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함성이 그치지 않도록 (2)
이벤트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법이지만, 그래도 상품이 붙으면 누구나 좋아하기 마련이다. 두둑하면 두둑할수록 더 좋고.
이번 팬 참여 이벤트, 일명 ‘선덜랜드 응원 챌린지’에는 푸짐한 상품을 걸었다. 덕분에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거의 매일같이 새로운 영상이 올라오는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예상치 못한 일들도 생겼다. 예를 들면 의외의 참가 희망자라거나···.
구단 스태프 중 최고참, 시설관리팀장 조엘과 CS팀장 린다가 구단주실을 찾았다.
“저, 구단주님. 혹시 이번 응원 챌린지··· 직원들이 참가해도 되냐는 문의가 들어왔는데요.”
“안 될 이유가 없겠죠. 구단 직원들은 선덜랜드의 최대 팬이니까요.”
반사적으로 대답하다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본적으로 심사는 지표를 이용하기로 정했고, 공정성은 이미 확보되어 있다. 내부인이 특혜를 볼 방법은 원천적으로 봉쇄된 상태다.
다만, 선덜랜드 행사에서 선덜랜드 직원들이 상품을 쓸어가는 건 남들 눈에 좋게 보이지 않을 게 뻔하다.
“선덜랜드 직원이 수상한 경우 차점자에게 권리를 양도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해당 직원에게는 권리와 동등한 상품을 지급하도록 하죠.”
대답을 듣자 린다가 환호했다. 아무래도 CS팀은 고객 응대의 전문가들이다 보니, 응원 챌린지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
옆에서 조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구단주님, 괜찮으시겠습니까? 동등한 상품이라고 하면···.”
“비용은 어차피 내가 내면 되니까 아무 문제 없을 텐데요.”
“그게, 1등상은 한정판이라서요. 물론 구단주님 정도면 제작사와 협의해서 한 대 더 찍어내도 되겠지만···.”
“하긴, 그러면 한정판의 가치가 떨어지겠군요.”
세상에 단 두 대만 존재하는 차량이 상품인 것과, 세 대 존재하는 차량이 상품인 것은 명백한 차이가 있다는 뜻이겠지.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문제없습니다. 그런 경우라도 동등한 상품을 지급할 겁니다. 선덜랜드 로드스터는 세상에 두 대 존재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조엘은 곧바로 납득했지만, 이번엔 희주가 발끈했다.
“아니, 내 로드스터를 상품으로 걸겠다고!?”
“그게 어째서 네 로드스터야.”
내 로드스터지. 운전 몇 번 시켜 줬다고 착각이 너무 심하네.
아무튼 그날부터 구단 직원들도 챌린지에 참여하면서, 이벤트는 한층 더 뜨거워졌다.
5라운드, 브라이튼과의 홈 경기를 맞아 유튜브에 기습 영상이 올라왔다.
이른 새벽, 홀로 그라운드를 살피는 리지의 모습 위에 차분한 나레이션이 덧붙였다. 깔끔한 발성과 기분 좋은 울림, 아무래도 에이미가 합작한 것 같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업무가 지겹지 않느냐고.]
리지는 평소 입던 직원용 유니폼이 아니라, 선수들과 똑같은 경기용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물론 실물이 아닌 레플리카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대답합니다. 자기는 그저, 선수들을 최고의 환경에서 뛰게 하려는 거라고.]
경기 당일, 마지막 점검에 나설 때 리지는 항상 저런 옷차림을 한다. 선수들과 같이 싸우겠다는 의미를 담아서. 그녀 나름대로, 선덜랜드를 응원하는 방식이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키우고, 이제 그녀가 가꾸는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푸른 잔디, 그 위에서 달릴 선덜랜드의 일레븐을 위해서]
나레이션이 흐르는 와중, 화면 속의 리지는 경기장 잔디를 몇 번이고 세심하게 살폈다. 때로는 손으로 만져 보기도 하고, 땅에 뺨을 대기도 할 만큼 꼼꼼하게.
그렇게 점검을 마친 리지는, 마지막으로 경기장을 둘러보려는 듯 사이드라인 옆에 섰다. 잠시 후, 그녀가 스읍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On a river where they used to build the boats.
노래가 화면 너머로 흘러나왔다. 썩 잘 부르는 노래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힘이 있는 노래가.
But if you could see me now.
원래 남자 가수의 곡이다 보니, 살짝 허스키한 리지의 목소리와는 무척 잘 어울렸다.
I hope that I'm making you proud.
무심코 혼잣말로 답하고 말았다. 무척 자랑스럽다고. 선수용 유니폼의 엠블럼에 손을 올리는 리지를 바라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우리 선수들도 마찬가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날,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로 브라이튼을 불러들인 우리 선수들은 그야말로 사기충천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경기력을 뽐냈다.
잭은 단독 돌파를 성공시켰고, 요니의 어시스트를 받은 크리그의 슛이 골네트를 흔들었다.
스코어는 2-0. 깔끔한 승리였다.
* * *
그날 저녁에도 영상이 올라왔다. 선덜랜드 유니폼을 입은 채, 치어리더 흉내라도 내는 것처럼 날뛰는 희주의 모습이··· 제길, 내 시력.
[집에는 거의 못 가요! 요즘은 비행기 표를 구하기도 힘들거든요.]
어디서 거짓말을 하고 있어. 희주 너, 특기가 티켓팅이잖아.
화면에는, 마치 보란 듯 항공권 예매 사이트가 스쳤다. 이코노미 매진, 비즈니스 매진. 인천 가는 비행기는 이미 씨가 마른 듯했다.
[그래도 마냥 좋아요. 선덜랜드와 함께 보낼 수 있으니까.]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말하는 여동생의 영상을 응시하며, 나는 생각했다. 남매니까 표정이 닮았다는 이론에 따르면, 지금 희주 녀석은 ‘쟁취 1등상! 사수 로드스터!’라는 얼굴을 하고 있다.
확 탈락시켜버리고 싶지만, 심사는 공정하게 해야겠지. 그래서 나는 조용히 댓글을 달았다.
- 생각해 봐. 리미트리스 사장 동생이 이코노미나 비즈니스를 타긴 할까? 전용기, 아니면 퍼스트 클래스겠지?
눈치채셨으면 구독 취소와 싫어요 부탁드립니다.
잠시 후, 연관 동영상이 흘러나왔다.
꼬마 팬의 모습이 화면에 비췄다. 열 살쯤 되었으려나? 팀 유니폼을 입었는데, 등번호는 10번이었다.
마르틴의 마킹 유니폼을 입은 소년이, 화면 안에서 축구공을 몰고 드리블을 시도했다. 상체를 흔드는 모습이 퍽 귀엽다고 생각한 순간, 소년의 다리가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플립 플랩.
뜻밖의 동작에 잠시 숨을 마신 사이, 소년의 발 사이로 공이 이리저리 오갔다. 왼발 인프런트에서 오른발 인프런트, 왼발 토.
라 크로케타. 그제야 나는, 소년이 셰필드전에서 마르틴이 보여준 3인 돌파를 재현하는 중임을 깨달았다.
분명히 서툰 부분도 있었다. 적어도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저 소년보다는 훨씬 깔끔하게 공을 차던 유년기를 보냈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흐뭇함을 느꼈다. 꼬마가 얼마나 연습했을까 싶어서.
아, 상 주고 싶다! 그래도 심사는 공정하게 해야겠지.
나는 곧바로 좋아요와 구독을 눌렀다.
* * *
리그 6라운드, 울브스 원정. 몰리뉴 스타디움까지 따라온 우리 팬들이 색다른 카드섹션을 시도했다.
스마트폰에 동시에 영상을 띄우는 방식으로.
화면 속에서, 팬들은 손수 마르틴의 특기를 따라 했다. 라 크로케타, 그리고 플립 플랩을.
물론 팬들의 개인기는 서툴다. 라 크로케타를 하다 공을 흘렸고, 플립 플랩은 마치 봉산탈춤에 훨씬 가깝다.
영상 속의 그 서툰 동작들이 점차 바뀌었다. 화려한 개인기로 수비를 농락하는 선덜랜드의 새 에이스, 마르틴의 모습으로.
We are Sunderland. Say we are Sunderland.
스마트폰 카드섹션의 마지막은 붉은 바탕의 흰 글씨로 마무리되었다. 숫자 10, 마르틴의 등번호다.
“나, 수당 원한다. 프로니까.”
원정 관중석을 바라보던 마르틴이 무표정하게 언급했다.
“그래도 보너스는 항상 환영이다.”
그날, 마르틴은 평소보다 훨씬 더 날뛰었다. 헛다리 짚기부터 백 숏, 심지어 후반전에는 호커스 포커스까지 꺼내 들며 수비를 농락했다.
We are Sunderland. Say we are Sunderland.
그에 비례해 우리 원정 팬들의 함성도 커졌다. 덕분에 후반전 즈음에는 몰리뉴 스타디움이 마치 우리 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Sunderland! Sunderland! Sunderland!
유일한 부작용은 불만스럽게 카드섹션을 흘끔거리던 에디가 평소 안 쓰던 라 크로케타를 따라 하다 공을 흘렸다는 거였지만··· 그조차 한때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울브스 0 - 3 선덜랜드]
선덜랜드 응원 챌린지는 틀림없는 대박이었다. 오죽하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촬영팀이 가볍게 불평을 표시할 정도로.
“구단주님, 선덜랜드 공식 스폰서는 저희 회사 아닙니까.”
나는 퍽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하지만 조금도 미안하지 않은 심정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저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슬리브 스폰서에 어울리는 좋은 기획을 만들어 드릴 수 있을까 해서요.”
대답하자, PD가 황급히 표정을 관리했다.
“어이쿠, 구단주님. 괜히 해본 소리입니다. 선덜랜드 다큐멘터리 3시즌도 엄청 대박이었는데요.”
대답하면서도, PD의 얼굴에서는 기대감이 뚝뚝 묻어났다.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희주에게 눈짓을 보냈다.
잠시 후 희주가 테이블 위에 기획서를 가져왔다.
“로드 투 컨퍼런스···?”
“네,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로 향하는 팀의 여정을 찍자는 거죠.”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의 하위 대회로 통하지만, 그래도 당당한 유럽 대회다. 중소 클럽에게도 기회를 열어주겠다는 명분으로, 유에파가 새로 만든 신생 대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심, 이번 다큐멘터리의 흥행에는 자신이 있었다. 일단 유에파가 적극적으로 협조할 테니까. 그들은 새로 만든 대회를 홍보하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났을 테니.
기획문서에도 언급된 내용이라, PD가 곧바로 눈을 빛냈다.
“저희로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는 기획이군요. 이번 챌린지 이벤트 때문에 선덜랜드는 여러모로 뜨거운 팀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우리는 다큐멘터리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인지도가 오르니까요. 수익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무덤덤하게 대답하자, PD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아뇨, 그게 아니라··· 이 방식대로라면 자칫하면 예전, 다큐멘터리 1, 2시즌에 그랬던 것처럼 배드엔딩이 됩니다만.”
결과에 따라서는 선덜랜드 탈락 일대기를 찍게 될지도 모른다는 지적에,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짠맛이 시청자들에게는 더 인기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옆에서 제작팀 작가가 곧바로 대답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곧바로 PD의 팔꿈치가 작가의 옆구리를 가격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배드엔딩은 우리가 탈락할 때의 이야기니까. 우승하면 아무 문제가 없잖아?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는 올 시즌 우리 팀의 주요 목표였다. 구단의 인지도를 끌어올리기에 최고의 대회였으니.
시티 오브 선덜랜드 주민들의 충성심은 이미 보장되어 있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증축 이후에도 매 경기 만석을 찍는 중이다.
타인위어에서의 존재감은 절대적이고, 노스이스트 잉글랜드서도 인기 팀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지난 시즌에는 마침내 EFL컵을 들어 올리며, 잉글랜드 전체에서도 인지도를 쌓았다.
하지만, 유럽 축구계 전체를 두고 보면, 선덜랜드는 아직 무명의 언더독이었다. 비록 다큐멘터리가 꽤 흥행했지만, 그 스토리는 짠맛이었다.
그러니 유럽 팬들이 아는 선덜랜드는 다큐멘터리에 나왔던 팀, 끝내 무너진 비극의 팀이겠지.
지금의 선덜랜드가 다르다는 걸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다. 유럽 대회에서의 존재감을 통해서.
게다가,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에 딸린 상품이 참 마음에 들거든.
앞서 말한 것처럼, 대회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법이지만, 그래도 상품이 붙으면 누구나 좋아하기 마련이다. 두둑하면 두둑할수록 더 좋고.
우승팀에게 주어지는 권리, 다음 시즌 유로파리그 톱시드.
우리 팀이 노릴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