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182화 (182/422)

182화 교차하는 적과 백 (2)

경기 초반, 비교적 이른 시간에 터진 득점에 선덜랜드 선수단과 관중들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실점한 빌바오 팬들 역시 목소리를 높여 응수했다.

스타디온 포드고리차에 퍼지는 열기 속에서, 브라이언은 아직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기가 널려 있지. 결승에서 세 골쯤 뒤집는 일, 종종 일어나잖아?’

심지어 선덜랜드는 아직 세 골을 넣지도 못한 상태였으니, 더욱 방심할 수 없었다.

한편 빌바오 역시 포기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빌바오가 순혈주의 팀이기 때문일 거라고, 브라이언은 그렇게 예상했다.

연고지 팬에게는 광적인 지지를 받고, 이적시장에서의 선수 수급이 제약된다는 결점은 선수단의 결속력으로 메꾼다. 그리고 팬의 지지와 선수의 강한 결속이 함께하는 팀은,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 팀이 그러니까.’

선수들의 사기에 찬물을 끼얹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브라이언은 최대한 냉정하게 경기장을 살폈다.

옆에서 샐리가 슬쩍 조언했다.

“한 골 먹었다고 곧바로 라인을 올리는 멍청한 짓을 하지는 않네요.”

“그렇겠지. 우리는 라인을 올리는 팀을 꽤 쉽게 잡아내는 편이니까.”

공간침투에 능한 요니는 물론, 골 사냥꾼 크리그도 라인 올리는 팀 상대로 강한 편이다. 게다가 천재 드리블러 마르틴 역시 뒷공간 터는 데에는 도사나 마찬가지다.

“우리 공격진 앞에서 차마 라인은 못 올릴 테고, 그렇다고 계속 얻어맞을 수는 없으니 중원을 생략하겠네요.”

샐리의 의견에, 브라이언은 곧바로 동의했다.

“안 그래도 슬슬 간격이 꽤 벌어진 것 같은데? 롱 볼 비중도 높아 보이고.”

“네, 평소보다 높아요. 약 18%.”

샐리가 곧바로 대답했다. 브라이언이 흘끗 바라봤지만, 암산이라도 했는지 그녀의 손은 텅 비어 있었다.

원래부터 숫자와 데이터에는 자신보다 샐리가 훨씬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브라이언은 18%라는 숫자의 정확성에 집착하기보다는, 현상 그 자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다면 방해해야겠지. 마침 안 선생님께 좋은 걸 배우고 온 참이니까.”

“···안첼로티 감독 말이죠?”

어이없어하는 샐리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브라이언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대충 넘겨. 중요한 건, 피를로를 가진 팀은 절대 가투소에게 롱 패스를 맡기지 않는다는 거니까.”

롱 볼은 기본적으로 부정확하고, 자칫 잘못하면 상대에게 공을 헌납하는 경기 양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롱 볼을 무기로 삼는 팀에는 언제나 확고한 플랜 A가 있다. 예를 들어 선덜랜드라면, 후방에서 톰슨이나 에디가 공을 보내고 전방에서 스티븐과 바스티아노가 따내는 형태가 가장 기본이 된다.

“그렇죠. 따라서 끊어야 할 포인트는.”

“패스를 받는 쪽이지.”

“모처럼 마음이 맞네요.”

아쉽게도 둘의 좋은 호흡이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두 사람은 대응의 키가 잭인지 요니인지를 두고 옥신각신했으며, 서로를 축알못으로 매도했으니.

* * *

선제골이 터진 이후, 경기장의 양상이 곧바로 바뀌었다. 빌바오가 롱 볼 비중을 늘리자, 우리가 곧바로 대응에 나선 것이었다.

꽤 세련된 대책이었는데, 일단 상대가 롱 볼을 차게 놔둔 다음, 도착지에서 확실하게 잘라내는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공이 향하는 목적지에는 언제나 톰슨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톰슨 특유의 위치선정 능력과, 센터백을 볼 수 있는 당당한 체격은 상대의 롱 패스를 끊어내기에는 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톰슨 선수 오늘 무슨 부스터 켠 거 같은데? 원래 발 빠른 선수는 아니잖아?”

“읽고 있는 거겠지. 정확히는···.”

옆에서 로저스 감독이 덧붙였다.

“차게 만드는 중이군.”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비결은 영리한 요니, 그리고 헌신적인 잭의 전방 압박이었다. 비록 공을 빼앗지는 못했지만, 대신 빌바오가 롱 볼을 찰 때 방향과 각도를 제한해버리는 식이었다.

그리고 방향이 한정되면, 패스를 받을 사람이 누군지도 좁힐 수 있다.

그때부터, 빌바오의 롱 패스는 톰슨의 먹잇감이 된다. 간혹 톰슨이 없는 쪽으로 패스를 보낼 경우엔 에디가 끊으면 그만이고.

“그렇구나! 오늘 우리 경기력 진짜 좋은데?”

희주가 옆에서 대만족하는 사이, 나는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평소보다, 명백히 우리 벤치의 대응이 빠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로저스 감독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당연한 거야. 오늘은 우리 벤치의 판단에 시차가 없으니까.”

롱 패스 위주로 경기를 풀어보려던 빌바오의 시도는, 오히려 우리에게 공을 헌납하는 거나 마찬가지 결과로 이어졌다.

당연하게도 빌바오 벤치는 곧바로 전술을 바꿨다. 자꾸 커트당하는 롱 패스 대신, 풀백을 전진시키는 식으로.

잠시 후 빌바오가 자랑하는 공격적인 레프트백, 유리가 적극적으로 전진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곧바로 에디와 톰슨의 롱 패스를 오른쪽 측면에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응수했다.

아주 노골적일 정도의 메시지였다. 함부로 오버래핑 시도하면 곧바로 뒤를 파버리겠다는.

나는 우리 벤치를 내려다보았다.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오랜 친구 브라이언의 모습을.

솔직히 말하면,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선 모습이 잘 어울리진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로저스 감독만큼의 카리스마는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래도 전술이라는, 그 한 가지 측면에서 오늘의 브라이언은 누구보다 완벽했다.

전반 종료 직전, 상대 레프트백 유리의 빈자리를 노려 전진한 스티븐에게, 톰슨의 롱 패스가 전해졌다.

잠시 후 스티븐은 평소의 투박한 가슴 트래핑 대신, 깔끔하게 발로 공을 처리했다.

“받았어!?”

놀라는 희주에게 슬쩍 설명했다.

“스티븐도 축구 선수니까.”

스티븐의 테크닉이 투박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1부 리그 선수 기준의 평가이고, 수비가 붙어 있을 때의 이야기다. 지금처럼 대놓고 노마크일 경우, 프로라면 당연히 깔끔하게 공을 받아낼 수 있다.

잠시 후 스티븐의 패스가 바스티아노에게 전달되었다. 특유의 우아한 터치로 공을 확보한 바스티아노가 몸을 돌렸다. 크리그에게 짧은 패스를 전한 바스티아노가, 곧바로 라인 뒤쪽으로 침투를 시도했다.

“이대일 패스!?”

신이 난 희주의 외침처럼, 바스티아노의 움직임은 그만큼 절묘했다. 빌바오 수비진이 몸을 돌려 필사적으로 바스티아노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크리그는, 패스 대신 슛을 선택했다.

[고오오올! 빌 크리그! 2점째입니다! 전반 종료 직전, 선덜랜드가 크게 달아납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외침을 배경 삼아, 크리그는 이번에도 우리 쪽으로 달려와 무릎 슬라이딩 세레머니를 시도했다.

[선덜랜드 2 - 0 빌바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우리 선수들이 하나둘씩 크리그의 뒤를 이었다.

* * *

전반은 선덜랜드의 2점 차 리드로 끝났다. 스코어보드를 바라보며 브렌든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제 이긴 거나 마찬가지야. 이긴 거나!”

흥분하는 브렌든을 향해 수잔도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심지어 핫도그 사내조차 호쾌한 웃음으로 동의했다.

그 사이, 마일즈만이 조금 다른 의견을 냈다.

“아직 몰라. 저 친구들 좀 봐.”

맞은편 스탠드에 앉은, 자신과 똑같이 붉고 흰 유니폼을 입은 빌바오 팬들을, 마일즈는 차분하게 응시했다.

‘속이 타겠지. 가슴이 찢어질 거야.’

원정, 그것도 해외 원정까지 따라올 팬들이라면 팀에 대한 충성심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당연히 팀의 실점에 마음이 아프겠지만, 그래도 빌바오 팬들은 절대 티를 내지 않은 채 경기 시작 전과 똑같은 크기, 같은 목소리로 응원하는 중이었다.

저들의 감정이 어떤지 마일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새 구단주 이희성이 오기 전, 4년 전까지의 그의 모습과 똑같았으니.

저런 팬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후반의 빌바오 또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마일즈는 낮게 중얼거렸다.

“아직 축구 안 끝났어.”

전설적인 맥켐즈의 발언에, 핫도그 사내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Sunderland! Sunderland! Sunderland!

맞은편의 빌바오 팬들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 * *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빌바오가 마침내 라인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미 점수 차가 2점까지 벌어졌으니, 후반 45분 안에 따라잡겠다는 단호한 의사 표현이었다.

“어떻게 할래요? 수비 축구가 특기니까, 잠글 건가요?”

“안 선생님한테 배웠잖아. 잠그는 축구는 의외로 어렵다는 걸.”

전술적으로 보면 합리적이지만, 실제 경기장에서는 선수의 사기 문제가 발생한다.

지는 팀은 당연히 필사적으로 공세를 펼치게 되는데, 이때 상대가 움츠러든다고 느끼면 더욱 열을 올리는 게 사람 심리다. 그렇게 기세가 오르다 보면, 추격골과 동점골을 내주게 된다.

“모처럼 괜찮은 이야기네요. 맞불 놓을 거죠?”

“그래야지.”

FA컵 결승에서는, 최고의 경기력으로 이기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결과는 무승부였고,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슬아슬하게 우승했다.

오늘만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브라이언은 끊임없이 선수들을 독려했다.

더 공격적으로, 더 많이 뛰라고.

심지어 빌바오에게 추격골을 허용한 순간에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닥공’을 주문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경기의 템포는 눈이 휙휙 돌 만큼 빨라졌다.

적과 백의 교차.

바스티아노가 멋진 다이빙 헤딩을 성공시키자, 5분 뒤 빌바오의 캡틴이 추격골을 넣으며 포효했다.

그때마다 관중석은 두 팀 팬들의 함성으로 달아올랐다.

누군가는 스타디온 포드고리차를 이만 석도 안 되는 작은 경기장이라고 부르겠지만. 선수들에게 전해지는 결승전 특유의 열기만은 오만 석 경기장에 못지않았다.

그렇게 경기는, 후반에만 서로 다섯 골을 주고받는 난타전 양상으로 이어졌다. 마침내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세 번 울릴 때까지.

그 지독한 난타전에서, 승리한 팀은 선덜랜드였다.

[선덜랜드 5 - 2 빌바오]

* * *

단상에 올라 트로피를 내려다보며, 잭은 자신의 손이 떨린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우승 트로피는 이미 웸블리에서 한 번 들어 봤는데도.

‘유럽 대회라서? 아니면, 시즌이 끝나서 긴장이 풀린 건가.’

그때, 귓가에 아스라이 함성이 울렸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언제나 들었던 것보다 조금 작지만, 뜨거움만은 똑같은 목소리가.

언제나처럼 잭의 심장을 뛰게 하는 소리다.

‘축구 선수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는데 말이지.’

기껏해야 심장이 터져나갈 것처럼 달리거나, 죽어라 공을 차는 정도일 거라고, 잭은 그렇게 생각했다.

때로는 팬의 심장을 뛰게 하고, 경기를 보기 전보다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겠지만, 아주 가끔의 일이다. 매일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트로피라면, 보답이 되는 걸까?’

물끄러미 유로파 컨퍼런스 트로피를 바라보는 잭을 향해, 에디가 옆에서 슬쩍 속삭였다.

“뭐 하는 거야, 캡틴? 어서 의무를 다하지 않고.”

“의무?”

“아주 맛깔나게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도 주장의 의무에 포함될 거야. 아마도.”

잭은 피식 웃었다. 어느새 손의 떨림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선덜랜드의 주장은 트로피를 두 손으로 잡고, 축구선수가 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것들을 전부 시도했다.

맛깔나게 트로피를 들기. 그리고, 경기장에 오기 전보다 더 행복한 기분으로 돌려보내기.

‘제대로 했으려나?’

사방에서 들려오는 팬들의 함성이, 대답하는 것만 같았다.

We're by far the greatest team, the World has ever seen.

* * *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는 브라이언이었다.

[어디야?]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음, 경기장?”

다른 대답을 기대했는지, 브라이언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경기장 어디? 관중석?]

“그렇지.”

[브로, 뭐 하고 있는 거야? 감독님 모시고 빨리 내려와. 사진 찍어야지!]

평소와 달리 호들갑을 떠는 브라이언의 반응에서, 나는 마침내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팀의 우승 기념사진은 보통 두 버전이 존재한다.

가장 유명한 버전은 당연하게도 경기장에 마련된 단상에서 선수들끼리 찍은 사진이다. 중앙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주장을 중심으로, 1군 선수단 전원이 메달을 건 채 촬영한다.

그보다 조금 덜 유명한 버전이, 스태프들을 섞은 ‘팀 전체’의 기념사진이다. 이 버전에는 감독은 물론, 단장이나 기타 구단 관계자들도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고생했다.”

[고생이고 뭐고, 빨리 와! 레이디도 같이!]

전화가 끊겼다.

“브라이언 씨가 뭐래?”

“사진 찍으러 빨리 내려오래. 감독님 모시고··· 가시죠.”

로저스 감독은 결승전이 열리는 경기장에 서지 못했다. 공식적으로는 출전 정지라는 건조한 단어 이외의 다른 표현이 붙을 여지가 없다.

이번 유로파 컨퍼런스 결승은 전적으로 브라이언의 독무대였다. 상대의 노림수를 완벽하게 받아내며, 전술가로서 자리매김했으니.

하지만, 전술만으로 승리할 수는 없다.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요소는, 언제나 인간이기에.

선수들의 사기를 최고조로 유지하며, 팀에 어떠한 분란도 생기지 않도록 이 자리까지 끌고 온 것은 틀림없이 로저스 감독의 역량이었다.

경기는 끝났고, 로저스 감독이 받은 두 경기의 징계도 끝났다. 따라서 이제, 로저스 감독은 스타디온 포드고리차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고,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팀을 결승까지 데려온 감독이 마땅히 누려야 할 영광이자, 유에파가 빼앗지 못한 권리일 것이다.

머뭇거리는 로저스 감독을 향해, 희주가 잽싸게 달려들어 팔짱을 꼈다.

“감독님, 어서 가요!”

희주에게 반쯤 끌려나가는 은사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미소와 함께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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