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120화 (120/422)

120화. 내일을 위한 투자 (5)

마일즈는 볼을 꼬집었다. 통증이 느껴졌기에 무척이나 기뻤다.

‘꿈이 아니란 말이지.’

마일즈는 다시 기사로 눈을 돌렸다. 선덜랜드의 3번 유니폼을 입고 찍은 프랜시스 베넷의 사진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프랜시스 베넷. 이름값을 보면 챔스권 팀에서나 뛰어야 할 것 같은 선수인데, 심지어 나이도 젊다.

‘도대체 어떻게 데려온 거지? 챔스도 못 나가는 팀에서.’

요즘 구단주가 다른 팀 팬들 사이에서 ‘공갈의 신’이라고 불린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었다. 에디나 스티븐 같은 유망주를 믿을 수 없는 가격에 빼돌리는 행보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는데, 요즘 보니 선수 상대로도 솜씨가 상당한 것 같다.

울타리 너머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마일즈, 뭘 그리 히죽거려?”

목소리의 주인은 마일즈의 오랜 이웃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브렌든은 어슬렁거리는 걸음으로 울타리에 바짝 달라붙었다. 곧 울타리를 넘어올 기세로.

마일즈는 빙긋 웃었다.

“아니, 그럼 안 웃게 생겼나? 이제 우리 팀에서 베넷이 뛴다는데.”

“예정된 행보였어. 갑부 구단주가 생긴 시점에서 돈은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팀의 위상이 문제였지.”

“우리 팀이 어디가 어때서.”

“솔직히 말해서, 얼마 전까지는 어디가 좀 어땠어. 자네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날카로운 지적에 마일즈는 입맛을 다셨다. 사실 그도 머리로는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충격적인 백투백 강등을 당한 이후, 선덜랜드는 엄연한 하부 리그 팀이었음을.

“이제는 프리미어리그 팀이지만.”

“맞아. 유일한 약점은 챔스에 나가지 못한다는 점이지만, 오래 걸리진 않을 문제지. 선수쯤이야 얼마든지 사올 수 있지.”

마일즈의 손에 들린 신문을 흘끔거리던 브렌든의 표정이 조금 씁쓸해 보였다. 그래서 마일즈는 웃었다.

“왜, 아직 배 아픈가? 뉴캐슬은 이런 영입 못 하지?”

“··· 진작 갈아탔어. 그런 팀 몰라.”

시무룩한 대답에, 마일즈는 잠시 망설였다. 지난 십수 년간 꾸준히 선덜랜드를 조롱해온 브렌든을, 이 정도로 용서해줘도 될 것인지를.

답은 정해져 있었다. 어차피 팀을 조롱한다고 해서 상처받는 건 진짜 팬들 한정이고, 브렌든은 자기 말처럼 이미 뉴캐슬을 버렸다.

그래서 마일즈는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솔직히, 이번 영입은 나도 좀 궁금하긴 해. 우린 아직 챔스 못 나가는 팀인데, 그런데 어떻게 베넷을 데려온 건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겠지. 원소속팀은 이적료만 잘 받으면 다른 건 신경 안 쓸 테고, 선수에게는··· 글쎄, 나도 모르겠군.”

“거액의 주급을 퍼주기로 한 건가? 당분간 챔스는 생각도 안 날 만큼.”

그러자 브렌든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다른 팀이었다면 그게 상식인데, 선덜랜드 구단주는 절대 안 그랬을 거 같아.”

“하긴, 썬이 괜히 신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겠지.”

“공갈의 신?”

“투자의 신! 이 인간, 아직도 조르디 물 덜 빠졌네!”

“누가 조르디야. 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맥켐즈라고.”

두 이웃의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노스이스트 타인위어 게이츠헤드에 울리는 사이, 마침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저는 이제, 죽을 때까지 선덜랜드군요.”

* * *

훈련장을 둘러보던 베넷이 불쑥 그렇게 말했다. 아마 훈련장 벽에 붙은 플래카드가 계기였을 것이다.

[Sunderland ’til I die]

선덜랜드의 상징과도 같은 문장에 감명이라도 받은 것일까. 베넷의 표정은 부드러웠다.

“죽을 때까지 뛰어주십니까?”

“프로는 계약이 곧 생명이니까요.”

딱 계약 기간만 채우겠다는 상투적인 대답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만족했다. 톰슨이 그런 것처럼, 이런 타입의 선수는 계약 기간 자체는 철저하게 지키는 편이다.

베넷의 계약은 4년짜리다. 그리고 4년 후의 선덜랜드는 전 세계 어느 선수를 상대로도 매력적인 빅클럽이 될 것이니, 베넷을 계속 붙잡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진지한 표정으로 훈련 시설을 둘러보던 베넷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사실, 소문을 많이 듣긴 했습니다. 시설로만 보면 선덜랜드는 이미 빅클럽이라고요··· 정말 인상적이군요.”

“내년, 그리고 내후년에는 더 인상적일 겁니다.”

계속 공사 중이니까.

훈련용 피치는 이제 서른 개가 넘는다. 클럽하우스는 최신식으로 리모델링했고, 실내 트레이닝 룸은 최고급 설비들로 가득하다.

“처음 보는 장비들인데요.”

“네, 올해 신상입니다.”

그러자 옆에서 희주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특유의 유능한 비서 코스프레다.

“선덜랜드는 헬스케어 전문기업 다수와 협약을 체결하여···.”

구단주가 개인적으로 회사 지분을 마구 사들이는 정도의 협약.

“··· 최신식 장비를 최우선적으로 공급받고 있습니다. 이곳의 장비들은, 전 세계 어느 스포츠구단에도 공급되지 않은 모델입니다.”

희주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폈다.

“머신러닝 기술로 측정 데이터를 분석해, 앞으로의 컨디션을 예측합니다. 경기 날 가장 컨디션이 좋아지도록, 최적의 훈련 강도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훈련 설비를 바라보던 베넷의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선덜랜드에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월드컵 선발을 노려보겠습니다.”

환하게 미소 짓는 베넷의 이마에, 500이라는 숫자가 선명하다.

원래대로라면 챔스도 못 나갈 선덜랜드에 와줄 만한 급의 선수는 아니었지만, 프랑스 대표팀의 사정이 우리를 도운 셈이었다.

전통의 축구 강호이자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의 스쿼드는 두텁고, 레프트백 자원은 과잉 상태였다.

러시아 월드컵의 주전 레프트백이던 뮌헨의 뤼카가 건재하고, 에버튼의 디뉴, 레알의 멘디 같은 선수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베넷은 프랑스의 4순위 레프트백이었다. 바꿔 말하면, 베넷에게는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게다가, 뤼카와 멘디, 베넷의 나이는 전부 엇비슷하다. 이대로라면 이번 월드컵뿐 아니라, 2년 뒤의 유로에서도 발탁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접근했다. 더 많은 출전 기회와, 팀의 핵심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찬스를 내세워서.

[아시다시피, 우리는 이번에 프라하의 에이스, 마르틴을 영입했습니다. 수비진의 틈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재빠른 드리블러죠. 우리 왼쪽은 아주 파괴적일 겁니다.]

그렇게 영입한 베넷은 훈련 초반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브로, 베넷은 정말 괴물이네. 스티븐이 꼼짝도 못 할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정말 인상적이네.”

스티븐은 소프트웨어는 다소 별로라도, 하드웨어는 정말 막강한 선수였다.

키가 크고 점프력이 높으며, 심지어 발도 빠르니까.

그런 스티븐을 상대로, 베넷은 거의 대등하게 경합을 펼치고 있다. 즉, 베넷 역시 크고 빠르다는 뜻이다.

공격 상황에서도 베넷은 두각을 나타냈다.

패싱 센스가 특출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킥력 자체가 나쁘지 않은 탓에 공격 가담에서 위협적인 장면을 잔뜩 만들어냈다.

물론 베넷 혼자 활약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 이적 시장에서 데려온 다른 선수 역시 맹활약을 펼쳤다.

프라하의 에이스, 레프트윙 마르틴은 날카로운 돌파를 몇 번이고 선보였고, 라이트백 브루노는 마치 베넷과 경쟁이라도 할 것처럼 적극적인 오버래핑을 선보였다.

하퍼와 리델 역시 각각 퍼스트, 세컨 키퍼로서 안정적인 모습을 뽐냈다.

그래서 나는 확신했다.

이 팀은 충분히 올 시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며, 어쩌면 더 높은 목표를 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물론 승격 첫 시즌에서 단숨에 리그 상위권을 노리기는 힘들겠지만, 컵 대회라면 도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토너먼트는 변수가 많고, 공은 둥그니까.

그렇게 우리는 프리시즌을 알차게 마무리하고, 프리미어리그에서 보내는 첫 번째 시즌을 착실히 준비해 나갔다.

“알고 있겠지만, 올 시즌부터는 다시 프리미어리그에 복귀합니다!”

CS팀 직원들을 쭉 불러모은 팀장 린다가 팀원들을 독려했다.

“당당한 1부 리그 팀입니다. 그러니 모여드는 관중도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겠죠? 손님맞이에 각별히···.”

“··· 팀장님, 우리는 이미 챔피언십부터 만석 찍은 팀이었는데요.”

그러자 린다가 헛기침을 했다.

“으흠, 멀리서 오는 팬들이 늘어날 거라는 뜻이었습니다. 지역 팬들뿐 아니라 멀리서 오는 팬들에게도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제휴 숙소 관리와 안내에 힘냅시다.”

“네!”

그 옆에서는 에이미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CS팀의 에이스로 불리던 그녀는, 올 시즌부터 CS팀 부팀장으로 승진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 보이는 고객은 일단 선덜랜드 로열 호텔로 안내하면 될 거에요. 거기 호텔 사장이 우리 구단주님이니까요.”

정확히 말하면 사장은 아니고, 그냥 소유주인 건데···.

사장 노릇을 할 만큼 깊이 개입하는 곳은, 리미트리스와 FC 선덜랜드밖에 없다고. 오해 말았으면 좋겠다.

시설관리팀장 조엘 또한 목소리를 높였다.

“1부 리그니까 관중이 느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는 이미 만석이었지. 그렇다면 이 관중들이 다 어디로 가겠나?”

“풋볼 스퀘어입니다. 팀장님.”

“알고 있다면, 안전사고에 각별히 유의하도록.”

“암표 수요도 늘어날 게 뻔하니, 더욱 철저히 단속해야 합니다. 꺼진 암표상도 다시 보자, 같은 느낌으로요.”

그렇게, 팀의 모두가 마치 한 몸이 된 것처럼 새 시즌을 준비해 나갔다. 6년 만에 프리미어리그로 돌아왔다는 기쁨에, 스태프들의 사기는 그야말로 최상이었다.

그런 우리의 개막전 상대는···.

··· 셰필드였다.

* * *

스케줄표를 받아든 희주가 분개했다.

“아니, 또 셰필드라고!? 지겹지도 않아?”

“자기들 나름대로는 꽤 불타오를 경기라고 생각한 거 아닐까. 리그 사무국은 개막전 흥행을 신경써야 할 테니까.”

셰필드는 우리의 승격 동기였고, 지난 시즌 우리의 최대 경쟁자였던 팀이다. 챔피언십에서는 각각 1, 2위를 나눠 먹으며 리그를 지배했고, 중요 순간마다 맞대결을 펼쳤다.

그러니 프리미어리그 사무국 입장에서는 우리와 셰필드를 중요한 라이벌로 간주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작년에 전부 이긴 상대 붙여줘 놓고 흥행은 무슨···.”

스케줄표를 씹어먹을 듯 노려보던 희주가 시무룩해졌다. 6년 만의 1부 리그 복귀, 그 기념비적인 개막전을 셰필드 상대로 치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아쉽다. 뉴캐슬이 개막전 상대였다면 정말로 노스이스트가 활활 불타올랐을 텐데.

그래도, 한편으로는 잘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베테랑 페르난데스를 떠나보냈고, 새 팀은 이제 겨우 스물세 살짜리 잭과 요니를 중심으로 짜여졌다. 1부 리그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선수가 태반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수들도 긴장할 것이다.

여전히 스쿼드에는 톰슨과 하퍼, 크리그가 남아 있지만, 우리는 전반적으로 젊은 팀, 혹은 어리고 미숙한 팀이다. 실력이 있어도, 긴장감에 무너져내릴 가능성은 적지 않다.

그러니 차라리 셰필드가 낫다. 지난 시즌 두 번이나 투닥거린 상대니까. 마침 두 번 모두 우리가 이겼으니 정말로 부담도 없다.

게다가, 선덜랜드 구단주에게 흥행은 그렇게까지 신경 쓰이지도 않는 이벤트다.

“어차피 우리는 챔피언십에서부터 무조건 만석이던 팀이야. 개막전에서 흥행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관중이 문제가 아니라, 그 여러 가지 있잖아? 팀의 인지도 같은 부분.”

“그건 걱정 마. 생각이 있으니까.”

지난 시즌, 셰필드에게 두 번 모두 이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경기 내용은 비등했고, 결과는 한 골 차이의 아슬아슬한 승부였다.

올 시즌은 어떨까?

이번 이적시장, 우리는 폭풍 같은 영입을 했다. 내일을 위한 투자였지만, 당장의 성적을 위한 대책이기도 했다.

골키퍼 리델은 하퍼의 백업이지만, 나머지 세 명은 전부 올 시즌의 주전들이다. 그러니 팬들도 아마 궁금할 것이다. 이적 시장에 수천만 유로를 투자한 선덜랜드가,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 것인지.

작년에 두 번 싸워본 셰필드는,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적당한 상대다. 우리 팀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으니.

나는 곧바로 프레스팀장 애니와 SNS 대응팀 아벨을 호출했다.

[챔피언십의 라이벌, 1부 리그 개막전에서 다시 격돌!]

[복수할 것인가, 찍어누를 것인가? #개막전 #빛의경기장 @선덜랜드_오피셜]

[솔직히 다들 관심사는 그게 아니잖아. 선덜랜드가 몇 골 차로 이기느냐가 중요한 거 아니야? @선덜랜드_오피셜]

[부적절한 게시물은 삭제되었습니다. 담당 직원이 구단 SNS 계정과 개인 계정을 착각해서 발생한 일입니다. 해당 직원은 내부 징계하겠습니다. @선덜랜드_프레스팀]

아벨의 ‘실수’는 SNS상에서 꽤 큰 반향을 불러왔다.

- 에이 설마, 사람이라면 세 번은 안 당하겠지.

- 이래놓고 셰필드에 발리면 개꿀잼이겠네.

ㄴ 셰필드 팬 여러분, 잠꼬대는 주무실 때나 하시고··· 흔들림 없는 편안함, 선덜랜드 로열 호텔 추천.

덕분에 개막전은 당연하게도 만석이었고, 풋볼 스퀘어에도 사람이 미어터질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졌다. 아벨은 그야말로 완벽하게 장작에 불을 지핀 것이다.

6년 만의 프리미어리그, 개막전 1라운드, 선덜랜드 VS 셰필드.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열기 속에서.

우리는 팀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입증할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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