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183화 (183/422)

183화 교차하는 적과 백 (3)

선덜랜드 주요 스태프는 대부분 몬테네그로에 향했지만,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남아 있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신상품을 책임지는 아드리안과, CS팀의 에이스 에이미도 그들 중 하나였다. 브리핑 룸의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 중계를 지켜보면서, 두 사람은 한창 업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로커 파크 피규어가 예상보다 훨씬 잘 팔리고 있어요. 이번 기획도 변함없이 돈독··· 대박이네요.”

무심코 본심을 섞어 말한 에이미가 아차 싶은 반응을 보였지만, 아드리안은 의외로 차분했다.

“네. 다행히 웸블리에선 별다른 항의가 없습니다. 혹시나 해서 구단주님이 법무팀까지 알아보셨는데···.”

“아, 그건 예상했어요. 축협 입장에선 우리가 예뻐 죽겠을 테니까요.”

“그렇습니까?”

아드리안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신상품기획팀장으로서는 업무 특성상 다양한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말실수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은 듯한 아드리안을 흘끔거리며, 에이미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죠. 우선 대부분의 빅클럽은 아무래도 리그와 유럽 대항전에만 집중하고, 국내 컵 대회에 올인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꽤 열심히 했어요.”

“EFL컵 4강, FA컵 우승.”

“객관적으로도 대단한 성과지만, 올 시즌의 우리가 리그를 호령하는 강팀이 아니었다는 점에선 정말 대단한 성적이죠. 축협 입장에선 컵 대회에 이렇게 열심히 뛰어주는 우리에게 호의적일 수밖에 없어요.”

“다른 이유는 뭡니까?”

“그야 유럽 대항전 성적이죠.”

대답하면서 에이미는 화면을 응시했다.

몬테네그로, 스타디온 포드고리차에서 열리는 유로파 컨퍼런스 결승전은 이제 딱 10분이 남아 있을 뿐이었고, 스코어는 5-2까지 벌어졌다. 덕분에 선덜랜드 관계자들은 무척 편안한 마음으로 중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유럽 대항전에서 잉글랜드 클럽이 활약할 때마다, 리그 랭킹 포인트가 쌓이거든요.”

“포인트···.”

탐욕으로 번들거리기 시작한 아드리안의 눈동자를 외면하면서, 에이미는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요즘이야 프리미어리그가 워낙 잘 나가지만, 방심할 순 없어요. 라리가도 변함없이 강한 데다가, 요즘은 분데스가 치고 올라오는 중이거든요.”

“뮌헨과 도르트문트 말입니까?”

“네. 그리고 요즘은 라이프치히도 무서워요. 돈 많이 쓰는 팀이니까요.”

에이미가 거론한 라이프치히는 유명 스포츠 드링크 회사가 운영하는 클럽이었는데, 덕분에 공격적인 투자라는 점에선 유럽 클럽 중에서도 손꼽히는 팀이었다. 그에 따라 성적도 자연스레 올라, 요즘은 챔스 단골이 되었다.

라이프치히 이야기에, 아드리안이 턱을 쓸었다.

“애초에 축구판에선 소유주가 돈 쓰는 거 제한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구단주님도 엄청 고생하시잖아요.”

구단주의 돈을 끌어다 선수를 사는 간단한 해법이 FFP때문에 제한되면서, 몇 년간 이희성은 인프라와 굿즈 개발 위주로 투자하고, 구단이 벌어들인 돈으로 선수 이적료와 주급을 해결하고 있다.

나름 건전한 성장 방식이지만, 시간이 들고 고생스러운 측면도 있었다. 매일같이 아이디어를 고민해야 하고 새로운 수입원을 발굴해야 한다.

그래서 아드리안은 매일같이 굿즈를 찍어내고, 에이미는 팬들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여념이 없는 것이다.

“라이프치히는 도대체 어떻게 돈을 끌어다 쓰는 겁니까?”

“뭐, 세상엔 다 편법이 있는 것 같으니까요··· 우린 우리 할 일이나 하죠.”

“네, 로커 파크가 잘 팔린다고 하셨습니까?”

“두 개씩 사는 분들이 계세요.”

“아하.”

고가의 경기장 피규어를 사는 사람은 당연히 선덜랜드 코어 팬, 그들에게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옛 선덜랜드의 홈 경기장을 피규어로라도 볼 수 있다는 매력은 저항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리고 물론 웸블리는 못 참는 게 인지상정이고.

[경기 끝났습니다! 선덜랜드가, 창단 이래 첫 유럽 대회 트로피를 차지합니다!]

10분 전부터 이미 경기는 기운 상태였지만, 그래도 결과가 확정되는 순간의 짜릿함은 참기 어려웠다. 에이미와 아드리안이 반사적으로 하이파이브했다.

“메가스토어 할인 문구를 준비해야겠네요. 두 개의 컵에 어울리는 걸로요.”

“기념 굿즈를 더 뽑아야겠습니다. 두 개의 컵에 어울리는 굿즈를.”

“그리고 클럽 박물관도요. 창단 첫 유럽 대회 트로피니까요!”

할 일이 널려 있었다. 우승 기념 행사 준비는 물론, 원정에서 돌아오는 선수단과 스태프, 팬들을 맞이해야 했다. 두 사람은 기쁨을 미뤄둔 채, 각자 자신의 업무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스마트폰이 울렸다. 원정 스태프 모두 함께 트로피 주위에 모여 찍은 사진이 도착한 것이다.

“어머나!”

그 안에서 에이미는, 불과 며칠이지만 벌써 그리운 얼굴들을 발견했다.

입이 찢어질 듯한 구단주 남매와, 평소와 달리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로저스, 어째서인지 눈이 새빨갛게 변한 브라이언과 새침하게 미소 짓는 샐리, 말갛게 웃는 리지.

붉고 하얀 선덜랜드 홈킷을 맞춰 입은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다.

사진 아래에는, 구단주의 메시지가 따라왔다.

[선덜랜드에 돌아가면, 모두 함께 다시 찍을 겁니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네.”

사진을 응시하며, 에이미는 환하게 웃었다.

친절하기로 이름 높은 선덜랜드 CS팀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맑은 미소를, 몬테네그로에 있을 동료 스태프들에게 전하려는 것처럼.

* * *

그다음은 온통 축제였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공항에서 선덜랜드로 돌아오는 길도, 그리고 마침내 트로피를 들고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돌아온 순간에도.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도착하자, 그라운드 위의 잔디에는 이미 축하 문구가 큼직하게 새겨진 채였다.

[FA컵, 유로파 컨퍼런스 챔피언 FC 선덜랜드]

혹시 몬테네그로로 출발하기 전부터 미리 써 둔 건가 싶어서 무심코 리지를 바라보자,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선덜랜드에는 윌리엄슨이 두 명 있다는 비법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그 글자를 배경으로, 구단 관계자 전원을 모아놓고 기념촬영을 했다. 그리고 시설관리팀은 선덜랜드 시청과 협의해, 화려한 불꽃놀이로 시티 오브 선덜랜드의 밤을 수놓았다.

클럽 박물관의, 메가스토어로 연결되는 가장 가까운 길목에는 두 개의 트로피가 나란히 놓였고, 그 앞에는 선수단의 피규어가 디오라마처럼 진열되었다.

FA컵 결승 버전과 유로파 컨퍼런스 결승 버전으로. 일단 출전한 선수단의 면면이 다르고, 유니폼도 서로 다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리델과 하퍼, 두 골키퍼의 피규어는 우승 기념으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을 재현했다. 리델의 경우 승부차기 도중 멋진 선방을 보여주던 장면을 넣었고, 하퍼는 동료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진열된 제품은 시제품이지만, 곧 양산할 겁니다.”

한편, 마침내 ‘로드 투 컨퍼런스’ 다큐멘터리 또한 엔딩을 찍었다. 영상의 마무리는 브라이언이었다.

[출전 정지라는 가혹한 처분을 맞이한 순간, 선덜랜드의 모두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감독님과 같이 트로피를 들고 싶다는 거였죠. 강한 동기부여가 승리의 비결이었습니다.]

화면 속에서, 브라이언이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실, 저는 전술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축구는 결국 선수가 하는 거니까요.]

“확실히 편집의 힘은 정말 대단하네!”

감탄하는 희주를 흘끗 바라보며, 나는 담담하게 덧붙였다.

“그렇지? 아마 네 화장의 힘만큼 대단할 거야.”

사실 브라이언의 인터뷰는 꽤 지리멸렬했다. 처음엔 시간과 공간 이야기를 한없이 반복하더니, 중간에는 점유율을 논했고, 나중에는 이야기가 아예 산으로 가버렸다.

결승 직후만 해도, 브라이언에게 감독 자리를 물려줘도 될 것 같다며 마냥 흐뭇해하던 로저스 감독은, 지리멸렬한 인터뷰에 머리를 감쌌다.

덕분에 로저스 감독이 계약 마지막 해까지 꽉꽉 채우게 되었으니, 나로서는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무튼, 브라이언의 엉터리 인터뷰를 말끔하게 다듬어준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역시 프로다웠다. 넷플릭스 주식을 더 사야겠어. 전망이 아주 밝아 보여.

그렇게 프리미어리그에서 보낸, 우리의 첫 번째 시즌이 끝났다. 프리미어리그 9위, EFL컵 4강, FA컵 우승, 유로파 컨퍼런스 우승, 그야말로 기대 이상의 성적과 함께.

* * *

시즌 오프를 맞아 선수단에게는 휴가가 주어졌다.

개중에는 휴가고 뭐고 계속 기숙사에서 버티겠다던 선수도 없지는 않았다. 대표적으로 요니나 해리슨이 그렇다.

또한 ‘휴가는 쉬어도 된다는 뜻이지, 무조건 쉬라는 뜻은 아니잖습니까.’라고 주장하던 크리그 같은 선수도 있었지만, 이번 시즌오프에는 모조리 쫓아냈다.

“다음 시즌부터는 더 가혹한 일정이 예상됩니다. 그러니 충분히 피로를 풀기 바랍니다. 쉴 때 쉬는 것도 프로의 일이거든요.”

유일한 예외는 바스티아노였는데, 이탈리아로 돌려보내느니, 그냥 여기 놔두는 게 선수의 멘탈에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그래도 클럽하우스에 계속 머무르게 되면 시즌 중과 똑같은 환경이 되니까,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외부 호텔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선수들을 모두 휴가 보내고 나니, 옆에서 고액 용돈 수령자가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휴가, 휴가! 우리도 휴가!”

언제 찾아놨는지 각종 휴양지 사진을 자기 모니터에 가득 띄운 희주를 잠시 바라보다가, 나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우리가 시즌오프 때 쉰 적이 있었던가?”

“음, 없었지?”

“그러면 왜 이번엔 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음, 그래도 꿈이 있는 삶이 좋다고 들었으니까?”

“슬슬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냐.”

그러자 희주가 입을 삐죽거리며 조심스럽게 반론했다.

“포기하지 않는 게 선덜랜드의 팀 컬러인데···.”

“동생아, 축구단의 팀 컬러는 사이드라인 안에만 적용되는 거란다.”

“몇 년 전부터 핫해진 워라밸이라는 개념도 있잖아?”

“이 기회에 워크와 라이프를 일치시키면 밸런스가 아주 잘 맞을거야.”

“으으, 이 악마.”

치를 떠는 희주를 향해, 슬쩍 덧붙였다.

“그래서 브라이언이나 샐리도 잘 버티잖아.”

둘의 인생은 이미 축구와 한 몸이 되었다. 취미가 축구 경기 보는 거고, 직업과 특기가 축구 전술 분석이니 워크와 라이프를 일치시킨 좋은 사례다··· 안타깝게도 전술적 의견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그 사람들은 안마의자와 몸이 일치된 거고!”

“너도 사줄까?”

“음, 괜찮아. 사양할게.”

희주는 약간 투덜거리긴 했지만, 곧 조용해졌다.

뭐, 나도 딱히 희주를 들볶으려는 의도로 이러는 건 아니었다. 그저 축구단 관계자에게는 시즌 오프 기간이 가장 바쁜 시기일 뿐.

여름 이적 시장이라는, 구단 운영측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이벤트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유로파에 나간다. 그것도 톱시드로. 그리고 리그에서는 슬슬 챔스권 경쟁을 펼쳐야 할 시기다. 그에 맞춰 선수도 조금 더 영입할 필요가 있다.

단판 승부에서 주전 열한 명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상당하지만, 기나긴 리그에서 버티려면 스쿼드가 얇다는 문제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크로아티아에 두고 온 이고르도 슬슬 합류시켜야 하고.

한마디로, 죽도록 바빠질 거란 말이지.

* * *

“그런데 너희는 휴가 안 가고 뭐 하냐? 바쁘지도 않은 것들이?”

브라이언과 톰슨을 향해 어이없다는 시선을 보내자, 둘이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씩 웃었다.

“브로, 우리 집은 여긴데?”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가 내 집이라는 상투적인 문구는 자제해 줬으면 좋겠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 로컬 보이잖아? 집이 아카데미 근처라고.”

브라이언 상대로 말문이 막히는 희귀한 경험을 해본 나는, 이번엔 톰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런던 출신이고, 가족들 역시 런던에 있다.

톰슨이 피식거렸다.

“내가 축구 하루이틀 하는 애도 아니고, 갈때 되면 알아서 가니까 걱정 마.”

이번에도 말문이 막혔다. 톰슨 정도 베테랑에게 훈수 두기는 여러 모로 모양 빠지는 일이었기에. 그래서 나는 잠시 입맛을 다신 다음,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쩐 일인데?”

“휴가도 못 가는 구단주 위문하려고.”

내 쪽으로 반쯤 몸을 돌리며, 둘이 동시에 잔을 들어 보였다. 브라이언의 손에 들린 잔이 걸쭉한 걸 보니, 오늘은 알콜 버전인 모양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미리 주문이라도 해 둔 것처럼, 늘 주문하던 쿠바 리브레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하긴, 하루쯤은 괜찮겠지. 톰슨은 시즌오프고, 브라이언 너도 수고 많았으니까.”

“수고는 무슨··· 고생은 브로가 했지. 감독님하고.”

머쓱한 표정을 짓는 브라이언을 향해, 나는 일부러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아, 인터뷰하느라 수고했다는 뜻인데?”

옆에서 톰슨이 박장대소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다큐멘터리 완성본만 봤지만, 팀의 부주장인 톰슨은 브라이언의 인터뷰 당시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게, 인터뷰 스킬이 그래서야 나중에 감독 해먹겠냐.”

“누가 보면 톰슨 너는 말 잘하는 줄 알겠다?”

“나는 감독 생각이 없으니까.”

브라이언의 반론을, 톰슨이 딱 잘라 버렸다. 그리고 나는 안심했다. 진로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선수로 더 뛸 수 있다는 뜻이기에.

“그래서, 다음 시즌 목표는 뭡니까? 구단주 양반.”

톰슨이 들어 올린 마티니 잔에 가볍게 내 잔을 부딪치며 답했다.

“챔스 진출권.”

수단은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 리그 4위. 혹은 유로파리그 우승 중 하나만 달성하면 된다. 둘 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다행히 우리에게는 다음 시즌, 양쪽 모두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것도, 유로파리그 톱시드라는 유리한 위치에서.

바로 팀을 이 자리에 세우기 위해, 그토록 유로파 컨퍼런스 우승컵을 간절히 소망했던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