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123화 (123/422)

123화. 팀을 이끄는 무게 (3)

우리는 셰필드 상대로 완승했다. 승점 3점을 가져왔고, 그에 더해 득실 +3까지 알뜰하게 챙겼다.

정말로 호성적이었다. 덕분에 1라운드 한정이지만, EPL 공동 2위까지 올랐을 정도다. 뭐, 리그가 진행되면 순위는 곧 내려가겠지만.

참고로 1위는 맨시티였는데, 알뜰하게 개막전부터 다섯 골을 폭격했다··· 삼일천하도 못 하게 만들다니, 악독한 놈들.

아무튼 우리 개막전은 인상적이었고, 스포츠 전문 채널에서 따로 리뷰할 정도가 되었다.

눈이 마주치자 희주가 재빨리 리모컨을 눌렀고, 구단주 사무실 벽 대형 스크린에 스포츠 전문 채널 영상이 떠올랐다.

해설자로 탈바꿈한 전직 축구선수, 네빌과 캐러거의 모습이 보였다.

“우선 살펴볼 경기는 선덜랜드 대 셰필드인데요. 이거 관심이 많으셨을 겁니다. 챔피언십에서 1, 2위를 다투며 사이좋게 승격한 팀이 개막전부터 충돌한 거거든요.”

“네, 결과는 선덜랜드의 3-0 승리였죠? 선덜랜드, 확 달라진 거 아니냐는 평가가 지배적인데요. 제이미. 어떻게 생각하나?”

그러자 캐러거가 신랄하게 쏘아붙였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 도대체 왜들 그리 호들갑인지 모르겠어. 홈과 원정에서 모두 잡아냈던 상대를 또 잡아냈을 뿐이잖아. 이게 달라진 거라고? 진심이야?”

대답을 들은 네빌이 한숨을 쉬었다.

“하긴, 네 친정팀에 비치볼 저주를 안긴 상대니까 껄끄러운 건 인정하겠지만.”

“시끄러워.”

네빌이 언급한 ‘비치볼 저주’란,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 중 하나였다··· 주로 코믹한 쪽으로.

느닷없이 경기장에 비치볼이 날아들었고, 축구공이 비치볼에 맞아 굴절되면서 우리 선덜랜드의 점수로 이어진 사건이다. 벌써 10년도 지난 일이지만, 리버풀과 선덜랜드의 악연에는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이야기기도 하다.

당시 리버풀을 꺾는 데 일조한 그 비치볼은 지금 국립축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어떻게, 선덜랜드 클럽 박물관으로 회수할 수는 없으려나?

참고로 캐러거는 그 경기에서 뛰었던 리버풀 선수다. 아픈 데를 찔린 캐러거의 얼굴이 붉어졌지만, 그는 지지 않고 곧바로 응수했다.

“하긴, 선덜랜드는 그렇게 나쁘진 않았어. 아무튼 이긴 팀이니까. 최소한 네 발렌시아보다는 훨씬 낫겠네, 게리.”

네빌은 발렌시아 감독 시절 그야말로 흑역사를 쌓았다. 대선수가 명감독이 되지 않는다는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는 사건이다.

“시끄러워.”

아픈 데를 찔린 네빌의 얼굴 또한 붉어졌다. 하긴, 사람은 정곡을 찔리면 시끄럽다고 말할 수밖에 없긴 하다.

전직 선출 펀딧 두 사람이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무심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내가 유스 시절 저들은 현역이었다. 그것도 프리미어리그를 호령하던 빅클럽의 핵심 선수들로 활약했다. 그러니 내심 우러러보고 동경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지금은 음, 그냥 아저씨네. 동네 아저씨.

“참고로 오빠도 이제 슬슬 아저씨···.”

“시끄러워.”

그사이, 스크린 안에서는 네빌의 해설이 이어졌다.

“결과만 두고 보면 매번 이기던 팀이 또 이겼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경기력을 보면 확실히 달라졌잖아?”

네빌이 아주 좋은 포인트를 짚었다. 흐뭇한 마음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챔피언십 시절, 선덜랜드와 셰필드의 경기력은 비등했고, 점수는 딱 1점 차이였어. 결과가 뒤집혔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경기력이었지. 그런데 지금은 어때?”

네빌의 지적에, 캐러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선덜랜드가 유리했다는 정도는 인정할 수 있어. 선수층이 꽤 좋아졌더군. 이번 이적시장을 꽤 알차게 치렀잖아? 뭐, 다들 알다시피 그 팀은 꽤 부유한 팀이니까.”

“구단주가 팀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설비와 굿즈도 계속 찍어냈지. 덕분에 구단 운영 수입 대부분을 영입 자금으로 알뜰하게 돌렸고.”

“올 시즌 이적시장. 칠천만 유로쯤 썼지?”

거의 맞췄네. 그것보단 조금 더 썼지만.

“칠천만 유로··· 그 정도면 어지간한 프리미어리그 팀 넷 스펜딩을 뛰어넘게 생겼는데. 그만큼의 돈을 하부 리그에서 구르다 갓 승격한 팀이 쓴 거잖아.”

“본격적으로 중계권료 배분받는 내년부턴 정말로 무시무시하겠네.”

이야기를 나누던 두 해설이 결론을 내렸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선덜랜드를 챔피언십 수준으로 보면 큰코다친다. 마땅히 프리미어리그 팀으로 대우해야겠는데, 문제는 리그 어디쯤에 놓느냐겠지?”

“나는 강등권보다는 훨씬 위에 놓아야 할 것 같아. 중위권과 하위권 사이의 어디쯤.”

“맞아. 한 경기로 단정하긴 이르지만, 저 팀이 강등권에 가는 그림은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군. 중위권, 최소한 중하위권은 될 팀이라고 봐야겠지.”

두 해설자의 대화를 듣던 희주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가슴을 폈다.

“당연하지. 감히 누굴 강등권이라고?”

확실히, 개막 직전까지만 해도 우리를 강등권 취급하는 의견이 많기는 했다.

이적 시장에서 칠천만 유로를 퍼부으며 챔피언십 팀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어필하긴 했지만, 어차피 프리미어리그에서 그 정도 쓰는 팀은 흔하다.

물론 “꽝” 을 뽑지 않는 내 안목 특성상 선덜랜드의 칠천만 유로는 다른 팀의 이적료보다 훨씬 효율적인 금액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런 내막까지 알 리는 없다.

그러니 얕보는 거겠지. 프리미어리그에서 6년이나 멀어져 있던 팀, 강등을 면하면 다행인 팀이라고.

그래도 이번 개막전을 보고, 조금쯤은 눈치챘을 것이다. 돌아온 선덜랜드는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첫 시즌부터 우승 경쟁을 펼칠 수 있는 건 아니다. 챔스권도 아직 비현실적인 꿈이고, 어쩌면 유로파권 진입조차 당장은 버거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도전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증명할 것이다.

연속 승격, 연속 우승, EFL컵 우승··· 우리가 이루어낸 결과 중 어느 것 하나 쉬운 목표는 없었던 것처럼.

강등권? 웃기지 말라고 해. 똑똑히 보여줄 테니까.

“우리 다음 상대가 어디였더라?”

그러자 희주가 곧바로 대답했다.

“아스널 원정. 참고로 엄청 벼르고 있다더라. 풀주전 내보낼 것 같다던데?”

“어··· 무승부만 하고 오자고 해야겠네.”

때로는 대놓고 무승부를 노리는 것도 언더독의 지혜겠지.

어떻게든 이겨야 위로 올라가는 토너먼트와 달리, 리그에서는 잡아먹을 팀만 확실히 잡아먹으면 충분하니까.

머리를 굴리는 사이, 스크린의 영상은 계속 흘러갔다.

“자, 그러면 1라운드 하이라이트를 보시겠습니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아주 인상적인 세레머니가 나왔는데요.홈팬들의 플래카드에 유니폼으로 화답한 모습이었죠?”

희주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 저거···.”

이윽고 스크린에 친숙한 모습이 떠올랐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블랙캣츠 스탠드에 내걸린 플래카드의 모습이.

[우리는 우리의 5번을 기다린다]

그 아래에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상의를 벗어 던진 에디와, 에디의 5번 유니폼을 코너 플래그에 얹은 채 깃발처럼 치켜든 잭의 모습이 보였다.

* * *

구단주실을 찾은 잭은, 마치 혼나기 직전의 강아지처럼 기가 죽은 상태였다. 무리도 아니다. 코너 플래그 세레머니 영상이 구단주실 한쪽 벽면을 가득 메웠으니까.

비록 카드는 에디 혼자 먹었지만, 잭은 엄연한 공범이었다. 책임을 따지면 자유롭기는 힘들다.

물론, 나는 혼내려고 부른 건 아니었지만.

“하나만 묻자. 말리러 간 거 아니었어?”

“그게··· 말리려고 했슴다. 그런데 한발 늦은 검다.”

잭은 시무룩해 보였다. 다만 에디의 돌출을 막지 못했기 때문인지, 한발 ‘늦었다’는 것이 아쉬운지는 내 눈으로도 알기 어려웠다.

문제의 세레머니는 세 번째 득점 이후에 나왔다. 후반 50분,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득점이었다. 마르틴의 코너킥을 에디가 정확히 헤더로 꽂아넣으며 점수를 올렸다.

셰필드는 진작에 에디에게 주전 센터백을 붙이며 저항했지만,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에디는 뛰어오르기 직전 상대의 중심을 흐트러트렸고, 결과적으로 자기보다 조금 큰 상대보다 한 뼘이나 높은 위치까지 뛰어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어쩌면 주간 하이라이트로 실려도 이상하지 않았을 득점 장면이었다. 팀으로서도 세 골째, 완벽한 승리를 장식하는 득점이었고, 에디 개인적으로도 마치 날개라도 달린 듯한 완벽한 도약을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장면이 주간 하이라이트에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어진 세레머니에 완전히 묻혀 버렸기 때문에.

득점에 성공한 에디는 곧바로 관중석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는데, 그 속도가 또 무시무시했다. 아무리 봐도 잭이나 스티븐만큼 빨라 보일 정도로.

정작 두 사람의 프로필 스피드는 차이가 꽤 났었는데 말이지.

“에디는 그럴 때만 빠름다.”

혹은 평소에 요령을 피우는 거겠지. 자세한 사정은 곧 밝혀질 것이다. 마침 샐리가 꼼꼼하게 분석 돌리는 중이니까.

아무튼 경기 당일의 에디는 무섭도록 빨랐고, 덕분에 잭이 따라붙었을 때는 이미 상의 탈의를 완료한 다음이었다.

“늦었다는 건 알겠는데, 코너 플래그는 뭔데?”

“이미 카드 먹었는데 말려서 뭐 함까. 상의 도로 걸친다고 치즈 없어지는 거 아니잖슴까. 괜히 기만 죽슴다. 기왕 카드 먹은 김에 똑바로 하자고 했슴다.”

그렇게 된 거였군. 덕분에 사건의 내막을 잘 알게 되었다.

“그건 세레머니 경력자로서의 발언이야?”

“경력자로선, 솔직히 말리고 싶었슴다. 불필요한 카드 한 장이 어떤 결과를 부르는지, 저보다 잘 아는 사람이 어딨겠슴까?”

예전 뉴캐슬과의 더비 경기를 떠올렸는지, 잭은 잠시 입술을 깨물었지만, 이내 표정을 고쳤다.

굳센 표정이었다. 마치 경기장에 나설 때와 똑같은.

“에디는 놔두셨으면 좋겠슴다. 징계는 제가 받겠슴다.”

“징계 사유는?”

“에디를 제때 말리지 못한 것, 오히려 부추긴 것.”

나는 대답 대신 슬쩍 화제를 돌렸다.

“감독님은 뭐라셔?”

“저에겐 아무 말씀 안 하셨슴다. 그저 에디한테 또 쉬고 싶은지 물어보시긴 했슴다.”

그렇겠지. 에디라면 몰라도, 잭을 혼낼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당연하게도 나는 잭을 징계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도 잭을 굳이 호출한 이유는···.

“그럼 구단주님, 드릴 말씀은 다 드렸슴다. 제 징계는 뭠까?”

“네 처분은 뭐냐면···.”

천천히 말하면서 눈짓을 보내자, 희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신호로 구단주실에 신상품기획팀 관계자들이 몰려 들어왔다.

* * *

[FC 선덜랜드, 코너 플래그 세레머니 킷 출시 예정!]

[새 주장 잭과 든든한 센터백 에디의 코너 플래그 세레머니! 이제, 피규어로 만나보세요.]

[예약 문의는 CS팀에게.]

선덜랜드 CS팀의 에이스이자, 올 시즌부터 부팀장으로 승진한 에이미는 생각했다. 이건, 아무래도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좋아할 옵션 상품이라고.

‘아드리안 씨가 아주 돈독이 제대로 올랐지.’

처음에는 몇 번 헛발질할 때도 있었지만, 요즘 아드리안이 이끄는 신상품기획팀은 무척이나 기세가 좋다. 내놓는 상품마다 품절, 매진의 연속이라 CS팀으로서는 살짝 무서울 정도였다.

그런 아드리안이 몇 년 전까지는 매점 캐셔, 그것도 고작 알바였다는 사실이 에이미를 살짝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일개 알바생에게 그런 재능이 있었다는 사실과, 계약직 캐셔를 단숨에 발탁한 구단주의 안목 중 뭐가 더 놀라운지는 확신하기 어려웠지만.

그것은 얼굴만 봐도 기분까지 안다는 접객의 여왕 에이미에게도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뭐, 나는 내 일이나 해야겠지?’

마침 그녀의 눈앞에 곤란해 보이는 고객이 있었다. 젊은 동양인 여성이었다.

얼굴이 낯설었고, 주위로 부산하게 시선을 돌리는 모습만 보더라도 자주 오는 고객 같지는 않았다. 아마 관광객일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고객님이시네.’

여성은 CS센터 쪽으로 몇 번쯤 발걸음을 옮겼지만 정작 다가오지는 못했다. 그래서 에이미는, 먼저 고객에게 접근하기로 했다.

“환영합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정답이었는지 여성 팬의 얼굴이 환하게 피었다.

“아, 네! 이번 피규어 신상품을 예약하고 싶은데요. 방법을 몰라서···.”

“코너 플래그 세레머니 세트 말씀이십니까?”

“네, 그거요!”

에이미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1차수 예약 구매는 이미 종료되었습니다. 수량이 전부 매진되어서요.”

여성 팬이 고개를 떨궜다.

“아아, 멀리서 왔는데.”

여성은 동양인, 그것도 동북아시아 계열이었다. 에이미는 여성을 한국인으로 추정했다.

영어로 대화하고는 있지만, 억양이 묘하게 친숙했기 때문에. 여성의 말씨는 아주 가끔 구단주 남매가 자기들끼리 말할 때의 한국어 발음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정말로 한국인이라면 이대로 돌려보내기는 미안했다. 거의 지구 반대편에서 왔다는 사정도 있거니와, 구단주의 고국 팬이니 더욱 친절한 서비스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음 2차수 예약은?’

시선을 돌리자 CS팀 동료가 에이미를 향해 입을 벙긋거렸다. 크리스마스라는 소리였다.

‘크리스마스? 곤란하네.’

이곳에 머무는 사람이라면 2차 예약을 기다릴 수 있겠지만, 눈앞의 손님은 아무리 봐도 관광객이다.

피규어 예약 구매를 할 생각이었으니 어쩌면 한 달쯤은 이 근방에 머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크리스마스까지 남아 있지는 못할 것 같았다.

“고객님, 정 그러시다면 이벤트에 참여해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이벤트요?”

여성 관광객의 눈에서 실낱같은 희망과 호기심을 확인하며, 에이미는 친절하게 안내를 계속했다.

“네, 실은 이번에 구단 유튜브도 새롭게 운영하고 있거든요.”

물론 구단 유튜브 채널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이번에 프리미어리그로 올라오면서 대대적으로 강화하게 되었다. 넷플릭스에서 선덜랜드 다큐멘터리를 연속으로 성공시키자 구글 측에서 가벼운 클레임이 들어온 것이다.

물론 진지한 항의까지는 아니었고, 유튜브도 좀 신경 쓰는 게 어떠냐는 정도의 가벼운 불평이었다. 지분이라는 이름의 친분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물론 이희성 구단주의 답변은 심플했다. ‘그러면 제휴 맺자’고.

그런 사유로 올 시즌, 선덜랜드는 구단 유튜브를 대대적으로 강화하게 되었다.

그 첫 번째 이벤트를 소개하면서, 에이미는 슬쩍 링크를 내밀었다.

[팬 참여 이벤트 : 나는 선덜랜드를 이렇게 응원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