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Passed Away (4)
노스이스트 저널 취재진은 크리그의 차량을 이미 알고 있었다.
새빨간 테슬라 로드스터. 구단 지급품으로 널리 알려진 품목으로, 구단주 이희성의 한정판 로드스터와는 색깔만 다르고 똑같은 모델이었다.
차량 정보는 파파라치 노릇에는 핵심 정보였지만,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아니, 쟤들은 왜 이렇게 빨간색을 좋아해?”
“그야 선덜랜드의 상징색이 빨강이라서 그렇겠죠. 빨간 차 타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무덤덤하게 대답하면서도, 기자 또한 알고 있었다. 빨간 차를 타는 건 당연히 죄가 아니지만, 문제는 선덜랜드 선수단 전원이 전부 빨간 로드스터를 탄다는 사실이라는 걸.
물론 구단 측에선 선수들의 취향을 고려해 색상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게 배려했지만, 아직까지 빨강 이외의 색상을 택한 선수는 아무도 없다.
팀 훈련 일정을 마칠 때마다 스무 대 넘는 붉은 로드스터가 일제히 흩어지는 모습은 분명 장관이지만, 파파라치 입장에서는 영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아침에 추적해야 편하죠. 훈련장에서 나올 때는 헷갈리니까요.”
“지금이 아침이야?”
“듣자니 크리그한텐 그렇다던데··· 나왔네요.”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새벽. 미끈하게 생긴 붉은 로드스터가, 축구선수치고 다소 검소한 크리그의 자택을 빠져나왔다. 잠시 후 약간의 시차를 두고, 길가에 주차된 노스이스트 저널의 밴이 그 뒤를 따랐다.
“이런 꼭두새벽부터 움직이는 걸 보면, 틀림없이 영양가 있는 기사를 건질 수 있을 것 같군.”
“그랬으면 좋겠네요.”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취재진의 목소리는 밝지 않았다.
지역 언론 특성상 그들은 선덜랜드 지리에는 퍽 친숙한 편이었고, 지금 차량이 움직이는 방향에 뭐가 존재하는지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기자와 부편집장이 분통을 터트렸다.
“크리그 그놈은 사람이 아닙니다. 축구 기계인 게 틀림없어요.”
“일주일 내내 새벽에 훈련장 가서 개인 연습하고, 팀 연습 끝나고 또 개인 연습하고, 집에 가서는 잠만 자더라니까?”
기자와 부편집장을 차례로 바라보던 편집장이 한숨을 쉬었다.
“확실해? 집에서 잠만 자는 거.”
“혹시나 해서 창가에 녹음기 놔둔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코골이가 심하다는 것 말고는 건진 게 없습니다.”
편집장은 혀를 찼다.
“이쯤 되면 미담에 가까운데··· 알다시피 그런 건 기삿거리가 안 돼. 선덜랜드 데일리가 전부 독점으로 내버리니까.”
“그럼 역시 우리는 스캔들을 노릴 수밖에 없군요.”
“그렇지··· 크리그 말고 다른 선수를 알아보자고. 선덜랜드에 선수가 한둘이야? 아니잖아.”
편집장의 눈동자에 열기가 떠올랐다.
“잭, 아니면 요니는 어때? 걔들은 차도 안 타고 다니니까 미행하기도 편할 것 같은데.”
잭과 요니 또한 다른 선수들처럼 새빨간 로드스터를 지급받았지만,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차를 주차장에 하도 방치한 탓에, 배터리가 완전히 나가서 AS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을 정도다.
그런데 기자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편집장님, 걔들은 걸어 다니니까 문제입니다. 시티 오브 선덜랜드에서 걔들 미행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음··· 혹시 지역 토박이만 아는 샛길 같은 걸로 막 따돌리고 그러나?”
“그러진 않는데··· 대신 동네 사람들하고 전부 알고 지내잖아요. 한번 카메라 꺼내 보세요. 어떻게 되는지.”
멍석말이라는 단어를 가까스로 떠올린 편집장이 몸을 떠는 사이, 부편집장이 끼어들었다.
“해리슨은 어때.”
한 문장으로 편집장과 기자의 시선을 한 몸에 끌어모은 부편집장이, 느긋한 태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크리그는 애초에 글른 선택이었어. 놀 줄 아는 놈이 놀지. 일평생 하부리그 구르던 선수가 놀 줄 알겠어?”
“그 논리대로라면 해리슨도 유스에서만 구르던 선수라 놀 줄 모를 텐데요.”
“들어봐. 해리슨은 아직 어리지. 한창 피가 끓고 자제력은 부족할 나이야. 마침 선덜랜드 감독이 요즘 선수들을 좀 풀어주는 모양이거든.”
부편집장의 의견에 편집장도 금방 동의했다.
“하긴, 해리슨은 여기 로컬이지. 아직 어려서 그렇지 꽤 미남형이고··· 그래, 따르는 팬들도 아주 줄을 섰을 거야. 유혹도 많겠지.”
편집장이 진행하자는 사인을 보내자, 취재진은 곧바로 해리슨으로 화살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이 또다시 분통을 터트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아니, 애초에 아카데미 밖으로 안 나오는데!?”
“클럽하우스에 딸린 기숙사 있죠? 거기 산대요. 어떻게 보면 크리그보다 더한 놈이에요. 크리그는 그래도 출퇴근은 하잖아요.”
취재진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편집장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니, 선덜랜드는 무슨 축구 기계들만 데려다 쓰나.’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 주차장에서 찍힌 해리슨의 로드스터 사진을 바라볼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얼마나 처박아 뒀는지, 먼지가 달라붙어 얼핏 분홍색으로 보일 정도였기에.
선덜랜드가 자랑하는 축구 천재 해리슨은, 스캔들과 아주 거리가 먼 삶을 사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역시 구단주 스캔들을···.”
“아냐, 너무 위험해. 거기 구단주 잘못 건드리면 진짜 주옥되는 거야.”
결국 노스이스트 저널 취재진은 조금 뻔한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아카데미 오브 라이트를 감시하자. 아무 차나 따라다니다 보면 뭐라도 건지지 않을까?”
자포자기한 행동이었지만, 의외로 소득이 있었다. 며칠 후, 기자가 눈을 빛냈다.
“한 건 잡았습니다. 에디가, 밤에 해리슨을 끌어내는 것 같던데요!?”
[좋은 데 가자.]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아카데미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에디의 차에 올라··· ‘좋은 곳’ 에 간다. 요즘 들어 에디와 해리슨이 매일같이 하는 행동이었다.
“에디란 말이지.”
편집장의 눈이 빛났다.
에디가 어린 선수를 밤마다 불러내, 놀러 다닌다. 놀라울 정도로 아무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조사해 보자고.”
* * *
빙긋 웃는 에디를 바라보며, 해리슨은 입술을 깨물었다.
에디의 등 뒤에 세워둔, 두 개의 콘으로 이어지는 패싱 루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개의 루트를 동시에 지워버린다고?’
에디의 수비력에 대해, 해리슨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수비수는 예전부터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손꼽힐 실력자였고, 페르난데스가 은퇴한 이후에는 선덜랜드 수비라인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의 해리슨과 비교하면 명확한 실력 차이가 존재했다.
그래도, 등 뒤로 패스조차 전달하지 못할 줄은 몰랐지만.
“네가 ‘절대로’ 돌파하지 않는다는 걸, 내가 알기 때문이야. 상대팀은 아직 확신하지 못한 것 같지만··· 그것도 시간 문제 같은데.”
“혹시 움직이는 타깃 상대로는 통할지도 모르잖아요?”
“그래? 그럼 내일은 요니를 부를까?”
“···아뇨, 괜찮아요.”
해리슨은 한숨을 내쉬며 공을 에디에게 넘겼다. 항복 선언이다.
사실은 해리슨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한계가 있다는 것쯤은.
[뛰어난 패싱 센스만으로 통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어. 직접 골을 노릴 수 있는 의외성, 수비를 벗겨낼 발재간···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살아남기 어려울 거야.]
벤피카의 단장, 코스타가 그렇게 조언해줬기 때문이다. 현역 시절 포르투갈의 마에스트로라 불리던 사내의 조언에는 남다른 무게감이 있었기에, 해리슨 역시 곧바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에디가 해리슨을 밤마다 끌어내기 시작한 것도, 딱 그날부터의 일이었다.
“알아들었으면 돌파 연습이나 하자. 넌 공격하고, 내가 마크한다. 오케이?”
“어··· 그럼 이번엔 패스라는 선택지 없이 에디 선수를 제치는 조건이 되는데요?”
“하핫, 눈치챘어?”
씩 웃는 에디의 얼굴에, 해리슨이 잘 아는 표정이 겹쳐 보인다. 페르난데스, 톰슨, 크리그··· 선덜랜드 베테랑들이 종종 짓던 표정이다.
해리슨의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에디 씨는···.”
동시에, 해리슨은 생각을 정리했다.
톰슨과 하퍼, 크리그를 제외하면 이제 선덜랜드에는 베테랑이 남지 않는다. 잭과 요니, 그리고 에디의 세대가 팀의 주축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센터백은, 팀의 미래를 위해 후배들을 직접 키우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시간은 에디 스스로를 위한 훈련이기도 할 것이다.
단순히 ‘어린 선수를 가르치려는’ 목적이었다면, 에디는 해리슨 대신 프랭크를 불러냈을 것이다. 프랭크는 에디와 마찬가지로, 수비수였으니까.
그런데도 굳이 해리슨을 고른 이유는···.
“와라. 나도 땀 좀 빼게.”
해리슨의 발아래에, 공이 정확히 멈췄다. 어느새 에디는 이를 드러낸 채 호전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세상에서는 에디를, 노력하지 않는 선수로 칭한다. 재능은 확실하지만, 그저 재능만으로 프로가 된 선수라는 평가도 따른다.
프로 축구 선수라면, 절대로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재능이 없는 선수는 애초에 프로가 될 수 없을 테니까.
이곳은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자들의 무대다.
그리고 이제, 해리슨은 안다.
“네!”
에디는 남들만큼, 어쩌면 남들 이상으로 노력하는 선수다. 그저 타고난 성격 때문에 자신의 노력을 남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을 뿐.
스탠드 조명에 의지한 채, 해리슨은 에디를 향해 돌격했다.
* * *
“밤 연습이라고요?”
애니, 그리고 조엘의 보고를 듣자마자 나는 무심코 인상을 쓰고 말았다.
밤 연습이라니, 오버워크로 이어지기 딱 좋은 조건 아닌가?
개인적인 이유에서, 나는 선수의 오버워크를 극도로 싫어한다. 하물며 해리슨까지 동행시켰다면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딱히 무리한 일정은 아니었다. 돌파 연습이나 패스 커트 정도로,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만 훈련한다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용케 눈치챘네요. 에디는 쉽게 꼬리를 잡힐 타입이 아닌데.”
그러자 애니가 대답했다.
“우연이었어. 실은 파파라치가 좀 섞여든 것 같더라고. 우리 선수들 뒤를 캐려는 모양이라 역으로 조사를 좀 했더니···.”
거기까지 들으니 대충 짐작이 간다. 세상엔 아직도 선수 스캔들 찌라시를 캐다가 파는 기레기가 많으니까.
그들에게, 에디가 밤에 돌아다니는 모습은 절호의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어린 해리슨까지 동행시켰으니, 특종처럼 보였겠지.
그렇게 에디 뒤를 밟다가, 우리 프레스팀과 시설관리팀에 역탐지당했다는 이야기다.
“그나저나 찌라시는 예전에 한 번 근절하지 않았습니까? 타인위어 스포츠도 제대로 참교육했던 것 같은데.”
“아, 이번 애들은 노스이스트 저널. 누구보다 스캔들 기사를 사랑하지만, 정작 단독으로 써 갈길 용기는 없는 친구들이지.”
단독으로 써 갈길 용기가 있던 신문사, 타인위어 스포츠는 이미 반쯤 망했다는 것 같은데···.
이후 애니는 보도지침을 내게 보고했다. 악의적으로 우리 선수의 찌라시 기사를 만들려 들면 곧바로 ‘처리’ 할 것이며, 특히 해리슨을 집적거릴 경우에는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하지만 일종의 미담성 기사로서, 제대로 있는 사실만 보도한다면 굳이 터치하진 않겠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조엘.”
“네. 훈련장의 보안을 좀 더 신경 쓰겠습니다.”
잠시 후 보고를 마친 두 사람이 자리를 떠났고, 나는 책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에디란 말이지.”
무심코 미소가 지어졌다. 문득 페르난데스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5년만 시간이 있었다면 에디를 추천했을 겁니다. 특유의 강한 자의식은 절대 낫지 않겠지만, 팀에 융화되면 그 또한 일종의 리더십이 되겠죠.]
“그렇게 되었네요. 아직 5년은 지나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영입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선수였다. 지나치게 자의식이 강해서 팀워크를 해치지 않을까 우려도 많았고, 실제로 돌출행동으로 징계를 받은 적도 있는 선수다.
하지만 지금의 에디는 예전과 다른 선수가 되었다. 페르난데스가 보여주었고, 톰슨과 크리그가 보여주는 모습처럼, 어린 선수의 모범이 되려 노력하고 있다.
축구는, 언제나 그렇게 계승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