야 할 나이의 선수니까.”

“참고하죠.”

이야기가 거의 마무리되자, 마인츠 단장은 어째서인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우리 팀 사정이 이렇지만 않았어도 보낼 생각은 없었는데··· 어쩔 수 없지. 이제 곧 월드컵이니까.”

“월드컵이요?”

“국대 데뷔를 노리려면, 주전 출전 기회가 필요하잖나.”

평소였다면 지난 시즌까지의 모습을 기준으로, 이번 시즌오프와 동시에 차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타르 월드컵은 역사상 최초로 늦가을에 열린다.

덕분에 다가올 시즌 초는, 국대 승선을 노리는 선수들에게는 절호의 어필 찬스가 된다.

다만, 한 가지가 영 마음에 걸린다. 돌아보니 희주도 똑같은 의문을 품었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참이었다.

“저··· 단장님? 리델은 월드컵 차출을 노리기는 너무 어린 선수 아닌가요?”

“리델이 월드컵에 차출될 선수 같으면 지금 팔겠소?”

하긴, 그렇긴 하다. 월드컵은 선수의 몸값을 불릴 절호의 찬스니까. 특히 독일 정도 팀이면 성적도 잘 나올 테니 몸값 튀기기도 훨씬 좋다··· 카잔만 안 당하면 말이지.

어쩐지 희주의 입에서 ‘다시는 한국을 무시하지 마라.’ 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 재빨리 테이블에 놓인 군것질거리를 입에 밀어넣었다.

단장이 웃었다.

“우리 주전이 지금 대표팀 써드 키퍼 자리를 노리는 중이거든. 올 시즌 초에는 주전에게 출전 기회를 몰아줄 거야. 당분간 리델을 쓰기 어렵겠지.”

하긴, 독일산 골키퍼는 스페인산, 이태리산과 더불어 믿고 쓰는 명품으로 이름 높다. 독일은 물론, 유럽 리그 곳곳의 빅클럽에서 주전으로 뛰는 독일 골키퍼를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덕분에 독일 국대 골키퍼 자리는 그야말로 피가 튄다. 사실상 두 자리는 이미 확정이나 마찬가지고, 써드 키퍼 자리조차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기회는 주고 싶은 게, 선수를 서포트하는 구단의 마음인 거겠지.

“단장님은 선수를 꽤 아끼시는 분이군요.”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요? 그럼, 슬슬 협상 마무리합시다.”

[로리스 리델, 이적료 천오백만 유로.]

[20% 셀온, 셀온 조항 발동 시 최소 삼백만 유로 보장.]

이적 조건에 대해서는 딱히 불만이 없었다. 그리고 선수의 주급 같은 세세한 조건은 어차피 나중에 에이전트와 다미가 따로 협상할 것이다.

메디컬 체크는 이적 확정 직전에 구단에서 할 거고.

그래도 확인해야 할 게 남아 있다.

“선수를 잠깐 만나보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분석 영상에는 절대 담기지 않으며, 뒷조사로도 확신할 수 없고, 심지어··· 타고난 재능과 아무런 상관도 없어서 내 눈에 보이는 숫자에도 드러나지 않는 요소가 있다.

선수의 멘탈.

절대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선수가 얼마나 훌륭히 성장할지에는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그래서 거래를 진행하기 전에, 그것만은 확인하고 싶었다.

아주 잠깐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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