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145화 (145/422)

145화 Old Pal (1)

<공은 둥글고, 경기는 90분이나 진행된다. - 제프 헤어베어거>

월드컵 그룹스테이지 3경기, 잉글랜드 대 독일의 경기는 카타르 도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양 팀의 선발 명단을 확인한 리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잭은 당당히 잉글랜드의 선발 자리를 꿰찼지만, 요니는 후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덜랜드의 보물이라고는 해도 이제 겨우 스물셋, 아직 독일 국대의 쟁쟁한 선수들을 밀어내기엔 부족하다고 평가받은 거겠지.

그래도 살짝 아쉽기도 하다. 우리 요니의 실력은 국가대표가 되기 충분하기도 하거니와, 오늘 같은 날이 아니면 잭과 요니의 정면승부를 볼 기회가 없으니까.

리지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시무룩하게 말했다.

“솔직히 저는 영국 사람이니까··· 요니가 안 나오면 오히려 고맙긴 해요. 그치만 독일 감독, 참 보는 눈이 없네요.”

그러자 샐리도 덧붙였다.

“요니는 유니크한 선수니까요. 진가를 알아보기 힘들고, 알아보더라도 써먹기 까다롭겠죠.”

과연 그래서일까?

요니를 써먹기 까다롭다는 샐리의 표현 자체는 틀림이 없다.

요니는 충분한 기량과 센스를 타고났지만, 가진 재능 대부분을 축구 지능에 몰빵해버린 선수다. 압도적인 공간 감각에서 비롯한 위치선정과 라인브레이킹, 그리고 완벽한 판단력까지.

하지만 테크닉이나 피지컬이 돋보이는 선수는 아니었다.

20년 전의 축구였다면, 요니는 아마도 라인브레이킹에 특화된 공격수, 포처로 쓰였을 것이다. 마치 이탈리아의 인자기처럼.

하지만 현대 축구에서는 포처의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이제 요니 같은 선수를 가장 잘 써먹는 자리는 역시 2선 프리롤, 일명 라움도이터라 불리는 특수한 타입의 역할이다.

그런데 원조 라움도이터는 독일에 있었다. 그러니 독일 대표팀에 한해서라면, 요니를 알아볼 눈이 없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라움도이터를 어떻게 써먹을지도 누구보다 잘 알 거고.

그런데도 줄곧 요니를 기용하지 않는 독일 국가대표팀에게, 나는 사소한 의문을 품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다른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 * *

경기를 앞두고, 독일 대표팀은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잭이 출전했습니다.”

“좋아. 관련 자료를 준비해주겠나?”

감독의 지시에 곧바로 분석관이 태블릿을 조작했다. 잠시 후 호쾌하게 공을 걷어차는 잭의 모습이 스크린에 떠올랐다.

“EFL컵 결승전입니다. 이날 선덜랜드는 리버풀을 꺾었고, 잭은 MOM을 차지했습니다. 동점 골과 쐐기 골을 넣었죠.”

분석관의 설명을 들으며, 요니는 생각했다. 그건 그냥 동점 골이나 쐐기 골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극적이었다고.

달아나는 리버풀로부터 단 5분 만에 동점 골을 뽑아냈고, 쐐기 골은 정규시간 종료를 딱 몇 초 남기고 넣었다. 심지어 결승전에서 그랬으니, 축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라스트 미닛 골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의 극장 골이다.

“데이터 전문가로서 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지만, 확실히 스탯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선수입니다.”

분석관의 말에, 레알의 미드필더, 크로스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파이팅이 있는 놈이지.”

그러자 옆에서 키미히도 같이 끄덕거렸다. 마침 그 두 사람은 예전 프리시즌 친선전에서 잭을 상대한 경험이 있다.

분석관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잭은 소속팀 선덜랜드 주장으로, 팀 최고의 클러치 플레이어죠. 골 자체는 많지 않지만, 득점 대부분이 특정한 상황에 몰려 있습니다.”

“특정한 상황이라면?”

이미 경기 전 한 차례 보고를 받았지만, 확인차 되묻는 감독을 향해 요니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우리 팬들이 딱 한 골을 애타게 원하는 상황.’

물론 요니에게는 텔레파시 같은 초능력이 없었기에 대답은 독일 분석관의 것이었다.

“대부분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득점했고, 원정에서는 토너먼트나 더비 매치일 때에 주로 골을 넣습니다. 특이한 점으로는, 팀이 아직 이기고 있지 않을 때에 득점이 집중됩니다.”

잭은 의외로 팀이 크게 이기고 있을 때나 혹은 이길 필요 없는 경기에서는 득점하는 법이 거의 없다.

독일 감독이 턱을 쓸었다.

“그런 것치고는 이번 월드컵에서는 아직 조용해. 득점은커녕 활약도 없지. 이렇게 보면 기복이 심한 선수인데··· 요니, 잭은 혹시 원래 리그에서도 그랬었나?”

“아뇨. 그저 여기서는···.”

요니는, 잭이 활약하지 못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곳 카타르는 선덜랜드의 성골 유스에게는 퍽 가혹한 환경이었다. 이곳에서는, 늘 힘이 되던 팬들의 목소리가 조금도 닿지 않는다.

게다가 음식도 입에 딱 맞지는 않고, 잠자리도 조금은 불편하다.

‘소속팀에서는 이렇지 않았는데.’

요니는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자신들이 얼마나 축복받은 환경에서 뛰었는지를.

“···소시지가 없어서 그런 거 같습니다.”

“반찬 투정이 심한가 보군.”

독일인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유머러스한 농담을 주고받은 다음, 감독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어린 선수니까, 해외 원정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지. 우린 그 틈을 노린다. 그리고 요나스.”

“네.”

“너는 오늘, 언제든지 투입될 준비를 해 두도록. 잭이 날뛰기 시작하면, 기세를 꺾는 게 네 역할이다.”

요니는 곧바로 대답했다.

“네.”

* * *

벤치에 앉아, 요니는 문득 어릴 때의 일을 떠올렸다. 처음 선덜랜드 유스가 되었던, 열 살 무렵의 기억을.

이국적인 풍경과 낯선 사람들 사이에 던져진 열 살짜리 소년 요니에게, 당시의 선덜랜드는 그렇게까지 고향 같은 곳은 아니었다.

음식이나 기후도 달랐지만, 가장 요니를 힘들게 만든 건 역시 언어 문제였다. 지금이야 유창한 영어 실력을 자랑하지만, 당시의 요니는 영어에 서툰 편이었다.

덕분에 요니는 늘 어눌한 억양과 말씨를 사용했고, 또래에서는 요니를 비웃는 목소리도 흔했다.

[독일 놈.]

지금이라면 능글맞게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당시의 요니는 그러지 못했다. 무리도 아니다. 그때 요니는 겨우 열 살, 지금처럼 단단한 멘탈도, 프로 축구 선수라는 직업도 갖지 못한 독일 출신의 꼬맹이에 불과했으니.

또래 소년들의 비웃음이 들릴 때마다, 요니는 서툰 언어에서 욕설을 찾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폭력까진 쓰진 않겠지만, 독한 말 한마디쯤은 쏘아붙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년 요니의 계획이 성공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때마다, 그의 곁을 지키던 소년이 곧바로 먼저 달려들었기 때문에.

[너 이 새끼, 지금 내 친구한테 뭐라고 했어!]

요니는 자신의 친구를, 틀림없이 슈퍼히어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그 슈퍼히어로는 선덜랜드의 주장이자 잉글랜드 대표팀의 스타팅으로 뛴다.

언제나 자신보다 늘 앞서나가는 오랜 친구를 보며, 요니는 늘 생각했다. 그래도 같이 걷기 위해 노력할 거라고.

절대로, 쉽게 지고 싶지는 않다고.

벤치에서 출전을 기다리며, 요니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센터서클에서 킥오프 신호를 기다리며, 잭은 무심코 독일 벤치를 흘끔거렸다. 그러자 세상에서 그가 제일 잘 아는 오랜 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요니는 기억과 달리 서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기억에 있는 표정일지도.’

잭과 처음 만났을 때 요니는 딱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고, 유소년 아카데미의 모두를 향해 숨김없는 투지를 드러내 보였다.

하긴, 축구 실력 하나만 믿고 외국까지 건너온 소년의 눈에 호승심과 투지 이외의 다른 감정이 깃들 리는 없지만.

그래서 처음부터 잭과 요니가 친구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둘은 초반에는 앙숙이자 숙적, 라이벌에 가까웠다.

유소년 축구선수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기가 세상에서 공을 잘 찬다고 믿는 소년이라는 문장이 된다. 자기 주위를 모조리 씹어먹을 정도가 되어야, 프로 클럽의 유소년이 될 수 있으니까.

잭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시티 오브 선덜랜드의 동갑내기들 중 가장 공을 잘 찼었고, 동네에서는 서너 살 위의 형들을 장난감 삼아 갖고 놀았다.

그랬던 잭에게, 독일에서 온 소년의 플레이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때로는 경외로운 기억이었다.

[공간이 있을 것 같아서.]

요니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철통같던 수비진에는 구멍이 뚫렸고, 절대 보이지 않던 패스길을 따라 공이 넘어왔다.

‘있잖아. 세상에서는 내가 너보다 훨씬 낫다는 축알못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정작 잭 자신은, 한 번도 요니를 넘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런 널 내보내지 않겠다면··· 우린 좋지. 그 전에 이 경기를 끝내버리면 그만이니까.’

잠시 후 킥오프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고, 잭은 전력으로 달려나갔다.

* * *

조별리그 두 경기에서는 그저 그랬던 잭은, 오늘은 시작부터 활약이 아주 상당했다. 덕분에 지켜보는 우리가 다 흐뭇해졌다.

특히 리지가 가장 신나 보인다. 비록 좌석은 중립석이지만, 조국 잉글랜드가 우세하기 때문이었다.

“하핫, 잭이 오늘 정말 잘하네요!? 요니가 벤치에 머무르는 모습에 오히려 자극이라도 받은 걸까요?”

“반쯤은요. 그리고 아마 나머지 반은···.”

대답하면서, 나는 턱짓으로 잉글랜드 선수단 벤치 뒤를 가리켰다. 정확히는, 벤자민의 인솔을 따라 올망졸망 모여앉은 우리 선덜랜드의 유소년 선수단을.

공이 움직일 때마다, 혹은 잭이 움직일 때마다 유소년들의 고개가 일제히 좌우로 움직였다··· 귀엽네.

“오늘 잭은, 아주 미쳐 날뛸 겁니다.’

유소년 선수단의 참관은, 우리 팀에 큰 보탬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유소년은 국가대표로 뛰는 1군을 보며 롤모델로 삼아 동기부여하고, 1군 선수는 팀의 유소년 후배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열심히 뛰게 될 거라고.

축구 선수라면 누구라도 힘이 날 상황이겠지만, 특히 잭에게는 효과가 매우 좋을 것이다. 쟤는 우리 유소년들이라면 사족을 못 쓰니까.

덕분에 잭은, 마치 이곳 카타르가 우리 홈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라도 된 것처럼 맹활약을 펼쳤다.

독일의 미드필더, 키미히의 절묘한 전진 패스를 단숨에 차단한 것이 하이라이트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봐··· 그 루트가 보였다고!?”

“등 뒤에 공간이 있을 것 같았슴다.”

곧바로 잭은 역습을 주도했다. 동료와 이 대 일 패스를 주고받으며 전진한 잭은, 곧바로 벼락같은 중거리슛을 독일 크로스바 상단에 꽂아 넣었다.

“아깝! ···음, 우리는 중립이었죠?”

주먹을 불끈 쥐는 리지를 향해, 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편한 대로 응원해도요. 요니가 출전한 다음에는 신경 써 주면 좋겠지만요.”

게다가 이 중립석엔 독일 스파이도 한 명 있거든. 그러니 오히려 리지가 영국을 응원해야 균형이 맞을 정도다.

“빨리 요니를 내라고! 축알못 감독아!”

요니를 벤치에 놔두는 모습은 나로서도 불만스럽지만, 그래도 뢰브가 희주 너보다 축알못이진 않을 텐데.

잭의 분투는 초반을 넘어 중반까지도 계속 이어졌고, 독일 대표팀은 완전히 수세에 몰렸다. 가까스로 득점만 허용하지 않았을 뿐, 내용 면에서는 언제 실점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게 30분이 흘렀을 무렵, 마침내 독일 벤치가 대응에 나섰다.

[19번 인, 13번 아웃]

사이드라인에 모습을 드러낸 선수는, 요니였다.

* * *

교체를 앞두고, 독일 감독 뢰브는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후반전 득점이 많아서 혹시나 했는데, 네 친구는 그냥 단순한 슬로 스타터는 아닌 모양이군··· 오늘은 아주 시작부터 날뛰는데.”

“그러게요.”

“그러고 보니 선덜랜드 구단주가 경기 보러 왔다던데··· 혹시 잉글랜드 쪽에 사식이라도 넣어 준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놈의 소시지.”

농담 섞어 투덜거리는 감독을 바라보며 요니는 생각했다.

‘진짜 원인은 지금 우리 등 뒤에 앉아 있습니다만.’

지금, 뒤에서 응원하는 선덜랜드 유소년들의 목소리는 사실 어지간한 도핑보다도 훨씬 효과가 좋다. 하필이면 굳이 이번 경기를 참관시킨 이유는, 잭이 최고의 경기를 펼칠 수 있게 하려는 선덜랜드 구단주의 배려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배려의 절반은, 요니 자신을 위한 것이리라.

[잉글랜드 클럽의 구단주니까 잉글랜드를 응원하는 건 당연한 의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오늘은 중립석에 앉을 겁니다. 우리 선수의 반대쪽 사이드에는 차마 앉지 못하겠습니다.]

[요나스 뮐러 말인가요?]

[네. 선덜랜드의 보물이죠.]

구단주와 스태프들의 자리는 물론, 유소년들의 자리 배치 역시 꽤 중립에 가깝다. 양 팀 벤치 뒤편이었으니. 그러니 선덜랜드 유스팀의 목소리는 잭에게도, 그리고 요니에게도 공평하게 전해진다.

요니를 가리켜 ‘독일 놈’이라 부르는 목소리는,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요니 네가, 잭 저놈 좀 잡아야겠다. 뭣하면 너도 하프타임에 너희 구단주더러 소시지 좀 넣어달라고 하던가.”

투덜거리는 감독을 향해, 요니는 대답했다.

“이미 받았습니다.”

잠시 후 공이 사이드라인을 빠져나왔다. 교체를 알리는 짧은 휘슬이 울린 뒤, 요니는 마침내 생애 첫 국가대표 경기에 섰다.

하프라인 너머에서, 그의 오랜 친구가 요니를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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