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투자의 신이 키우는 축구단-217화 (217/422)

217화 개화 (1)

<공을 가지면 내가 주역이다. 결정하는 것도, 창조하는 것도 나다 - 요한 크루이프>

“이렇게 된 이상, 쓸 수밖에 없다.”

노스이스트 저널 편집장은 무거운 목소리로 선언했다. 이대로 말라 죽느니, 선덜랜드 구단주 스캔들이라도 찍어내 보자고.

한때 지역 내 1위를 자랑하던 부수는 몇 년 사이 완만하게 감소했다. 최근 급성장한 선덜랜드 데일리에 독자를 뺏긴 것이 원인이었다.

덕분에 광고도 많이 줄었다. 당장의 경영 존폐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대로 가면 조만간 말라 죽을 게 뻔하다는 것이 노스이스트 저널 관계자들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선덜랜드 데일리는 절대 못 쓸 기사를 써야 해. 그게 바로 선덜랜드 구단주 스캔들이지.”

“그러다가 리미트리스가 극대노하면 어쩌려고요.”

“어쩌긴 뭘 어째. 재빨리 정정 보도 내고 박박 기어야지. 괜찮아. 어그로 한 방만 끌면 된다니까? 우리가 무슨 유에파처럼 전면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맞아. 그리고 사실 유에파도 회장만 갈아치우고 끝냈잖아?”

“그런 식이면 우리는 편집장님이 갈리겠는데요. 부편집장님, 미리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그 구단주한테 기삿거리가 있기는 하고?”

마침 적당한 소재가 있기는 했다. 리미트리스 부사장 최다미가 영국에 머무르는 중이었으니.

최다미는 티엠씨 프로젝트와 리미트리스 리그 준비로 며칠간 영국에 머물렀고, 이희성과 함께 외근을 다니기도 했다. 덕분에 노스이스트 저널은, 이희성과 최다미가 나란히 찍힌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비록 사진에는 연애의 달콤함보다는 업무 파트너로서의 신뢰와 친밀함이 잔뜩 담겼지만,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딨냐는 필터를 적용하면 어찌 엮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노스이스트 저널의 시도는 미수로 돌아갔다.

“재미있는 기사를 쓰셨다고 들었는데요.”

신문이 인쇄기를 빠져나오자마자, 리미트리스 관계자가 노스이스트 저널 사무실에 들이닥친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기사에 따르면 저하고 우리 사장님이 열애 중이라는 거네요? 그렇죠?”

인쇄기를 갓 빠져나온 뜨끈뜨끈한 신문을 펼쳐 보이며, 최다미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얼핏 보면 반할 만큼 아름답고 밝은 미소였지만, 노스이스트 저널 관계자에게는 마치 맹수의 웃음 같았다. 아무튼 눈앞의 여성은 유에파를 무릎 꿇린 전력이 있는 장본인인 것이다.

관계자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은 끝에, 결국 편집장이 대표로 총대를 멨다.

“하루 휴간하겠습니다. 오늘 자 신문은 전량 폐기할 거고요.”

“어머, 그러면 인터넷에 기사를 올리거나 하는 일도···.”

“물론 없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오늘 자 신문은 폐기하신다고요?”

편집장의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최다미는 조금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폐기 관련 대책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편집장이 황급히 부연했다.

“그렇습니다. 전부 파쇄기에 철저히 갈아버린 다음에, 태우겠습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아깝··· 아니, 제 말은 처리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였어요. 리미트리스에서 가져다 처리하죠. 발행 부수가 몇 부죠?”

최다미는 곧바로 신문값 전액을 현찰로 지불한 다음, 신문 전량을 ‘회수’ 조치했는데, 가져다 폐기할 신문인데도 어쩐지 취급하는 방식이 독특했다.

기자는 꼭 박물관 같은 데서 쓸 것 같은 방식이라고 평가했고, 부편집장은 형사사건 증거물 다루듯 한다며 혼잣말했다.

그리고 편집장은, 신문의 취급 방식보다는 리미트리스가 자신들을 어떻게 다룰지에 훨씬 관심이 컸다.

“저··· 모쪼록 이번 일은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일단 미수기도 하니까요.”

“음, 어떻게 마무리하는 게 좋으려나?”

잠시 후 최다미의 고운 입술 사이에서는 광고라는 단어가 흘러나왔고, 편집장은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에, 편집장은, 기절할 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다.

* * *

며칠 후, 밤마다 따로 특훈하는 에디의 미담이 널리 퍼져 나갔다. 첫 출처는 노스이스트 저널이었다.

“의외네. 스캔들 같은 것만 관심 있는 줄 알았는데.”

“애니 씨 말처럼 누구보다 스캔들을 좋아하지만, 정작 다룰 용.기.는 없는 언론이니까요.”

다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물론 다미는 밝고 명랑한 편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 텐션이 올라간 모습은 보기 드문데···.

오죽하면 희주조차 한마디 했을 정도다.

“다미 언니 되게 기분 좋아 보여. 혹시 마음에 드는 신상 백이라도 구했나?”

“쟤가 너냐.”

다미는 신상 백에 별로 관심이 없다. 쟤는 입사 직후부터 쓰던 가죽 가방을 여태 쓰고 있거든.

“이상하다··· 틀림없이 마음에 드는 물건 득템했을 때의 표정인데.”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이, 다미는 내 책상 위에 두툼한 서류 뭉치를 올렸다.

“사장님. 리미트리스 유소년 리그 준비도 전부 마무리했어요. 1회 대회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카메룬, 나이지리아, 모로코, 이집트, 그리고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에요.”

“그래.”

명단의 국가를 훑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기업이니까 한국에서 대회를 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 외에는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축구 강국으로 꼽히는 나라들을 주로 포함시켰다.

그렇다고 딱 축구 잘하는 순위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는 게 다미답게 느껴졌다. 아마 피파 랭킹이나 월드컵 진출 횟수 같은 것들로 줄을 세웠겠지.

개인적으로는 코르티부아르나 알제리, 세네갈을 넣어도 괜찮겠지 싶었다. 남미에서는 우루과이라든가··· 뭐, 어차피 매년 할 생각이니 국가는 차차 늘려나가면 되겠지.

“일정은 모든 국가에서 동일하게, 5월 29일에 시작하게 정했어요.”

“유로파 결승 다다음 날이네.”

“네, 유로파 결승을 직관하셔야 할 것 같아서요.”

무조건 선덜랜드가 결승에 갈 거니까, 그에 맞춰서 스케줄을 잡겠다는 것 이상의 응원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다미의 환한 미소에, 나도 미소로 응답했다.

“그래.”

“그럼 저는 이제 귀국할게요. 희주 씨. 부디 사장님을 잘 부탁드려요.”

“네, 맡겨 주세요. 제가 잘 챙길게요.”

“그 반대겠지. 누가 누굴 챙긴다고?”

내 항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미의 입에서 각종 요구사항이 쏟아져 나왔다.

“사장님은 과로하시는 편이니까 스케줄 관리에 더 신경 써 주세요. 절대 무리하시지 않도록요. 그리고 흐린 날에는 온찜질도 받게 해 주시고, 제로 콜라는 조금 줄여서 내드리고요.”

이후로도 다미의 요구는 계속 이어졌고, 마침내 평소 다미를 잘 따르던 희주조차 질린 것처럼 고개를 멍하게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얘가 전생에 내 엄마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혹시 나는 사실 엄청나게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병자 같은 게 아니었을까 의심스러울 만큼 다양한 요구 사항이 허공을 떠돌았다.

“그리고, 개미가 꼬이지 않도록 각별히 부탁드릴게요.”

벌레는 나도 싫지만, 다미의 방역 의식엔 남다른 측면이 있다. 조금 강박적일 정도로.

반쯤 넋이 나가서 눈만 깜빡거리는 희주를 내버려 둔 채, 나는 다미를 배웅했다.

“조심히 들어가고.”

“네.”

“아, 그리고 머리 예쁘네.”

“···네!”

다미는 퍽 행복해 보였다.

* * *

노스이스트 저널이 발표한 에디 특집 기사는 다양한 반응을 불러왔다.

- 믿고 있었다구!

- 그럼, 교관 로저스가 키운 선수인데. 헛짓거리하겠냐.

ㄴ 캬, 자기 연습에 해리슨까지 챙기고··· 지린다.

ㄴ 이게 리더십이지. 에디 3주장 가즈아!

우리 선덜랜드 팬들의 환호는 당연한 거였지만, 의외로 다른 팀 팬들의 부러움도 상당했다.

- 저긴 무슨 선수 인성 개조시설 있냐? 선덜랜드만 가면 선수들이 죄다 축구 기계가 되냐.

ㄴ 리미트리스에서 머리에 칩 박은 거 아닐까?

ㄴ 구단주가 근본이잖아. 유스 때 무릎 나갈 때까지 뛰던 사람이 구단주 하고 있는데, 그 밑에서 주급 받는 선수가 어떻게 살살 뛰겠어.

아니, 나는 오버워크 안 시키는데?

누가 들으면 내가 무슨 블랙기업 사장, 악덕 구단주인 줄 알겠지만, 억울하다. 내가 갈아넣는 건 수석 코치하고 구단주 비서밖에 없어.

한편, 셰필드 팬들은 아쉬움 반, 원망 반 섞인 반응을 나타냈다.

- 에디 저 새끼. 셰필드에서는 안 그러더니.

에디의 에이전트, 제이미가 곧바로 해명에 나섰다.

[셰필드에서도 선덜랜드에서도, 에디는 늘 한결같은 선수였습니다. 프로라면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을 흘리는 거라는 지론을 갖고 있었죠. 꿈을 주는 직업이니까요. 그저 셰필드 시절엔, 개인 훈련을 들키지 않았을 뿐입니다.]

“구단주님, 에디 유니폼이 엄청 팔리기 시작했어요. 주간 판매량 1위를 찍었거든요!?”

놀라운 일이었다. 그동안 유니폼 판매량은 기본적으로 잭과 요니가 장악하고 있었으니까.

가끔 크리그나 바스티아노, 마르틴이 치고 올라올 때도 있기는 했다. 주로 경기에서 골 폭격을 퍼부었을 때다. 하지만 그런 이벤트는 항상 삼일천하로 끝나곤 했다.

“판매량을 보면 주니어 사이즈가 제일 많이 팔렸어요. 매장에서 보면 어른들이 사갔으니까, 아마 자기 아이들에게 사다 주려는 것 같아요··· 노력을 본받으라는 의미겠죠?”

에이미의 분석에, 아드리안 또한 곧바로 새로운 굿즈를 내놓았다.

“야간 스탠드 세트를 준비했습니다. 축구장 스탠드 모양과 똑같은, 탁상용 스탠드죠.”

“어··· 이런 게 팔리겠습니까?”

미심쩍어하는 나를 향해, 아드리안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시제품을 내밀었다.

[노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것이다.]

멋들어진 문구 옆에 들어간 에디의 사인을 보고, 나는 그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탁상 스탠드는 완판되었습니다. 성원 감사합니다.

* * *

마일즈의 집에 모인 ‘브라더스’ 또한 에디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기사 보셨어요? 에디 정말 멋지던데요?”

노스이스트 저널의 단독 기사에 이어, 선덜랜드 데일리는 심화 기사를 냈다.

페르난데스와 함께 뛰던 시즌, 은퇴를 앞둔 레전드 골키퍼로부터 수비라인을 넘겨받은 젊은 센터백 에디가, 이제는 팀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다는 칼럼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위대한 선배들로부터 받아왔던 것처럼 어린 선수 해리슨에게 무언가를 넘겨주려고 하고 있다··· 캬! 이게 선덜랜드의 정신이지.”

감탄하는 핫도그 사내를 향해, 맥주집 사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지적을 보냈다.

“전에는 뺀질거려서 마음에 안 든다더니.”

“첫인상은 그렇지만, 본성을 알면 미워할 수 없는 선수더라고.”

이야기를 나누는 브라더스를 바라보며, 집주인 마일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이건 뭡니까?”

“아, 선물입니다. 아기 옷이요.”

브라더스의 이야기에 마일즈는 쓴웃음을 지었고, 수잔이 기겁했다.

“선물은 고마운데··· 옷이요? 아직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르는데도요?”

“수잔 말처럼 너무 이르긴 하지만, 틀림없이 딸일 거야.”

벌써부터 딸바보 전조 증세를 보이는 마일즈에, 브렌든까지 가세했다.

“맞아. 딸이어야 해. 엄마 닮은 딸.”

“틀림없이 아들일 거예요. 발길질이 꽤 활발하거든요.”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지만. 어차피 맥켐즈로 키울 거니까.”

마일즈의 대답에, 핫도그 사내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행이군요. 아들인지 딸인지 신경 쓸 필요 없겠습니다. 저희가 준비한 아기 옷은 남녀 공용이거든요.”

선덜랜드의 뉴 라인업, 아기용 레플리카 유니폼을 꺼내 보이며 브라더스가 히죽거렸다.

아이가 입을 수 있는 천연 원단에, 팀 고유의 컬러가 들어간 디자인을 확인한 우드 부부가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우리 애는 태어나면서부터 맥켐즈가 될 것 같죠?”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선덜랜드니까, 일생을 팀과 함께 보내게 되겠네.”

* * *

한편, 유소년 육성단장 페르난데스와 유스 감독 벤자민도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올해는 센터백 지망이 잔뜩 몰려왔습니다. 에디 보고 왔다던데요.”

고무적인 일이었다.

어린 시절엔 아무래도 공격수를 선호하고, 잘하는 애들일수록 전방에 기용되는 경향이 있다. 아카데미에 뽑힐 만큼 뛰어난 유소년 센터백은 존재만으로도 굉장히 귀하다.

이들 중 몇 명이나 프로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신청이 늘면 아무래도 재능 있는 아이들이 섞여 있을 가능성도 높을 것이다.

“반대로 미드필더, 특히 공격형 미드필더 지망은 예년보다 급감했습니다.”

이유가 짐작이 가서, 나는 차분히 되물었다.

“해리슨 때문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유스 출신의 로컬 보이, 어린 나이인데도 임대 한 번 나간 적 없고, 에디가 직접 연습을 챙길 정도니까요. 그런데도 아직 스물도 안 되었으니까···.”

옆에서 희주가 끼어들었다.

“무슨 차이야? 에디 보고 들어오겠다는 애들은 오히려 늘었다면서?”

“나이 차이지.”

내 대답에 이어, 벤자민의 친절한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 센터백으로 들어오면 에디의 후계자를 노릴 수 있습니다. 에디가 커리어 말년을 보낼 때쯤 프로로 데뷔해, 1, 2년 정도 같이 뛰면서 배우게 되겠죠. 그런데 해리슨은, 지금 아카데미의 아이들이 데뷔할 무렵에 전성기를 맞을 겁니다.”

“그런 이유라면 우리 팀엔 프랭크도 있는데···.”

“프랭크는 아직 해리슨 정도로 유명하진 않으니까요.”

벤자민이 희주에게 설명하는 사이, 나는 페르난데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페르난데스의 얼굴에서, 흐뭇한 미소가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격형 미드필더는 몇 명 신청했습니까?”

“딱 한 명입니다.”

내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자기 재능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겠군요. 그리고, 인내심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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