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122화 (122/422)

122화. 팀을 이끄는 무게 (2)

“아깝다!”

희주의 비명과 동시에, 크로스바를 직격한 공이 허공에 떠올랐다. 경기장 여기저기에서도 탄식과 비명이 새어 나왔다.

하긴, 아깝긴 하다. 키퍼가 반응조차 하지 못할 만한 강슛이었으니. 조금만 아래쪽으로 들어갔다면 이번 주 하이라이트 정도는 확정이었을 텐데.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전체를 탄식하게 만든 슛의 주인공은 정작, 조금의 아쉬움도 없이 계속 달리는 중이지만.

“잭 선수, 오늘은 시작부터 훨훨 나네. 주장 완장이 도움이 되었나 봐. 팀에 애정이 있는 선수라 그런 거겠지?”

“그랬으면 좋겠는데.”

다행히 잭의 몸은 무척 가벼워 보였다. 그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원정 지옥이라 불리는 경기장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역시 홈팀 선수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환경이었다. 그리고 홈팀 버프의 효과를 가장 많이 받아온 로컬 보이는, 이제 팀의 주장이 되었다.

잭에게, 팀을 이끌 리더십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답할 것이다.

페르난데스나 헨도처럼, 목소리를 높여 선수들을 독려하는 모습까지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 갓 주장이 된 선수니까.

하지만, 잭은 누구보다 팀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뛰는 선수다. 그 모습은 틀림없이 팀의 주장에 어울린다.

지금처럼.

크로스바에 직격한 공은 조금 먼 거리로 흘러나왔고, 우리보다는 셰필드 선수에게 훨씬 가까이 움직였다. 그런데도 잭은 필사적으로 공을 따라 달렸다.

얼핏 무의미해 보이는 질주는 잠시 후, 의미 있게 바뀌었다.

잭의 돌진에 당황했는지 셰필드 선수의 볼 처리는 조금 미숙했고, 트래핑은 약간 길었다. 셰필드 선수는 부랴부랴 공을 다시 확보하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잭이 따라붙은 뒤였다.

“따라잡았어!”

잭은 어깨를 끼워 넣으며 격렬하게 경합했다. 그 와중에 조금 떠밀렸는지 두세 걸음 휘청거렸지만 그래도 넘어지지는 않았다.

선덜랜드의 새 캡틴은, 그렇게 필사적으로 공을 되찾았다.

“달릴 수밖에 없을 거야.”

주장 완장.

다른 장식도 없이 그저 C라는 글자 하나가 새겨진 헝겊 조각에 불과하지만, 클럽 캡틴의 팔에 매달리는 순간 그것은 팀의 상징이 된다.

그 상징이 죽기 살기로 달리고,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면, 피가 끓어오르니까. 그게, 공을 차는 사람들의 습성이니까.

그렇게 다들, 주장을 따라 달릴 수밖에 없을 거다.

잭이 따낸 공은, 또다시 셰필드 박스 앞으로 전달되었다.

셰필드의 수비는 여전히 단단했고, 그들이 자랑하는 센터백들은 변함없이 견고했지만, 위협적이지는 않아 보였다. 우리 선수들이 주저 없이 몸을 던지기 시작했으니.

스티븐이 뛰어오르고, 요니가 달리고, 크리그가 몸을 날린다.

그 시점에서 경기의 주도권은 완벽하게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점유율도, 분위기도, 기세도.

이제 남은 건 오직 하나, 골뿐이었다.

“타겟 스트라이커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요즘 들어 축구 보는 눈이 꽤 좋아진 희주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뭐, 확실히 그 말도 일리는 있다. 타겟 스트라이커, 이른바 뚝배기 축구는 골문 앞 버스 주차를 깨부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그래도, 굳이 타겟 스트라이커를 데려올 필요는 없었다. 여전히 1부 리그에는, 우리에게 맞불 놓으려 덤빌 팀이 훨씬 많다.

“내려앉는 팀을 잡아낼 방법은 있어.”

라이트윙 스티븐이 마치 스트라이커라도 된 것처럼 안으로 비비적거리며 파고들었다. 풀백 출신으로, 센터백을 볼 수도 있는 스티븐의 체격은, 제공권 싸움에서 무척이나 위협적일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공이 왼쪽 측면으로 향했다.

마르틴과 베넷, 올여름에만 오천만 유로를 투자한 바로 그 방향으로.

* * *

셰필드 라이트백과 대치하면서, 마르틴은 낮게 중얼거렸다.

“나, 다시 배운다. 영어.”

“그러게. 좀 다시 배우긴 해야겠네.”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셰필드 라이트백을 바라보며, 마르틴은 보란 듯 히죽 웃어 보였다.

“영어 어렵다. 라이벌 의미 이상하다. 꼬리 내리고 얻어맞는 팀, 라이벌 아니다.”

“이 새끼가.”

도발이 먹혔다.

마르틴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거칠게 달려드는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마르틴은 곧바로 상체를 흔들었고, 오른발 아웃프런트로 공을 슬쩍 굴렸다.

침투하는 방향은 오른쪽. 골문이 있는 방향.

셰필드 라이트백이 곧바로 대응하려 움직였지만, 그것은 마르틴의 함정이었다. 스프링처럼 뻗어 나간 마르틴의 오른발이 공을 회수했다.

플립 플랩.

셰필드 라이트백의 중심을 무너뜨린 마르틴은 그대로 왼쪽 사이드라인을 타고 뒷공간을 향해 빠져나갔다.

‘영어는 당분간 안 배우는 게 더 좋겠네.’

말이 어눌하면 아무래도 무능하고 허술해 보이는 효과가 있기 마련이다.

덕분에 도발도 잘 먹히고, 상대 수비의 경계심도 낮다.

‘그렇다고 플레이까지 만만하진 않은데··· 등신들, 이 팀이 왜 나를 샀겠어?’

선덜랜드 구단주는 투자의 신으로 알려진 인물이었고, 그 명성은 이미 체코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내가 유망하니까 산 거지. 멍청이들.’

파고드는 마르틴의 눈앞에 또다시 셰필드 유니폼이 한 장 나타났지만, 잠깐이었다. 공은 이미 마르틴의 통제 아래 있었다. 왼발 인프런트, 오른발 인프런트, 다시 왼발 토.

혹은, 라 크로케타라는 이름의 개인기.

‘두 명.’

커버에 나선 세 번째 수비도 간단했다. 마르틴은 오른쪽 어깨를 살짝 움직였고 왼발로 스텝을 밟았으며, 당황한 수비수가 왼쪽과 오른쪽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이 가랑이 사이로 공을 빼돌렸다.

파괴적인 움직임이었다.

“잡아! 막으라고! 박스에 절대 못 들어오게 해!”

셰필드 수비진의 절규를 들으며, 마르틴은 속으로 히죽 웃었다.

조금 전 마르틴 자신이 세 명을 따돌렸다. 물론 곧 복귀하겠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눈앞엔 셰필드 유니폼이 보인다.

즉, 셰필드의 수비가 한쪽으로 크게 치우쳐졌다는 뜻이었다.

‘미끼 노릇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최소한 왼쪽 측면에 네 명이 쏠렸고, 그중 세 명은 허겁지겁 자신을 뒤쫓고 있을 것이다··· 이제, 오른쪽으로 공을 넘길 시간이 되었다.

그렇다고 수비 네 명에게 포위당한 상태에서 곧바로 롱 패스를 시도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오른쪽 측면으로 공을 보내는 역할은 다른 선수에게 맡기는 편이 낫다.

예를 들면, 마르틴의 뒤를 받쳐 주기 위해 전진한 레프트백 베넷 같은 선수에게.

‘언어가 달라도 통하는 게 축구란 말이지.’

수비 사이로 마르틴은 베넷에게 짧은 패스를 전달했고, 베넷은 곧바로 공을 길게 걷어차 오른쪽으로 보냈다.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트.

한쪽 측면으로 상대 선수를 유인하고, 텅 비어 있는 반대쪽 측면을 공략한다. 요즘은 거의 기초적인 공격 전술로 취급받는 전법이었다.

‘용어는 조금 다르지만, 체코에서도 많이 쓰는 전술이지. 뭐, 이 정도로 세련되게 뽑아줄 수 있는 팀은 드물지만.’

확실히, 선덜랜드의 디테일은 프라하 시절보다 나았다. 예를 들면 지금 스트라이커 자리에서 센터백을 위협하는 스티븐의 모습처럼.

‘핀, 저 친구 역할은 센터백을 못 박아 놓는 거지.’

셰필드가 응하지 않을 수 없는 거래였다. 만일 셰필드 센터백이 스티븐을 무시했다면, 선덜랜드는 사이드 체인지 대신 문전에 크로스를 올렸을 테니.

그 거래의 대가로, 선덜랜드의 스트라이커는 한순간의 자유를 얻었다. 오른쪽으로 살짝 치우친 자리에서.

‘좋은 전술가, 좋은 시설, 그리고 쓸만한 팀메이트··· 나, 꽤 좋은 팀에 온 것 같은데?’

페널티 박스 바로 앞, 오른쪽 모서리에서 크리그가 공을 넘겨받는 모습이 보였다. 가슴 트래핑으로 공을 확보한 크리그는, 그대로 공중에서 돌려차기의 요령으로 공을 걷어찼다.

[고오오오올! 시즌 첫 선제골은! 우리의 스트라이커! 빌-크리그!]

He’s on fire. Your defence is terrified.

경기장을 울리는 팬들의 환호를 들으며, 마르틴은 슬쩍 고개를 들어 스코어보드를 확인했다.

[선덜랜드 1 - 0 셰필드]

‘뭐, 득점도 도움도 아니라 내 수당엔 가산 안 되겠지만··· 한 골쯤은 서비스해도 괜찮겠지.’

이제 겨우 전반 20분, 아직 경기는 길다. 그러니 수당을 따낼 기회도 많을 것이다.

프라하의 차세대 에이스였던 사내, 이제 선덜랜드의 새로운 10번이 된 윙포워드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 * *

선제골이 들어간 시점에서, 경기는 거의 넘어온 셈이었다. 왜냐면 이제는 우리가 물어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계속 이대로 내려앉아 승점 3점을 바칠래? 아니면 동점 골을 노리러 반격에 나설래?]

2년 전, 처음 팀을 인수한 이후 계속 강조해온 포인트가 있었다. 단단한 수비와 역습을 팀의 무기로 삼아 달라고.

요즘은 맞불 놓고 때리는 법도 익혔지만, 여전히 우리 팀의 최대 무기는 선수비 후역습이다. 공격적으로 나오는 상대의 뒷공간을 요리하는 건 우리 팀의 특기였다.

셰필드의 결단은 빨랐다.

하긴, 한 골 뺏긴 상태에서 계속 내려앉는 멍청이가 축구계에 어딨겠냐마는.

마침 셰필드의 최대 무기는 오버래핑 센터백으로 대표되는 변칙적인 파상 공세다. 킥오프 직후부터, 그들은 맹렬한 공세에 나섰다.

셰필드 센터백들이 거침없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지난 시즌, 챔피언십에서 두 번이나 마주했던 상대의 무기는 우리에게 퍽 익숙한 것이었지만, 익숙함만으로는 막아 세울 수 없을 만큼 날카로웠다.

하긴, 저쪽도 놀고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전술도 더 다듬었을 것이고, 선수단도 보강했겠지.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전진한 셰필드의 공세는, 우리의 왼쪽 측면을 향했다.

아무래도 우리 레프트윙 마르틴은 수비 상황에서 썩 헌신적인 선수가 아니었고, 덕분에 셰필드 수비는 비교적 자유롭게 전진할 수 있었다.

“어, 어!? 뻔한 공격인데 어째서···!?”

희주가 당황하는 와중에도, 나는 냉정했다.

“괜찮아. 그쪽엔 베넷이 있어.”

새로 영입한 레프트백 베넷은, 요즘 풀백답지 않게 안정적인 수비력이 장점인 선수였다. 그렇다고 공격 가담이 나쁘지도 않으니, 클럽 레코드를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실제로 베넷은 셰필드의 공세를 꽤 훌륭하게 저지했다. 비록 공을 빼앗지는 못했지만, 대신 셰필드 윙어와 센터백 모두를 견제해냈다.

“수비수는, 점수를 주지 않는 게 우선이니까.”

슈팅 코스부터 막는 게 우선, 다음은 파고들지 못하게 멈춰 세우는 게 수비의 일이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공은 저절로 넘어오게 되어 있다··· 지금처럼.

베넷을 따돌리지 못한 셰필드 윙어가 무리한 슛을 시도하고 말았다. 이미 각도가 막혔기에 위력이 없었고, 하퍼가 공을 간단히 확보했다.

곧바로 우리가 역습에 나섰다.

“올라가!”

기세 좋게 외치며, 하퍼는 곧바로 에디에게 짧은 패스를 보냈다. 어지간한 미드필더 못지않게 공을 다루는 에디는, 우리 팀 역습의 핵심이었다.

“막아!”

셰필드 선수들은 곧바로 에디를 근접 마크했다. 그러고 보니 셰필드는, 에디 상대로 아픈 꼴을 봐온 팀이다. 지난 시즌의 두 경기 모두 에디에게 결승 골을 얻어맞고 침몰했을 정도로.

그래서일까. 에디를 압박하는 셰필드의 움직임이 꽤 능숙하다.

“못 올라가게 잡아!”

“패스 코스 잘라! 톰슨도 막고!”

셰필드의 압박에, 에디는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대응했다.

“어이쿠, 친구들! 뭔가 착각한 모양인데, 그렇게 뛰어다니려면 그냥 미드필더 했지. 뛰는 역할은 따로 있다니까?”

실실 웃으며, 에디는 마크를 피해 공을 슬쩍 앞으로 밀었다. 잠시 후, 그 공을 잭이 회수했다.

“잭!? 언제 여기까지 내려온 거야!?”

셰필드의 당황이 익스클루시브 박스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 잭은 명실상부한 선덜랜드 제일의 준족이니까. 역습 상황에서 공을 갖게 내버려 두면 성가신 선수다.

“잡아! 18번 막아!”

셰필드 선수들의 절규와 우리 팬들의 환호 속에서, 공을 건네받은 잭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아니, 그럴 것처럼 보였다.

필사적으로 자기 진영에 복귀하는 셰필드 선수들의 움직임을 확인한 잭은, 그대로 발뒤꿈치로 공을 되돌렸다.

“나이스 패스, 주장.”

비록 꽤 투박한 힐킥이었지만, 황급히 복귀하는 셰필드 선수들을 피하기에는 충분했다. 공을 건네받은 톰슨이 곧바로 전방을 향해 롱 패스를 보냈다.

“잘한다! 방금 되게 영리했어!”

“사실 잭도 충분히 영리한 선수야. 비교 대상이 요니라서 묻힌 거였지.”

아무리 잭이 선덜랜드 제일의 준족이라지만, 그래도 공보다 빠르지는 않다. 당연히 우리 박스 앞에서 반격에 나설 때는 드리블 돌파보다 롱 패스가 나은 선택이다.

그리고 롱 패스를 보내기엔 잭 자신보다 톰슨이나 에디가 훨씬 낫고.

예전의 잭이었다면 아마 혼자 몰고 뛰었을지도 모른다. 팬들의 함성을 들으면 피가 끓어오르고, 피가 끓으면 달리고 싶어지니까. 선수라면 누구나 그렇다.

하지만, 주장은 그럴 수 없다. 팀을 이끈다는 무게 때문에.

여전히 주장 완장은 잭에게 족쇄가 될지도 모른다. 때로는 힘들 때도,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겠지.

그래도, 때로는 그 무게가 버팀목이 되기도 할 것이다. 지금처럼.

“달려!”

롱 패스 이후에도 다시 어태킹 써드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 충성스러운 사냥개, 혹은 누구보다 열정적인 선덜랜드의 새 주장을 향해··· 나는 그렇게 외쳤다.

그 위에, 언제나처럼 팬들의 함성이 덮였다.

We're Black Cats supporters.

Loyal through and through.

Over and over, We will follow you.

오늘, 우리는 팀의 주장을 얻었고, 챔피언십 시절과 완전히 달라졌음을 프리미어리그 전체에 널리 알렸다.

[선덜랜드 3 - 0 셰필드]

세 골 차의 승리는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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