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177화 (177/422)

177화 두 개의 컵 (2)

후반전, 시작부터 아스널이 움츠러들었고, 그에 비례해서 선덜랜드의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 관중석의 신혼부부, 마일즈와 수잔 역시 목소리를 높이며 응원하는 중이었다.

“전반보다 공격 전개가 빠른 것 같아요.”

“그야 아스널이 전방압박을 포기했으니까.”

마일즈의 대답에 수잔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그러게요. 쟤들 바보 아니에요? 에디를 풀어주면 우리 공격 전개가 얼마나 편해지는데···.”

수잔은 최근 3년간 축구 팬으로서 상당히 성장했지만, 아직 전술의 흐름을 파악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마일즈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수잔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해서.

그때 옆에서 토트넘 팬 소년이 끼어들었다.

“아줌마 바보 아니에요?”

마일즈는 속으로 생각했다.

‘바보는 너겠지. 아줌마라니, 분위기 파악 좀 해라.’

소년, 그리고 마일즈에게는 무척 다행스럽게도 수잔은 아줌마라는 단어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어지는 소년의 이야기가 수잔에게 퍽 흥미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아스널은 지금 라인을 내려서 수비하는 중이죠? 그러면서 에디까지 압박하려고 덤비면 어떻게 되겠어요?”

“어, 그러니까···.”

수잔이 잠시 생각에 빠졌지만, 소년은 대답을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토트넘 팬으로서는 아스널이 리드하는 상황 자체가 영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전방과 최후방의 간격이 벌어지겠죠. 미드필더도 자연히 분산되고요. 분산된 인원으로는 절대 선덜랜드 중원 상대 못 해요. 그랬다간 톰슨에게 탈탈 털릴 텐데, 차라리 에디 압박을 포기하는 게 이득이죠.”

“굉장히 똑똑하구나!”

감탄하는 수잔의 곁에서, 마일즈는 조용히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똑똑한데 왜 수잔을 아줌마라고 부른 걸까.’

그때, 다시 함성이 울렸다. 내려다보니 어느새 에디가 하프라인 부근까지 공을 몰고 전진한 상태였다.

곧바로 에디는 특유의 킥을 사방으로 쏘아올리기 시작했다.

“점유율? 뭐 어때. 어차피 너희 안 올라올 거잖아.”

하프라인 너머에 톰슨, 센터서클에 에디라는 빌드업 리더 두 명을 배치한 선덜랜드는 아스널을 사방에서 두들기기 시작했다.

레프트백 베넷이 코너플래그 앞까지 올라갔고, 라이트백 브루노는 제집처럼 아스널 진영을 파고들었다.

두 사람 모두 풀백이 아니라 윙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공격적이었다.

빈 공간에 패스를 보낼 때는 언제나 요니가 가장 먼저 나타났고, 아스널 수비가 걷어낼 때는 언제나 잭이 가장 먼저 공을 회수했다.

“우와, 실화냐? 후반전 점유율이 8:2까지 벌어졌다는데?”

“흥, 그럼 뭐 해. 골을 넣지 못하고 있는데.”

놀라움에 숨을 들이마시는 첼시 팬 소년과, 퉁명스럽게 반응하면서도 선덜랜드의 슛마다 두 주먹을 움켜쥐는 토트넘 팬 소년의 곁에서···.

“괜찮아. 아직 휘슬이 울리려면 한참 남았거든.”

“그리고 선덜랜드는 휘슬이 울리기 전에는 멈추지 않는 팀이고.”

선덜랜드 부부 팬은, 한층 목청에 힘을 넣었다.

Sunderland 'til I die. I'm Sunderland 'til I die.

* * *

어디선가 친숙한 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그래서 돌아보니 희주가 목 놓아 외치고 있었다. 우리의 가장 상징적인 챈트, Sunderland 'til I die를.

웸블리는 어느새 선덜랜드 팬들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지고 있는 상황이라 더 간절한 외침이, 어느새 아스널 팬들의 목소리를 완전히 묻어버린 것이다.

관중의 함성에 비례해, 선수들의 발놀림 또한 더욱 빨라졌다. 원래는 너무 힘 빼지는 말자고 했는데.

우리는 5일 간격으로 두 개의 컵에 도전한다.

딱 5일이 지나면, 올 시즌 우리의 최우선 목표인 유로파 컨퍼런스 결승이 있다. 그리고 오늘 뛰는 우리 주전 대부분은 유로파 컨퍼런스에도 출전해야 할 선수들이다.

그런데도 선수들은 5일 후는커녕, 내일조차 없다는 듯한 태도로 사납게 달렸다.

우리 코치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로저스 감독은 익스클루시브 박스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목에 핏대를 세웠고, 벤치에서는 브라이언과 샐리 역시 끊임없이 무언가를 준비하고 분석하는 중이었다.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우리의 팀 컬러 그대로였다.

그래서 나 또한 외쳤다. 저 아래에서 대신 싸우는 선수들에게 들리도록.

I’m Sunderland ’til I die.

* * *

후반, 경기의 균형은 완전히 무너졌다.

선덜랜드의 공세는 일방적이었고, 아스널은 방어에 급급했다. 처음에는 역습을 노리는 실리 축구를 하려던 의도였겠지만, 남은 건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축구였다.

‘그쪽이 자초한 거야.’

브라이언은 묵묵히 경기장을 응시했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어설픈 수비 축구보다는 차라리 전반전의 맞불이 훨씬 무서웠다.

그리고 이제 아스널은 맞불을 시도할 수 없다. 이미 완전히 분위기가 기울었기 때문이다. 이 타이밍에 아스널이 섣불리 라인을 올리려 시도했다간, 점유율을 되찾기도 전에 뒷공간을 털리며 실점할 것이다.

‘이제 골만 들어가면 완벽한데.’

선덜랜드는 완전히 기세를 탔고, 슈팅까지는 곧잘 연결하는 중이었다. 톰슨과 잭의 중거리 슛, 요니의 침투, 스티븐의 헤더까지 포함해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아스널 골문을 난타했다.

그럼에도 스코어보드가 움직이지 않은 건, 전적으로 아스널 키퍼 레노의 선방 덕분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딱 저 키퍼만 넘으면 득점이라는 건데요.”

“넘을 거야. 골키퍼는 신이 아니고, 아스널 수비는 무너지기 직전이니까.”

브라이언은 힘주어 대답했다. 절대 실점하지 않는 골키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의 시야 끝에서, 피치 왼쪽 측면에서 마갈레스와 대치하는 마르틴의 모습이 보였다.

* * *

마르틴의 돌파는 언제나처럼 현란했지만, 아스널의 센터백 마갈레스에게는 큰 인상을 주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봐, 체코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 발놀림은 브라질에는 발에 채일 만큼 흔해.”

마르틴은 서툰 영어 대신, 공으로 대화하기로 결심했다. 왼발로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상체를 크게 흔들어 페인트를 시도했고, 약간의 시간 차로 플립 플랩을 섞었다.

“흔하다니까.”

아스널의 센터백은 쉽게 속지 않았다. 개인기에는 정평이 난 브라질 출신다운 면모였다.

마르틴이 히죽 웃었다.

“개인기, 악세서리다.”

“어지간하면 슬슬 영어 배워라.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장식이라는 소리.”

공 위로 두어 차례 스텝 오버를 보여준 마르틴은, 순간적으로 템포를 높이며 좌우로 몸을 흔들었다.

그런 개인기로도 여전히 마갈레스를 따돌리지 못했지만, 마르틴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다. 베넷이 올라올 시간을 벌었고, 아스널의 주력 센터백을 왼쪽 측면으로 끌어냈으니.

마르틴은 공을, 발뒤꿈치로 밀었다.

“나이스 패스!”

잠시 후 패스를 건네받은 베넷이 곧바로 반대쪽 측면으로 공을 길게 걷어찼다.

박스 오른쪽 모서리, 바스티아노가 기다리는 쪽이었다.

* * *

베넷의 크로스를 따내려, 바스티아노의 몸이 날아올랐다. 거구인데도 바스티아노는 퍽 민첩했고, 아크로바틱한 자세에서도 슛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술까지 갖춘 선수였다.

크리그는 문득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저런 운동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지.’

허를 찔린 아스널 수비는 뛰어오르지 못했기에, 바스티아노는 틀림없이 자유롭게 슛을 시도할 것이다. 아마 골키퍼가 막지 못할 거라 믿지만, 혹시라도 막아낼 경우 세컨볼을 골대 안에 확실히 밀어넣어야 했다.

그게 자신의 일임을, 크리그는 알고 있었다.

크리그는 공과, 바스티아노와, 아스널 키퍼 레노를 번갈아 응시하며 신중하게 위치를 조정했다. 잠시 후 바스티아노가 공중에서 공을 걷어찼고, 둔탁한 파열음이 울렸다.

찰나의 간격을 두고 두 번째 소리가 뒤따랐다. 이번에도 아스널 골키퍼가 기적의 선방을 보였다는 증거였다.

그래도 언제나 기적에는 대가가 따른다.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던 아스널의 레노는 완전히 자세가 무너진 상태였으며, 심지어 공을 멀리 쳐내지도 못했다.

세컨볼이 문전으로 굴러 나왔다. 건드리기만 하면 넣을 수 있는 위치였다. 오래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크리그는 반사적으로 발을 내밀었고, 아마 똑같은 생각을 했을 아스널 수비와 뒤엉켰다.

휘슬 소리가 짧게 울렸다. 파울을 알리는 신호가. 크리그는 번쩍 일어나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주심에게 시선을 던졌다.

잠시 후, 주심의 손이 페널티 스팟을 가리켰고, 크리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렇지!’

아무리 레노가 좋은 골키퍼라지만, 페널티 킥은 기본적으로 키커가 유리한 조건이었다.

그리고 선덜랜드는 톰슨과 잭이라는 우수한 키커를 가진 팀이고, 크리그 자신도 킥에는 상당한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발목에서 전해지는 약간의 이질감에, 크리그는 조심스럽게 잔디를 고쳐 밟았다.

심한 통증은 아니었다. 경기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부상 축에도 들지 못하는, 선수라면 누구나 겪는 충돌일 뿐이라고, 크리그는 그렇게 확신했다.

‘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크리그 혼자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선덜랜드는 선수의 부상에는 무척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팀이었고, 5일 후 또 하나의 결승전을 남겨둔 팀이기도 했다.

코칭스태프에게 말한다면, 교체당할지도 모른다.

경기는 이제 15분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혹시 연장전까지 치르더라도 겨우 45분. 그 정도 시간을 버텨낼 자신은 있었다. 특별히 심한 통증도 아니었으니.

크리그는 조심스럽게 바스티아노를 곁눈질했다. 페널티 킥에 트라우마를 가진 그의 파트너는, 핏기가 가신 얼굴로 페널티 스팟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래서 크리그는 끝까지 뛰기로 결심했다.

“크리그 씨, 직접 차실 검까? 모처럼 본인이 따낸 페널티 킥인데···.”

“괜찮아. 실축하지 않는 주장에게 맡기려고 하는데.”

크리그는 태연한 얼굴로 페널티 스팟에서 물러났다.

발목에서 올라오는 이질감을 짓누르면서.

* * *

페널티 스팟에 선 잭이, 위아래로 손을 흔들었다. 더 큰 함성을 요구하는 제스처에, 웸블리는 그야말로 폭발 직전처럼 끓어올랐다.

“쟤는 정말··· 심장이 뭘로 만들어진 건지.”

희주가 잠시 혼잣말을 했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충성스러운 주장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더 큰 함성을 질러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팬들의 함성, 그리고 아스널 팬들의 야유가 절정에 달했을 때, 마침내 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릿하게 출발한 걸음에 점점 가속이 붙어, 페널티 스팟 근처에 도착할 때쯤엔 거의 전력질주나 마찬가지 상태가 되었다.

잠시 후, 잭이 특유의 다이나믹한 모션으로 공을 걷어찼고, 레노가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공은,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렸고, 자세가 무너진 골키퍼의 몸 위를 지나, 골네트를 흔들었다.

[선덜랜드 1 - 1 아스널]

“파넨카 킥!?”

설마 싶었다. 아무리 잭이 강심장이라지만, 이런 상황에서 또 파넨카 킥을 시도할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 못했기에.

야유를 보내던 아스널 팬들이 하나둘씩 침묵했고, 우리 팬들의 함성은 더욱 커졌다. 그 열기 속에서, 세상에서 제일 추격골을 잘 넣는다는 선덜랜드의 주장이 마치 보란 듯이 엠블럼에 입을 맞췄다.

웸블리를 메운 함성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 경기의 분위기는 확정적으로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비록 레노를 다시 뚫어내지는 못했지만, 대신 아스널이 하프라인조차 쉽게 넘어오지 못할 정도로 두들겼다.

후반전을 지나, 연장 내내 이어진 일방적인 공세는, 주심의 휘슬이 길게 세 번 울릴 때까지 이어졌다.

승부차기였다.

* * *

“키커를 지정하겠다.”

로저스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렸고, 선수들이 곧바로 조용해졌다.

“잭, 에디, 요니, 크리그, 톰슨··· 이런 순서다. 질문 있나?”

에디가 히죽거렸다.

“실축하지 않는 센터백의 출격!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역시 감독님은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로저스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 옆에서, 샐리가 한숨을 쉬어 보였다.

“갑자기 엄청 불안해지는데, 2번을 에디 대신 마르틴으로 바꿀까요?”

“분석팀장님이 지명하신 거군요. 역시 보는 눈이···.”

“페널티 킥 분석은 내 일이니까.”

쓴웃음을 짓는 샐리를 향해, 요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팀장님. 아시겠지만 에디는 페널티 킥을 해본 적이 없는데요.”

“괜찮아. 다들 경력만 찾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겠어?”

에디와 요니를 번갈아 바라보던 샐리가, 소태 씹은 표정으로 답했다.

“뭐, 그래서 일단 2번이잖아?”

보통 1번과 5번 키커에게 부담이 많이 쏠리는 반면, 2번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자리로 알려져 있었다. 처음으로 승부차기에 나서는 에디를 위한, 선덜랜드 코치진의 사소한 배려였다.

그때 크리그가 슬쩍 손을 들었다.

“혹시, 제가 2번 키커를 하면 안 되겠습니까?”

“안 될 건 없지만··· 이유는?”

크리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샐리는 뭔가를 알아차린 듯 메디컬 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로저스 감독은 곧바로 크리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2번은 그대로 에디가 한다. 그리고 4번은, 마르틴에게 맡기겠다.”

“감독님!”

“이상이 있는 선수를 쓸 수는 없다.”

“아무렇지 않습니다.”

“정말 아무렇지 않으면, 2번 키커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겠지. 버드, 크리그를 당장 데려가 검사하게.”

줄곧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바스티아노는 입술을 깨물었다. 크리그가 다칠 가능성이 있었던 유일한 상황이 언제였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페널티 킥을 따냈을 때의 경합, 다시 말하면 바스티아노의 슛이 레노에게 막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바스티아노는 크리그가 왜 경기장에 끝까지 남았는지도 알아차렸다. 선덜랜드가 스트라이커 없이 승부차기에 향하지 않게 하려는 이유였음을.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입을 열지 않으면, 밖으로 꺼내놓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감독님.”

“왜 그러지?”

“4번 키커를 하겠습니다.”

늙은 감독의 눈이 바스티아노를 응시했다. 진심인지, 이제 정말로 페널티 스팟에 서도 괜찮은 건지, 아니면 괜한 만용을 부리는 건지를 파악하기 위한 이유일 것이다.

노련한 로저스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했다. 왜냐면, 바스티아노 본인조차 아직 확신하지 못했기에. 그가 확신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뿐이었다.

“지금 뒤에 숨어버린다면, 앞으로 선덜랜드에서 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감독의 대답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정하겠다. 네 번째 키커는 바스티아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