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171화 (171/422)

171화 홀로서기 위한 과정 (1)

<모든 골키퍼는 실수를 한다. 중요한 것은 그로부터 배우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 가보르 키라이>

스탠드는 텅 비어 있었다. 관계자 이외에는 누구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딱히 의외의 풍경은 아니었다. 유소년 경기는 원래 이런 법이니까. 리델 또한 지나왔던 길이다.

리델은 한 손으로 턱을 받친 채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누가 봐도 선덜랜드 유스가 약간 열세에 빠져 있었다. 비율을 따지자면 대충 4 : 6 정도로. 그런데도 스코어보드의 점수에는 변동이 없었다.

선덜랜드 유스 골키퍼의 맹활약 덕분이었다.

“괜찮으니까! 자신감 있게 해!”

주위를 독려하는 소년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아직 앳된 티가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팀의 주장에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그날, 선덜랜드 유스는 공교롭게도 에버튼 유스를 상대하는 중이었다. 성인 팀이 FA컵 4강에서 격돌하게 될 예정이라 그런지,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도 불꽃이 튀는 것만 같았다.

유소년 경기치고는 퍽 거칠었고, 경기 템포는 빨라졌다. 양 팀 소년들 모두가 흥분하기 시작한 와중, 유일하게 냉정한 선수는 선덜랜드의 유소년 키퍼 짐 하워드뿐이었다.

“흥분하지 마! 끌려 나가지 마! 자리 지켜!”

소년 짐을 응시하던 리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독려하는 자세가 단장님 현역 시절하고 똑같네요.”

“그런가? 눈치 못 챘는데.”

“원래 자기는 자기 모습을 못 보니까요.”

리델의 이야기에, 옆자리에서 페르난데스가 피식 웃었다.

“하긴, 벌써부터 분석실에 수시로 드나든다고 듣긴 했지.”

“영리하기도 하고, 일단 말도 안 될 정도로 침착하네요. 저는 쟤 나이일 때 저렇게 차분하지는 못했는데요.”

“나도 마찬가지야. 절대로 저 정도는 아니었지.”

“골키퍼가 주장 다는 모습은 꽤 오랜만인데요. 요즘은 보통 필드 플레이어가 주장을 달지 않나요?”

“아, 유소년은 심판한테 항의할 일이 잘 없으니까. 그러니 주장의 역할은 우리 팀을 독려하는 거면 충분해.”

항의하러 달려나갈 일이 없으면, 골키퍼가 주장이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일리가 있었기에 리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든든하네요. 저 친구가 언젠가 제 뒤를 잇게 되겠죠? 딱 저하고 하퍼 씨만큼 차이가 나니까요.”

페르난데스는 대답하지 않았고, 리델 또한 대답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프로라고는 하지만 리델은 이제 겨우 스무 살, 자신의 후계자가 누구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는 나이다. 그리고 애초에 리델은 유소년 경기를 보려고 찾아온 것도 아니었다.

“코치님이 말씀하셨어요. 승부차기를 준비하라고.”

상담을 위한 것이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오로지 페르난데스에게만 할 수 있는 내용이었기에.

“무섭지는 않아요. 막을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데이터 싸움에서 우리와 맞설 팀은 아무도 없다는 것도 알아요.”

3부 리그 시절부터 전용 분석팀을 꾸렸던 선덜랜드는, 이후 실리콘밸리 업체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최신 기술을 공급받고 있었다.

구단주의 투자 덕분이었다.

그리고 투자의 신이라 불리는 구단주의 특성을 고려하면 앞으로 투자가 끊길 가능성은 별로 없었고, 무익한 기술을 잘못 도입하지도 않을 것이다.

덕분에 선덜랜드의 분석 능력은 프리미어리그에 올라온 이후에도 리그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질 좋은 분석 도구도 늘어났다. 여전히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부분은 샐리가 손수 분석하지만, 분석에 걸리는 시간은 3부 리그 시절에 비해 비약적으로 줄어들었다.

물론 워커홀릭 샐리는 그만큼 더 깊이 있는 분석을 시도하는 중이라, 분석실은 여전히 선덜랜드의 등대로 남아 있다.

“다만, 승부차기는 역시 하퍼 씨가 낫지 않을까··· 제가 막아내겠다고 하는 건 욕심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요.”

리델의 고민을 들은 페르난데스가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너 대신 하퍼가 승부차기에 나섰다고 치자. 그렇게 결승전에 가면··· 너는, FA컵 결승에서 선발을 요구할 자격이 있나?”

“···아뇨. 하지만, 보통 컵 대회 결승은 퍼스트 키퍼에게 맡기지 않나요?”

“하퍼에게는 유로파 컨퍼런스가 있어. 올 시즌 우리 팀의 최우선 목표가. 그리고 FA컵과 유로파 컨퍼런스 결승전은 불과 5일 차이야.”

“제가 막아야만 하는 거군요. 하퍼 씨 없이.”

“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야. 축구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겪는 과정이니까. 누군가의 백업으로 시작해서, 점차 자신의 영역을 넓히다가··· 홀로서기를 하는 거지.”

페르난데스가, 잠시 숨을 고른 후 덧붙였다.

“하퍼가 그랬던 것처럼.”

리델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흥분과 긴장이 뒤섞여, 손끝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아주 살짝이었지만, 동체시력이 뛰어난 골키퍼들은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이기도 했다.

그의 옆에서, 작년까지 현역 골키퍼였던 사내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결정은 네 몫이지만, 우리가 골키퍼 장갑을 끼는 이유는 절대로 잊지 마라.”

“네, 필드 플레이어들에게는 절대로 보이지 않겠습니다.”

* * *

“안첼로티? 상대가 먼저 실수하게 만들고, 그를 역이용한다는 점에서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감독이지. 네 입장에선 아주 공부가 되겠네.”

톰슨의 이야기에, 브라이언은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보다 공간을, 주도권보다 실리를, 크루이프이즘보다 사키이즘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브라이언은 안첼로티와 유사한 점이 많은 전술가였다.

“그러게, 아주 배울 점이 넘쳐나겠어.”

안첼로티는 분명 명장이지만 결점이 없지는 않다.

챔스를 세 번이나 들어올리는 위업을 이뤘으면서도, 상대적으로 리그에서는 힘을 못 쓰는 감독이다. 선수 육성에 별다른 장점이 없고, 영입 능력도 그저 그렇기 때문이다.

“선수단에 대한 지배력과 예리한 전술. 그렇게 딱 두 가지가 전부인 감독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 내 상위호환인 게 문제지만.”

“나는 전술로만 따지면 네가 낫다고 생각하는데···.”

톰슨의 위로에도, 브라이언의 표정이 썩 밝지는 않았다.

“어쩌면 우리 팀에 가장 필요한 타입의 감독일지도 모르겠네. 유망주 보는 눈이 없고 영입 능력이 평범하다는 단점은, 선덜랜드에선 단점이 아니니까.”

“하긴, 우린 영입과 유망주 발굴은 전부 썬이 알아서 하지··· 그 말은, 안첼로티와 같은 타입인 너도, 우리 팀에 잘 맞는다는 뜻인데.”

브라이언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아직, 종합적으로 안첼로티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따라잡을 것이다. 브라이언은 그렇게 생각했다.

“연장전까지 끌고 갈 거야. 그렇게 119분 동안 잘 배우고, 딱 1분만 이기려고.”

* * *

“연장은 선덜랜드에 유리하겠지. 스쿼드가 젊은 팀이고, 설비도 좋으니까. 하지만 승부차기는 우리에게 나쁠 게 없지.”

에버튼의 감독, 안첼로티가 그렇게 단언하자, 수석코치가 미심쩍은 시선을 보냈다.

“하퍼가 있는 팀 상대로 말입니까?”

“선덜랜드는 컵 대회에 절대로 퍼스트 키퍼를 내지 않아. 다비데. 작년에 봤잖니.”

자신의 아들이기도 한 수석코치를 향해, 안첼로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따라서 FA컵에 나오는 건 리델이야. 승부차기로 끌고간다고 키퍼를 바꾸지도 않을 거야.”

“리델이라··· 그럼 해볼 만하겠군요. 스무 살짜리 골키퍼가, 우리 픽포드를 상대하긴 힘들 테니까요.”

“바로 그 선덜랜드에서 데려온 골키퍼니까 말이지··· 그리고 선덜랜드에는 폭탄도 하나 있고.”

“바스티아노 말이군요.”

수석코치의 대답에, 안첼로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맞아. 놈은 아주 좋은 공격수지만, 멘탈은 썩 단단하지 못하지. 그런 타입의 선수는 절대··· 쉽게 극복하지 못해.”

안첼로티의 암시를 곧바로 알아차린 것처럼, 수석코치가 미소를 지었다.

안첼로티도, 그 아들 다비데도 이탈리아인이기에, 지난 몇 달간 바스티아노가 얼마나 시달렸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바조 이래, 이탈리아가 얼마나 실축에 가혹한지도.

“스트라이커는, 원래대로라면 페널티 킥에 가장 강한 포지션이야. 하지만 선덜랜드는, 승부차기에 스트라이커를 내는 부담을 감수하기 어렵겠지.”

“초조하겠군요. 승부차기가 길어지면, 언젠가는 바스티아노도 페널티 스팟에 서야 하니까··· 그 전에 끝내고 싶어 하겠죠.”

“정답이다. 자, 그러면 우리는 다음 경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세상에서는 수석코치 다비데를 낙하산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감독이라 코치 자리를 받은 거라고. 안첼로티의 귀에도 들어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안첼로티는 종종 이렇게 아들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언젠가는 자신의 아들이, 축구 지도자로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다비데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승부차기로 끌고 가겠다는 자세로, 철통같이 틀어막는 겁니다. 그러면 초조해진 선덜랜드가 먼저 실수하겠죠.”

“나쁜 대응까지는 아니다만, 기껏해야 70점짜리야.”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안첼로티는 최대한 부드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선덜랜드의 코칭스태프는 절대 무능하지 않아. 지금까지 우리가 한 이야기는 선덜랜드도 정확히 알고 있는 내용이거든.”

안첼로티는 생각했다.

‘그 수석코치라면, 내가 여기까지 읽었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선덜랜드의 수석코치 브라이언은 그의 아들 다비데와 비슷한 나이였다. 마침 직위도 둘 다 수석코치니, 어쩌면 좋은 라이벌이 될 수도 있을 사이겠지만···.

‘그동안 너무 품에 안아서 키웠나.’

지금의 다비데가 브라이언과 맞상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들지 않았다. 축구계의 원로 감독으로서의 냉정한 평가였다.

그래도 아버지로서는 아들의 기량이 떨어진다고 인정하기는 어려웠기에, 안첼로티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시작부터 몰아쳐야지. 에버튼을 만난 걸 후회하도록.”

* * *

“상대가 에버튼이라서 다행이네요. 보세요, 엄청 예쁘게 뽑혔죠?”

포스터를 눈높이로 들어올리며 에이미가 웃었다. 그 옆에서는 희주가 포스터를 들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혹시, 돌아버린 건가?

최대한 에이미 쪽만 시야에 담으려 노력하면서, 차분히 대답했다.

“하긴, 참 예쁘긴 하네요. 잘 뽑았습니다.”

세상에는 대립하는 색이 있다. 하양과 검정, 혹은··· 빨강과 파랑. 우리와 에버튼의 상징색이다.

초상권 문제로 에버튼 선수를 직접 넣지는 못했지만, 대신 누가 봐도 에버튼임을 알 수 있는 파란색을 배경에 깔았고, 그에 맞서는 붉은 유니폼 구도를 잡았다.

실루엣으로 보이는 웸블리까지, 아주 완벽하다.

“마치 문을 여는 듯한 동작이, 파란색을 찢는 느낌이라 더욱 좋군요. 이대로 갑시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마침내 희주가 회전을 중단하고 멈춰섰다. 두 배로 만족스럽네.

“근데 왜 이걸 우리 CS팀이 만들어요? 원래는 주최 측이 하는 거 아닌가요?”

희주의 질문에, 에이미가 곧바로 대답했다.

“왜냐면, 4강전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대신 웸블리에서 열리니까요. FA에만 맡겨둘 순 없죠.”

작년 EFL컵 결승에선 조직적인 대책을 수립해 우리 팬들을 웸블리에 폭탄 드랍했지만, 이번 FA컵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결승이라면 모를까, 이번엔 4강이니까.

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Again 1973이라는 구호를 만들고, FA컵 전용 클래식 레플리카까지 입기 시작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살짝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포스터를 따로 만들어 붙이는 거죠. 꼭 방문해달라고요.”

“그렇군요. 이해했어요.”

에이미를 향해 방긋거리는 희주를 향해 곧바로 지시했다.

“알아들었으면 가서 업무에 종사하도록.”

우린 엄청 바쁘단 말이지.

SNS를 시작으로, 선덜랜드 곳곳에 포스터를 뿌렸다. 웸블리행 무료 셔틀버스도 변함없이 운영하기로 했다.

당연히 에버튼도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우리가 내세운 ‘클래식’ 선덜랜드, Again 1973에 대해, 곧바로 1부 리그 우승 9회, FA컵 우승 5회 기록으로 응수한 것이다.

빽빽하게 늘어놓은 트로피 사진에 댓글 반응도 뜨거워졌다.

- 이게 클래식이지.

- 선덜랜드 뼈 맞았네. 내세울 게 역사밖에 없는 팀인데, 에버튼 앞에선 역사 드립 못 치죠.

- 하다못해 창단도 에버튼이 1년 빨랐지?

ㄴ 내세울 게 왜 역사밖에 없어? 갑부 구단주도 있는데!

스마트폰을 붙잡고 부들거리는 희주를 흘끗거린 다음, 나는 태연하게 응수했다.

“오히려 잘된 거야. 자극이 무관심보다 낫거든.”

이런 도발은 우리 팬들이 웸블리로 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에버튼의 응수 덕분에 FA컵 4강전 티켓 판매에 가속도가 붙었고, 우리는 이번에도 원정용 셔틀버스를 대량으로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엔 에버튼 팬들이 끓어올랐다.

- 작년에 ‘그 팀’이 웸블리에서 밀리는 거 봤지? 어지간하면 티켓들 끊어라.

SNS에 올라오는 에버튼 팬들의 직관 독려 메시지를 보면서, 희주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그 팀’은 작년에 웸블리 구경도 못 해봤을 텐데?”

“에버튼에게 ‘그 팀’은 리버풀이야.”

나는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작년 EFL컵 결승처럼 웸블리를 사실상 우리 홈으로 바꿔놓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유로파 컨퍼런스 결승을 앞두고 좋은 연습이 될 것 같았다. 팬들의 버프 없이 치르는 토너먼트도 한 번쯤 경험해두면 나중에 도움이 되겠지.

유럽 대회 결승전은 전부, 중립 구장에서 펼쳐지니까.

우리 선수단에게는 시련이 되겠지만, 동시에 성장의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FA컵 4강, 선덜랜드 대 에버튼]

그날은 붉고 푸른 유니폼이 관중석을 가득 메웠고, 두 팀 팬들의 챈트가 영국 축구의 성지에 울려 퍼졌다.

Wise man say, only fools rush in.

But I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

킥오프의 휘슬이 우리 팬들의 함성에 섞였다. 그 소리에는, 나와 희주의 목소리도 섞여 있겠지.

Sunderland! Sunderland! Sunderland!

달려 나가는 선수들,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소리를 높이는 양 팀 감독들, 미친 듯 날뛰기 시작한 붉고 푸른 서포터.

그 모든 풍경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 대회, FA컵 4강전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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