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194화 (194/422)

194화 전설을 쓰기 위해 (1)

<하늘에서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항상 달과 함께 꿈꿔야 한다 -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한편 은퇴식 이후 이어진 만찬에서는, 팀 레전드들이 현역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골? 그리 어려운 건 아닌데···.”

한 시즌 35골을 기록했던 전직 득점왕 케빈의 이야기에, 바스티아노와 크리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주위의 시선이 없었다면, 마치 매달리기라도 했을 듯한 표정이다.

후배 공격수의 간절함을 눈치챈 케빈이 웃었다.

“사실 내 경우는 나이얼 어르신이 여러모로 눈에 띄니까 이득이었단 말이지.”

케빈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그는 투톱 파트너였던 나이얼과는 대조적인 타입이었다. 일단 프로필 키 차이가 23센티 차이가 나는데, 실제 나란히 선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30센티쯤 차이 나지 싶다.

‘빅 유닛’ 나이얼이 수비를 묶어두고, ‘스몰 유닛’ 케빈이 득점하는 게 과거 선덜랜드 투톱의 황금패턴이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지금의 바스티아노 - 크리그 조합도 흉내 낼 수 있는 것이었다.

바스티아노와 크리그도 깨달았을 것이다. 눈빛을 교환하는 두 공격수의 모습을 보면 뻔하거든.

한편 토마스는 잭과 요니를 둘러싼 채 하소연하는 중이었다.

“팀을 떠날 때의 심정? 엿 같았지.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 팀에 당장 이적료 수입이 필요했거든.”

요니가 안타깝게 고개를 젓고, 옆에서 잭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잭은 첫 번째 크리스마스 당시, 팀의 재정을 돕기 위해 자신을 매물로 내놓으려고 했던 선수다.

약간의 오해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었지만, 아무래도 잭으로서는 감정이입이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의 너희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네, 정말로 축구만 하면 될 것 같슴다.”

그리고 선수이자 구단주, 팀의 단장이었던 선덜랜드 최고의 레전드, 나이얼은 혼자 툴툴거리는 중이었다.

“이렇게 뜻깊은 날 건배조차 못 하게 하다니···.”

정확히는 나이얼이 건배를 마치자마자 구단 직원 한 사람이 술잔을 압수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구단 최고 레전드를 홀대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선덜랜드 스태프 중에 천하의 나이얼을 꼼짝 못 하게 하는 인물이 한 명 섞여 있었을 뿐.

“그래서, 또 술 마시겠다고요!?”

도끼눈을 뜨는 자신의 딸을 향해, 나이얼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런 의미는 아니었어.”

그럼 무슨 의미냐고 묻는 대신, 샐리는 특유의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짧은 안도와 함께, 나이얼은 팔꿈치로 나를 슬쩍 찔렀다.

“어때, 제법 귀엽지 않나?”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딸 가진 아버지들에게는 어떻게 대답해도 위험하더라고요.”

귀엽다고 대답하면 감히 자기 딸을 넘보는 거냐고 난리 칠 거고, 안 귀엽다고 말하면 그것대로 화를 낼 게 뻔하거든. 잘 안다. 왜냐면 우리 집에도 딸 가진 아버지가 한 분 계시니까.

나이얼이 웃었다.

“하긴, 자네 동생도 꽤 깜찍하군. 우리 샐리 정도는 아니지만.”

끔찍을 잘못 말씀하신 거 아닙니까? 아, 샐리 정도가 아니라는 말씀은 동감입니다.

“그러고 보니 낮에 봤어. 내 이름이 붙은 스탠드 말야.”

나이얼 본인은 물론, 구단 레전드들이 전부 구경했었다. 스타디움 투어 형식으로.

덕분에 CS팀은 초비상 상태가 되었다. 낮에는 구단 레전드라는 귀빈들을 안내했고, 저녁부터는 은퇴식 일정을 진행하는 일정의 부담은 천하의 에이미조차 기진맥진하게 만들 정도였다.

다행히 에이미의 그런 노력엔 성과가 있었다. 구단 레전드들은 달라진 경기장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새 스탠드에도 높은 만족감을 표시했다.

“정말 멋지더군. 잘 지었어. 그렇게 멋진 스탠드에, 나 같은 사람 이름이 붙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내가 영광이지··· 앞으로도 증축할 거지?”

“물론입니다. 이 경기장은 처음부터 칠만 석까지 확장이 가능한 구조로 설계되었으니까요.”

일단 칠만 석까지는 늘릴 생각이다. 그 이상으로 늘릴지는 나중에 고민하겠지만.

“그럼 다음번엔 이름을 썬 스탠드로 짓는 게 어때.”

“저는 구단 레전드가 아니라서···.”

그렇게 대답했더니 나이얼은 뭐가 우스운지 헛웃음을 지었지만, 나는 진지했다. 내가 이 팀에 기여한 것들은, 전부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뿐이었거든.

“시티 오브 선덜랜드에서, 자네가 선덜랜드 레전드가 아니라고 말하고도 무사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자네 한 명뿐일거야.”

나이얼의 얼굴에 떠올랐던 사람 좋은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눈빛 또한 바뀌었다. 팀의 발전을 뿌듯해하던 레전드의 눈에서, 한때 구단주이자 팀의 단장을 맡았던 수완가의 것으로.

“사만구천 석일 때면 몰라도, 육만 석 규모는 이곳 타인위어의 인구로는 슬슬 빠듯할 텐데. 칠만 석을 채우긴 쉽지 않을 거고.”

“노스이스트 전체가 타깃입니다. 다행히 노스이스트는 딱히 빅클럽이 없는 지역이니까요. 우리와 ‘그 팀’ 이 가장 인기 팀이죠.”

“그런 것치고는 공항 직통 고속도로부터 먼저 뚫었던데.”

“모처럼 유로파 나가니까, 해외 팬들도 데려와야죠.”

“··· 심판 탈의실 리모델링도 팬들 때문이라고 하진 않겠지?”

역시 전직 단장답게 판단이 예리하다.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고, 나이얼의 눈매가 부드럽게 변했다.

“정말 멋지겠군···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챔스 결승이 열린다면.”

“네.”

약간 뜸을 들인 다음, 나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 결승전에서 우리가 뛰면 더 멋지겠죠.”

“그건 정말 멋지겠는걸. 해낼 수만 있다면.”

나이얼의 눈이 가늘어졌고, 초점은 어느새 먼 미래를 그리는 듯했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열리는 챔스 결승전과, 꿈의 무대에 선 레드 앤 화이트 유니폼의 모습을.

“정말로 해낼 수 있으면··· 스탠드 하나쯤엔 제 이름이 붙어도 괜찮을 것 같긴 하네요. 아, 물론 저 은퇴한 다음에요.”

“아니, 어림도 없지.”

나이얼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경기장 이름을 바꿔야 해. 썬 리 스타디움으로.”

* * *

기념 만찬을 마친 후, 나이얼은 연신 ‘딸을 잘 부탁하네.’ 라는 대사를 남기며 떠나갔다.

덕분에 샐리의 표정이 퍽 볼만해졌다.

“아니, 술도 안 드셨는데 왜 취한 사람처럼 저러시는지 모르겠네··· 엄마한테 다 이를까봐.”

물론 나이얼은 친딸의 철저한 마크 덕분에 알콜이라곤 입에 대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취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구단의 레전드로서는 여러모로 감정에 취하기 충분한 날이었고, 어쩌면 꿈에도 취했을 테니.

브라이언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 몰래 그런 꿈을 꾸고 있었단 말이지?”

브라이언의 표정 또한 볼만해졌다.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챔스 결승전을 치르겠다는 계획 자체야 코칭스태프와 관계없는 영역이지만, 그 결승전에 팀을 데려가겠다는 목표는 코치진과도 밀접하기 때문이다.

어째 브라이언의 시선에 살짝 원망이 섞인 듯해서, 나는 슬쩍 눈을 피했다.

“혹시 부담 줄까봐 말 안 했던 거야. 당장의 일도 아니고.”

챔스 결승 경기장은 보통 3, 4년 전에 미리 선정한다. 지금 신청하더라도 아무리 빨라야 3년 뒤에나 벌어질 일이다.

“뭐, 브로 성격상 올여름엔 신청 안 하겠지. 올해 뽑히면 무조건 뒷말 나올 테니까. 유에파를 무릎 꿇린 전리품, 혹은 징계에 대한 보상이라는 식으로.”

지금의 유에파 회장은 꽤 공정한 타입이지만, 그래도 남들의 시선은 다르겠지. 굳이 구설수에 오를 짓을 할 필요는 없다. 유에파의 협조 없이도 충분히 챔스 결승 경기장으로 선정될 자신이 있으니까.

지금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챔스 결승을 치르기 충분한 경기장으로 탈바꿈했다. 몇 번이나 리모델링을 했고, 규모도 키웠으며, 최첨단 시설로 도배했다.

원정 드레싱룸에 좀 악의적인 장난을 치긴 했지만, 이조차 다른 팀에 비하면 딱히 심한 수준도 아니었다. 일단 우리는 원정 드레싱룸에도 홈팀과 비슷한 돈을 썼으니까. 비품 수준도 비슷하게 맞췄고.

내년쯤 신청한다면, 챔스 결승 경기장이 되는 건 아마 4시즌 후겠지.

옆에서 샐리가 끼어들었다.

“4년 안에 챔스 결승전에 설 팀을 만들라는 말씀인 거죠? 어휴, 부담스러운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작 샐리는 하얀 이를 드러낸 채 웃고 있었다. 아직 시즌 개막전도 안 치렀는데 벌써부터 전투 모드에 들어간 것처럼.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연회장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씩 포옹하면서 샘 아저씨를 떠나보내기 시작한 우리 스태프들과, 새로운 시즌에 대한 열망과 기대감으로 가득한 선수들의 모습을.

이 팀이 챔스 결승전에 향하기 위해, 4년씩이나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굳이 입 밖으로 낼 필요는 없겠지.

“샐리, 이번 시즌엔 챔스 진출권만 따오면 됩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만 말했다.

* * *

시간은 착실히 흘렀고, 선덜랜드는 폭풍같이 지를 거라는 세간의 예상과 달리 큰 움직임 없이 조용하게, 하지만 착실하게 시즌을 준비했다.

개막전 상대는 왓퍼드였다.

[왓퍼드를 홈으로 불러들이게 되었는데요. 선덜랜드에게는 쉬운 상대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기를 앞둔 로저스는, 기자의 질문에 보란 듯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쉬운 상대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죠?”

[그야 2년 전 챔피언십에서 선덜랜드는 왓퍼드에 완승했으니까요.]

“지난 시즌의 우리는 꽤 멋진 시즌을 보냈다고 자부하지만, 지난 시즌으로부터 2년 전, 우리는 리그 원 팀이었죠. 2년 전의 모습은 팀을 평가하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바로 우리가 증명한 사실입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멋들어지게 반격한 로저스가, 미소와 함께 지으며 덧붙였다.

“지금의 왓퍼드에만 관심을 둘 겁니다. 선수들도 그럴 거고요.”

물론 로저스의 인터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선덜랜드 팬들은 별로 없었다. 그들 중 선덜랜드의 패배를 예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최악의 경우라도 무승부일 거라 믿었다.

시즌 개막을 몇 시간 앞둔 시점, 사실상 홈 팬들의 주된 관심은 승패가 아니라 점수 차였다. 마일즈는 팬들의 그런 분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우리가 언더독의 반란을 몇 번을 일으켰는지 생각해보면···.”

마일즈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브렌든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수잔은 어디 두고 왔나?”

“실은 컨디션이 안 좋다더군. 소화가 안 되는지 식사도 제대로 못 했어.”

“그거 어째···.”

옆에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맥주집 사장을 제쳐둔 채, 브렌든이 인상을 썼다.

“그러면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괜히 이럴 때 축구나 보다가 평생 바가지 긁힐 텐데.”

“아냐. 수잔도 같이 왔어. 죽어도 축구 봐야겠다더라고.”

잠시 후 수잔이 조금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늦어서 미안해요. 속이 안 좋아서 화장실에 다녀오느라고요.”

주위에서 보기에도 수잔의 안색은 썩 좋지 못했고, 평소 그녀의 소울푸드 노릇을 하던 푸드트럭 핫도그조차 질색하며 밀어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맥주집 사장이 어째서인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에, 그들은 각자의 좌석에 향했다.

마일즈와 수잔은 익스클루시브 박스로, 그리고 ‘브라더스’ 는 블랙캣츠 스탠드로.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프리미어리그 1R, 선덜랜드 대 왓퍼드,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선덜랜드는 오늘도 4-4-2를 내세웠다. 얼핏 보면 커뮤니티 실드 때와 비슷한 멤버였지만, 베테랑 톰슨이 출전하지 않았다는 것이 달랐다.

오늘 요니는 미드필더로 출전했고, 투톱에는 바스티아노와 크리그가 섰다.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몰아치겠다는 포석처럼 보였다.

실제로 경기 양상 또한 포석과 비슷하게 흘렀다.

경기 시작부터 몰아치던 선덜랜드는, 마침내 전반 11분, 왼쪽 측면에서 파울을 따냈다.

프리킥을 준비한 선수는 마르틴이었다. 골대를 노려보며 히죽거리는 마르틴의 모습에 왓퍼드가 신중하게 수비벽을 세웠다.

심판의 휘슬과 동시에 마르틴은 마치 직접 슈팅을 노릴 듯한 기세로 달려들었고, 힘차게 공을 걷어찼다.

잠시 후 공이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렸다.

“주장에게 배움. 파넨카 응용.”

슛에 대비해 뛰어오른 왓퍼드 수비진은, 기습적인 패스에 대응하지 못했다. 덕분에 공은 비교적 손쉽게 선덜랜드 공격진에 전해졌다.

뒤늦게 따라붙은 왓퍼드 수비수를 완벽하게 찍어누르며, 바스티아노가 뛰어올랐다.

[고오오올! 올 시즌 팀의 첫 번째 골은, 바스티아노의 득점입니다!]

언제나처럼 격앙된 장내 아나운서의 외침과 선덜랜드 팬들의 환호 속에서, 바스티아노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선덜랜드 1 - 0 왓퍼드]

선제골 이후에도 선덜랜드의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베넷과 마르틴은 왼쪽 측면을 완벽하게 지배했고, 선제골로부터 10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위력적인 패스를 박스 안쪽에 전달했다.

[추가골! 추가골입니다! 크리그, 크리그가 넣었습니다!]

마일즈는 이른 추가골에, 그리고 팀 전체의 완벽한 움직임에 만족했다.

마르틴의 패스가 전해진 순간, 바스티아노는 왼쪽 측면으로 빠져나가며 수비 한 명을 끌어냈고, 오른쪽 측면에서는 스티븐이 수비 한 명을 유인한 상태였다.

잭과 요니 또한 절묘한 거리조절을 통해 왓퍼드 미드필더가 함부로 수비에 가담하지 못하게 위협했다. 덕분에 크리그가 완벽하게 자유로운 상태로 공을 건네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선덜랜드 2 - 0 왓퍼드]

이후에도 선덜랜드의 공세는 계속 이어졌다. 그야말로 완벽한 경기력이었다.

비록 왓퍼드에게 추격골을 허용하긴 했지만, 동점까지는 가지 않았다. 잭이 곧바로 추가골로 응징했기 때문에.

[선덜랜드 3 - 1 왓퍼드]

그 시점에서 마일즈의 유일한 불만은, 수잔의 얼굴이 계속 창백하다는 것이었지만··· 경기가 끝날 때쯤에는 그조차 불만이 아니게 되었다.

[축하한다. 친구가 그러는데, 분명히 입덧이래.]

브렌든의 메시지를 확인한 마일즈는, 벅찬 감동으로 수잔을 돌아보았다.

“나 아빠 되는 거야?”

“··· 이제 알았어요?”

창백한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인 수잔을, 마일즈는 격하게 포옹했다.

마치 그런 두 사람을 축하하듯,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는 골 폭격이 이어졌다.

[골! 추가골입니다! 마르틴이 쐐기골을 넣었습니다. 선덜랜드, 세 골 차이로 달아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