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197화 (197/422)

197화 전설을 쓰기 위해 (4)

선덜랜드 데일리가 ‘전설적인 시즌’이라고 부른 것처럼, 시즌 초반 선덜랜드는 무서운 활약을 펼쳤다.

6라운드, 맨유 원정에서는 초반부터 열세에 몰렸지만, 후반 들어 추격골과 동점골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2-2로 경기를 마쳤고, 7라운드 아스널 상대로는 홈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리고 8라운드 노리치 원정에서 깔끔하게 승리하며 무패를 질주했고, 9라운드에서는 소튼 상대로 다시 승점 3점을 챙겼다.

- 요즘 선덜랜드 진짜 제대로 미친놈들임. 쟤들 상대로 전반에 선제골 박으면 그게 더 불안하더라고.

- 솔직히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는 어설프게 골 넣지 말고 그냥 버티는 게 나을 듯. 경기 끝나기 전에 한 골만 넣고 튀는 게 최고임.

ㄴ ㅇㅈ. 괜히 거기서 선제골 넣으면 선수부터 팬까지 전부 미쳐 날뛰던데. 도저히 버틸 수가 없음.

- 아니, 근데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가 그렇게 지옥임? 올드 트래포드나 에미레이츠가 더 크잖음?

ㄴ 거긴 관광객도 오잖아. 근데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순도 백 프로 축덕들만 찾는 곳임.

ㄴ 생각해 봐. 솔직히 선덜랜드에 관광객이 어딨겠냐.

* * *

평소였다면 당장 발끈해서 한마디 했을 상황이지만, 오늘의 희주는 침착하고 냉정했다. 오로지 얼굴에 환한 미소만을 띤 채, 희주는 명랑하게 대답했다.

“아주 완벽하다고 생각해요.”

희주의 칭찬에, 파퓰러스의 수석 건축가 타일러가 정중하게 응수했다.

“감사합니다.”

타일러의 눈은 마치 팬더처럼 보였다. 다미의 작품이었는데, 그렇다고 다미가 실제로 그의 눈가를 쥐어박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가혹한 일정으로 타일러를 갈아 넣었을 뿐.

덕분에 선덜랜드 플라자 호텔은 이제, 누가 봐도 5성급 호텔에 어울리는 위상을 갖췄다.

“말씀하신 것처럼,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지하 차도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도시 관광을 희망하는 고객을 위해, 정문 쪽에서는···.”

“수고했습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옆에서 희주가 소곤거렸다.

“그런데 오빠, 이거 몇 달 사이에 만들 수 있는 거였어?”

“뭐, 타일러가 자초한 거지.”

처음 리모델링 계획을 세웠을 때, 타일러는 극구 반대했었다.

[저야 돈 받고 시키는 대로 만들어드리면 그만입니다만,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안 되는 걸 뻔히 아는 프로젝트를 추진해서 벌어먹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의 타일러는 지금의 SNS 반응과 똑같은 이야기를 했었다.

[솔직히 선덜랜드에 관광객이 어딨습니까?]

순순히 시키는 대로 했으면 타일러도 편했겠지만, 그에게는 나름대로의 고집이 있었다. 의뢰주의 돈을 시궁창에 처박을 수는 없으니, 제발 시장분석이라도 한번 해 보라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리미트리스가 끼어들었고···.

[지금 그깟 공사비 몇 푼 때문에 우리 사장님 시간을 뺏는 인간이 있다고요? 대체 누가!?]

···다미가 이 프로젝트를 직접 관리하게 되었다. 덕분에 지난 몇 달간 타일러는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시달린 모양이다.

물론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다미가 직접 챙긴 데다가, 희주 눈에도 흠잡을 데 없을 정도면, 선덜랜드 플라자 호텔은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수준이 확실할 테니까.

이제 남은 건, 팀의 성적이겠지.

* * *

올해의 선덜랜드는 제대로 단단해졌다는 평가를 받았고, 팬들 역시 행복회로를 돌렸다.

- 야, 올해는 우리 진짜 챔스 가는 거 아니냐?

ㄴ 무조건 갈 수밖에 없지. 썬이 그랬잖아. 올해는 챔스 나간다고. 지난 세 시즌간 썬이 했던 말 하나라도 틀린 거 있었음?

ㄴ 언제 챔스 나간다고 한 적 있음?

ㄴ 행동으로 보여주는 중이잖아. 고속도로를 왜 뚫었겠냐. 앞으로 해외 원정 많이 뛴다는 뜻이지.

ㄴ 하긴, 선덜랜드 플라자 호텔도 리모델링 끝냈지? 이제 5성급 호텔로 바꿨다던데.

- 이쯤 되면 투자의 신이 아니라 축구의 신 아니냐?

ㄴ 그건 모르겠는데, 일단 선덜랜드의 신인 건 확실함.

축구단의 성적은 물론, 호텔 리모델링이나 고속도로, 지하차도 건설로 지역에 돈이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티 오브 선덜랜드가 붉은색 행복으로 가득해진 와중, 유일하게 행복하지 않았던 사람은, 의외로 임산부 수잔이었다.

“경기 보고 싶어요!”

하소연하는 수잔을 향해, 마일즈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 같이 봤잖아.”

“TV에서 보는 건 보는 게 아니라면서요. 아! 경기장 가고 싶다!”

수잔의 불만은 선덜랜드가 울브스 상대로 그림 같은 역전승을 거둔 뒤로 더욱 거세졌다. 익스클루시브 박스 시즌권도 있는데 왜 축구를 보지 못하냐는 것이었다.

“조금만 참아. 안정기는 지나야 한다잖아.”

“축구를 못 보는 게 훨씬 해로울 것 같은데요.”

수잔의 고집에 결국 우드 부부는 산부인과 의사와 상담을 나눴고, 곧바로 미치셨냐는 답변을 받았다.

“하긴, 뭐, 이해합니다. 저도 지역 토박이라서요. 요즘은 축구 못 참죠. 시즌권은 있으세요?”

“네.”

“그건 부럽군요.”

잠시 입맛을 다신 의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시즌권 있으시면, 선덜랜드 CS팀에 상의해 보시죠. 아마 어지간한 요구는 들어줄 겁니다. 거기는 구급팀도 상주하고 있으니까요.”

의사의 답변에 마일즈와 수잔은 나란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미 그들이 얼마 전 경험했던 일이다. 수잔의 임신 소식에 구단 직원은 자기 일처럼 축하해 주었고, 곧바로 팀의 차량을 동원해 송영 서비스를 제공하기까지 했다.

임산부를 위해 약간의 편의를 부탁하면 아마 선덜랜드는 기꺼이 그렇게 해줄 것이 틀림없었다. 유일한 문제는, 임산부를 위해 ‘어떤 편의가 필요한지’ 수잔도, 마일즈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의사가 미소를 지었다.

“제가 안내해 드리죠. 아예 제가 대신 전화를 하는 게 낫겠군요. 의료인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안내해야 하니까요. 티켓 등급이 어떻게···.”

의사의 태도는 프로페셔널하면서도 친절했고, 미소 또한 일품이었다. 하지만 젊은 의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네? 익스클루시브 박스요!? 진짜입니까?”

* * *

에이미는 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곧바로 CS팀의 대형 화이트보드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익스클루시브 박스 7호실, 임산부 있음. @에이미]

[확인, 3분 이내에 구급팀 출동 가능토록 요청함. @린다]

[이동 중 CS 팀원이 항상 동행하여 안내할 것 @에이미]

에이미의 메모를 확인한 CS팀원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익스클루시브 7호실이면, 어차피 전용 통로를 쓰게 되어 있지 않나요?”

“맞아. 그런데 그분은 벌써 17년째 시즌권을 끊으셨던 고객님이셔. 그러니 습관적으로 일반 고객 통로를 이용하시는 것도 당연하겠지?”

“그렇군요. 그 생각은 못 했네요.”

신참 팀원의 시선에는 존경심이 가득해 보였다. 안 그래도 에이미는 팬의 마음을 아는 독심술사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미는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로 독심술을 쓸 수 있었으면 편했을 거야.’

고객이라면 상대하기 쉽다. 일부러 트집을 잡으러 돈까지 쓰는 고객은 극히 드물고, 대부분은 팀을 사랑하기 때문에 축구장을 찾는다.

그런 팬들이 거는 클레임에는 대부분 정당한 이유가 있다. 그러니 알아차리기도 쉽고, 대응하기도 쉽다. 굳이 독심술씩이나 필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가 맞이할 상대는 결코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자신의 이름 아래 붙여진 포스트잇을 떼면서, 에이미는 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유에파 심사관 방문, 스타디움 투어 예정. @린다]

심사관이 도착한 것은 1시간 뒤의 일이었다.

* * *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의 투어를 맡은 선덜랜드 CS팀 부팀장, 에이미입니다.”

“반갑습니다.”

에이미의 인사에 사무적인 미소로 답한 심사관은, 자기소개조차 하지 않았다. 옆에서 선덜랜드 CS팀원들이 수군거릴 정도였다.

“왜 이리 뻣뻣해요?”

“일단 심사하는 입장이니까··· 겠지?”

구단주의 꿈이자 FC 선덜랜드 스태프의 목표,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챔스 결승전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선결 조건이 있었다.

바로 유에파의 최고 레벨 경기장으로 인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5성급 경기장으로 불렸고, 요즘 표현으로는 카테고리 4에 속해야 챔스 결승전을 개최할 자격이 생긴다.

오늘은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가 바로 그 카테고리 심사를 받는 날이었다.

에이미는 평소의 스타디움 투어 코스로 심사관을 안내했다. 업무 특성상 그녀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이기도 했고, 경기장의 훌륭함을 알리기 위해 신중하게 설계된 투어 코스의 특성 때문이기도 했다.

에이미의 의도가 효과를 봤는지, 심사관은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경기장이 생각보다 크군요.”

“증축했으니까요. 현재 좌석은 6만 석입니다.”

심사관은 ‘등받이가 설치되어 있느냐’고는 묻지 않았다. 어차피 자기 눈으로 확인하면 그만인 작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심사관은 조금 다른 질문을 했다.

“그렇군요. 날씨에 따라서 추울지도 모르겠는데요.”

“열선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렇군요. 열선은 어느 스탠드에 설치되어 있습니까?

예상했던 질문에, 에이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전 좌석요.”

물론 카테고리 4 인증에 열선이 필수적인 항목은 아니지만, 에이미는 심사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온 선덜랜드 CS팀원들은 심사관이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에 만족했을 것이다.

[ O ] 국제 공항과 인접

[ O ] 필드 밖, 광고판 설치 공간 보유

[ O ] 1,000개 이상의 방을 구비한 5성급 호텔

잠시 후 심사관은 체크리스트 몇 개에 OK 표시를 마친 다음 덧붙였다.

“아, 그리고 TV 카메라는 열여덟 대 설치될 수 있어야 합니다.”

심사관의 이야기에 에이미는 처음으로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사이, 옆에서 선덜랜드 CS팀원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울렸다.

“열여덟 대요!?”

“네, 너무 기준이 빡빡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카테고리 4 경기장이 되려면 그 정도 중계 설비는 갖춰야···.”

“아뇨, 그러니까 제 말은, 겨우 열여덟 대만 있으면 되냐는 거였는데요. 저희는 리그 원에서부터 카메라 서른 대 돌리던 팀이라서요.”

에이미는 자신의 부하 직원을 흘끗 바라보았다. 만일 정식 스타디움 투어였다면 손님에게 예의 없게 굴었다고 제대로 박살을 냈겠지만, 지금은 투어가 아닌 심사고, 상대는 손님이 아니었다.

돈 안 냈으니까.

에이미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완벽하게 참아내며, 겉으로는 어떠한 표정 변화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심사관에게는 에이미처럼 완벽한 표정 관리 능력이 없었기에, 다음 심사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흠흠, 그리고 유에파 규정에 따른 최고 수준의 미디어 장비를 보유해야 하는데··· 넘어가죠.”

에이미는 속으로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넷플릭스, 유튜브와 제휴를 맺고, 실리콘밸리에서 매일같이 퍼다 나르는 최첨단 장비들을 자랑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동반인을 위한 좌석은···.”

“물론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리그 최초로 심리안정실을 준비한 구단으로, 몸뿐 아니라 마음에 불편을 겪는 분들 또한 안심하고 경기를 관람하실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마지막으로, 굳이 체크할 필요도 없어 보이지만, 천 룩스 이상의 조명이 필요한데요.”

에이미는 환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이 경기장의 이름이 뭔지 잊으셨나요?”

잠시 후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가 눈부신 빛을 발했다.

* * *

브라이언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치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반짝이는 빛의 경기장으로.

그의 곁에서 샐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머, 심사 잘 끝난 모양인데요?”

“뭐, 애초에 심사에서 떨어질 리는 없었잖아.”

카테고리 4 자격은, 대부분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 갖출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물며 FFP 규제조차 없는 설비 투자 분야에서, 지금의 선덜랜드를 이길 수 있는 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뒤에는 투자의 신이 있으니까.

샐리가 낮게 웃었다.

“이제 경기만 잘하면 되겠네요.”

“잘하고 있잖아.”

“어머, 겨우 한 달 정도 반짝한 정도로 만족할 생각이면, 이 기회에 수석코치 자리 넘기시죠? 분석실에 자리 많은데요.”

‘네가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머지않아 자연스럽게 자리 넘기게 될 것 같아. 그렇다고 내가 분석실로 가진 않겠지만.’

속으로 생각하는 브라이언을 향해, 샐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그래요?”

“아니, 뭐 밤샘할 때마다 가끔 그럴까 싶은 생각이 안 들었던 건 아닌데··· 분석실도 밤새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싶어서.”

“그야, 제니트는 강적이니까요.”

그들의 당면 과제는 유로파리그 조별 2차전을 준비하는 것이었고, 상대는 챔스와 유로파를 오가는 러시아의 명문 제니트였다.

제니트는 이번 유로파 조별리그에서 선덜랜드가 가장 경계하는 팀이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엇보다···.

“원정 지옥이지.”

가스프롬 아레나, 유에파에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으로 부르는 제니트의 홈 경기장은, 지금까지 선덜랜드가 찾았던 어느 경기장보다도 먼 곳에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러시아에 쳐들어가서 재미 본 사례가··· 아마 한 번도 없었죠?”

“그건 전쟁 이야기고.”

“축구도 전쟁이잖아요.”

여느 때처럼 옥신각신하면서도, 브라이언과 샐리는 경기 준비에 집중했다.

전설적인 출발을, 전설적인 시즌으로 이어나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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