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155화 (155/422)

155화 노스이스트를 붉게 (5)

[선덜랜드, 더비 라이벌 뉴캐슬에 완승]

[선덜랜드 팬에게는 아름다운 경기였고, 뉴캐슬 팬들에게는 악몽이었을 것이다.

홈팀 선덜랜드의 우세가 점쳐진 예상과 달리, 전반은 비등했다. 더비 라이벌전의 열기는, 때로는 팀의 전력 차이조차 뛰어넘곤 한다.

하지만 후반은 달랐다. 하프타임 이후 선덜랜드는 다른 팀이 된 것처럼 활약했고, 마르틴에게 두 골을 내준 뉴캐슬은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

“한편, 선덜랜드의 전설 나이얼은 ‘잭과 요니가 보여준 모습이야말로 선덜랜드의 팀 스피릿의 정수였다’며 극찬을 보냈다··· 계속 읽어드릴까요, 갑부 오라버님?”

“그 기사는 스크랩해서 샐리 보여 줘.”

나이얼은 우리 구단 최대의 레전드로, 샐리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요즘은 축구계에서 완전히 은퇴해 구단 일에는 말을 아낀다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더비 라이벌 상대로 완승한 기념비적인 경기에는 한 말씀 보태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하긴, 샐리 씨 되게 좋아하겠다.”

샐리는 공사 구분이 철저한 성격이지만, 그래도 부모에게 공개적으로 칭찬받고 싫어할 사람은 세상에 없는 법이지.

잭의 호수비가 팀의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면, 요니의 골은 전술적으로 완승을 거뒀다는 느낌이었다. 당연히 분석팀장 샐리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희주가 웃었다.

“이제 원정 준비해야겠네?”

“응, 원정에서도 이기고 와야지.”

만일 우리가 한두 골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면, 이어지는 뉴캐슬 원정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을 것이다.

패배를 갚아줘야 한다는 의욕과 자기들 홈이라는 어드밴티지가 더해지면, 뉴캐슬은 정말 강력한 상대로 탈바꿈했겠지.

하지만 우리는 4-0으로 완승했고, 휘슬이 울리기도 전에 뉴캐슬 원정 팬들이 경기장을 떠나게 만들었다. 이 정도 격차라면, 이어지는 경기에서도 뉴캐슬의 사기는 바닥을 칠 것이다.

그래도 방심은 하지 않는다. 타인위어를 붉게, 노스이스트를 붉게 물들여야 하니까.

이번 더비 2연전은, 누가 타인위어의 주인인지 알려 줄 경기가 될 것이다.

* * *

그때, 뉴캐슬 구단주 사무실에서는 비서 사만다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울리는 중이었다.

“한편, 뉴캐슬의 전설 시어러는, ‘조직력도 투지도 느껴지지 않았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계속 읽어드려요?”

그녀의 출신을 고려하면 꽤 침착하고 차분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뉴캐슬 구단주 애슐리를 만족시키기엔 부족했다.

“필요 없어.”

애슐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한탄했다.

“대체 뭣 때문에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지?”

“글쎄요. 구단주의 씀씀이 차이 아닐까요?”

“시끄러워. 사만다.”

애슐리는 영국에서 손꼽히는 스포츠 용품 체인점의 사장이었고, 자산은 약 40억 파운드에 달한다. 어디서 돈 없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라이벌 구단에, 괴물 같은 구단주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놈의 리미트리스. 이름 한번 잘 지었네.’

이희성의 경우, 자산이 얼마인지 짐작도 안 간다.

‘내 열 배가 넘는 건 확실한데, 백 배가 넘는지는 잘 모르겠군··· 아무리 그래도 천 배는 아니겠지?’

입술을 핥으며, 애슐리는 애써 느긋한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돈을 펑펑 쓴 것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격차를 따라잡는 정도에 불과해. 스탠드 증축만 해도 그렇지. 증축해서 겨우 우리를 따라잡은 거 아니겠어?”

“정확히 말하자면, 역전했죠.”

“로컬 보이는 우리에게도 있고.”

“롱스태프 형제는 결국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지만요.”

애슐리는 비서 사만다를 잠시 노려보았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 반박하지는 못했다.

이럴 때 쓸 넌씨눈이라는 좋은 단어가 선덜랜드 팬들 유행하고 있지만, 뉴캐슬의 구단주로서는 당연히 알 도리가 없기에 그저 입맛만 다실 뿐.

“아무리 생각해도, 코칭스태프의 역량 차이야.”

“그런가요? 브루스는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리그 전체에서도 손꼽힐 덕장이고요.”

프리미어리그 중하위권 팀을 전문적으로 오가는 감독들이 있다.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흔히 공공재 감독이라고 불리는데, 여러 팀들이 돌려 쓴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말이다.

뉴캐슬의 감독 브루스 또한 일종의 공공재 감독에 속한다.

10년 전에는 라이벌 선덜랜드를 맡았고, 이후 헐시티와 빌라, 웬즈데이를 거쳐 지금은 뉴캐슬의 감독이 된 인물이다.

비록 최상위권 팀을 맡을 만한 명장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여러 팀이 꾸준히 기회를 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트렌디한 전술은 아니지만 실리적인 축구를 하고, 선수단 관리를 잘한다는 평가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브루스는 선덜랜드의 로저스와 똑같은 타입의 감독이잖아?”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군요.”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전술적으로 브루스를 도와줄 참모야.”

“선덜랜드의 브라이언이나 샐리 퀸 같은?”

“그래, 그런 친구들! 아예 그 친구들을 빼돌리는 거야. 그러면 선덜랜드에는 전술가가 없어지고···.”

뉴캐슬 구단주의 눈에 열기가 떠올랐다.

“선수는 못 데려오지. 구단에서 절대 안 팔 테니까. 그런데 코칭스태프에는 이적료가 없다고. 본인만 동의하면, 그냥 위약금 주고 데려오면 그만이야. 브라이언에게 연락해.”

비서 사만다의 눈은, 자기 고용주와는 정반대로 냉담했다.

“그 친구는 선덜랜드 유스 출신, 심지어 로컬 보이였는데요. 뉴캐슬로 옮겨올 리 있겠어요?”

“물어나 보자고. 일단 이웃 지역이잖아.”

비서 사만다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고용주의 채근을 이기지는 못했다. 결국 사만다는 떨떠름하게 연락을 보냈는데, 의외로 브라이언의 답변은 무척 신속했다.

물론 거절이었지만.

“보내주신 관심에는 매우 감사하오나··· 계속 읽어드려요?”

“됐어. 혹시 돈으로 후려치면 어떻게 안 되려나?”

“돈으로요? 리미트리스 사장 상대로요?”

눈을 깜빡이는 자신의 비서를 향해, 애슐리가 궁색하게 덧붙였다.

“브라이언이 리미트리스 사장은 아니잖아?”

“진심으로 조언하는데, 안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헤드헌터를 역으로 헤드헌팅한 것을 시작으로, 상대 쪽 주요 직원을 모조리 빼돌린 사례가 있다더라고요.”

“알았어. 그러면··· 샐리 퀸은? 그 사람은 선수도 아니고, 유소년 출신도 아니잖아. 선덜랜드에 충성심이 있을까?”

사만다의 시선이 곧바로 싸늘해졌다.

“샐리 ‘퀸’을 뉴캐슬에서 일하게 하겠다고요? 구단주님, 지금 저보고 선덜랜드에 이직하라는 의도로 하신 말씀은 아니죠?”

“실례했군, 사만다 ‘시어러’ 양.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 그래, 샐리는 절대 못 빼오겠군.”

결국 뉴캐슬 구단주 애슐리는 씁쓸하게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코칭스태프 차이는 도저히 극복이 안 되네.”

“아무리 봐도 구단주 차이인데···.”

사만다의 혼잣말을, 애슐리는 애써 무시했다.

* * *

프리미어리그 20라운드. 뉴캐슬 대 선덜랜드.

오랜 앙숙 선덜랜드를 세인트 제임스 파크로 불러들인 뉴캐슬 선수단은 깊은 갈등에 빠져 있었다.

“잭 그 새끼, 골 넣으면 또 유니폼 벗겠지?”

“또 그 꼴 보느니 차라리 나가 죽자.”

뉴캐슬 팬과 선수에게 있어 선덜랜드 선수는 대체로 적이지만, 가장 싫은 선수를 꼽자면 역시 잭이었다. 선덜랜드의 로컬 보이이면서, 팀의 주장까지 맡은 선수이기 때문이었다.

2년 전,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유니폼 세레머니를 선보인 장본인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때의 선덜랜드는 3부 리그에 머무는 팀이었으니, 그 굴욕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원정에서 4-0 당하고, 홈에서는 유니폼 세레머니 또 때려맞으면 쪽팔려서 어떻게 사냐?”

그래서 뉴캐슬은 이번 경기에서 잭을 어떻게 제압하느냐에 포커스를 두었고, 승패를 떠나 일단 잭에게는 절대로 골을 내주지 않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잭의 득점은 대부분 기습적인 중거리 슛이지. 세컨볼을 따내는 능력이 독보적이야. 그러니 대인 마크를 유지하고···.

“잭에게 대인 마크 붙여서 재미 본 팀은 없습니다. 그놈 아주 미친놈처럼 돌아다니니까요. 마크 꼬이게 만드는 데 도가 텄어요.”

“그럼 미들 서드에서만 대인 마크하고, 디펜시브 서드에서는 지역방어를 유지하면 어떨까?”

뉴캐슬의 전략은 꽤 성공적이었고, 경기 내내 잭은 완전히 틀어막혔다.

* * *

잭의 곁에는 뉴캐슬 선수가 떠나지 않았다. 만일 이곳이 세인트 제임스 파크가 아니었다면, 잭이 아이돌이라도 되었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나는 무심코 혼잣말을 했다.

“미끼 효과가 너무 좋은데.”

“응? 미끼?”

양손에 소시지를 들고 번갈아 베어 무는 희주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나는 조용히 덧붙였다.

“응, 미끼 효과가 아주 좋네.”

소시지는 우리 노점 것과는 맛이 다르다고 한다. 우열을 가릴 정도는 아니지만,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정도라고.

나는 원래 군것질을 안 해서 잘 모르겠지만, 이런 건 원래 희주 입맛이 정확한 편이다.

“어느 가게인지 확인했지?”

“응. 영입하게?”

“그래야지. 선수도 아니고, 스낵바 직원에게 이적료가 붙을 리는 없으니까. 기왕이면 소시지 말고도 괜찮은 음식 있으면 말해. 모조리 빼갈 테니까.”

혹시 코칭스태프라면 계약기간에 따라 위약금 같은 게 있기 마련이지만, 스낵바 직원은 그런 거 없다.

“거절당할 리는 없겠네. 우리 구단 복지는 판타지 수준이니까··· 오빠, 솔직히 말해 봐. 이러려고 월드컵 브레이크 때 휴가 준 거지?”

나는 대답 대신 웃기만 했고, 다행히 희주는 나를 추궁하는 대신 소시지를 끝장내는 데 열중했다.

뭐, 이러려고 소시지 사 준 건 맞다. 알뜰하게 소시지 두 개를 먹어치운 희주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잭은 미끼라고?”

“응. 우리가 미끼로 삼은 건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미끼 노릇을 하고 있네.”

뉴캐슬의 의도는 뻔하다. 지난번에 대패하면서 오늘 경기의 승패에 대해서는 욕심낼 기운도 없으니, 더 이상의 굴욕만 당하지 말자는 의미다.

즉 홈에서 선덜랜드 주장에게 실점과 유니폼 세레머니를 동시에 얻어맞는 일만은 피하고 싶다는 거겠지.

내 눈에도 보이는 그런 뻔한 의도를 브라이언이 눈치 못 챌 리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잭을 왼쪽 측면으로 이동시켰다. 잭에게 달린 근접 마크를 왼쪽으로 옮겨, 뉴캐슬 수비의 무게중심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날, 잭은 플레이에 거의 관여하지 못했다. 즉, 선덜랜드 주장을 마크하겠다는 뉴캐슬의 의도는 완벽하게 이루어진 셈이었다.

그 이외에는, 전부 우리 뜻대로 이루어졌다.

승리는 우리가 챙겼고, 뉴캐슬 선수단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으며, 보다 못한 뉴캐슬 홈 팬들이 또다시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짐을 싸게 만들었다.

이날, 세인트 제임스 파크는 틀림없이 붉었다.

[뉴캐슬 0 - 1 선덜랜드]

쐐기골을 성공시킨 요니가, 자랑스럽게 유니폼을 벗어 내밀었다. 마치, 선덜랜드에는 로컬 보이가 두 명 있다고 선언하기라도 하듯.

2년 전, 뉴캐슬 홈 팬들을 온통 침묵시켰던 JJ 듀오는 오늘도 세인트 제임스 파크를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울리는 목소리는 온통 우리 팬들의 함성뿐이었다.

Shall I stay? Would it be a sin.

If I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스이스트 타인위어 최고의 축구팀이라면 당연히 뉴캐슬을 거론하던 시기가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수는 없었다. 라이벌인 우리가 하부 리그를 전전하는 사이, 줄곧 프리미어리그에서 싸워온 그들에게는, 타인위어 최고의 팀을 자처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Sunderland! Sunderland! Sunderland!

선덜랜드의 19번 유니폼을 관중석에 내민 요니의 당당한 모습은, 마치 타인위어의 주인이 바뀌었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였다.

“있잖아. 내일이 챌린지 시상식이지? 그래서 말인데··· 저 장면만 찍어도 상 타고도 남을 것 같아.”

“만약에 그렇게 상 타거든, 절반은 요니 줘라.”

뉴캐슬어폰타인까지 따라온 우리 팬들의 뜨거운 노랫소리, 그 한가운데서 깃발처럼 나부끼는 선덜랜드의 19번 유니폼과 우리의 승리를 나타내는 스코어보드까지.

그 모든 것들이 북동부의 왕이 돌아왔음을 알리는 신호처럼 보여서···.

나는 눈을 감았다.

여전히 망막에 비쳐 보이는 풍경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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