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163화 (163/422)

163화 일어서게 만드는 존재 (1)

<그냥 달려. 내가 패스할 테니 - 데이비드 베컴>

브렌든과 핫도그 사내, 일명 맥켐즈 브라더스가 나란히 눈을 의심했다.

“지금 웃고 있는 거 맞지?”

“맞아. 다들 실실 웃는 중이네.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하프타임 이후, 후반전을 위해 경기장으로 걸어 나오는 내내 바스티아노는 헛웃음을 지었고, 잭은 호탕한 웃음과 함께 리델의 어깨를 두드렸다.

“유일하게 요니만 냉정하네.”

“아냐. 입꼬리가 올라갔잖아? 저거 컴버랜드 소시지 먹은 직후에나 나오는 표정이라고.”

핫도그 사내의 주장을 들으며, 브렌든은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그 또한 타인위어 지역의 오랜 축구 팬이었지만, 그래도 선수의 사소한 습관까지 알 정도는 아니었다.

“드레싱룸에 끌려가서 헤어드라이어 맞고 나오는 거 아니었나?”

“이봐 브렌든, 자네는 모르는 모양인데 이런 게 원래 클리셰야. 팀이 지고 있을 때 웃고 있는 것. 경기를 뒤집을 때 나오는 포인트지.”

“우리 안 지고 있는데.”

“시끄러워. 내용상 지고 있긴 하잖아? 그것도 우리 홈에서.”

“어쩔 수 없지. 일정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회라는 FA컵의 권위에, 선덜랜드는 선수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저항했다. 물론 타 팀 팬들, 특히 ‘그 팀’ 팬들이 앞다퉈 조롱하고 비난한다는 걸, 전직 조르디인 브렌든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선덜랜드 로컬 팬들은 전부 구단 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지금의 선덜랜드에는 FA컵까지 주력을 투입할 여력이 없다. 혹시라도 그랬다가는, 주전급 누군가가 장기 부상 당하는 걸 감수해야 할 것이다.

“어? 갑자기 다들··· 엄청 잘하는 것 같은데?”

핫도그 사내가 멍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그 곁에서 경기를 내려다보며, 브렌든은 차분하게 덧붙였다.

“수비는 조직력이잖나. 원래 수비가 좋은 팀이기도 했었고, 게다가···.”

잠시 망설인 다음, 브렌든이 낮게 덧붙였다.

“약간 전술이 독특해 보여··· 서브가 많아서 그런가?”

* * *

“전술이 평소와는 좀 달라 보이는데.”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리자 옆에서 희주가 눈을 깜빡거렸다.

“응? 어디가?”

“그냥 느낌이야.”

콕 집어서 어디가 어떻게 다르다고 말할 정도의 차이까지는 아니었다. 나는 일개 구단주에 불과하고, 선수 보는 눈은 몰라도 전술 보는 안목은 평범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어깨에 힘이 좀 빠진 것 같다고 해야 하려나?

절대로 이겨야 된다는 감정은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 수단이지만, 때로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동안 브라이언은 절대로 지지 않는 전술을 고심했었다.

팀에 대한 깊은 애정이 워커홀릭 성향과 맞물렸고, 어쩌면 코치로서의 경력이 부족한 자신을 발탁해준 고마움도 섞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축구 팀 코치라면 누구나 지지 않는 전술을 꿈꾸겠지만, 브라이언의 경우는 다소 강박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경기 전부터 상대 감독의 대응을 모조리 예측하려 들었고,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에 전부 맞대응책을 준비했다.

덕분에 경기력은 좋았지만, 가끔은 지켜보는 내가 다 숨이 막힐 때도 있었다. 기계식 시계의 부속품들처럼 딱딱 맞물려 돌아가는 그런 축구를 하려고 들었으니까.

오늘, 특히 후반전에서는 그런 모습이 엿보이지 않았다. 내려다보는 우리 진영 곳곳에서 느슨한 부분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지는 않은, 하지만 과감한 축구.

평소 브라이언답지 않은 축구였다. FA컵이 최우선 순위가 아니라고 다시 확인시켜줬기 때문일까? 벤치에 앉아, 피치 위를 바라보는 브라이언의 모습이 한결 편안해 보인다.

어쩌면··· 우리 선수들도 마찬가지의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만 그렇게 본 건 아니었는지, 옆에서 희주가 중얼거렸다.

“나는 전술 같은 건 잘 모르겠지만, 다들 표정은 되게 좋네. 바스티아노도 엄청 편안해 보이고.”

“그러게.”

“SNS에서는 헤어드라이어 너무 맞아서 맛이 간 거 아니냐고 하던데··· 오빠, 근데 헤어드라이어가 뭐야?”

“감독이 선수 엄청 갈구는 걸 헤어드라이어 쏜다고 하거든. 입에서 뜨거운 바람이 쏟아진다고.”

로저스 감독 밑에서 뛰어본 유소년 출신으로서 덧붙이자면, 로저스표 헤어드라이어 맞으면 절대로 웃음이 안 나온다.

바스티아노가 웃는 건 아마 다른 이유 때문이겠지.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리델의 어깨를 두드리는 잭과 요니의 모습을 보니 이유가 짐작이 갔다.

편하게 해도 된다고, 정 안되면 승부차기 가도 괜찮다고 말했을 것이다. 아마 실축해도 된다는 이야기도 들어 있었겠지.

사이드라인 밖에 있는 우리는 절대로 해줄 수 없는 이야기, 오직 같은 선수들만 해줄 수 있는 도움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후반 63분, 요니의 전진 패스가, 언제나처럼 골대를 등진 바스티아노의 발밑에 전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줄곧 골문을 직시하지 못하던 바스티아노의 몸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그가, 베로나 구단 사무실 옆 돌벽에서 보여준 모습처럼, 우아하게.

뭔가가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에 나는 무심코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다.

* * *

웨스트 브롬의 센터백, 조셉은 자신을 등진 바스티아노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골대 보기가 무섭지? 다 알아. 너, 유독 컵 대회에서 비정상적으로 골대 등지잖아.”

근거는 물론, 확신도 없었다. 그저 흔한 트래시 토킹에 불과했다. 당연히 대답 또한 돌아오지 않았다.

조셉은 계속 상대를 자극하기로 결심했다. 공격수는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고 감정적인 존재이기에. 이탈리아 공격수라면 특히 그렇다.

‘이놈은 움직임만 봐도 굉장히 감성적이니까.’

겉보기로는 같은 팀의 마르틴이 훨씬 화려하지만, 마르틴의 개인기는 철저하게 실용적이다. 절반은 어그로를 끌고 마크를 유인하려는 목적이고, 나머지 절반은 수비를 현혹시키는 심리적인 이유로.

반면, 바스티아노는 그냥 몸짓 자체가 우아하다.

이런 선수들은 대체로 기복이 크고, 트래시 토킹에 잘 넘어온다는 사실을, 조셉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실축이 무섭지? 하긴, 무서울 거야. 월드컵에서 일부러 돈 받은 게 아니고서야.”

여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조셉은 신경 쓰지 않았다. 몇 차례 인터뷰에서 확인한 것처럼 바스티아노는 영어에 능숙한 선수고, 지금의 도발을 전부 알아들을 것이다.

순간적으로 돌아서는 바스티아노의 모습을 보면서도 조셉은 아직 태연했다.

“자신 있어? 크로스바 안 넘길 자신?”

그때 바스티아노가 움직였다.

균형을 잡으려 좌우로 뻗은 팔이며, 몸 뒤로 들어올려진 오른발 테이크백 동작이 무척이나 다이나믹했다. 눈앞의 수비수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골대만 바라보는 시선 또한 심상치가 않았다.

어쩌면 자포자기일지도 모르지만, 이건 슛이다. 조셉은 그렇게 확신했고, 곧바로 코스를 가로막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공은 오지 않았다. 슛할 것처럼 휘둘러진 오른발은 그대로 공 위에서 멈췄다. 마치 공을 살짝 눌러 밟기라도 하는 것처럼.

페인트에 속은 조셉의 몸이 그대로 잔디 위에서 미끄러졌다.

‘슛 페인트? 아냐, 패스할 데가 없었는데!?’

바스티아노의 오른발이 공을 살짝 뒤로 끌어당겼다. 순간, 조셉은 선덜랜드의 9번이 조금 멀어져 간다고 느꼈다.

드래그백. 단순히 물러서는 동작조차 지독하게 우아하다. 순간 조셉은 여전히 상대의 시선이 골대에 못박혀 있음을 눈치챘다.

“제길, 슛이다!”

외침과 동시에 조셉의 귓가에 바람이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등 뒤에서는 둔탁한 쇳소리가 났다.

공이 크로스바를 때리는 소리임을 알면서도, 조셉은 안도하지는 못했다. 홈팬들이 열광적으로 미쳐 날뛰기 시작했고, 심판이 휘슬을 불며 센터서클을 가리켰기에.

[선덜랜드 1 - 0 웨스트 브롬]

조셉은 차마 돌아보지 못했지만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대형 스크린은 잔혹하게도 조금 전의 장면을 생생하게 틀어놓고 있었다.

크로스바 아랫쪽을 직격한 슛이, 다시 그라운드를 강타하며 솟구쳐 네트 위쪽에 꽂히는 모습을.

[고오오오올! 데뷔골, 영국 무대 데뷔골입니다! 우리의 새로운 9번! 바아스티아아노오오오 라파!]

“자신은 없어.”

바스티아노가 불쑥 그렇게 말했다. 그것이 자신의 도발에 대한 대답임을 조셉이 깨닫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냥, 내 일을 하는 것뿐이야.”

* * *

바스티아노는 마침내 잉글랜드에서의 데뷔 골을 뽑아냈고, 젊은 골키퍼 리델은 마지막까지 클린시트를 유지했다. 탈락 위기에 몰린 웨스트 브롬이 맹공을 펼쳤지만, 선수단 모두가 합심해서 막아냈다.

경기는 그대로, 우리의 1 - 0 승리로 끝났다.

“FA컵에서도 순항이네.”

예전 같았으면 옆에서 아주 좋다고 깡총깡총 뛰었을 희주가, 오늘은 그저 살짝 웃기만 했다. 하긴, 구단주 비서 노릇만 3년이니 마냥 좋아할 상황은 아님을 깨달았을 것이다.

EFL컵 4강 진출에 이어 FA컵도 16강에 진출했고, 곧 유로파 컨퍼런스에서도 8강전을 치른다. 이것만으로도 빡빡한데, 축구팀의 본업은 뭐니뭐니해도 리그다.

모처럼 프리미어리그에 복귀한 거니까, 올해는 확고하게 자리 잡아야지··· 덕분에 이제부터는 정말로 선수단에게 과부하가 걸리게 생겼다.

그래도···.

“괜찮아. 오늘 하루쯤은 웃어도.”

승리에 기뻐하지 못하는, 그런 팀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내일이 되면 나는 아마 남은 시즌 운영에 골머리를 썩게 되겠지. 로저스 감독과 브라이언, 메디컬 팀까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쥐어짜야 할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마냥 기뻐하고 싶었다. 자랑스럽게 손을 들어보이는 우리 선수들, 열광하는 홈 팬, 그 사이 뜨겁게 포옹하는 바스티아노와 리델을 바라보며,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It's Sun-der-land, Sunderland FC.

이게 바로 선덜랜드라고.

* * *

FA컵 16강 진출 직후에는, 예정대로 넷플릭스 제작팀과 협력해 [로드 투 컨퍼런스]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이번 촬영분에서는 특별히 선덜랜드의 선수 관리 프로그램을 다룬다. 물론 민감한 부분이나 기술적인 디테일은 다루지 않겠지만.

“우선, 깔창에는 센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발의 움직임은 물론, 땅을 딛는 충격량 같은 걸 체크하죠. 또한 영상팀은 선수의 움직임을 분석해서 데이터로 변환합니다.”

메디컬 팀장 버드가 인터뷰 룸에 앉았다.

“이 모든 데이터는 선수의 근육에 얼마나 피로가 남았는지, 트레이닝 세션 중 어느 정도의 부하가 가해졌는지 측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사람의 몸은 일정한 부하가 걸린 후, 회복하는 중에 강해지는데요.”

인터뷰 룸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희주가 불쑥 말했다.

“쓸수록 강해지는 거 아니었어?”

너어는 정말.

“문제는 회복에 시간이 걸린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독자적인 데이터를 통해 언제 얼마나 부하를 주어야 선수의 몸이 경기 중 최고의 컨디션으로 올라갈지 연구합니다.”

버드 팀장 다음에는, 내가 인터뷰 룸에 향했다.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인터뷰다.

“팀의 설비에는 실리콘밸리의 최신 기술들이 도입되었습니다. 요즘 해외 자본이 들어오면서 축구판의 틀을 깬다는 우려가 많은데, 적어도 우리 선덜랜드는 그런 운영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축구를 더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고 어필해야겠지.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 일부에서는, 구단주의 안목이 뛰어나서 대단한 선수를 사오는 거라는데요. 동의하십니까?

네.

··· 라고는 물론 말할 수 없다. 나는 미소와 함께 슬쩍 말을 돌렸다.

“마르틴은 체코 국대였고, 바스티아노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루노는 라리가에서 활약했던 선수죠. 누가 봐도 잘할 선수들입니다. 문제는 그들에게 얼마를 쓰느냐의 기준이죠.”

이마에 써진 숫자를 넘기지 않으면 절대 오버페이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선수들을 데려오고 나면, 그들이 최상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면 되겠죠.”

컨디션 관리는 물론, 동기부여까지.

* * *

“감독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로저스는 무심코 눈을 깜빡였다. 이윽고 노장의 늙은 눈이, 잔디관리인 리지의 모습을 확인했다.

“지난 FA컵 말인데요. 예정보다 조금 힘을 주신 것 같은데. 맞나요?”

팀의 방침상, 올 시즌 FA컵은 최하위 순위의 경기였다. 이는 리지에게도 이미 전달된 이야기였다. 일정이 겹칠 경우, 어느 경기 세팅을 우선할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선덜랜드는, FA컵에서는 다치지만 말자는 정도를 팀의 내부 방침으로 삼았었다. 그런데 이번 FA컵 재경기의 선덜랜드는 조금 달랐다.

후보 위주로 출전시키지만, 경기 템포나 운영은 전부 평소와 똑같이 준비했다. 팀의 잔디를 세팅하는 리지라면 당연히 눈치챌 일이기에, 로저스 감독은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그렇소. 지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거든.”

당장 이번 주말과 다음 주에 더 중요한 경기가 있다. 따라서 FA컵에 주전은 쓸 수 없고, 로테이션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은 로저스 또한 알고 있었다.

구단주조차 ‘선수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인터뷰까지 했다. 하지만 구단주의 그런 인터뷰는, 로저스에게 ‘패배해도 좋은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오히려, 반드시 이겨야 할 이유였다. 팀을 위해 일부러 인터뷰 자리에 선 남자의 모습을 본 순간, 로저스는 물론, 코칭스태프 전체와 선수들 모두가 그 의견에 동의했다.

“감독님 마음을 들으면, 썬이 기뻐하겠네요.”

해맑게 웃는 리지를 향해, 노장은 유머러스하게 답했다.

“그 친구에게는 비밀이오. 말 안 듣는 감독 자르겠다고 나오면 곤란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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